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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63화 (163/171)

〈 163화 〉 새로운 인연의 소용돌이

* * *

“쇼군을 뵙습니다.”

일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고개를 조아렸고, 그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일이다.

비록 쇼군이 실권을 잃었다고 한들 신분의 격이 달랐다. 일영은 고작 지방 다이묘의 가신이었고, 이코마 키츠노 역시 상인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이들은 말할 것조차 없다.

“쇼군을 뵙습니다!”

“쇼군을 뵙나이다!”

일영의 앞으로 성큼 나선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사무라이들을 제외한, 일영 측의 다른 사무라이들은 아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한편, 그 광경을 본 적들이 당황하는 건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리라.

“쇼, 쇼군이라니.”

“……이, 일이 너무 커졌어.”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노리고 있던 목표는 어디까지나 지방에서 갓 교토로 올라온 다이묘의 가신을 처리하는 일이었지, 숱한 다이묘들의 견제를 뚫고 기어이 교토로 다시 돌아온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아니었으니까.

‘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덕분에 조금 전까지 아시가루들을 베며 일영을 향해 내달릴 것을 명령하던 사무라이들도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선택지가 애매해졌다.

‘이 자리에서 공격을 계속한다면?’

그건 월권이다. 그들의 주군이 명령한 건 쇼군의 목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무지렁이 하급 사무라이라고 해도 쇼군의 죽음이 초래할 혼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고작 하급 사무라이가 감당할 크기는 아니다. 아무리 우스갯소리로 하극상의 시대라고 한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그러나…….

‘도망친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미 아시가루의 4분의 1 정도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사무라이의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 있었다. 어림잡아 피해는 3분의 1. 이런 적잖은 피해를 보고도 적에게 변변찮은 상처를 주지 못했다고 문책당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필시.

그 문책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사무라이들은 별로 없으리라.

‘어느 쪽이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몇몇 사무라이들은 인상을 일그러트리거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한편, 자신의 앞에 망설임 따위 없이 무릎을 꿇은 일영의 일행과 어버버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적들을 번갈아 본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이윽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가볍게 흘리고는 말했다.

“그래도 교토로 돌아오니 저놈들이 눈치는 보는군. 이건 이거대로 기쁜데.”

그 순간,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숙였던 허리를 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 담긴 건 매우 씁쓸하고도 자조적인 목소리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걸어온 삶이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으리라는 걸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일영보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적들에게 흉흉한 살기를 내뿜고 있던, 중무장한 열 명의 사무라이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물었다.

“……어찌하시겠나이까.”

짐승과도 같이 그르렁거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순간 적들은 물론, 이코마 상단 측의 낭인 몇몇도 놀라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인위적으로 비틀기라도 한 듯이 날카롭고 찢어질 듯 갈라졌으니까. 당연히 그 대상이 된 아시가루와 사무라이의 입장으로선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교토에서 활동하는 그들로선 더더욱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저 사무라이들이……. 쇼군과 함께 숱한 사선을 겪었다는…….’

들어본 적이 있다.

쇼군 가(家)의 마지막 충신들이자, 점차 실권을 잃어가는 아시카가 가문을 끝까지 보좌하는 사무라이들.

수가 적다고 얕볼 수도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시카가 가문의 저택을 드나드는 암살자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는 것이 다름이 아닌, 저들이었으니까.

“흐음. 어찌할까.”

그녀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 한 마디에 아시가루는 물론 사무라이들조차도 움찔거리며 그녀가 내뱉을 한 마디를 기다렸다. 만약 죽이라고 명령한다면, 그들도 그저 목을 내놓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어느 쪽으로든 활로는 없다.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얼굴에 맺힌 감정은 참담함이었지만 말이다.

바로 그때였다.

“네 생각은 어떻지?”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연갈색 눈동자가 일영의 얼굴에 닿았고, 그녀는 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는 일영에게 의견을 물었다.

“…….”

때문에, 일영은 잠시 적들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하니.

“모조리 죽여버리시지요.”

“호? 뜻밖인 대답이군. 이유는?”

그의 한 마디에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지극히 의외라는 듯, 또한 흥미로움이 가득 담긴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으니.

“후환을 남겨두는 걸 즐기지 않습니다. 쇼군께서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만.”

“하, 하하하하하하!”

여자의 몸에서 나온다고는 쉬이 믿기지 않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곤 읊조렸다.

“암, 후환을 남기진 말아야지. 그건 이 빌어먹을 시대를 살아가면서 일종의 상식과도 같은 거니까.”

그렇게 한참을 웃던 그녀의 눈에 맺힌 감정은 모호함이었다. 마치 일영의 본심을 가늠해보기라도 하는 듯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그녀는 머잖아 일영에게 의미를 모를 말을 던졌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걸 매우 마음 아파하는 분이 계신지라.”

“마음 아파하는 분이라면……?”

그녀의 영문모를 말에 일영은 살짝 미간을 좁힌 채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눈치를 보아야 하는 대상이라니?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런 일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이건 배려라고 하는 거다. 안 그래? 루이스.”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루이스.

그 이름을 듣자마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만약 누군가 검으로 벤다고 해서 그 순간만큼은 반응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곧 쇼군인 그녀가 걸어 나왔던 골목에서 한 여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예수회의 사제라는 걸 드러내는 검은 정복.

꼬리뼈까지 내려오는 백 금발과 푸른 눈.

그리 크지 않은 키임에도 완벽한 비율과.

한번 걸음을 디딜 때마다 흔들리는, 요시나리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거대한 은총의 크기까지.

“……이분은.”

애써 놀라움을 삼킨 일영은 놀라는 자신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물었고, 그 순간 그녀는 대답했다.

“루이스 프로이스라고 하는 서방의 선교사다. 어쩌다 보니 곁에 잠시 두고 있지.”

“주께서 절 이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들에게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들에게 기회를.

일영은 고개를 돌려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적들을 바라보았고, 곧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바라보며 무언의 물음을 던졌다.

“…….”

“…….”

찰나의 순간 두 남녀의 시선이 뒤섞인다.

그리고, 일영은 은은한 미소가 담긴 푸른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이스 프로이스에게 물었으니.

“사무라이들은 죽여도 됩니까?”

“사무라이. 아, 으음…….”

그런 일영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머잖아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꺼운 성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속삭였다.

“지금 빨리하세요. 전 못봤으니!”

당연하게도 일영은 벙찐 표정으로 그녀와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그런 일영의 시선을 느낀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후에 속삭이듯 말했다.

“미친년이니까 여기까지 오는 거지. 뭐.”

“…….”

그리고, 일영은 그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주인의 권세를 알리기라도 하는 듯 화려하지만 절제된 전각 안에 홀로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는 소리도 내지 않고 들어온 닌자가 건넨 서신을 받아들어 펼쳤다.

사락.

펼쳐진 서신의 내용을 천천히 훑던 중년인은 머지않아 쯧하고 혀를 찼으니, 그건 다름이 아닌 아쉬움이었다.

“변변찮은 권력도 없는 계집이 잔꾀를 쓰는군…….”

그는 말 속에 담긴 경멸과 성가심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잠시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읊조렸다.

“롯카쿠 가문이 체면치레했으니,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맞춰주는 수밖에…….”

때로는 명분이 없어, 쥐새끼가 찍찍거리는 꼴을 봐야 하는 법이다. 그는 그런 사실을 곱씹으면서도 서신 한쪽에 적힌 이름을 곱씹었으니.

“히라테 히카게. 조선에서 넘어온 놈이라…….”

중년의 남자.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는군.”

미요시 나가요시는 그렇게 읊조리며 돌아가는 두 눈을 감고 교토를 휘감은 판도를 훑고는 씨익 웃고 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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