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59화 (159/171)

〈 159화 〉 하치스카 당(6)

* * *

“왜냐하면, 모두 죽을 테니까요.”

일영의 말에 잠시 굳어 있던 하치스카 고로쿠가 입술을 몇 번이나 뗐다가 붙이며 달싹거렸다.

일영의 말은 지극히 과장된 경고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겠으나 그럼에도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뭘까?

이 남자가 바라보고 있는 작금의 판도는 어떨까.

‘궁금해.’

때문에.

“……글쎄요. 어째서죠?”

그녀는 일영에게 의문이 담긴 반문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비단 하치스카 고로쿠 뿐만이 아니다. 곁에 앉아 있던 이코마 키츠노 역시 이유가 궁금한 건 매한가지라는 듯이 일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아버지를 죽이고 미노를 삼킨 사이토 요시타쓰가 광인이라고 한들 제 발로 들어온 세력을 홀대할 리가……?

“어째서라는 1차원적인 대답보다는 그보다 본질을 짚어봅시다.”

탁.

일영의 손이 가볍게 마차의 바닥에 닿았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선을 그리니, 그건 바로 오와리와 미노였다.

“먼저 오와리. 오다 가문은 피의 숙청을 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흘린 피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체급의 문제도 있으나 결정적으로 아주 적은 피해로 가문 내의 분쟁이 끝났기 때문이죠.”

“확실히, 가문 내의 권력을 위해 흘린 피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죠. 노부유키도 살아있으니까.”

일영의 말에 이코마 키츠노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승계.

쇼군의 지위와 권위가 온전했던 과거엔 다이묘라 함은 단지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직에 불과했겠지만, 작금의 난세에선 사실상 한 나라의 왕위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부모, 형제끼리는 둘째치고 방계의 방계까지 나타나는 판국에 오다 가문 정도면…….’

충분히 평화적이라 할 법도 하다.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 이코마 키츠노의 읊조림에 당위성이 더해졌는지 하치스카 고로쿠는 계속해도 좋다는 듯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보시죠.”

“반면, 미노는 어떻습니까.”

일영의 손이 마차의 바닥에 그린, 가상의 미노에 닿는다.

“사이토 도산에게서 정상적인 가독 승계를 받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그녀를 인정하지 못한 내부의 반발을 찍어 누르는 데에 피를 흘린 지가 1년이 넘습니다.”

일영의 말에 허점은 없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하치스카 고로쿠는 그의 예측과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그렇기에, 인재가 부족하니 저희의 합류를 더욱 반기겠지요.”

“글쎄요. 인재라.”

일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가 이윽고 사라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하치스카 고로쿠는 그것이 호의나 동의가 담긴 게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챘기에 반문했다.

“……뭐죠? 그 반응은.”

그녀의 얼굴에도 묘한 불쾌감이 스친다. 하지만, 곧 이어진 일영의 말을 들은 그녀는 뒤늦게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토 요시타쓰에게 필요한 건 인재가 아니라, 그저 말을 잘 듣는 인형들과 잘 드는 칼들일 뿐입니다.”

“……아.”

하츠스카 고로쿠의 표정이 삽시간에 묘해졌다. 때로는 고민하는 듯하다가도, 때로는 나지막이 탄식하는 모양새.

원 역사에서도 본디 무장이었으나 이후 내정에 더욱 더 중히 쓰였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단지 추측으로 완성된 결과만을 어렴풋이 말해줬을 뿐임에도 머잖아 그녀는 일영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를 깨달았다.

‘처음부터 환대받지 못할지도 몰라. 아니, 만약 환대를 받는다고 해도 머잖아 반목하겠지.’

다이묘의 밑에 들어가서까지 비살상을 견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왕 휘하로 들어간다면 그녀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였다.

‘품에 안은 이들의 울타리, 그리고 조언 정도는 할 수 있는 직위.’

그녀가 구태여 미노와 오와리를 두고 고민하는 이유도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리 난세이고 인재가 귀하다고 한들 어느 시대든 외지인은 경계 받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다이묘가 부덕한 명령을 내리며 손가락을 뻗으면 그곳으로 내달리는 삶은 그녀 쪽에서 사양이다. 하지만, 일영의 추측이 맞다면…….

‘사이토 요시타쓰의 거수기가 되거나, 아니면 숙청당하겠지.’

물론 전적으로 일영의 추측일 뿐이었으나 왜일까. 그의 말이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은 합리적인 추론처럼 들리는 이유는.

‘정보의 격차가 이 정도로 클 줄은.’

하치스카 고로쿠는 묵묵히 자신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듯한 일영과 이코마 키츠노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굳혔다.

소문과 빈약한 정보망을 더듬어가며 미래를 구상하던 하치스카 당. 반면 체계적으로 첩보를 이어가고 있을 오다 가문과 이코마 가문.

어느 쪽이 더욱 신뢰성이 높은 정보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후. 어쩔 수 없네요.”

그녀는 어느샌가 설득이 되었음을 깨닫는 동시에 스치는 안도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 일영이 자신들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최소한의 쓰임 정도는 인정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운이 좋았어.’

생각 정리를 끝낸 하치스카 고로쿠의 눈동자에 어느샌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일영의 얼굴이 담긴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만약, 그가 비살상이든 뭐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모두를 도륙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애초에 그가 검집으로 제압한 하치스카 당의 일원들만 십여 명이 넘지 않았는가.

“곧바로 넘어가기엔 시간도 걸릴 테고, 의사소통이 잘못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테니 제가 당주님께 양해를 구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사이에 노략질은 자제를 부탁드리죠.”

“여부가 있겠어요?”

“다행이네요. 친척이 죽는 꼴은 안 봐서.”

둘의 대화의 흐름을 모두 쫓아가지는 못했으나 어느 정도 유해진 분위기를 읽은 이코마 키츠노가 너털 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일영과 하치스카 고로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이만 물러서죠. 덕분에 시야를 넓혔네요. 히라테 공.”

아무리 일이 잘 풀렸다고 한들 밖의 분위기가 그리 화목하지는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하치스카 고로쿠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마차 밖으로 몸을 향하던 그녀는 머잖아 멈칫하고 자리에 서서 문득 일영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보시죠.”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허공에서 일영의 검은색 눈동자와 그녀의 검보라색 눈동자가 마주 스친다.

찰나의 정적.

그 정적을 깬 것은, 하치스카 고로쿠의 분홍빛 입술을 비집고 내뱉어진 물음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기회를 주신 거죠? 이코마 가문의 친척이라서? 아니면, 우리가 여자라서? 그조차 아니라면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운이 좋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일영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 직접 묻는 것을 택한 것이리라.

“으음.”

톡, 토독.

그녀의 물음에 일영은 곧바로 화답하지 않고 나무로 된 마차 의자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여전히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이코마 키츠노 역시 내심 일영의 생각이 궁금하긴 했는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머잖아 일영은 생각을 정리를 끝냈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그녀에게 말했으니.

“하치스카 고로쿠. 당신은 원래 관백에 오르는 희대의 개새끼 밑에서 일할 운명이었는데, 그 개새끼를 제가 죽였습니다.”

“그 개새끼 밑에서 제가 일을 잘 했나보죠?”

“역사에 이름이 남았죠.”

일영의 허무맹랑한 말에 하치스카 고로쿠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화답했고, 그녀의 말을 다시금 받아친다.

“차라리 예뻐서 그렇다고 하세요.”

“그럼 그런 거로 하겠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농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대화가 오가고, 실제로 하치스카 고로쿠는 일영이 농담을 했다는 생각에 한결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늦었지만, 제 동생이 말을 심하게 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훗날 오와리에서 다시 뵈었을 때 동생도 고개를 숙이게 하겠어요.”

“그러시죠.”

사과까지 끝낸 하치스카 고로쿠는 그 발길로 마차를 나섰고, 머잖아 수십명이 함께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이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모두 물러갔습니다.”

“그래.”

“고생했어요.”

이전과 달리 노곤한 목소리로 이츠키의 말에 화답한 일영의 곁에서 이코마 키츠노가 그렇게 말했고, 일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으니.

“저기, 그 있잖습니까.”

“예?”

“……담배도 취급하십니까?”

그건, 그간 참았던 니코틴에 대한 욕망을 알리는 한 마디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밥 먹고 합시다!”

밖에서, 태연하게 식사 준비를 독촉하는 이츠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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