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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58화 (158/171)

〈 158화 〉 하치스카 당(5)

* * *

자리를 옮긴 그들이 향한 곳은 일영이 타고 있던 마차 안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비밀리에 얘기하는 데에 마차만 한 곳이 또 따로 있을까?

적어도 이 공터에선 없었다.

그런 이유로 마차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일영, 이코마 키츠노, 하치스카 고로쿠 셋뿐이었다.

“…….”

물론, 하치스카 당의 입장에선 믿고 따르는 두령이 난데없이 적진 한복판으로 향한 탓이 이전보다 더욱 형형한 눈빛을 빛냈지만 말이다.

“살벌하네. 살벌해.”

“그러게나 말입니다.”

당연히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쓰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거진 백 명에 이르는 여자들이 창칼을 쥐고 이전보다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도 이유였으나 그들로선 우습지 않을 수가 없지만, 더더욱 어이가 없는 건 그들을 습격한 건 그녀들이라는 점이다.

‘하여튼, 어지러운 세상이라니까.’

이츠키는 곁에 서 있으면서도 일영이 걱정 되는 듯 힐끔힐끔 일영을 돌아보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산적을 자처하면서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인질들의 몸값을 받는 그녀들.

다이묘의 가문에 충성하며 사무라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나서 사람을 죽고 죽이는 자신들.

두 존재 모두 모순적이지 않은가.

때문에, 이츠키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다가 이윽고 뒤에 선 사무라이를 보며 말했다.

“먹을 거 있냐? 배고픈데.”

“예?”

“배고프다고.”

상황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이츠키가 내뱉은 한 마디가 공터를 휩쓸었고, 곧 그의 곁에서 울려 퍼진 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스쳤으니.

꼬르륵.

“……아.”

아케치 미쓰히데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벌게졌고, 그걸 들은 이츠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빨리 좀 끝내주십쇼. 도련님. 저녁 시간 지나도 한참 지났으니까.”

*

“허술하고, 위험하며, 지극히 감성적입니다.”

“알아요.”

일영이 내뱉은 신랄한 평가에 대해 하치스카 고로쿠는 별다른 반박을 내뱉지 않고 그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술하고.

위험하며.

지극히 감성적이다.

언뜻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냉철하고 직설적인 말이었으나 정작 그 당사자 역시 큰 반발을 내뱉기보단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츠스카 당을 이루는 근본적인 비(?) 살장 기조는 내부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은 톡톡히 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오래가지 못하겠죠.”

“알고도 방관할 리는 없고.”

그렇게 말하는 일영의 시선 속에 담긴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한다. 알고도 방관한다면 일영은 구태여 그녀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

조직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수장은 없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처에 따라 급이 나뉘는 것이다.

방관은 가치조차 없다.

때문에, 일영은 그녀가 말을 하기를 기다리며 습관이 되어버린 흉터를 살짝 어루만졌다.

“이제 와 무얼 숨기겠습니까.”

하치스카 고로쿠.

그녀의 검보라색을 띤 눈동자에 무언가 스친다. 그것에 어떤 감정이 담긴 것인지 이해하기도 전, 그녀는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을 하나를 꾸리고 있습니다.”

“마을이라면…….”

“예상하셨겠지만, 오와리와 미노 사이, 아직 누구의 땅인지 확실히 구분이 가지 않은 접경지의 야산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턱에서 손을 떼어내고 손가락으로 마차의 벽을 톡톡 두드렸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아직도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못한 일이지만, 전화기는커녕 가장 빠른 보고 수단이 전령과 전서구인 이 시대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녀와 같은 마을이 이 열도를 넘어서 조선에도 몇 개가 있을까.

‘들킨다면 행정 구역에 편입되겠지만, 안 들킨다면.’

그들은 그저 그렇게 마을을 일구고 살아가는 것이다. 흔히, 화전민들이 그러는 것처럼.

“비살상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셨군요.”

곁에서 묵묵히 듣던 이코마 키츠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적당히 돈만 받고 풀어줌으로써 악명을 최대한 줄이고.”

“겸사겸사 내부 민심도 다스리는 거겠죠.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한들, 약탈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기엔 거북한 이들도 없잖아 있을 테니까.”

“벌써 거기까지…….”

하치스카 고로쿠는 냉철하게 허를 찌른 둘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구태여 부정할 이유도 없었다.

세부적인 내부 사정은 다를지 몰라도 그들의 말에 큰 빈틈은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마을이라.”

물론.

“꿈도 참 크십니다.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일영의 평가는 이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냉소적으로 변했다.

“허가받지 않은 마을의 건설을 달가워하는 토호는 없습니다. 얌전히 세금만 받아가면 다행이겠죠. 하지만 그럴 리가.”

난세는 몇몇 미친 군주가 만드는 게 아니다. 시작은 미친 군주들이 연다고 하지만, 결국 그 시대를 완성하는 건 제각기 탐욕과 욕망에 미쳐 날뛰는 알량한 권력을 가진 놈들이란 말이다.

그런 놈들에게 그녀와 그녀의 마을은 일단 찾아내는 순간, 아주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리라.

하치스카 고로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지요.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쓴웃음을 짓는다.

그녀라고 어찌 일영이 말한 것을 모를까.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았다는 것 역시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문은 무너졌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나 오와리와 미노 양쪽에 엮인 일이었지요.”

그녀가 운을 떼자 일영과 이코마 키츠노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녀의 가문에 불운이 겹쳤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었기에 충격이 덜한 탓도 있었다.

“사방에 남자들이 씨가 말랐습니다. 미노에서는 딸이 아비를 죽인 반역으로 늙은 노인들까지 징병해가는 탓에 어린 소녀와 할멈이 밭을 멥니다. 오와리도 조금 느슨할 뿐 크게 다른 상황이 아니었지요. 얼마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대해선 일영도 할 말이 없었다. 근 몇 년 사이에 오와리와 미노는 너무 큰 사건을 연달아 치러야 했으니.

“거기에 몸을 의탁하려고 한들, 한쪽은 살무사를 씹어 물은 패륜아에 다른 한쪽도 아비의 시체에 향을 던진 패륜아군요.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요?”

전자는 사이토 요시타쓰고 후자는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나가다.

“크흠.”

일영은 힐끔 이코마 키츠노를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그녀 역시 노부나가의 행동을 변호할 수 없었는지 괜히 어색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물론, 하치스카 고로쿠는 그런 둘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말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마을이라도 일구고 합류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세력이 없네요? 그러면 남은 건 뭐겠어요.”

“그렇군요.”

즉, 그녀의 말은 간결하다.

미노와 오와리 쪽에 껴서 가뜩이나 쇠락하던 가문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는데, 어디 당주 가문에 몸을 의탁하기에도 두 가문의 소문이 워낙 좋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몸 값을 올리기 위해 세력이라도 일구려고 했더니 남자가 씨가 말랐다라는 이야기다.

‘확실히.’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 일영이라도 저게 최선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영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몸값을 올려 어디로 투신하려고 하셨습니까?”

“미노에요.”

고려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즉답.

“이유는?”

“영토도, 가문의 힘도 미노의 사이토 가문이 오와리의 오다 가문보다 나으니까요.”

“이해가 되는군요.”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오답입니다. 저라면 오와리를 택하겠어요.”

“……그거야 당연히.”

“아니요.”

일영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려는, ‘그거야 당연히 그쪽이 오와리의 오다 가문을 모시는 사람이니까’라는 말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와리의 히라테 히카게가 아니라. 난세를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명의 무사로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 명의 무사라. 좋네요. 경청할게요.”

하치스카 고로쿠의 검보라색의 눈동자가 번뜩이고, 선홍빛의 입술이 부드럽게 말아 올려진다.

그녀는 궁금했다.

‘조선의 무관이었다가 쓰시마를 통해 넘어왔다고 했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풍문으로 듣기엔 조선에서 승승장구하며 온갖 여자와 엮이다가 끝내 왕의 여자가 그에게 반하여 추문을 피해 도망쳤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역모에 엮인 친우까지 죽고 가문도 풍비박산나고 말이다.

‘솔직히 풍문 줄 절반이 믿지도 못할 소리니 그러려니 했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특히, 중간에 여자와 엮였다는 부분 말이다.

물론, 외모만 보고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를 만나고 보여주었던 통찰력이 예사의 것이 아니었기에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옳은 쪽이리라.

그녀의 검보라색 눈동자에서 투영된, 기대감이 가득 담긴 시선이 일영의 입에 닿았다.

그러나 이윽고.

“왜냐하면, 모두 죽을 테니까요.”

일영의 말을 들은 그녀는 무심결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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