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54화 (154/171)

〈 154화 〉 하치스카 당(1)

* * *

‘세상에.’

일영은 어느샌가 자신들을 포위하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이 서슬 퍼런 눈빛을 하고 있는 산적들을 눈에 담으며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해라’라니.

대체 어느 나라에서 넘어 온 건지 이해조차 힘든 근본 없는 말이란 말인가. 물론 말이 아예 안 되는 문구는 아니다. 그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세계 자체가 여자 다이묘와 여자 무장들이 적잖이 포진한 세계니까.

“……단단히 미쳤군.”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년들이다. 어떻게든, 도련님을 지켜야 해.”

다만, 일영의 주변에서 그를 호위하기 위해 검을 뽑아 든 히라테 가(家) 사무라이들의 반응을 보면 그들 역시 처음 겪는 유형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곧 날이 완전히 저문 하늘 아래, 그들이 야영지로 택한 공터를 포위한 산적들의 성별을 훑어본 일영은 더욱 더 가관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이건, 좀 새로운데.”

일단 공터를 포위한 면면이 전부 여자라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녀들의 행색은 뭐랄까. 묘했다.

‘정규군은 아니고…….’

입고 있는 복식 자체는 그럭저럭 통일되어 있긴 했으나 군대의 그것과 비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산적이라기에도 이상하지.’

일전, 오와리에서 미카와로 넘어가며 진짜 산적이라 부를 수 있는 놈들을 만나 본 입장에서는 그녀들이 과연 산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무리 세계가 세계라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월한 신체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여자로만 이루어진 산적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온통 여자로만 이뤄진, 아. 그런가.”

일영의 귓가에 귀에 익은 이코마 키츠노의 목소리가 스친다. 그녀는 일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손목의 석궁을 장전하다가 멈추곤, 특유의 갈색 눈동자를 살짝 일그러트리며 나지막이 읊조렸으니.

“하치스카 당.”

어딘가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이름이다.

그것을 자각한 바로 그 순간 일영은 보았다.

“으음…….”

“흠.”

손에 검을 쥔 채로, 수적 열세를 깨닫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올 전투를 대비하는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과 달리, 이코마 상단의 상인들과 몇몇 낭인들은 그들의 정체를 가늠했는지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 일영과 눈이 마주친 이코마 키츠노는 주변에서 자신들을 포위한 여 산적들의 심기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하치스카 당이라고, 비교적 최근 미노와 오와리 인근에서 활동을 시작한 도적 무리에요. 다만, 일반적인 무리와는 조금 다른데.”

“예. 조금 다른 거 같긴 합니다만.”

피식, 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자 한발 늦게 일영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은 이코마 키츠노는 자신도 모르게 마주 웃음을 흘렀지만, 그러면서도 손목의 석궁을 마저 장전한 그녀는 덧붙이듯 말했다.

“저건 일종의 겁주기에요. 이해할 수는 없는 감성이기는 한데. 의외로 효과가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꽤 잘 아시는군요.”

“저희 상단도 몇 번 당해서요.”

그제야 일영은 그녀와 함께 이코마 상단의 일원들이 어떻게 하치스카 당을 알아볼 수 있었는지를 깨달음과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겹쳤다.

“그래서, 그 조금 다른 부분이 뭡니까?”

일반적인 도적과 조금 다르다라는 말의 의미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 일영의 물음에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치스카 당은 웬만해선 사람을 헤치려 하지 않아요. 물론, 필요하다면 손을 쓰겠지만 웬만해선 손속에 자비를 두는 편이랄까요. 그리고 대부분 인질로 잡아서.”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곧 어둠을 뚫고 숲 저편에서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거액의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 편이에요. 덕분에 저희도 몇 번 돈을 낸 적이 있답니다.”

“잘 아시는군요. 그러니 두 번 말하지 않겠어요. 무기를 버리시길.”

갈라진 여자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온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다치는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하겠습니다.”

검은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보라색이라고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여자의 목소리가 공터를 울린다. 자연히 일영은 그녀의 모습을 빠르게 훑었다.

산적 두목이라기엔 백색에 가까운 피부와 어디 가서 미녀라 충분히 불릴 정도의 이목구비.

마찬가지로, 조금 더럽혀지긴 했으나 깔끔한 의복과 결정적으로 귀족의 태가 나는 걸음걸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여 산적들의 충성과 선망이 어린 눈빛까지.

‘확실히, 일반적인 산적과는 달라. 행동도, 외견도…….’

이건 차라리 산적보단 작은 용병집단이 더 어울리는 행태가 아닌가.

산적이라 함은 무엇인가.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고 해도, 태반은 각자의 사정으로 산으로 도망쳐 또 다른 약자를 등쳐먹는 놈들일 뿐이다. 단지 무기를 들고 같잖은 세력을 일궜다는 것만으로 과거의 자신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죽이는 쓰레기들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일전에 산적을 만났을 때에도 일영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는 같은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잔인하게 손을 쓴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선 어찌해야 할까.

‘겉으로는 사정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윽고, 찰나의 순간 고민을 머금었던 일영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 동시에 언제 고민을 했었냐는 듯이 아주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다.

‘의도나 사정이 어떻든, 결국 강도인 것은 똑같지.’

언제부터 강도에게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정을 헤아리게 되어 있었는가.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한들, 또 고풍스럽게 말한다고 한들 그것이 표출되는 결과가 폭력이라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상단의 인원은 마흔 명 남짓. 그중에 사무라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서른 명 정도.’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단 측에서 고용한 무사들 역시 무시할 수준의 전투력은 아니리라.

더욱이 이코마 상단의 상인들 역시 난세를 살아가는 이들답게 제 몸을 지킬 수단 하나쯤은 이미 손에 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어림잡아도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기에, 섣불리 먼저 치기에도 어려운 상황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

“……하아.”

지지부진한 대치상황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결국, 선두로 나온 검보라색의 하치스카 당의 두령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고, 바로 그 순간.

“쳐라!”

“이야아아!”

산적 측에서 외침이 울려 퍼지고, 곧 그들을 포위하던 산적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그들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다름이 아니라.

“저 귀족과 상단주를 제압해!”

“길을 뚫는다!”

이코마 키츠노.

그리고, 일영이었다.

“귀족이라.”

일영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 외침에 무심결 실소를 흘렸지만, 그것은 방심에서 기인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흐읍!”

뒤에서 일영의 허벅지를 향해 찔러지는 창을 피한다. 동시에, 그는 허리춤에 닿은 창대를 손으로 잡아당긴 후 그대로 팔꿈치로 뒤에서 달려드는 여자의 뺨을 가격했다.

“꺼어억!”

아마, 제대로 맞았다면 당분간 정신을 차리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외쳤다.

“아케치!”

“예!”

일영의 부름을 받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여자는 죽여라’라는 구호에 걸맞게 살벌하게 달려드는 산적들을 모조리 제치곤 이코마 키츠노에게로 향했고, 곧 사방은 산적들과 사무라이들이 뒤섞인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수적으로 열세인 만큼 일영 역시 전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우웅!

“제발, 좀 잡히라고!”

거대한 몽둥이로 일영의 머리를 내리치는 여 산적의 일갈이 묘하게 들렸지만, 몸을 틀어 피하곤 그녀의 손목을 잡아 비튼다.

“끄윽!”

“오.”

그러나 과연 산적을 할 강단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고통에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도 망설임없이 봉을 놓았고, 동시에 단검을 꺼내 일영을 향해 휘둘렀다.

“이야아!”

엄청나게 숙련되지도, 또 엄청나게 어설프지도 않은 실력이었다. 하지만, 일영은 그녀의 그런 실력과 더불어 찔러지는 궤적을 확인하곤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으니.

‘허벅지.’

이코마 키츠노의 말대로, 그녀들은 되도록 치명상을 주는 것을 피한 채로 일영을 제압하려고 하고 있었다.

비단 일영과 이코마 키츠노에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뭐야?”

이츠키도.

“으음.”

아케치 미쓰히데도.

“도련님, 이 여자들…….”

일영과 함께 전장을 종횡했던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 역시도 머지않아 깨달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건 바로.

“정말로 살인을 자제하는 산적이라…….”

그녀들은 정말 살인 자체를 자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그것을 깨달은 직후 일영은 때마침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이 ‘하치스카 당’이라는 산적 무리를 이끄는 여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는 없을 듯 싶으니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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