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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52화 (152/171)

〈 152화 〉 바뀌는 것들(3)

* * *

”그게 당신의 두려움이었습니까.“

그 한마디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별다른 말조차 내뱉지 못한 채 그저 몇 번이고 입술을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색의 동공에 그의 얼굴이 맺힌다.

조금 갈색빛을 띠는 머리카락.

티 없이 맑은 백색의 피부.

흔들리지 않는 검은 동공.

……마지막으로, 입가에 길쭉하게 난 흉터까지.

익숙한 얼굴이었으나 그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무표정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그녀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지도, 한심하다는 듯이 훈계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일영의 저 한마디가 가지는 무게감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니.’

근본적으로 그녀는 일영이 자신을 바라보며, 지금 가지고 있을 생각조차 유추하지 못한 채 그저 그와 시선을 맞추고 있을 뿐이었다.

값싼 동정이 아니다.

은연중에 내비치는 연민도.

무도하게 깔보는 시선도.

재수 없어 하는 시기 어린 질투도 아니다.

“…….”

그야말로 무덤덤한 시선.

때문에, 그녀는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일영의 시선그 너머에 담긴 진의를 캐내려 했던 그녀의 생각과 달리 정말 일영은 그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그.”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것을 깨달은 시바타 가쓰이에가 무어라 입을 열어 그에게 말하려던 그때였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일영의 얼굴에 머무르고 있었던 무표정이 사라지며 그 어느 때보다 잔잔한 미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스윽.

그의 투박한 손에 쥐어진 오니 가면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씌워진다. 그러곤, 일영은 이전과 달리 적당한 세기로 줄을 묶어주고는 말하니.

“저는 제 흉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지만, 있으시다면 가리셔도 됩니다. 결국, 남들은 그 어떤 것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요. 다만, 전에도 말했듯이…….”

일영의 팔이 귓가를 스치고 이윽고 멀어진다. 동시에, 그는 머리에 다시금 가면을 고정해주기 위해 성큼 다가섰던 걸음을 반 발자국 뒤로 물린 채 피식 웃었으니.

“흉이 났다고 한들, 그 미모가 가려지는 건 아닙니다.”

“……무, 무슨.”

능글맞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그제야, 시바타 가쓰이에는 조금 전에 일영이 내뱉은 말을 곱씹는 한편 왜인지 빠르게 뛰는 심장의 고동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해버린 행동이었다.

두근.

이유를 가늠할 수 없는 심장의 두근거림.

달아오르는 볼과 살짝 떨리는 손끝.

일전, 그녀가 가면을 처음 벗었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 이면에 담긴 감정은 절대 같지 않음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뒤섞인 감정의 근원조차 알 수 없는 순간, 여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일영에게 던진 의문은, 그저 의미 없는 참견이자 어리광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것을 자각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실수였나.’

그녀 스스로도 어째서 얼굴을 가리는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그저 부정적인 시선이 싫다고,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의연하냐고 무작정 읊조린 것이 그에게 어떻게 비추어 졌을지는 구태여 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바로 그때.

터억.

일영의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녀의 머리 위로 일영의 손이 가볍게 얹혔다. 시바타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동시에, 그는 가볍게 그녀의 금색 머리카락을 흩트리곤 말하니.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고, 어느샌가 그녀의 얼굴에 닿은 가면이 다시금 피부와 맞닿으며 포개어진다. 그리고 일영은 천천히 그녀의 가면의 끝을 묶어주며 덧붙였다.

“저 때문에 굳이 벗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저는 괜찮으니.”

“…….”

그녀의 눈에 다시금 일영이 담긴다.

일전, 무표정을 머금었던 시선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는 옅은 웃음을 띤 일영이 가득 차는 것이다.

홀린 듯이 입을 연다.

무언가 내뱉으려 했다.

그래, 분명히 그러려 했는데.

스윽.

바로 그 순간, 일영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양 뺨을 스치듯이 미끄러지며 그는 말했다.

“밤이 깊었습니다.”

“아.”

묘하게 선을 긋는 듯한 읊조림이다.

때문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살짝 입술을 오므렸다가 머잖아 닫아버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군요.”

“……예.”

둘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겹친다.

씁쓸한 아쉬움.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걸 둘 모두가 너무도 잘 알기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말했다.

“좋은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부디 교토. 조심해서 다녀오시기를.”

“그래야겠지요. 시바타 공도 제가 없는 동안 오와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시바타 가쓰이에는 그리 빠르지도, 그리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천천히 정원을 벗어나 가문의 밖으로 향했다.

“……하.”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일영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으며 이윽고 읊조렸으니.

“아니겠지.”

그건, 조금 전 흘렀던 묘한 기류를 애써 부정하는 쓴웃음이 담긴 한 마디였다.

*

마츠다이라 가문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미카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어린 히메(아가씨) 당주라는 이유로 금방 이마가와 가문에 다시 잡아먹히리라는 전망이 결코 소수이지 않았지만, 마츠다이라의 새로운 당주는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그야말로 안정적이게 미카와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 오다의 필요와 마츠다이라의 필요가 맞닿아 미즈노 노부모토의 형식적인 중재로 기요스 성에서 비밀리에 기요스 동맹이 결성되었다.

간단한 이치였다.

오다 가문은 미노를 치기 전 후방을 든든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고, 마츠다이라 가문 역시 이마가와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든든한 우방과 더불어 후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콰앙!

비록 흔들린다고는 하나, 이마가와 가문의 새로운 당주가 된 이마가와 우지자네가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다, 당장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슨푸로 불러들여라! 이 건방진!”

분노한 그의 명령에 일단 겉으론 복종하던 이마가와 가문의 가신들이 곧바로 마츠다이라 측에 슨푸로 올라올 것을 전했지만, 그것에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몸이 좋지 않다’라는 한 마디로 응수했다.

“몸이, 몸이 좋지 않다…….”

그것을 전달받은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사색이 되어 그저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마츠다이라 가문이 이미 다른 마음을 먹었다는 걸 눈치챈 후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기요스에서 오다 가문과 동맹을 한 순간부터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노골적이다. 너무도 노골적이란 말이다.’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자신의 아버지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처럼 분칠을 하지도, 이빨을 검게 물들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핏기가 없이 가라앉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하시겠나이까?”

“부디, 명령을.”

그리고 그런 유약한 모습을 지켜보는 가신들의 시선 역시 결코 곱지 못했다. 그들로선 아버지이자 전 주군이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이은 당주라는 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자리. 회의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은 태반이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직접 따르며 그의 패도를 함께한 이들이 아니던가.

얼굴에 분칠을 해도 좋다.

이빨을 검게 물들여도 좋으며.

전장에 꽃가마를 타고 다녀도 좋단 말이다.

하지만,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패기가 없었다.

선두에 서서 오다 가문과 마츠다이라 가문을 박살 내겠다는 허세 섞인 말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고, 그 자신보다도 어린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의 서신에 분노하면서도 내심 가신들의 눈치를 보는 모양이라니.

‘허.’

‘가문이 어찌 되려 이러는가…….’

그들로선 기가 차고, 짜증이 치솟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끼이익.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재미있는 화답입니다.”

“하, 할머. 아니. 조모님.”

“아마미다이 님을 뵙습니다.”

아아미다이.

여승이 된 쇼군의 부인을 부르는 높임말바로 그 순간, 회의장의 문이 열리고 가신들의 읊조림과 같이 한 여승이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잖은 나이가 느껴지는 주름과 체구에도 그녀의 외견은 젊었을 적 미모가 예상 될 정도였지만, 가신들은 그녀의 인자한 미소 따위 신경 쓰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 자리에 있는 가신들 대부분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쥬케이니.

여성이 다이묘가 되는 이 시대에서도 가장 먼저 여성 전국 다이묘라는 칭호를 얻은 여걸이자, 노쇠한 나이에도 가문을 위해 움직이는 진정한 이마가와의 기둥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느새 가신들을 지나, 우지자네의 앞에 다다른 그녀는 당주인 자신의 손자에게 예의를 갖춘 뒤 덧붙이니.

“그렇다면, 우리 역시 화답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주.”

그녀의 인자한 얼굴에 서늘한 살기가 맴돌았고,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야지요.”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화답이 어떤 것을 뜻하는 지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슨푸에 억류 중이었던 미카와 중신들의 처자 수십 명이 기둥에 묶여 창에 수차례 찔린 채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화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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