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바뀌는 것들(2)
* * *
우물우물.
적당한 양념으로 무친 나물과 밥을 머금고 우물거리는 시바타 가쓰이에의 콧잔등. 척 보기에도 생긴 지 꽤 시간이 지난 듯한 흉터가 꿈틀거린다.
“왜 그러십니까?”
“……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일영과 모리 요시나리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시바타 가쓰이에. 그녀는 겉으로 태연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별다른 표정 변화조차 없이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둘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녀가 구태여 평시에도 가면을 쓰고 다닌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시바타 가쓰이에의 맨 얼굴을 보기는커녕 흉터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오다 노부유키에게조차 잘 보여주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괜히 그녀의 맨 얼굴을 보면 죽는다느니, 실상은 진짜 오니라느니하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죽하면 일영과 모리 요시나리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여 그녀가 살인 멸구를 결심한 건가를 잠깐, 아주 잠깐 고민할 정도일까.
‘그럴 리가 없지만.’
구태여 멀리서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다.
일영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의 귓가와 아닌 듯하면서도 떨리는 동공, 결정적으로 젓가락의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괜찮아도, 요시나리에게까지 보여주는 건 여전히 부담인가.’
일영은 이미 일전에 그녀의 흉터를 몇 번 보았다고 쳐도, 모리 요시나리까지 대놓고 보여주기엔 여전히 부담인 것이 사실이리라.
그럼에도 어째서 그녀가 가면을 벗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기에 일영은 무심결 손가락을 들어 뺨을 긁었고,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얼굴에 닿는 두 여자의 시선에 일영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의 시선은 다름이 아니라 일영의 얼굴에 난 흉터에 닿아 온갖 감정이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안쓰러움.
죄책감.
미안함.
슬픔.
씁쓸함…….
제각기 다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 잿빛 눈동자, 금색 눈동자를 확인한 일영은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시바타 가쓰이에가 가면을 벗었는가.
‘나 때문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멀리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눈치를 챈 것은 비단 일영 뿐만이 아니었는지, 모리 요시나리는 몇 번 입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손을 들어 손뼉을 쳤다.
짝!
묘한 분위기를 깨트린다.
동시에, 그녀는 둘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잠시 눈을 굴리곤 이내 외쳤으니.
“수, 술이라도 한잔할까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술만 한 게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급조한 말이라는 게 팍팍 티나는 외침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것이 결국 둘에 대한 배려라는 걸 알기에 일영과 시바타 가쓰이에는 옅은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둘 다 그녀를 싫어하기는커녕 순박한 그녀를 좋아하는 편에 속했으니 말이다.
“그러시지요.”
“저도 괜찮습니다.”
더욱이 술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저녁 자리인 만큼, 반주로 마실 정도는 이미 상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마시려고 준비한 것이니만큼 조금 더 이르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는 없으리라.
‘오히려 적절하지.’
술을 받아 든 일영이 그녀들의 잔에 따라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 요시나리가 아주 적절하게 분위기를 잘 풀어주었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딸꾹.
“흐에.”
“모, 모리 공.”
“……하하.”
모리 요시나리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취해서 일영의 무릎을 베게 삼아 눕지만 많았다면 말이다.
“일여엉…….”
“그래, 그래.”
일영은 술에 취해 반쯤 꼬인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모리 요시나리의 중얼거림에 당혹감과 애정이 담긴 말로 화답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살짝 취기가 오른 시바타 가쓰이에가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역시 일영이 오다 노부나가보다도 모리 요시나리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걸 대놓고 눈앞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까.
“……큼.”
거기에 흉터를 내보여 심력 소모가 알게 모르게 꽤 된 상태에서 취기까지 살짝 올랐다면 더더욱.
그리고 그때.
“헤헤……. 스읍, 후. 일영이 냄새애.”
요시나리는 머리를 베고 있던 일영의 무릎에서 고개를 그의 배 쪽으로 돌리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크흠.”
당연히 각도 상 그녀의 풍만한……. 그보다 조금 더 대단한 가슴이 땅을 디디고 있던 그의 손등에 닿을 수밖에 없었기에 무심결 헛기침을 내뱉었지만, 이미 취해버린 그녀에겐 통하지 않았다.
“하아.”
보통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자면 처음엔 몰라도 나중엔 불편하기 마련이거늘, 그녀는 일영의 무릎 위가 대단한 안식처라도 되는 양 눈을 감고 한참을 만끽했다.
물론, 일영도 딱히 싫지는 않았기에 어느새 그녀의 묶음 머리를 손안에서 굴리고 있었고 말이다.
“원래 이렇게 술이 약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다만 의문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첫 만남, 아니. 첫 관계에서도 술을 먹고 불타는 밤을 보내기는 했으나 그때에도 그녀의 주량은 적어도 술을 마시지 못하는 편은 확실히 아니었는데.
“음.”
그때, 그의 말을 들은 시바타 가쓰이에는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는지 잠시 술잔을 쥐고 가볍게 돌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마, 내색하진 않았지만 꽤 많이 지치셨을 겁니다. 추격하는 내내 보이는 적들을 선두에서 죽였으니 말입니다.”
“예?”
그녀의 말에 일영은 어느새 곯아떨어진 모리 요시나리의 옆얼굴을 잠시 내려보았다. 그녀가 아무리 오다 가문을 대표하는 맹장 중 한 명이라고 해도 맡은 임무는 엄연히 이마가와 측 세력권으로 돌아가지 못한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것. 때문에 전면에 나설 이유는 없을 터인데 어째서?
그런 일영의 의문을 읽은 것일까.
시바타 가쓰이에는 손안에서 굴리던 술잔에 담긴 술을 살짝 꺾어 입안에서 머금었고, 꿀꺽 삼키고 덧붙였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
정이 많은 그녀이기에, 일영의 상처를 야기한 이마가와 군을 용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쓰게 웃음을 지으며 잠든 요시나리의 뺨에 가볍게 손을 올린 채 말했다.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군요. 전 정말 괜찮은데.”
몇 번이나 말하지만 진심이었다.
“피곤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시바타 가쓰이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오와리에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기고, 많은 인연이 히카게 님과 닿아있지요. 아직도 무지몽매한 이들은 당신을 보며 조선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말을 읊조리고는 합니다만…….”
평소 얼굴을 가리던 가면을 벗어 던진 시바타 가쓰이에는 덤덤함과 취기가 뒤섞인, 이전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이미, 히카게님은 오와리와 달리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진심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는 그녀의 표정에 일영은 구태여 겸손을 입에 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우움.”
“…….”
“하하.”
침목 속에서 뒤척거리는 모리 요시나리의 읊조림이 스친다. 둘은 그런 그녀를 묵묵히 응시하다가 곧 서로를 바라보았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걸 확인한 일영은 잠시 중정 너머의 정원으로 시선을 돌리곤 말했다.
“잠시, 바람이나 조금 쐬시겠습니까.”
*
근처의 시녀들을 불러다가 그녀에게 간단히 이불을 덮어준 일영은 중정을 건너 히라테 가의 안쪽에 마련된 정원으로 앞서 걸음을 옮겼고, 그런 그의 뒤를 시바타 가쓰이에가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날이 점점 풀리고 있기 때문일까.
드높게 자라난 나무들은 새로운 이파리를 틔우고 있었고, 정원 한편에 마련된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꿈틀거리며 수면에 비추어 진 달빛을 유유히 돌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 걸음을 옮겼을까.
“아마, 몇 달 뒤에나 얼굴을 볼 수 있겠군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일영이었다.
그의 말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미 생포한 포로들을 가문에 인계하는 과정에서 일영이 교토로 먼저 향한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교토로 가지는 못할 테니, 아마도 그러겠지요.”
교토로 향하는 길에 이변이 없더라도 일영의 역할은 단순히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교토의 시바 씨 저택을 보수해 오다 가문의 저택으로 만든 후 이후 올라올 노부나가와 합류하고 함께 내려오는 것이다.
가문을 오래 비울 수는 없지만, 오고 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몇 달은 우습게 걸리겠지.
저벅.
둘의 대화는 그곳에서 다시금 멈췄다.
그리고, 어느샌가 정원의 끝에 다다른 일영은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뒤를 묵묵히 뒤따르던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시지요.”
“티가 났나 봅니다.”
“보아온 시간이 이젠 꽤 되는지라.”
일영의 능글맞은 대답에 그녀는 무심결 웃음을 지었지만, 그것이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녀의 하관을 가리던 가면 역시 다시금 썼으니 말이다.
이미 티가 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말을 돌릴 필요 역시 없을 터. 때문에, 그녀는 터놓고 물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리 의연하십니까.”
어떻게 그리 의연할 수 있는가.
“처음부터 흉을 가린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흉을 본 이들의 시선은 비슷했습니다. 경멸, 두려움, 비웃음, 한심함, 동정심까지.”
우습게도 현실이었다.
난세라는 것을 알아도, 무인에게 흉터 즈음은 별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대게 상대를 상처입히는 방식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니까.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요. 대놓고 모욕을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흘리고자 하면 흘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유난을 떤다고, 혹자는 그저 특별해 보이려고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녀 자신이 일궈온 모든 것보다, 단지 얼굴에 난 흉터 하나로 인상이 결정되는 것이 불쾌했고, 불편했으며, 나아가 역겨웠다.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의 금색 눈동자가 묵묵히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일영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 처음엔 그저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의 표정은 이젠 무표정이 되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리라.
“아끼던 이들에겐 동정을, 적들에겐 비웃음과 모욕을 들으실 겁니다. 누군가에겐 두려움을, 누군가에겐 동정이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값싼 적선이나 받겠지요. 그것을 모르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영은 때때로 감정적이지만, 필요할 땐 누구보다 이성적이라는 걸 옆에서 보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토록 태연할 수 있는가.
단지,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미리 반응하지 않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달리 먹은 마음가짐인가…….
“그렇습니까.”
기다림 끝에, 일영의 입이 열린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느새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으니.
“그게, 당신의…….”
그의 손길이 천천히 그녀의 가면 위로 닿고, 허술하게 묶여 있던 끈을 풀고 천천히 끌어 내린다.
“아니.”
하얗다고 말하기엔 어두운, 그러나 어둡다고 말하기엔 밝은 보통의 피부색에 자리 잡은 이목구비는 그녀를 미녀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바타 가쓰이에.”
그래, 콧잔등에 길게 자리한 흉터까지도.
일영은 그 이름을 읊조리며 가면 아래에 있던 그녀의 얼굴을 쓸며 말했고.
“그게 당신의 두려움이었습니까?”
“아…….”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을 마주본 그녀의 입에선 나지막한 탄식이 흘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