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바뀌는 것들(1)
* * *
간밤의 열락은 짧고 강렬하게 스쳐 지나갔고, 일영과 노부나가는 결국 해가 뜰 때쯤에서야 겨우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 수 있었다.
겨우라는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 결과로 그들이 중점적으로 뒹굴었던 다다미 몇 개는 다시 쓰기에 애매할 정도로 망가졌을 정도니까.
‘……이, 이건 냄새가.’
‘이것이 남녀의 정사…….’
당연히 그런 모습은 시종들에게도 보여주기 민망한 것이었기에, 그사이에 몰래 들어온 여 닌자들이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정사의 흔적을 남들 몰래 지우며 얼굴을 붉혔지만 말이다.
그 뒤로는 그리 특출날 것이 없었다.
“으음.”
“하암.”
오후 즈음 일어나서 간단한 식사와 함께 몸을 씻고 노부나가는 업무를, 일영은 천수각을 나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츠키, 아케치 미쓰히데와 합류했다.
“어디쯤이지?”
“아마 곧 일 겁니다.”
“가자.”
곧바로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이츠키 혹은 아케치 미쓰히데만을 대동했겠지만, 그를 뒤따르는 사무라이들은 족히 10명이 넘었으니…….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일영이 향하는 곳이 가문이 아니라 기요스의 성문이기 때문이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성문에 다다른 일영이 평원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할 찰나, 저 멀리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함께 선두에서 치고 달려오는 두 마리의 군마를 발견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거참, 호랑이도 저 말 하면 온다더니.”
“일여엉!”
히이잉!
이미 꽤 달린 듯한 말은 숨이 차는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투레질했지만, 정작 그 주인은 일영의 앞에 말이 멈춰 서자마자 급하게 말에서 내려 곧장 그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향한 곳은 다름이 아닌 일영의 품 안.
꽈악.
“거참.”
갑주조차 벗지 않고 품에 안긴 탓에 팔과 가슴에 갑주가 걸리는 등의 불편함이 뒤따랐지만, 정작 품에 그녀를 안은 일영의 얼굴에는 일말의 불편함 따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그의 품에 안긴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확인된 이마가와 측 패잔병을 모조리 소탕하고 돌아온 모리 요시나리였으니 말이다.
“요시나리. 남들의 눈이 있잖아.”
“아, 아차.”
일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안아주었고, 모리 요시나리 역시 뒤늦게 자신이 너무 들떴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잿빛의 머리를 말의 꼬리처럼 곱게 묶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건 덤이었다. ……다른 것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히카게 님.”
“아, 시바타.”
모리 요시나리의 바로 뒤를 쫓듯이 말을 몰고 달려온, 붉은 갑주를 입은 시바타 가쓰이에가 한발 늦게 말에서 내리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입니다. 혈색이 좋군요.”
그녀의 말은 지극히 간결한, 또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춘 듯한 형식적인 인사말이었지만, 잠시나마 시선이 일영의 턱과 뺨에 길게 그어진 흉터에 닿았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때문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뺨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화답했다.
“예, 뭐. 그리 큰 상처는 없었습니다.”
딱히 반말도 아니었다.
평소 그가 입어온 상처에 비한다면, 얼굴의 상처는 단지 흉이 좀 남게 될 뿐인 그저 그런 상처였으니까 말이다.
구태여 멀리 갈 것조차 없다.
이번엔 적어도 팔이 잘려서 모두에게 버려지는 악몽은 꾸지도 않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한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묘한 조소를 머금었다는 것도 모른 채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그래도 얼굴인데.”
물론 곁에서 모리 요시나리가 잿빛 눈동자에 이마가와 요시모토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일영에 대한 걱정과 답답함이 담긴 시선을 보냈고,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대체 왜 저렇게 태연한가를 두고 고심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일영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쩌겠는가.
이미 시간은 지나갔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뺨을 긁던 그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이걸로 교토에서 시비가 걸리려나?’
잘은 몰라도 교토의 귀족들은 겉으로 보이는 외양에 대단히 민감한 것 같던데 말이다. 일영은 눈살을 미미하게 일그러트렸다.
‘달갑진 않은데.’
일영이라고 상처를 영광의 상처 따위로 생각하는 건 아니었기에, 어찌 본다면 당연한 우려였다. 특히 아무리 원래의 전국시대와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사회 기조까지 다르지는 않을 터. 혹시라도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고민은 곧 떨친다.
마찬가지로, 답이 없는 문제니까 말이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 빠르게 표정을 수습한 일영은 뒤늦게 모리 요시나리와 시바타 가쓰이에를 뒤따라 온 군사들이 성문 앞에 다다르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녀들에게 물었다.
“이제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아마 포로들을 인계한 후, 당주님을 뵐 거 같아요.”
조금 전처럼 일영의 호위 무사와 성벽을 지키는 일부 병력만 있다면 모를까.
조금 전까지 그녀들의 수족처럼 움직이던 군세가 뒤에 도열했기에 일영은 아주 자연스럽게 모리 요시나리에게 존대로 물었고, 그녀 역시 언제 일영의 품에 안겼냐는 듯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화답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기꺼운 감정까지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만.”
뒤를 이어 시바타 가쓰이에가 덧붙이고, 일영은 그녀들의 말을 가만히 곱씹다가 이윽고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으니.
“그러면, 딱 시간도 괜찮으니 조금 있다 저녁이나 같이 드시죠.”
“아.”
“으음.”
다름이 아닌 일영의 저녁 초대.
그 말을 들은 모리 요시나리와 시바타 가쓰이에는 순간적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응!”
“예. 알겠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거의 동시에 일영을 바라보며 경쟁이라도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일영, 아니 히라테 히카게가 주최한 저녁 자리인 만큼 소홀한 부분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끝도 없이 늘어진 식탁에는 각종 산해진미가 나열되었고, 자리의 좌우에는 온갖 앙탈을 부리며 술을 따를 소녀와 소년들이 즐비했으며, 중앙의 정원에선 흔히 가인(?人)이라 불리는 미녀들이 온갖 신기한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웠으니.
“어림도 없지.”
“예?”
“아, 아닙니다.”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첫째로 일영 그 자신이 별로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애초에 그가 원한 것은 모리 요시나리 그리고 시바타 가쓰이와 말 그대로 반주나 홀짝이는 그런 자리를 원했기 때문도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두 여인 역시 상상 속의 허세와 향락이 가득한 저녁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녀들 역시 일영과 같았으면 같았지 되도 않은 허영심을 구태여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히라테 가의 저택에 오는 것은 처음인데, 과연 마사히데님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는 느낌이군요.”
“확실히…….”
오히려 시바타 가쓰이에는 다른 권력자들의 집과 달리 적절히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묘하게 담긴 기품을 느끼며 내심 감탄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일영은 구태여 겸손을 담아 말하지 않았다.
단지, 부족하지 않게 차린 음식들을 선뜻 그녀들에게 권할 뿐.
“일단 음식부터.”
“우움?”
“아니. 계속 먹어.”
물론, 그의 말을 듣기 전부터 젓가락으로 밥을 크게 퍼서 입에 넣고 있던 모리 요시나리의 모습을 보자 실소를 참아야 했지만 말이다.
특유의 잿빛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애써 가라앉힌 일영은 마찬가지로 젓가락을 들었고, 자연스럽게 한 술을 퍼서 삼키려던 그때였다.
“아.”
“…….”
건너편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와 눈이 마주친 그는 곧 그녀가 여전히 하관과 함께 콧잔등의 흉터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다시금 젓가락을 내려놓은 후 머쓱함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요즘 일이 과중해서 이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미 얼굴을 본 일영이라면 모를까, 그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에게 얼굴을 감추려고 하는 시바타 가쓰이에가 아니던가. 모르던 것도 아니었거늘, 이건 명백히 신경써주지 못한 일영의 잘못이었다.
“아.”
그보다 한발 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모리 요시나리 역시 어색하게 흐르는 분위기를 읽고 눈동자를 굴렸고, 일영은 혹여 그녀가 불쾌했을까를 걱정하며 특유의 금색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벌렸다.
스윽.
바로 그 순간.
“괜찮습니다.”
태연하게, 아니. 태연함을 가장한 것이 분명한 손놀림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묵묵히 젓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나물을 하나 집었고.
우물우물.
밥과 함께 씹어 넘긴 후, 벙찐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영과 모리 요시나리를 향해 말했다.
“저 때문에 식사가 늦어졌군요. 죄송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