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47화 (147/171)

〈 147화 〉 집안 정리(1)

* * *

“교를 다녀오거라.”

“교토 말씀이시군요.”

그 이름을 들은 일영은 원 역사에서의 교토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시대……. 그러니까 센고쿠 시대를 열어버린 원흉이자 현 일본의 수도.’

정확히는 교토의 잘못이 아닌 현 쇼군 가문인 아시카가 가문의 잘못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닌의 난(?の).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후계자가 둘로 나뉘고, 그 둘에게 붙은 다이묘들이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10여 년을 싸웠지.’

사실상 기존의 다이묘를 몰락시키고 센고쿠(전국) 다이묘라는 새로운 형태의 다이묘들을 등장시킨 사건이자, 난세를 만들어버린 사건이기도 했다.

물론 깊게 파고들자면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 겉으론 모두 쇼군에게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

아시카가 가문의 무로마치 막부.

분명 막부와 쇼군의 권위는 나락 직전까지 틀어박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쇼군보다 막강한 군세를 가진 다이묘들이 열도에 몇이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둘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력만이 전부는 아니지.’

아무리 하극상과 폭력이 당연해진 시대라고 한들, 평생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명분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다이묘들이 괜히 상락에 목숨을 거는 게 아니야.’

결정적으로는 현재 쇼군의 자리에 앉아 있는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무능하지 않다.

일시적으로나마 쇼군의 권위를 세울 정도의 정치력과 결단력은 물론이고, 일신의 무력 역시 절대 얕잡아 볼 이가 아닌 것이다.

‘더욱이 현재 오와리로선 관계를 맺는 것 그 이상을 꿈꾸기에는 시기상조.’

교토를 노리기엔 아직 미노는 둘째로 치더라도 마츠다이라머잖아 도쿠가와를 자칭할 이에야스와의 관계도 제대로 성립하지 않았지 않은가.

즉, 명분이나 실질적인 무력 면에서 따져보면 구태여 교토로 향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당주님께서 쇼군을 알현하시겠군요.”

“그렇다. 오히려 늦었지.”

다이묘들이 쇼군은 대놓고 적대할 수 없는 것처럼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 역시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오히려, 친분을 얻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당주께서 오시기 전에 시바 씨의 저택을 보수하여 오다 가문의 교토 본거지로 삼고, 유력자들에게 적당히 눈도장을 찍으면 되겠습니까?”

“음.”

일영의 말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고개를 끄덕이곤 찻잔을 쥐어 한 모금을 머금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오다 노부나가보다 한발 먼저 교토로 올라간다면, 할 일은 그것뿐이었으니까.

때문에, 일영 역시 적당한 온도로 식은 찻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번 교토행에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이건 또 검토를 해봐야겠어.’

미노를 삼킨 후라면 모를까, 교토를 자유롭게 오가기엔 여러 가지 부담이 많은 이상 한번 다녀올 때 최대한 많은 이득을 얻어야 하는데…….

그런 일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큼.”

히라테 마사히데는 슬슬 다시 간지러워지는 목을 가볍게 가다듬고는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쇼군은 여러 가지로 정치적인 부담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물심양면으로 돕되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돕되, 선을 넘지는 말아라.

그 단어를 곱씹으며 두 사내는 서로를 마주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인자한 부자(?子) 관계로 보일 뿐이었으나 둘의 속내는 전혀 달랐으니.

‘최대한 털어먹고, 최대한 덜 주거라.’

‘당연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서로의 얼굴에서 의견이 일치함을 느낀 그들은 씨익, 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비슷하게 보인 것은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러려무나.”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일어서는 일영을 히라테 마사히데는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이미 중요한 이야기는 다 나누었을뿐더러 그가 점점 더 바빠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사박.

자리에서 일어나 구겨진 의복을 다듬는다.

그리고, 예를 갖춰 가볍게 묵례한 후 방을 나서 지나온 복도를 거닐어 밖으로 향했다.

‘30분 즈음 대화를 나눴나.’

그리 길게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던 탓에 밖의 모습은 그가 안으로 들어설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주군. 당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막 대지에 발을 디딘 일영에게 아케치 미쓰히데가 다가와 속삭였고, 그녀의 말을 잠시 곱씹던 일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그래도 먼저 만나러 갈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만나서 얘기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까.

‘일단 밤새워서 만든 보고서도 보여주고, 수은 쳐넣은 연고 있으면 치우고, 교토 가기 전에 물어볼 것도 있으니까.’

제일 시급한 게 두 번째라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다. 살다 살다 수은을 때려 넣은 연고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자.”

“예. 주군.”

걸음을 옮기며 잠시 우에몬의 모습을 찾던 그였지만, 대화가 길어지리라고 생각했는지 우에몬은 돌아간 듯싶었다.

‘교토로 가면 또 한동안 못 볼 텐데.’

그의 눈에 묘한 아쉬움이 스쳤다.

생각해보면 의붓이긴 해도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건만, 생각보다 접점이 많이 없었지 않은가.

‘나 때문이지만.’

그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 것을.

‘그래도 교토로 가기 전에는 자주 얼굴을 봐야겠다. 아직 시간은 조금 있을 테니까.’

그런 다짐을 하는 그였다.

*

“당주님은?”

“안에 계십니다.”

일영이 천수각에 다다르자 시종들은 물론 사무라이들도 감히 앞을 막아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길을 비켜주었고, 덕분에 일영은 별다른 반발 없이 노부나가의 방 앞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단순히 히라테 가의 후계자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가 히라테 가의 후계가 아닌 히라테 히카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새삼 가문 내에서 자신이 가지는 입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당주님. 들어가…….”

“들어와라.”

채 말이 끝나지 않았건만 되돌아오는 노부나가의 목소리에 일영은 무심결 실소를 흘리며 문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묘한 짜증이 뒤섞여 더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왜 짜증이 나셨을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노부나가는 허세를 부리는 것과 달리 의외로 성욕이 미쳐……. 큼. 대단히 왕성하다.

‘그런데 최근에 워낙 일이 많았어야지.’

이마가와를 대비하느라 노부나가든 일영이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데 관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쌓여있겠지. 노부나가도 나도.’

안 그래도 그도 슬슬 한계였다.

당장 마음 같아선 노부나가든 요시나리든 만나고 싶었거늘,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예. 들어가겠습니다.”

때문에, 일영은 나름의 기대가 담긴 웃음을 흘리며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노부나가가 술상을 펼치고 아닌 척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리가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응?”

그래, 분명히 그래야 했는데…….

“뭐하느냐. 거기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고.”

노부나가는 문을 열고 그대로 굳어버린 일영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히며 짜증이 난다는 듯 탁자 위에 놓인 찻물을 술처럼 목젖에 때려 박았다. 동시에, 곁에 앉아 있던 니와 나가히데가 말하니.

“아, 잘 오셨어요. 일단 이것부터 도와주시겠어요?”

그녀는 일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뭉쳐있던 서류들을 그의 앞에 놓아버렸고, 곧 일영은 죽어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해버리는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당했구나.’

쌓여있는 각종 종이와 죽간에는 이번 전투는 물론, 그동안 오와리의 혼란으로 밀려있던 행정 업무들이 쌓여있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래.’

가독 계승이 정상적으로 됐는가?

개판이었다.

오와리가 평화로웠는가?

아니다.

그러면 군사는 적게 움직였는가?

그럴 리가.

쓸만한 관료들은 넘쳐나는가?

태반이 썩어서 도려냈지.

즉, 현재 오와리는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과 관료의 부족, 각종 적폐를 쳐내며 함께 날아간 행정력 등으로 당주까지 서류의 산에 헤엄쳐야 할 정도로 개판이라는 뜻이었다.

결심했다.

‘도망쳐야지.’

여태까지 니와 나가히데에게 별생각이 없었던 그였지만, 평소에 그저 나긋하게만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달리 무섭게 느껴졌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 잡히면, 섹스고 지랄이고 일만 하다가 교토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별다른 말도 없이 곧바로 뒤로 돌아서 문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타앙!

그때, 그는 뺨을 스치는 총탄의 서늘함에 고개를 돌렸고.

“……남편이라는 새끼가. 앉아.”

“옙.”

그제야 일영은 자신의 아내가 심심하면 황금으로 코팅한 해골로 술 처마시고 산에 불을 질러 내려오는 놈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던 광년(??)인 것을 깨닫고 조용히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니와 나가히데는 특유의 처진 눈으로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흡사, 새로운 노예를 발견한 노예주의 눈빛이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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