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46화 (146/171)

〈 146화 〉 암살 위험...?

* * *

“쿨럭! 쿠흡.”

히라테 가(家)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한 당주의 거처 안에서 중년, 그보다 조금 더 중후한 이의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침을 내뱉다가 이윽고 삼키는 듯한 소리.

그것을 들은 사무라이들은 눈을 감거나 애써 귀를 막았다. 그들 역시 바보는 아니었기에 저것이 단순한 기침이 아닌, 당주의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저벅.

“도련님과 아가씨를 뵙습니다!”

전각 사이를 지나 다가오는 일영과 우에몬의 모습을 확인한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그들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일영은 가까운 이에게 물었다.

“당주님께선?”

“기다리고 계십니다.”

“뵙고자 한다고 청해라.”

“예!”

일영의 한 마디에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은 곧바로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기별을 넣으려 움직였다.

혹자는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의붓 아들로서 도련님이 되었다고 한들 기껏해야 조선인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런 이들의 물음에 사무라이들은 기꺼이 웃으며 대답해줄 자신이 있었다.

‘너희들이 싸우는 걸 직접 보든가.’

오와리는 짧은 기간 사이 무수한 전투를 겪어야 했고, 히라테 가(家)는 지지기반이 다소 약한 오다 노부나가의 가장 큰 지지세력으로서 거의 모든 사무라이들이 최소 몇 번은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그리고, 그런 전장에서 늘 선두에 서서 그야말로 적들을 갈아버린 건 다름이 아닌 일영이었고 말이다.

오와리의 야차(??の??).

일영의 부르는 하나의 별칭처럼 되어버린 그 이명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거늘, 어찌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물론, 무력에서 오는 두려움 따위로만 그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련님. 그 저번에 저희 집에…….”

“이츠키에게 들었다. 노모가 아프셨다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의원에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히라테 마사히데의 인가를 기다리던 사이 한 사무라이가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인 것과 같이, 일영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사무라이들을 챙겼다.

아무리 출신이 낯설다고 해도 세간에 도는 소문으로는 일영 역시 조선에서 무가(?家)의 자식이라고 알려졌고, 그의 품행이나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 때 꽤 이름이 있던 가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저런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시다니.’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그들에게 소홀한 것은 아니었으나 일영의 행보는 그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즉, 그들의 인식 속에서 일영의 이미지는 뭐랄까…….

‘평시에는 한없이 군자 같다가도 검을 쥔 순간 180도 변하는 사람.’

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건 비단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를 알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도련님.”

잠시 안에 들어갔다 나온 사무라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일영은 뒤에 선 우에몬을 놔둔 채 전각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도련님을 뵙습니다.”

“그래.”

전각의 복도를 거닐어 제일 깊은 방으로 향한다. 때때로 경계를 맡은 사무라이들이 그를 발견하고 고개를 조아렸고, 일영은 그들의 인사에 답해주며 히라테 마사히데가 기거하는 처소의 앞에 다다랐다.

“들어가겠습니다. 당주님.”

“큼. 알겠다.”

끼이익.

나무로 된 문이 조금의 소음을 울리며 열렸고, 상석에 앉아 있는 히라테 마사히데를 발견한 일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한편 살짝 앞을 보니, 일영의 인사에 마주 고개를 끄덕이던 히라테 마사히데가 급히 기침을 틀어막던 손수건을 숨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는 없어.’

다행히 핏물이 묻어나온다거나 하는 걸 보아선 단순 노환이나 감기 정도일 확률이 컸지만, 왜일까. 이 불안한 감정은.

“앉거라.”

그런 그의 표정을 본 것일까.

히라테 마사히데는 언제 기침을 내뱉었냐는 듯이 미리 준비한 방석을 가리키며 일영에게 앉을 것을 권했고, 일영은 고개를 끄덕인 채 다다미를 밟고 앞으로 걸어 자리에 앉았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부른 이유를 묻는 와중에도 일영의 시선은 히라테 마사히데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라진 것은 없다.

조금의 기침을 내뱉을 뿐, 그의 탄탄한 몸과 얼굴의 혈색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크게 나빠지지 않았고, 눈의 총기 역시 여전했다.

하지만 왜일까.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히라테 마사히데는 본디, 당주에 막 앉아 여러모로 날뛰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언을 올리기 위해 할복했다.’

그것이 원 역사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발자취였고, 이후 히라테 가의 이름은 몇 글자의 간략한 서술 말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즉, 그말은.’

히라테 마사히데.

지금 일영의 눈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본디 몇 년 전 오다 노부나가가 당주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의 강제성이라고 했나.’

과거, 대체역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심심찮게 나왔던 설정으로 세부적인 것이 달라진다고 한들 큰 줄기는 역사대로 흘러간다라는 논리다.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세부적인 내용이 달라진다고 큰 줄기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작가들의 편의주의적인 설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죽어야 했을 사람이 안 하던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본 일영은 내심 최악의 가정을 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뭐냐. 그 눈빛은.”

“아닙니다. 큼.”

다행히 히라테 마사히데는 일영의 눈에 담긴 복잡한 감정,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생각을 읽지는 못했다. 다만 자신을 두고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건 인지했는지 살짝 눈살을 일그러트리긴 했지만 말이다.

“……음.”

그렇게 짧은 침묵이 스치고.

쪼르르.

히라테 마사히데는 말없이 일영의 잔에 찻물을 채웠고, 일영 역시 그런 그의 손길을 딱히 거부하지 않은 채 잔을 쥐었다.

두 사내의 앞에 놓인 두 개의 찻잔에 찻물이 가득 찼다. 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그래서, 얼굴의 흉은 못 지운다더냐.”

“아, 예.”

입을 연 것은 히라테 마사히데였다.

그는 일영의 뺨과 턱 사이를 지나치는 흉터를 마뜩잖게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저었고, 곧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당주님께서 전하라고 하셨다.”

“이건…….”

“서양에서 들여온 연고다. 듣기론 흉터를 지우는 데에 썩 효과가 좋다더구나.”

“아…….”

무언가 싶어 살짝 열어보니, 무언가 불길한 은색을 띠는 고체와 액체 중간 정도의 무언가가 담겨져 있었다.

때문에, 처음엔 그저 그렇구나정도로 생각한 일영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곤 그에게 물었으니.

“저, 당주님. 이 안에 들어간 성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분이라? 다른 건 몰라도 음, 무슨 은. 이라고 하는 것은 들었는데.”

“혹, ……수은이라고 했습니까?”

“맞는 것 같구나.”

“아.”

일영은 손에 쥔 연고를 잠시 내려보다가 가볍게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그것을 다다미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자신을 바라보는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말하니.

“이걸 준, 혹은 판 사람을 제게 좀 알려주시지요. 꼭 좀 만나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어째서 상인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냐라는 물음이 담긴 그의 시선에 일영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야, 뒈지기 딱 좋으니까 그런 거죠.’

뒤늦게 깨달았다.

이 시기에 수은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 연구가 되고 있긴 했으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연고나 여러 가지 치료에 여전히 쓰이고 있었다는 점을 말이다.

‘다행히 매독을 수은 증기로 쏴 갈기는 치료법은 안 들여왔겠지만…….’

생각도 못 해 본 곳에서 뜻하지 않은 암살 위험을 넘긴 기분에 일영은 결심했다.

‘일단 내가 피할 수 있는 건 다 피해야지.’

비단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거를 건 거르고 도입할 수 있는 건 빠르게 도입해야겠다고 말이다.

“혹, 위험한 것이냐?”

“예. 잘은 모르지만 제 친우의 사촌이 저것을 바르다가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친구의 사촌.

아무리 말을 돌려봐야 결국 남.

달리 말하자면 남이 저걸로 죽었다는 카더라를 들이대며 위험하다고 역설하는 말이었으니 히라테 마사히데가 게슴츠레 눈을 뜨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수은 먹은 진시황이 미쳤다고 말해? 아니면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모자 장수가 미친 캐릭터로 나온 게 다 모자 공장에서 수은을 증기로 빨아대서 그렇다고 말해?’

답은 일단 점차 수은이 위험하니 우리 모두 쓰지 말아요라고 설득하는 것밖에 없었다. 대놓고 말해 봐야 검이나 드는 무사의 말을 누가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겠는가.

때문에, 일영은 괜히 타는 입을 찻물로 한번 행구고는 그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전과 달리 본론을 답해달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히라테 마사히데 역시 괜스레 말을 돌리기보단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으니.

“교(?: 교토)를 다녀오거라.”

그건, 일영도 내심 기다리고 있던 한 마디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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