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가짜 광기
* * *
작금의 미카와는 그야말로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민초들을 착취하던 친(?) 이마가와 파들은 축출 당하거나 기반이 되는 권력을 빠르게 잃고 있었고, 그 빈자리는 전향한 이들과 소수나마 마츠다이라 가문에 변치 않는 충성을 바치고 있던 이들이 채워가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런 이들이 많을 턱이 없기에 미카와 전역은 그야말로 혼란한 한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퉤! 이 빌어먹을 새끼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구먼! 이제 우리도 좀 살만해지겠지!”
혼란한 시대는 언제나 민중의 반발을 얻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민초들이 반발보다 오히려 후련해하는 건 친 이마가와를 표방하던 이들이 여태까지 그들에게 했던 폭정 때문이었다.
“흥!”
“귀한 분들이면 뭐하나! 이대로면 당장 내일 먹을 쌀까지도 털어갈 노릇이었는데!”
아무리 난세라고 한들 그들은 미카와의 백성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수탈하기 급급했다. 때문에, 그 잘난 척하던 양반들을 이유야 어떻든 징벌한 마츠다이라 가문을 나쁘게 볼 이유가 없던 것이다.
“애초에 미카와는 마츠다이라의 것이 아니었나! 이제야 좀 제대로 돌아가는 거지!”
“암, 그렇고말고!”
더욱이 그들이 기억하기로 미카와란 땅은 본디 마츠다이라 가문의 것이었다. 비록 선대가 선정을 베풀었다기엔 갸우뚱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이마가와 가문보다는 따를 이유가 더 많다는 뜻이다.
“이상입니다. 주군.”
라는 민심을 취합한 한조의 말이 끝나자 곁에 앉은 도리이 다다요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예상보다 수월해서 다행입니다. 하늘도 놈들의 폭주를 지켜보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허허.”
“그렇군요.”
둘의 말을 들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입가엔 나름 만족한 듯한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말이다.
어찌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긴 시간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아온 그녀에게 이번 일은 단순히 가문을 되찾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할 희망을 얻은 것이니 말이다.
‘물론, 기쁨은 잠시겠지만.’
그녀는 손에 쥔 찻물을 입가로 가볍게 가져댄 후 마시며 옅은 미소 아래 그 말을 삼켰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서 그녀는 늘 가문을 위하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일테니까 말이다.
“헌데…….”
그때였다.
그녀의 미소를 지켜보며 앞에 조용히 앉아 있던 도리이 다다요시는 말을 꺼내야 하는가찰나의 고민을 머금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물었다.
“오다 가문과의 관계는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오다 가문 말이죠.”
타악.
그녀는 손에 쥔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러곤, 잠시 도리이 다다요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일전과 마찬가지로 핫토리 한조와 도리이 다다요시가 전부다. 지금도 그녀에게 충성을 바치는 가신들은 늘어나고 있고, 점차 그녀는 그들 중 쓸만한 이들을 가려 가문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후의 일.’
지금 당장 믿을 이들은 이 둘뿐이다.
즉, 지금이라면 당장 그리고 있는 그림을 둘에게 알려주는 것이 오히려 이후에 유리하리라.
결심은 굳혔다.
조르륵.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반쯤 마셔 식은 찻잔에 새로운 찻물을 채우며 그들에게 물었다.
“오다 가문의 미래는 어찌 될 것 같습니까?”
“미래라 하시면…….”
“앞으로 오다 가문이 나아갈 방향. 또는 오다 가문에 대한 평. 그게 아니라면 그저 느끼는 점……. 어느 것이라도 좋습니다. 말씀해보시지요.”
도리이 다다요시는 눈동자를 굴렸다.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이 어린그러나 너구리같이 속을 모르겠는 당주가 원하는 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통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탓이었다.
‘이 경우엔 오히려 대답이 오래 걸리는 것이 더 우둔해보이는 법.’
어차피 뻔한 대답을 늘어 놓아야 한다면, 차라리 빠르게 말하는 것이 가치를 그나마 덜 낮추는 법이다.
때문에, 도리이 다다요시는 말했다.
“오다 가문이 자리를 잡은 오와리의 지형적인 이점은 분명합니다. 항구가 있고, 교토와 가까우며, 그들 자체가 하나의 길목이 되어 동부와 서부를 잇고 있지요. 치세에 능한 군주가 이끈다면 능히 상락에 도전할 수 있는 땅이지만…….”
도리이 다다요시의 숨을 한번 쉬었다.
그의 말에는 과장이 없었다.
괜히 오다 노부히데가 주변의 가문들에게 견제를 당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오다 노부히데는 죽었고, 그 뒤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젊은 피가 이어받았지요.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곱씹어도 전대의 그것에 닿지 못합니다.”
냉정한 평가였지만, 세간의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치기어린 행동에 가문은 분열되었고, 그것을 수습했으나 그 과정에서 오와리는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겨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여태까지 오와리에 천운이 따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천운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수 없는 법입니다.”
아무리 하늘을 뜻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그녀가 권세를 감당할 여력과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천운이 따른다고 한들 머지않아 무너지리라는 말이었다.
“즉, 도리이 공은 머지않아 오다 가문이 무너지리라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당주님.”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눈을 감고 나긋한 목소리로 되물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태도에 도리이 다다요시는 혹셔 실수를 했는가 조금은 걱정했지만,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간결했다.
“그것이 세간이 평이군요. 그것이.”
그녀는 도리이 다다요시를 칭찬하지도, 그렇다고 우둔하다며 타박하지도 않은 채 단지 그가 읊조린 평을 곰곰이 곱씹을 따름이었다.
후릅.
그렇게 침묵하는 그녀가 간간이 찻물을 머금는 소리만이 울린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타악.
어느새 다 비워진 찻잔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녀는 이내 생각을 다 정리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지도를 가져오세요.”
“예. 주군.”
그녀의 말에 화답한 것은 도리이 다다요시가 아닌 핫토리 한조였다. 한조는 곧바로 방 한 구석에 놓여 있던 지도를 가져와 펼쳤고,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보며 말했다.
타악.
그녀의 손이 오와리에 닿는다.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이어진 선이 미노에 닿는다.
“사이토 요시타쓰.”
선은 미노에서 잠시 머물다가, 이윽고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 오와리를 지나 미카와로 향한다.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마지막으로…….
씨익, 하며 그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동시에 그녀는 이마가와 가문의 본거지인 스루가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이마가와 우지자네까지.”
“으음…….”
“흠.”
그녀의 읊조림에 한조와 도리이 다다요시는 지도에 표기된 지형을 바라보며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녀가 읊조린 지역은 크게 4가지.
미노.
오와리.
미카와.
스루가.
그들 모두가 이 혼란스러운 일대 속에서 정국을 휘어잡을 가능성이 있는 가문이자, 동시에 한쪽이 움직이는 순간 어지럽게 뒤엉켜 자멸할 가문들이기도 했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마가와 가문이 한번 패했다고 한들, 지역의 패자로서의 권위가 무너진 것은 아닐 텐데라고 말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살아있었다면 말이죠.”
“……과연 그렇습니다.”
도리이 다다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들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후계자로 거의 낙점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난세에 태어나선 안 되었을 인물입니다.”
“동감이에요.”
그들은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알았다.
그는 결단코, 패도(??)를 걷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가신들을 다스리지 못하리라.
도리이 다다요시는 지도를 지긋이 응시하며 한참이나 그녀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침묵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답을 찾고는 입을 열었으니.
“당주께서 말씀하신, 오다 가문이 우리를 버리지 못하리란 말씀이 이런 것이었습니까.”
그 안에 담긴 것은 경외이자 놀라움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또 어째서 그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는지를 깨달은 것이었다.
“이마가와 가문이 약해지는 틈을 다케다와 호조가 놓칠 리가 없으니 당분간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우리를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이 빠르게 내부를 정리하고 대응할 준비를 마치는 한편…….”
“오다 가문은 오와리를 이미 정리했으니, 한번 숨을 고르며 미노를 노리기 시작하겠죠. 그들도 나름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요.”
도리이 다다요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츠다이라 모토야스가 덧붙였고, 그제야 그는 눈이 열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습니까.”
풀어 말하니 어렵지만, 실로 간결한 심계였다. 이마가와 가문의 곤궁한 틈을 타서 오다 가문의 후방을 단단히 해주고, 동시에 그들 역시 여차하면 이마가와를 상대할 든든한 우군을 얻는다. 그리고 후방을 방비한 오와리는 마음 편히 미노로 진공한다.
실로 작금의 현실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일이다. 그래, 이렇게만 된다면 말이다.
“……허나.”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여전히 도리이 다다요시를 붙잡았으니. 그는 조금은 어색한 시선으로 자신의 주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우둔한 여자입니다. 그녀가 만일 저희 측이 했던 일을 알아챘다면, 아예 판을 엎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핫토리 한조 역시 내심 궁금하다는 듯이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모토야스가 죽으라면 죽을 생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도리이 다다요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우둔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때.
“또한, 다혈질도 아니고 말이에요.”
이젠 비어버린 찻잔을 아쉽다는 듯이 한번 들었다가 놓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그렇게 말하곤.
“어릴 때 봐서 알아요. 언, 아니. 그녀는 그냥…….”
싱긋, 웃으며 덧붙였으니.
“꾸며낸,가짜 광기에요.”
어딘가, 감정이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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