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오케하자마(12)
* * *
평원에서 강을 끼고 치열하게 교전하던 오다 가문의 군세와 이마가와 가문의 군세를 맴돌고 있는 기류는 단순히 전투를 앞둔 이들의 긴장감 따위가 아니었다.
“제발, 제발…….”
오다 노부나가를 필두로 한 별동대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본진을 치러 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오다 가문의 수뇌부들은 점차 뒤로 밀려가고 있는 전황 속에서 제발 좋은 소식이, 만약 최악이라도 노부나가 만큼은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본대에 무슨 이변이라도…….”
한편, 이마가와 군의 군세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전부터 당주와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디 당주의 본대와는 주기적으로 전령을 오가며 앞으로의 향방을 정했던 그들이었기에 급작스러운 부재는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당장 본대로 전령을 보내!”
때문에, 그들은 오다 가문을 여전히 압박하는 한편 불길한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전황을 알아보기 위해 기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령을 본대로 보냈고, 머지않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다, 당주님께서……!”
다만, 그들에게 전령이 가져온 소식은 이마가와 군이 가정하고 있던 최악보다 더한 최악일 따름이었다.
“……당주께서, 뭐가 어쩌고 어째?”
“그, 그것이.”
“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네놈은 간자로구나! 여봐라! 어서 이 놈의 목을 베어라!”
“아, 아닙니다! 아닙니.”
서걱, 툭!
전령은 처절하게 간자가 아님을, 그리고 당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진즉에 목이 잘렸고 본대는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성토하려 했으나, 사무라이들은 전령이 더 입을 놀리기 전 목을 베어 입을 막았다.
‘아닐 거다. 이놈이 정녕 간자이거나 뭔가 착각을 한 모양이겠지. 기만에 당했다거나.’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전장의 사무라이들과 가신들은 반신반의하며 다음 전령들을 기다렸다.
“크, 큰일 났습니다! 보, 본대가!”
그리고 머지않아 일련의 전령들이 사색이 되어 달려오는 것을 본 그들은 그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현장을 지휘하던 이마가와 가(家) 휘하 중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에 올라 외쳤다.
“철군! 철군한다!”
“최소한의 군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버려라! 지금은 철군이 먼저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도주한다면 피해는 크겠지만,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었다면 한시라도 빠르게 철군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싸그리 몰살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부재.
그것은 흩어져서 그의 지시하에 움직이던 이마가와 군의 체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했고, 체계와 군율이 무너진 군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저, 적들이 물러섭니다?”
“……뭐?”
당연하게도 그들의 갑작스러운 철군은 마주하던 오다 가문의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급박한 상황 속에 눈을 굴리던 지휘관들은 머잖아 다른 곳에서도 이마가와 군이 철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당주께서 성공했다!
개개인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들의 뇌리를 강타하는 그 현실은 전율에 가까운 흥분감을 사무라이들에게 부여했고, 곧 급히 말에 오른 오다 가문의 중신들은 손수 검을 뽑아 들고 외쳤다.
“놈들을 죽여라! 절대로 살아서 돌려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은 빠르게 말을 몰았다.
“커허억!”
“끄으윽!”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많은 수의 이마가와 군이 그들의 창과 칼날에 쓰러져 싸늘한 시체가 되어야만 했고 말이다.
동시에 전장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이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이번 전쟁은 오다 가문의 승리가 확실한 것 같다고 말이다.
*
“대승입니다! 이마가와의 군세가 물러서고 있습니다!”
오케하자마.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악천후 속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던 처절한 전장의 진창 속에 한쪽 무릎을 꿇은 전령이 상석에 앉아 있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적들에게서 노획한 병장기만 해도 저희의 배가 넘고, 군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주님!”
“대승이라.”
오다 노부나가는 필요 이상으로 환희에 차오른 전령의 말에 나름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로잡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가신과 사무라이들은 절망과 분노, 허탈함과 무력감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런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아.”
“크으윽…….”
그리고 그들은 뒤를 이어, 갓 목이 잘린 채 오다 노부나가의 앞으로 놓인 당주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들로서는 현 상황을 부정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정녕, 하늘은 이마가와 가문을 버렸단 말인가?’
군사의 수에서부터 압도적이었다는 말을 구태여 덧붙이지 않더라도 애초에 지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모든 것이 이마가와 가(家)의 상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헌데, 분명히 그러했을진대 오다 가문의 미친 당주와 가신 놈들은 말도 안 되는 도박을 걸었고, 경악스럽게도 성공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 중 태반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에서 시선을 돌리는 한편 근처 막사 앞에 털썩 주저앉은 채 의원과 얘기를 나누는 한 사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니.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그들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물론, 그런 이마가와 측 가신들의 이야기에 일영은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치료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 습…….”
“쓰라리십니까?”
“예. 많이 아픕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끌끌.”
“허.”
일영은 태연하게 치료를 해나가는 노파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으나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인근 마을에서 데려온 노파라고 했…….’
스윽.
“쓰라립니다.”
“아. 제발.”
“무사라는 분이 뭐 이리 엄살이 많으실꼬. 자, 다 되었습니다. 끌끌. 흉터는 남을겝니다.”
“감사합니다.”
흉터는 남을 거다라는 말에도 일영은 딱히 개의치 않고 치료를 해준 노파에게 감사를 표했다.
딱히 흉터가 남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선 아니다. 다만, 내심 느끼고 있었던 탓이다.
‘얇진 않았으니.’
오히려 흉터 정도로 끝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수준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저, 이쪽도 조금 봐주실 수…….”
“아이구. 얼른 가시지요.”
그가 생각에 잠긴 그 잠깐 사이 노파는 다른 환자를 치료하러 떠났고, 덕분에 혼자가 된 일영은 막사의 기둥에 대충 걸터앉아 손가락으로 뺨을 훑었다.
“아, 습.”
통증에 미간을 좁혔다.
고통엔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조금 전 노파가 약초를 붙이고 깨끗한 천으로 덮어버렸기에 일영은 얼굴의 절반이 가려진 느낌에 실소를 흘렸다.
‘얼굴을 다친 건 또 처음인데.’
물론, 얼굴만 다친 건 아니었다.
팔은 물론이고 복부, 등 역시 이마가와 요시모토와의 전투에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으니까 말이다.
‘흉이 너무 많아도 보기 싫지.’
때문에, 과거 잠시 흘러가듯 했었던 고민에 결심을 더한 그때였다.
“이제야 조금 남자다워졌구나.”
“아, 당주님.”
대략적인 전황과 더불어 적의 수급을 확인하는 절차까지 끝낸 오다 노부나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온 것이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네놈은 남자치고도 너무 반반하지 않더냐. 아마 네놈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다면 적잖이 곤혹을 치뤘을 게다.”
그녀의 말은 영락없이 일영의 외모가 반반해서 별로였다느니하는, 언뜻 듣기론 조금 그를 까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일영은 알았다.
그런 방식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만의 어설픈 위로라는 걸 말이다.
“……크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다 노부나가는 혹여 자신의 말이 상처를 입은 일영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라도 하듯 황금색 눈동자를 굴리며 슬슬 눈치를 보고 있었다.
때문에,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로 화답하니.
“반반하여서 별로였습니까?”
“그, 그건 아니었다만. 그게……. 음. 뭐라고 해야. 아니, 되었다. 쯧.”
장난스러운 반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말려들었다는 걸 깨닫고 혀를 찼다.
물론, 둘 모두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안도가 섞인 웃음을 흘렸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게 태연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챙그랑!
“이, 일영. 괜찮아?”
언제 적들을 향해 살기 등등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이 창까지 내던지고 일영에게 달려온 모리 요시나리는 그가 뭐라 답할 새도 없이 일영의 상처를 살폈다.
“어, 어떡해. 상처가 너무 길어어……. 혹 감, 감염이라도 되면…….”
그 모습을 본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울상인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난 괜찮아. 요시나리.”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다 노부나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둘을 바라보았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