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오케하자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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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있다.
검사끼리의 전투라고 한다면 그저 무식하게 검과 검이 서로 맞닿고 어지럽게 뒤섞이는 전투가 주류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보통 검술이란 치열한 수 싸움이 전제된다.
물론, 명확하게 말하자면 엄연히 일본도는 검이 아니라 날이 한쪽에 나 있는 ‘도’이긴 했지만 그건 둘째로 치고.
‘검사에게 중요한 것은 순발력과 더불어 숙련도, 그것을 체화시킬 수 있는 육체적인 단련이다.’
누가 뱉은 지도 모를 말이었으나 일영의 뇌리에 단단하게 각인된 말이었다. 아마,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백일영에게 누군가 해줬던 말이었으리라.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다만, 중요한 것은 일영이 그것을 알고 있고 지금 전투의 양상이 딱 그런 모습이라는 점이었다.
차아앙!
“크윽!”
“흡!”
일영과 이마가와 요시모토.
두 사내의 검이 한번 어지럽게 얽혀갈 때마다 서로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검격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이미 서로 적잖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둘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도 머지않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 둘의 전투가 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라는 걸 말이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갑주가 흔들린다. 어지럽게 교차되는 칼날은 철렁거리는 갑주의 철갑을 부딪치며 떨어지고, 때때로 팔꿈치와 주먹으로 서로를 강타하는 합은 어느새 핏물을 흩뿌리는 혈투로 변모했다.
머리 위로 올려 내리찍는 검격은 상대의 어깨를 노리는 듯하면서도 목을 향해 휘둘러진다.
“크윽!”
차앙!
칼날의 서늘함은 척추를 따라 아드레날린을 촉진 시키고, 나아가 둘은 어느샌가 서로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당주님!”
“끼어들지 마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이마가와 요시모토!’
일영은 일영대로 이마가와 요시모토라는 사내를,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었던 그의 검을 받아내고, 또 맞선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도카이 제일의 무사라는 것은 허명이 아니었다.
‘애송이인 줄 알았건만……!’
반면, 이마가와 요시모토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처음 일영에 대해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단지 흥미였다.
물론 그의 치적은 꽤 쓸만했다.
조선인의 몸으로 중신의 양자가 되고, 이후 오와리 내부 분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건 정말 애송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뿐.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평가한 일영은 단지 검을 조금 잘 쓰는, 그리고 얼굴이 반반해 총애를 얻은 운 좋은 이방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고, 건방지게도 명치를 노리고 검을 뻗어오는 일영의 검을 피한 후 그대로 무릎으로 복부를 찍었다.
“커헉!”
일영의 입에서 마른 기침이 터진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무너졌으리라 판단한 그는 검로를 틀었지만, 머지않아 그는 다시금 감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무슨 하체가……!’
갑주를 입었다고 한들 날붙이를 막을 수 있을진 몰라도 타격의 충격은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러니 명치를 직격당한 일영은 당장에라도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굽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허나 놈은 어떤가?
‘허리를 굽히기는커녕, 충격을 감내하고 나의 검로를 파악했다!’
눈을 번뜩인다.
동시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이제까지의 일영에 대한 평가를 모두 거둔 채 일갈했다.
“인정하마! 네놈은 나와 호적이로구나! 크하하하핫!”
언제부터였던가.
이토록 즐겁게 검을 나눴던 때가.
하루하루가 투쟁이었다.
비록 계승권을 가지는 본처의 배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위로 형제가 둘이나 있어 비루한 승려의 모습으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때문에 형제를 죽였다.
가문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고, 오다 가의 호랑이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조차 그는 비로소 길을 찾았다.
무엇을, 무엇을 위하여?
“나는 교토로 갈 것이다!”
채애앵!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악착같이 붙어대는 일영의 검격을 맞받아치고는 일갈했다.
핏발이 선 눈.
한계까지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숨결에 섞인 광기까지.
모든 것이 그가 진심이라는 걸 호소했고, 자연히 주변은 정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개의치 않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말이 다른 지역에 전해지는 순간 적들에게 명분을 줄 수 있으리란 것도, 섣불리 야심을 드러 낼 경우 견제를 당하리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후대에 나이마가와 요시모토를 기억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교토로 가서, 합법적으로 쇼군을 배출할 수 있는 명가의 적법한 후계로서 쇼군이 될 것이다! 천하를 무릎 꿇리고 새로운 막부를 열 것이란 말이다!”
자, 들어라.
이것이 나의 야망.
내가 걸어온 투쟁의 목적이자, 나아갈 지표이니라.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이제까지 호각을 다루고 있던 일영의 검을 따라 미끄러지듯이 그에게 붙었고, 동시에 단번에 일영의 목을 자르기 위해 빠르게 자세를 바꿔 허공을 그었다.
그러나 그때.
“크억!”
일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검이 박혔던 그의 무릎을 찼고, 그의 자세가 조금이나마 무너지는 순간 일영은 빠르게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그대로 턱을 팔꿈치로 쳐 올렸다.
퍼억!
아무리 단련이 잘 된 인간이라도 해도 비슷한 체급의 전사가 이를 악물고 쳐올린 일격에 무사할 수는 없는 법이었고, 특히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한창 흥분해 입을 벌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혀가 멀쩡할 수가 없었다.
콰드득!
“끄으윽!”
조금 전까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던 입이 강제로 닫히며 혀끝을 강타했고, 검은 이빨 사이로 선홍빛 살점이 떨어져 나온다.
당연히 핏물 역시 뒤따랐고 말이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 자체로 인상을 일그러지도록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이마가와는 일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잠깐이나마 떨어졌던 하체에 힘을 주었다.
손에 쥔 검의 손잡이에 더욱 힘을 밀어 넣고, 찰나의 순간 흔들린 시야를 부여잡으며 시야에서 사라진 일영의 실루엣을 쫓으며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어디지?’
단 몇 초가 흘렀을 뿐이건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근육들은 언제라도 주인의 판단에 응수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꿈틀거리며 뒤틀렸다.
‘측면!’
그리고 그는 곧 느껴지는 일영의 기척과 더불어 본능에 가까운 섬뜩함에 검을 비스듬하게 올려 검을 막았다.
채앵!
아니나 다를까.
일영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측면에서 검을 휘둘렀고,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그를 향해 무어라 외치려 했다.
“조금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래, 외치려고 했다.
“넌 좀 말이 많아. 요시모토.”
“뭐?”
그 순간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느꼈다.
맞닿은 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순간적으로 줄어듦과 동시에, 일영이 다시금 몸으로 파고는 감각.
그리고 다시금 턱밑에서 느껴지는 살기.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순간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 기이한 괴리감의 원인을 깨닫고 입을 벌렸다.
“이, 이건……!”
눈에서 다급함이 스쳤다.
이건, 이건 내가 원한 죽음이 아니란 말이다 따위의 말을 내뱉으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일영은 아직까지도 쓰라림이 가시지 않은 턱과 뺨에 길게 난 상처의 감촉을 느끼며 싸늘하게, 또 비웃음을 머금고 읊조렸다.
“어쩌라고. 씨발 새끼야.”
동시에 그의 손에 쥐여 있던 단검이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턱 아래를 꿰뚫는다.
콰드드득!
턱뼈는 일영의 완력에 으스러진다.
근육은 끊어지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혀는 입안에서 뒹굴다가 아래에서 솟구친 날카로운 칼날에 꿰뚫려 그대로 반쯤 들린 채 고정되버리고 말았다.
“끄, 끄으으으으으으으으!”
고통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아니, 실제로 갑작스러운 충격에 눈을 급하게 떠서 눈의 끝쪽이 살짝 찢어졌다.
“으, 으으으으으으으으!”
벌어진 채 닫지 못한 입술 사이로 핏물이 길게 선을 그리며 턱을 따라 흘러내리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육신은 충격을 버티지 못한 채 뒤로 쓰러졌다.
“다, 당주님!”
“으아아아아아!”
멍하니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마가와 측의 사무라이들과 중신들은 그 모습에 경악하며 일영을 향해 내달렸으나, 바로 그 순간.
“동작 그만.”
오다 노부나가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특유의 광기가 맴도는 황금빛 눈동자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며.
“네놈들은 사무라이로서 명예에 대한 감각조차 없는 게냐. 너희의 주군은 쓰러졌다. 그렇다면 응당…….”
쓰러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앞에 서서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일영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싼 채 말했다.
“무릎부터 꿇는 게 옳지 않겠느냐. 버러지들아.”
사무라이들의 얼굴은 모욕과 분노, 절망과 탄식, 패배감과 아득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아무래도, 선택을 도와야겠군요. 당주님.”
때마침 군을 통솔해 그들에게 다다른 오다 노부유키가 그녀의 뒤로 걸어왔고,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마가와 군을 정리한 오다 가문의 사무라이들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허, 허허. 살았다. 살았어.”
어디서 난지도 모르는 도끼를 양손에 쥐고 그 누구보다 많은 핏물을 묻힌 채, 살았다는 안도감에 몸을 떠는 이츠키.
“하아. 키쵸님이 보고 싶어졌어요.”
은색과 핑크빛이 뒤섞인, 피로감에 찌든 눈으로 뒤따른 아케치 미쓰히데.
“…….”
어딘가 멍한 눈으로, 일영의 상처를 바라보는 시바타 가쓰이에.
“괜찮아요?”
“아, 안 다쳤대도.”
“흐응.”
척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팔의 상처를 숨기는 마에다 토시이에,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살피는 니와 나가히데.
마지막으로.
“……저게 어떤 얼굴인 줄 알고.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 어느때보다 살기가 넘치는 눈으로, 제발 덤비라는 표정을 한 채 그들을 지켜보는 모리 요시나리까지.
털썩.
그것을 본 이마가와 군이 무릎을 꿇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