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오케하자마(10)
* * *
뿌드득.
“……애송이가,”
이제까지 큰 동요가 없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고, 곧 무릎의 단검은 뽑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일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큿!”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두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공격. 이번만큼은 일영도 낮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로 빼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무릎에 단검을 덜렁거리며 상대에게 덤벼들겠는가?
‘아, 난 배였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일영은 이젠 꽤 옛날이 되어버린, 비오던 날 배에 꽂혔던 단검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아직도 오만한 입꼬리를 올리는구나.”
다만, 그런 일영의 웃음은 놈에겐 꽤나 다른 의미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상처를 입은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듯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야수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척 보기에도 그의 심기는 매우 좋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빌어먹을 조선놈, 건방지다. 건방져…….”
그러나 과연 숱한 전장을 오가며 얻게 된 경험인지, 아니면 연륜인지, 그게 아니면 무사로서의 감인지 모를 일이었으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미친 듯이 상대를 향해 내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영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도록 검을 앞으로 뻗은 상태로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무릎 인근에 박히 단도의 손잡이를 틀어쥐었다.
스읍.
낮은 심호흡을 삼킨다.
후.
다시 내뱉고.
콰득!
“끄윽!”
단번에 단검을 망설임 없이 뽑아내는 것이다.
그 순간 막혀있던 핏물이 잠시 허공을 날아 진창에 처박히고, 곧 그가 갑주 아래에 입고 있던 바지 역시 어두운 색에 속했음에도 피로 무릎 아래를 흥건하게 적셨지만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릎은 상하지 않았다.’
타닥!
오히려 상처의 경중을 나눈 후, 그는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분노나 증오내지는 짜증으로 가득찬 눈으로 자신에게 검을 휘두르는 일영의 검격을 막아내며 생각했다.
‘예사롭지 않다.’
단순히 키만 큰 멀대가 아닌 힘이 뒷받침이 되어 주는 장정이라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내뻗는 검로와 때때로 보여주는 임기응변은 그도 가끔 섬뜩할 정도였다.
거기에 조금 전은 어떻던가?
‘내 방식을 그 찰나의 순간 가져갔다. 사무라이네, 무사네읊조리는 젊은 놈들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선택이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지끈거리는 무릎 대신 반대의 무릎으로 대지를 지탱하며 일영의 검을 흘렸고, 곧 명치에 느껴지는 충격에 그가 어깨로 찍었음을 깨닫고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쿨럭!”
그 틈을 일영은 놓치지 않았다.
검을 휘둘렀고, 그 검로는 이내 정신을 차린 이마가와 요시모토에 의해서 다시금 막히곤 하는 것이다.
“……허.”
“다, 당주님.”
둘의 전투는 그 자체로 치열했지만, 단순히 그런 말로 읊조리기에는 무언가가 달랐다.
일단 일영은 입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무릎에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하나씩 안겨준 건 둘째로 치더라도, 거구의 사내들이 서로의 몸에 입는 자잘한 상처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미친 듯이 몰아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시선을 끄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지만 말이다.
“제발, 제발…….”
“언제든지 끼어들 준비를 해라. 당주님께서 잘못되시면 우리는 끝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에 대한 이마가와 가(家) 가신들의 걱정은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되리라. 다만, 일영이라고 특별히 걱정하는 이들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격렬하다면 격렬했을 정도다.
“어, 얼굴이?”
시바타 가쓰이에는 전투 중에 무심결 일영의 얼굴을 확인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고, 곧 가면 아래의 상처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물론, 무력하게 트라우마라든가 두려움에 잡아먹힌 건 아니었고, 다만 분노했을 뿐이다.
“죽어라아아!”
그리고 그 분노의 희생양이 된 것은.
서걱, 툭.
“시끄럽다. 추남.”
다름이 아닌, 얼떨결에 서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를 공격했다가 단번에 목이 잘린 한 불쌍한 사무라이일 따름이었다.
각설하고.
유독 시바타 가쓰이에의 반응이 격하긴 했으나 그를 알고 있는 이들 중 얼굴의 상처를 보고 반응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일영의 얼굴이 잘난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제각기의 이유로 정을 쌓아온 이의 얼굴에 보기 좋지 않은 흉이 나는 것이 달가운 이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아.”
오다 노부유키는 일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확인하곤 낮게 가라앉은 눈을 한 채 살짝 몸을 떨었다.
그건 충격이었다.
누구보다 강하리라 생각했던 일영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이자, 정을 쌓아온 이가 다쳤다는 것에 대한 연민에 가까웠다.
물론, 그 정이 악연에 가깝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도, 도련님!”
이츠키의 정신은 돌아왔고.
“……세상에.”
누구보다 열심히 미쳐 날뛰던 이츠키가 혹여 눈먼 칼에 맞아 죽지는 않도록 곁에서 보좌하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상처가 난 직후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나오려던 날것의 말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동시에, 그녀는 살짝 시선을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으니.
그건 다름이 아니라 막 근처의 적들을 베어내고 충원된 사무라이에 의해 조금의 여유가 생긴 모리 요시나리와 오다 노부나가의 얼굴이었다.
“…….”
“…….”
회색, 아니 잿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말의 꼬리처럼 묶어 올리고 푸른 창을 쥔 모리 요시나리.
검은 머리를 단발로 자른 채, 드물게도 검을 쥔 채로 금안을 번뜩이며 전장에 서 있는 오다 노부나가.
이미 일영의 여자인 그녀들은 일영이 상처를 입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 묵묵히 전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사무라이들은 제 몸을 버려가면서도 그녀들을 지켜냈다.
그렇게 일영이 다가서는 사무라이의 목에 검을 찔러 넣고, 이마가와 무릎에 한 방을 먹이고, 제각기 상처를 입은 채 난투 아닌 난투를 하게 된 현재.
“요시나리.”
“예. 주군.”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가 입을 열었고, 곧 모리 요시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목을 따 와야겠지?”
“그래야겠죠.”
잿빛과 금색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부딪친다. 다만, 그 말을 들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무심결 살짝 몸을 떨 수밖에 없었으니.
‘……아니겠지.’
그녀들이 목을 딸 대상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쯤은 걸리는 탓이었다. 물론, 기우에 불과할테지만 말이다.
*
“이것밖에 못 해? 천하의 도카이 제일의 무사가? 너희 도카이에는 비리비리한 놈들 밖에 없나?”
“그 입, 닥치지 못할까!”
“닥치게 만들어 봐. 승려 새끼야.”
일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지끈거리는 손목과 뺨의 통증에 살짝 미간을 좁혔지만, 그에게 희롱 아닌 희롱을 당해 점차 평정을 잃어가고 있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이 애송이 놈이!’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계속해서 이죽거리는 일영의 모습에 쉼 없이 치솟는 짜증과 놈을 반으로 가르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가라앉혔다. 물론, 놈을 반으로 가를 수 있다면 가를 테지만 필요 이상의 분노는 언제나 방해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애매했다.
‘둘 다 지쳤다.’
일영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공통된 생각이나 다름이 없었다.
보통 검의 무게는 1kg 내외였으나 둘 다 완력을 버틸 수 있는 나름의 명검을 사용했기에 생각보다 드는 체력 소모는 더했다.
그뿐인가?
이후 입은 자잘한 상처는 둘째로 치더라도 둘이 서로에게 입힌 상처에서 흐른 핏물, 그리고 갑주의 무게, 나아가 비가 내리며 무거워진 몸과 실시간으로 빼앗기는 체온까지 합친다면 둘은 이미 충분히 괴물급의 체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슬슬 끝을 내야한다.
이대로 누가누가 먼저 쓰러지냐에 배팅할 것이 아니라면, 슬슬 서로를 끝내기 위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구태여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
타닥.
때문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빗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을 떼어내며 제각기 낮게 심호흡을 흘렸다.
“후.”
“스읍.”
저릿한 손목을 한 바퀴 돌린다.
이미 손잡이를 쥔 검을 한번 짜듯이 비스듬하게 말아 올리고, 빗물에 씻긴 혈조에서 서슬퍼런 살기가 상대의 피를 갈구한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무릎의 상처를 애써 무시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자칫 발을 절어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 그따위 것은 어떻게 되도 좋았다.
거대한 오오다치의 검신을 아래로 내린다.
일영이 나름의 상단세를 취한 것과 상반되는 검로였고, 그는 빗물이 코 옆을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며 일갈했다.
“오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다닥!
둘은 일제히 진창을 내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