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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39화 (139/171)

〈 139화 〉 오케하자마(9)

* * *

마츠다이라의 군세는 마지막으로 점령했던 성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일 생각이 아예 없었다기보다는 움직임을 봉쇄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군량이 젖지 않도록 잘 보관해!”

“화약도 마찬가지다!”

때아닌 폭우는 지나갔으나 비가 완전히 그치지는 않았기에 그들은 군량과 각종 병장기를 관리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장기나 군량이 습기를 먹으면 자칫 군세의 전투력이 급감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절대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으니, 그건 다름이 아닌 내부적인 혼선 때문이었다.

“현재 마츠다이라 가(家)의 세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말았다.”

그 모습을 곱게 보지 못하던 한 사무라이의 중얼거림처럼 현재 마츠다이라 내부의 사정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파벌이 나뉘었다’ 정도로 끝날 것이 아니었다.

비록 같은 깃발 아래에 서 있다고 한들,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채 모인 이들이 치열하게 ‘마츠다이라’라는 이름을 두고 겨루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세력은 크게 3가지.

첫 번째는 친(?)이마가와 파로, 아예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가신이거나 주군을 바꾸어 충성을 바치는 족속들이었다. 물론, 당장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명령이 있기에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진 않고 있으나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의 눈에는 언제가 되었든 치워야 할 턱 밑의 비수인 셈이다.

……구태여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만약 합당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의 명령과 불합리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명령이 동시에 떨어진다고 치면, 그들이 어느 명령에 고개를 숙일까?

두 번째는 가장 온건한 동시에 수가 적은 이들로, 바로 이마가와 가(家)와 마츠다이라 가(家)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 가신들이었다.

몇몇은 몸값을 올린다.

몇몇은 양측 사이에서 애매하게 간을 보며 비루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몇몇은 단순히 정세를 살피며 충성을 바칠 대상을 고르고 있었다.

즉, 그런 만큼 이들은 대게 침묵하고 있는 경향이 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당주님.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

도리이 다다요시를 필두로 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따르기로 마음을 먹은 친(?)마츠다이라 파였다.

‘근본적으로 마츠다이라의 가신들일 텐데.’

무심결 그런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짓는 모토야스였지만, 현실을 외면할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러곤 앞을 보았다.

그래도 표면적으로 그녀가 가문을 이끄는 당주이기에 성의 천수각에 들어온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이는 단 두명 뿐이었으니.

핫토리 한조.

도리이 다다요시.

단둘이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그녀가 그나마 신뢰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도리이 다다요시의 경우에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편을 바꾸기엔 그도 적잖은 것을 잘라내야 하겠지.’

도리이 다다요시 정도면 쉽진 않겠으나 지금이라도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적절한 양보를 하고 이마가와 가문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그로서도 그렇게 달갑지 않으리라는 계산 끝에 그녀는 그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이다.

“당주님?”

그렇게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도리이 다다요시는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이 되물었고, 그제야 막 찻잔에서 입을 떼어낸 그녀는 아하는 나지막한 탄식을 흘리며 되물었다.

“미안해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오다의 별동대가 이마가와의 본진을 칠 거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습니다만.”

이번만큼은 도리이 다다요시도 조금은 불편한 태도를 겉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그녀 자신이 내뱉은 말의 경중을 모를 리가 없을진대 너무나도 태연하지 않은가.

꿀꺽.

그것도 모자라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시금 찻물을 입에 머금는 그녀의 모습을 본 도리이 다다요시는 자연스럽게 뇌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다 가문이 야습을 한다.’

그것 자체는 그래, 성공할 가능성은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해볼 법한 선택이기는 했다. 군세의 수도 내부적인 결속도 이마가와 가문에 밀리는 오다 가문이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선 그런 도박수가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모토야스가.’

문제는 다름이 아닌 그것이었다.

지금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부터 이번 습격에 크든 작든 연관이 되어있다는 말이 아닌가?

‘자칫, 일이 잘못 풀리면 마츠다이라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가능성은 낮은 편에 속해도 충분히 해 볼만한 선택지였다.

“끙…….”

그런 생각에 점차 딱딱하게 얼굴이 굳어가는 것을 느낀 건지 모토야스는 막 다 비운 잔을 탁자 위에 가볍게 내려놓고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흘렸다.

“걱정하지 말아요. 어떻게 일이 흘러도 결국 이득을 보는 건 우리가 될 테니까.”

“예?”

도리이 다다요시로선 그녀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득을 본단 말인가?

“충성심이 뛰어난 대신 어리숙한 아이였으니, 원하시는 대로 되었을 겁니다.”

“가족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요. 혹 원한다면 자제를 사무라이로 키우는 것도 고려해도 좋아요.”

“가족들도 은혜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대화의 흐름은 그가 이해하기도 전에 아득한 저 너머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설명을 해달란 말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부를 것을 대비하여 인근 유곽에 저희 측 아이를 몇 명 흩뿌려 놓았죠.”

“아이라면……?”

이제까지 들었던 것들과 더불어 그녀들이 내뱉은 말을 모두 뇌리에서 조합한 도리이 다다요시는 이윽고 눈을 크게 뜬 채로 상석에 앉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와 곁의 한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끼워 맞춘 조각을 요약하자면

‘오다 가문의 암습에 개입, 큰 가능성으로는 묵인했으며 모토야스는 한조에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암살을 지시했다는 것’

이었다.

“대체 어째서.”

때문에, 그의 의문은 지극히 타당했다.

오다 가문과 손을 잡은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어째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암살까지 해가며 일을 어렵게 꼰단 말인가?

“글쎄요. 왜일까요?”

“과, 과연.”

의미심장한 읊조림이 귓가를 스친다.

동시에 도리이 다다요시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리곤 경탄과 떨떠름함이 뒤섞인 얼굴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 쪽이 이기던, 절대적으로 큰 피해를 강요하시려는 것이군요.”

“흐응.”

그의 물음에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탁자 위의 찻물을 들어 입가에 가져댔을 뿐이다.

“……허.”

그리고 그것이 무언의 확답이었음을 도리이 다다요시가 알아먹지 못할 리가 없었다.

*

‘놈의 태도가 달라졌다. 흠.’

이마가와 요시나리는 낮게 침체한 눈으로 앞에 선 일영의 모습을 지그시 응시했다.

흔히 말하는 기세라는 게 있다.

농사를 짓던 소작농이나 붓을 만지는 문관들이 듣기엔 칼잡이들의 허세라고 느껴질지는 몰라도, 사무라이들에게는 꽤나 넓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서늘할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진 오오다치의 칼날을 어깨 갑주 위에 짊어지며 그는 막 덤벼든 사무라이의 목에서 칼날을 뽑아내는 일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놈은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는 양날의 검이지.’

투지가 오르며 저돌적인 검로를 뻗을 테지만 그만큼 움직임은 둔해지고 감정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마가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구태여 감추지 않고 말했다.

“조선인이라 그런지 말이 많구나. 빨리 오거라. 네놈을 베고 오다의 애송이도 베어야 하니.”

반절은 도발, 반절은 진심이었다.

이 자리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벤다면 오와리를 삼키는 것도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채애앵!

생각이 길어진 것일까.

그게 아니면, 놈이 예상보다 더 흥분한 것일까따위를 점치며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턱과 볼까지 길게 그어진 상처에서 핏물을 흘리고 있는 일영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흐아압!”

괴성을 터트린다.

동시에, 일영과 요시모코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차한 검의 칼날을 끝까지 밀어 넣어 서로의 손목을 노렸다.

‘하지만, 그게 네놈의 패착이다!’

오오다치는 일반적인 검과 달리 검신이 매우 길고, 그 말은 곧 일영이 노리지 못하는 곳을 이마가와 요시모토 그는 노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큭!”

일영은 뒤늦게나마 손을 노린 공격이 주가 아니라 목 사이의 빈틈이 주된 공격로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베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좋단다. 병신 새끼가.”

일영은 언제 당황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망설임 없이 검을 놓았고, 동시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무릎의 통증에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크윽!”

하지만 검 끝에 걸리는 것은 없었고, 시선을 내린 그는 무릎의 갑주 사이를 비틀고 꽂힌 일영의 단검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이미 더럽혀진 몸을 바닥에 굴러 그의 검을 피한 일영은 아직도 조금씩 흐르는 핏물을 혀로 한번 훑고는 말했으니.

“아프냐?”

그건 꽤나 효과적인 이죽거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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