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오케하자마(7)
* * *
일영에게 사무라이들이 달려들고, 정작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오다 노부나가를 노린다라는 점은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각 세력의 구심점이 한자리에 모인 이상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이 전투가 끝나리라는 건 제대로 배워먹지 못한 천치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노부나가는 물론 주변의 사무라이들 역시 뻔히 눈 뜨고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감히!”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뻗은 오오다치는 노부나가에게는 닿지조차 못하고 모리 요시나리의 푸른 창에 막히고 말았다.
차앙!
서슬 퍼런 칼날과 창날이 맞물리며 충격이 각각 검신과 창대를 따라 전해진다.
특유의 잿빛 눈과 머리가 흔들리고, 푸른빛을 띠는 갑주는 그녀가 뻗은 창대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다.
“끄응.”
기본적인 체구 차이가 있기에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모리 요시나리가 밀렸는가하면 그것 역시 아니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호각이라고 할까.
“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심 감탄하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정말 찰나일 뿐.
“건방지다!”
그는 그렇게 일갈하곤 그녀가 버티고 있는 검의 손잡이를 느슨하게 놓아버렸고, 동시에 거구의 몸을 앞으로 쇄도해 어깨로 그녀의 가슴을 찍었다.
“커헉!”
완력은 키울 수 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체급 자체에서 오는 육체의 힘까진 어쩔 수 없었기에 모리 요시나리는 순간적으로 창대를 쥔 손에 힘이 빠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 빈틈을 놓칠 정도로 우둔하지 않았다.
콱!
느슨하게 놓아 힘을 뺐던 검의 손잡이를 쥐고,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베어낸다!’
검로가 향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모리 요시나리의 목.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단번에 그녀를 베어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놈!”
일갈과 함께 느껴지는 기척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본능적으로 어깨의 갑주로 측면을 막았고, 바로 직후 갑주를 강하게 내려찍는 검격에 그는 어쩔 수 없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괜찮더냐.”
“……쿨럭. 괜찮습니다.”
당연하게도 모리 요시나리를 구원한 것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녀의 친위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들이닥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친위대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귀찮게 되었어.’
노부나가는 특유의 검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황금색의 눈동자를 번뜩였다.
물론, 그녀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만큼 위험도 줄었겠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작금의 오와리는 불안정해.’
집안 정리를 끝낸 것이 채 반년이 안 된다.
그사이 다른 마음을 먹는 분자들을 쳐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돌출된 이들일 뿐, 여차하면 충분히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는 이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물론, 그녀를 몰아내는 것보단 적들의 밑에 빌붙는 것이 되리라.
‘이제 와 몰아내기엔 잘라낼 부분이 너무 많고, 위험이 크니까.’
그런 놈들은 이번 침공에서도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기보단 소수의 병력을 내고 후방에 틀어박혀 있다.
그런데 전쟁을 길게 끌고 간다?
자칫 이제까지 세운 기반이 무너지면 그 순간 오와리는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녀와 일영이 그린 그림은 간결했다.
‘이번 기습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피해를 입힌 후, 빠르게 전쟁을 끝낸다.’
이른바 배수의 진인 것이다.
때문에, 그녀 역시 이마가와 요시모토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것이 있다면…….
“도카이 제일의 무사라는 건 허명이 아닌 모양입니다.”
쓴웃음을 지은 채, 달려드는 무사들을 베어 넘긴 채 그녀들의 곁에 선 일영의 말대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생각보다 무예가 출중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것이 물러설 명분이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강하게 밀어 넣은 채, 답지도 않게 거들먹거리고 있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노려보았다.
놈은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검술 연습을 좀 많이 해둘 것을.’
한동안 총포에 눈이 팔려 검술을 소홀하게 하긴 했으나 그것이 그녀가 싸우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그녀가 앞으로 나서려는 그때였다.
저벅.
“생각해보면, 우습지 않습니까.”
“응?”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보다 한 발자국 앞서 걸으며 말한 일영의 목소리에 무심결 반문했다.
대체 무엇이 우습다는 말인가.
그런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일영은 답했다.
“삼강(三?)에서 이르기를 군위신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군주와 신하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어찌 제가 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허.”
일영은 입가를 가린 멘구를 쓸고 그녀들의 앞에 섰고, 당연히 그 말을 들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하, 하하하하하하하!”
흔히 삼강오륜(三?五?)이라고 일컬어지는 유교의 원리를 그들이라고 모를 수가 없다.
이미 유교는 이 땅에 자리를 잡았으니까.
그러니, 삼강 중 하나인 군위신강을 일영이 들먹인 것은 곧 하나의 의미이지 않겠는가.
“나를 상대하기엔 너로도 충분하다? 크하하하핫!”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금 전 일영이 내뱉은 말은 곧 스루가, 토토우미, 미카와 3국을 다스리는 대 다이묘인 그를 한낱 오와리의 주인인 오다 노부나가보다 더욱 격이 낮다고 까내리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내가 보고 들었던 야차이지 않겠는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으나 그와 시선을 맞춘 일영은 가면 아래로 쓰게 웃음을 지었다.
‘제대로 빡쳤군.’
어찌 그러지 않을까.
일영이 특유의 고상한 어투로 말을 했다고 한들 그것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말이다.
“그래, 소원대로 네놈부터 베어주마.”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일영이 던진 도발을 구태여 회피하지 않은 채, 분노와 흥미가 뒤섞인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두 사내의 시선이 엇갈린다.
그리고 그건, 곧 둘의 목숨 중 하나가 사그라 들어야 함을 나타냈다.
“흐읍!”
“하압!”
둘은 거의 동시에 앞으로 내달렸다.
철퍽!
이미 유곽의 소녀, 소년들의 핏물로 얼룩진 바닥을 디딘 덕에 핏물이 튀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둘은 다른 이들이 만류할 새도 없이 검을 맞부딪혔다.
채애앵!
날카로운 소리가 제각기 귓가를 스쳤다.
서로 단번에 상대를 베겠다는 생각으로 뻗은 칼날이었기에 힘은 충분했고, 당연히 칼날이 맞물리며 그 충격은 그들의 손목과 팔목에 온전히 전해졌다.
“힘이 제법이구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흥이라도 나는지 그렇게 말하며 오오다치에 실린 힘을 더욱 크게 밀어붙였고, 미끄러지듯 뻗어진 칼날은 일영의 어깨에 걸려 간신히 저지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영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까드드득!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과 칼날이 서로 힘으로서 맞붙으며 듣기 싫은 소리를 울리고, 일영은 힘의 균형이 무너진 동시에 몸을 틀어 내리찍어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칼날을 피했다.
동시에, 그는 사선으로 끌린 검을 그대로 비스듬이 위로 베어내며 이마가와의 가슴을 노렸다.
“호오!”
예상하지 못한 움직이었는가.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전투에 피가 들끓어 내뱉는 단순한 추임새인가.
‘시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일영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검에 담긴 힘을 더욱 밀어 넣어 베어낸다.
물론, 갑주에 막혀 제대로 된 피해는 입히지 못했지만 말이다.
‘노려야 할 건 빈틈!’
사무라이의 갑주는 기본적으로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것이었기에 빈틈은 꽤 많았다. 가령 매듭 사이라든가.
그렇게 일영이 놈의 약점을 노리던 그때.
“그래, 과연 야차라 불릴 만한 실력은 있는 듯 하지만……!”
히죽 웃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검붉은 이빨이 드러나고, 그것을 본 일영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노리는 점이 있다는 걸 깨닫고 망설임 없이 몸을 바닥에 굴렀다.
“피해?”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요시모토는 이전보다 강한 흥미가 담긴 시선을 일영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일영은 바로 뒤에서 뻗어지는 검을 확인하곤 놈의 무릎을 베었다.
“크윽!”
갑주로 막아낸 상체에 비해 무릎은 아무래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기에 놈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일그러트렸고, 일영은 그 찰나의 틈에 일어나 놈의 목에 정확히 칼날을 밀어 넣었다.
푸욱!
날카로운 칼날이 단번에 성대를 꿰뚫는다.
혈조를 따라 핏물이 흘러내리고, 일영은 한창 난전에 휩쓸린 노부나가와 요시나리를 힐끔 바라본 채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상황이 좋지 않아.’
무언가 이변이 일어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역사가 달라진 것인가.
일영이 고민을 하며 미간을 일그러트린 그때, 일영이 뒤에서 검을 뻗던 사무라이를 죽인 것에 꽤 감명을 받았는지 묘한 호승심을 불태우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말했다.
“네놈은 썩 쓸만 하구나. 다만 앞으로 일을 꾸밀 때에는 조금 더 무르익은 년을 쓰거라.”
“……뭐?”
당연하게도 그 말을 들은 일영은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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