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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36화 (136/171)

〈 136화 〉 오케하자마(6)

* * *

“왔군.”

이마가와는 핏물로 점철된 막사 안에서 그렇게 읊조리곤, 곁에 있는 유녀의 시체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또 다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가 태연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막사 내부가 아무리 넓다고 한들 결국 일영이 한눈에 훑어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일영은 머지않아 바닥에 쓰러진 것이 비단 사무라이들뿐만이 아니라 유곽에서 왔을 소년, 소녀들이 즐비하다는 걸 깨닫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쯧.”

“허.”

비단 일영 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막사 내부로 들어온 모리 요시나리, 오다 노부나가를 비롯한 호위들 역시 바보가 아니기에 막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은 눈치를 챈 것이다.

‘술잔치를 벌이다가, 야습을 당했다고 하니 전부 죽여버렸다?’

이번엔 노부나가마저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당연한 일이다.

사무라이와 사무라이가 서로를 죽인다.

난세에 지극히 당연하고도,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사무라이는 존재 의미가 퇴색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검을 든 무사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터.

그래, 분명히 그럴 터인데.

비루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유곽의 소년, 소녀들까지 죽여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

“…….”

모리 요시나리는 서늘한 눈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바라보았고, 오다 노부나가는 경멸과 조소에 찬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일영만큼은 달랐다.

‘저게 이마가와 요시모토.’

무수한 핏물을 머금은, 검의 손잡이를 쥐고 그를 지그시 바라본다. 물론, 일영이라고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들이 죽은 것은 분노할 일이었다.

그 증거로 심장과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가 주시하는 것은 그들의 시체가 아니라, 여전히 태연하게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모습이었다.

“큭, 크큭.”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웃음을 흘리며 그들이 들어온 이래로 벌써 4잔을 잔을 비운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광기가 엿보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콰득!

“무, 무슨?”

갑작스럽게 앞에서 울린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에 한창 시신들을 눈에 담고 있던 사무라이는 놀라 앞을 응시했고, 곧 그들은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마지막 남은 술을 잔에 따라 털어 넣고는 잔까지 씹어먹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잔을 씹어먹는다.

말로는 가볍게 들릴 만한 이야기였으나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파편들이 입안을 찢고, 핏물이 흐르는 걸 생각하면 결코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아니,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정도로 말하기도 우습다.

까드득, 까드득!

“큭, 크크큭, 크하하핫!”

광소를 터트리면서도 기어이 잔 하나를 씹어 넘긴 채 핏물이 길게 흐르는, 분칠을 해 흰색의 턱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광인의 그것이었기에 그들로선 공포든, 경멸이든 기겁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끄응.”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기어이 술잔을 다 씹어 먹은 것도 모자라 핏물로 점철된 입술을 혀로 훑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던 오오다치를 쥐었다.

일반 검에 비해 배 이상은 긴 검신이 미처 흐르게 하지 못했던 핏물을 바닥으로 추락시켰고, 동시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검은 칠에 핏물이 그득히 묻은 이빨이 드러나도록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놈이 바로 야차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일영이 불리우는 별명을 읊조렸고, 그것을 들은 일영은 쓰게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 내가 바로 야차다.”

“하하하하하하!”

이미 적의 목을 베러 온 이상 예의 따위는 차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사가 떠나갈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을 본 일영은 실소아니, 어쩌면 난처함에 가까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마가와 요시모토라고 하면 후대에 어떻게 묘사되는지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비만, 다리가 짧아 군마조차 타지 못하고, 편협하며 옹졸하다. 교토의 귀족 문화에 미쳐서 사치품이나 되도않는 귀족 따라하기에 미친 무능하고도 무능한 놈.’

일영조차 그를 만나기 전, 헛소리로 치부한 평가였지만 한때나마 이마가와 요시모토에 대한 평가로 인정받았던 이야기였다.

‘헛소리지.’

물론, 그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세워진 메이지 정권의 격하(?下) 작업의 일종임을 책으로 읽어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마가와 가문은 기본적으로 쇼군과 친족이고, 유신을 이끈 신세대는 구 세대가 실패한 이유를 찾아야 했으니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거야 알바가 아니다.

다만, 다만 말이다.

“이건 예상 밖인데.”

일영은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위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계승권 말석에서 단번에 가문을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스루가, 토토우미, 미카와 3국을 아우르는 대 다이묘가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상식이 있다면, 그것이 의도적인 깎아내림이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일영은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베어야겠다고 생각할지언정, 그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 경계했다.

하지만 막상 앞에서 그를 마주하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새끼들이. 구라를 쳐도 적당히 쳤어야지.’

턱 끝까지 욕지거리가 흘러나오려 했으나 애써 삼킨 그는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키는 일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풍채는 군마를 타지 못했다는 건 정말 같잖은 개소리였다는 걸 증명하듯이 무인의 그것이었고, 분칠을 했다고 유약하거나 허황심에 차 있는 게 아닌 것을 증명하듯 눈은 형형백백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거기에 손에 쥔 거대한 오오다치는 그 자체로 이번 전투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영은 곧 깨달았으니.

그건 다름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었다.

“인정하지. 이 야습을 기획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 그 애송이인지, 아니면 히라테 히카게 네놈인지, 또 다른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광소를 멈추고 그렇게 말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다 노부나가가 가만히 그 오만한 말을 듣고 있을 리는 없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적에는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기도 두려워 슨푸에 박혀있던 놈이. 이제와서 호걸인 척하는 꼬라지 하고는. 쯧.”

비가 와 조총을 쓰기엔 여의치 않다.

때문에, 그녀는 일영에게 꼬리를 치려던물론 이이 나오모리는 억울한 부분이었지만 말이다계집을 죽이곤 곧바로 조총을 버리고 일본도를 쥔 채였다.

그녀는 터억하고 갑주의 어깨에 검을 걸쳤고,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향해 이죽거렸다.

“죽여주마. 승려.”

도발이라기엔 간결한 한 마디.

하지만, 그것을 들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눈가를 일그러트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는 본디 가문의 5남, 비록 정실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셋째 아들이었기에 5살 때 절에 맡겨져 다시 가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센가쿠쇼호(????)라는 법명으로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분에 맞지 않는 말을 입에 놀리는 걸 보면, 네가 오다 노부나가. 그 애송이 계집년이로구나.”

그 과정에서 충신이자 스승인 타이겐 셋사이와 연이 닿았다고 한들 그에게 그녀가 내뱉은 말은 도발인 동시에 역린이었다.

“그래, 죽고 싶으면 죽여주어야겠지.”

하지만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이제 막 핏물이 멎어가는 입꼬리를 히죽 올린 채, 막사 내를 훑은 것이다.

막사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히라테 히카게야차라고 불리우는 조선놈, 오다 가문의 계집 당주, 그리고 추측건대 모리 가문의 계집과 그 호위들…….

단신으로 서 있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불리한 것을 넘어서 항복하는 것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싶은 상황이었지만, 정작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막사로 오는 길을 열어주었을까.”

“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죽여라!”

좌아아악!

찌이익!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일갈이 터지자, 곧바로 막사의 바깥에서 날카로운 칼날들이 뚫고 들어와 안과 밖을 막아주던 천들을 찢어발겼다.

동시에, 척 보기에도 그저 사무라이가 아닌 이마가와의 친위대가 분명한 이들이 일제히 막사를 찢어내고 안으로 들어오니, 그 모습에 노부나가, 요시나리, 일영은 동시에 시선을 교환하며 생각했다.

‘함정이었나?’

혀를 차며 그들은 제각기 손에 쥔 무기를 꽉 쥐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래. 그렇고말고.”

일영의 말에 노부나가는 빗물 때문에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고, 모리 요시나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놈들의 수를 세었다.

수적으로 그리 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장수의 역량.

목숨을 판돈으로 승리를 점친다.

난세의 기본된 소양을 거부할 무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래, 심지어 일영조차도 말이다.

“으아아아아!”

“모조리 죽여버려!”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

두 가문의 정예라 불릴 사무라이들이 사방이 찢어진 막사 안에서 격돌했고,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일단, 네년부터 찢어 죽여주마!”

“누구 맘대로!”

오다 노부나가를 향한 칼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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