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오케하자마(5)
* * *
“커헉!”
“끄으윽!”
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에서 두 세력의 군세가 치열하게 맞선다.
처음엔 오다 가문의 군세의 기세가 높았으나, 과연 이마가와의 최전성기를 함께한 가신들의 대처는 범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적들보다 우리가 더 많다! 물러서지마라!”
“놈들은 풍족한 오와리 땅에서 나고 자란 비루한 돼지들이다! 모조리 죽여버려!”
그들은 비단 입으로만 나불거리지 않았다.
검을 뽑고, 손수 달려오는 오다 가문의 사무라이들의 목을 베며 소리쳤다.
“흐읍!”
“끄으윽!”
이마가와 군의 본대에 있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각 가문에서 키운 사병이었고, 그만큼 군율 역시 높은 편에 속했다.
“주군을 따라라!”
“도망치는 놈들은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제일 먼저 그들의 사무라이들이 모범을 보였고, 그것은 비가 내리는 새벽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습격에 당황한 아시가루들의 투지를 일깨우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와아아아!”
“어차피 도망치다간 뒈진다! 죽여!”
사색이 되어 내달리던 아시가루는 쓰러진 사무라이의 검을 뽑아 든 채 다시금 앞으로 내달렸고, 곧 그들은 점차 거세지는 빗물 아래에서 미친 듯이 검과 창을 휘두르며 서로를 미친 듯이 베고 찔렀다.
콰드득!
“아, 아아아악!”
창의 날카로운 창날이 갑주 사이를 비틀어지듯 밀려 들어가며 연약한 인간의 피륙을 꿰뚫었고.
“어, 엄마.”
갓 성인이 넘어 끌려온 아시가루는 찢어진 복부에서 난생 처음 보는 징그러운 장기를 보고 반쯤 혼이 나가버렸다.
“크윽!”
채앵!
“뒈져버려!”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혀지고 빗물로 젖은 대지는 금방 진창으로 변모했고, 그 위에는 수많은 오다 가문의 군세와 이마가와 가문의 군세가 어지럽게 뒤섞이며 서로의 목숨을 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오다 노부유키는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면 이긴다고 해도 불리해.’
이마가와 군이 오케하자마에 본대를 설치하며 남긴 군세는 대략적으로 5,000명. 그에 반해 오다 군이 고르고 고른 정예는 그에 2,000명이나 밀리는 약 3,000명이다.
‘물론, 꽤 많은 수가 도망치고 있지만…….’
문제는 이마가와 군이 생각보다 더 빨리 정신을 차렸다는 점이다.
당연히 가신인 하타모토들과 사무라이들이 수습해 반격이 만만치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의 군율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히익! 도, 도망쳐!
으아아아아!
특히 직접적으로 군세와 닿지 않은 곳에서 있던 아시가루들은 더했다.
하늘이 뚫리기라도 한 듯이 내리는 빗줄기.
전투가 벌어지며 시시각각 꺼지는 화톳불.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죽어가는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의 고통 어린 비명과 적들의 외침 소리까지.
나, 나는 죽기 싫어어!
비켜! 비키라고!
그 모든 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농사나 짓던 하급 잡졸들과 더불어 아시가루들의 뇌리를 뒤흔들었고, 당연히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들을 지켜보는 오다 노부유키의 표정은 딱히 밝아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하는데…….’
야습의 이점이 있고, 놈들 역시 적잖이 도망쳤기에 전투는 결국 시간을 끌면 이기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단순히 군세를 줄이고 이마가와를 오와리 밖으로 내쫓는다고 하면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만, 결국 시간을 뒤로 끌 뿐이다.
이번 전투의 위험성에 비해선 돌아오는 게 너무 적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오다 노부유키는 눈을 번뜩이며 전장을 살폈다.
‘답은 하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답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저기다! 저쪽 막사에 놈이 있다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츠키의 목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우며 오다 가문의 가신들은 물론 이마가와의 가신들 역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이 시선을 향한 방향에는 아니나 다를까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가몬이 휘날리는 막사가 있었다.
“흐읍! 길을 뚫어라!”
“막아! 막으란 말이다!”
눈앞의 적들을 단순히 베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향해야 하는 목표가 생겼고, 그 순간 오다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일제히 입술을 잘근 깨문 채 더욱 강한 기세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시바타!”
“예! 아가씨!”
오다 노부유키와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흐읍!”
시바타 가쓰이에는 망설임 없이 눈앞의 적들을 베고, 찢고, 찔렀고, 오다 노부유키 역시 호위 사무라이들과 보조를 맞춘 채 그녀가 뚫는 길을 따라 내달렸다.
“하아, 하아! 모두 괜찮나요?”
“예! 아가씨! 물러서십쇼!”
아무리 냉정하고자 해도 전장의 한복판에 선 이상 그녀는 필연적으로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가문 내부의 분쟁이기에 어느 정도 손속을 둔 전투를 해온 그들에게 이건, 정말로 생사를 결툰 전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보았다.
“도련니임! 으라아악!”
“끄아악!”
쥐고 있던 검은 어디로 갔는지, 웬 도끼를 양손에 들고 미친 듯이 길을 뚫은 이츠키가 마침내 이마가와의 막사를 막던 사무라이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고, 그 뒤를 따라 일영과 호위 사무라이들이 좇는 모습을 말이다.
‘그라면!’
그제야 오다 노부유키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질 수 있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
도카이 제일의 무사(??一の??り)라고 불리는 그인 만큼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믿었다.
일영 정도면 쉽게 당하지 않으리라.
때문에, 그녀는 외쳤다.
“더욱 몰아쳐라!”
“노부유키 아가씨의 명령이다! 몰아쳐라!”
지금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막사로 향할 원군의 수가 최대한 줄어들 수 있도록 적들의 혼을 쏙 빼놓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
“여기가 어디라고 네 이노옴! 끄으윽!”
“막아! 막아야한다!”
“끼요옷! 후라얏!”
일영은 앞에서 달려오는 놈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걱정 반, 웃음 반의 표정으로 자신보다 앞에 서서 달려가는 이츠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니,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미, 미친겁니까?”
이츠키와 함께 일영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기에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아케치 미쓰히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고.
“……머리를 다쳤나?”
모리 요시나리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걱정했으며.
“하하하핫! 제대로 미친놈이군! 마음에 들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오오옷! 뒈져! 뒈져어어엇!”
“무, 무슨 사무라이라는 놈이 이런 멧돼지 같은……! 끄아아악!”
물론, 이츠키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도끼를 휘둘렀고, 그의 앞을 가로막던 사무라이들은 긍지나 명예 따위 없이 그저 도끼를 휘두르는 이츠키의 손에 억울함을 머금고 죽어갈 뿐이었다.
그들로선 억울할 만도 했다.
명예이니, 긍지이니 따위가 지극하고도 당연하게 지켜야 할 도리로 인식되는 세상 속에서 명색이 사무라이는 놈이 눈깔이 반쯤 돌아가서 검도 버린 채 도끼로 머리를 찍고 다닌다면, 그리고 그 도끼질에 자기가 죽는다면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알바는 아니지.’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또 한 명의 사무라이를 죽였고, 그 순간 그는 눈을 번뜩였다.
‘막사 앞이다!’
이왕 선봉에 선 것이니 공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단지 과중한 현실에 반쯤 정신을 놔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저돌적으로 나서준 이츠키 덕분에 이마가와의 막사까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돌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벤 것은 많고 많은 사무라이들일 뿐.
쿠웅!
“감히, 오다의 버러지들이 이 앞에 서는가!”
그들은 막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창을 바닥에 찍는 이에게 앞이 가로막혔고, 일영은 그를 위아래로 한번 훑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여자는 아니군. 다행히 자기 소개할 시간은 있겠어.”
“……뭐라?”
“아니. 됐고. 누구시지?”
일영이 내뱉은 말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청년에서 중년 즈음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있는 그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미 일영을 비롯한 그들의 인상착의를 들어 알고 있는지, 바닥에 찍은 창대를 뽑아 정확히 노부나가를 향해 겨누며 일갈했다.
“내 이름은 마쓰이 무네노부! 이 자리에서 네 년놈들을 베고 주군께 오와리를 선물하리라!”
그러나 그때.
콰드윽!
이츠키가 때마침 앞을 막던 사무라이의 목에 바람구멍을 깊게 박아 넣어준 채 도끼를 뽑고는 시선을 돌리니.
“……죽인다아! 더 많은 수급! 더 많은 공!”
그는 척 보기에도 휘황찬란하게 몸을 치장한 마쓰이 무네노부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이, 이게 무슨?!”
당연히, 전국시대에 나타난 광전사에 마쓰이 무네노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츠키를 도와!”
“알겠습니다!”
뒤를 이어 아케치 미쓰히데까지 합류하자 일영은 곧바로 호위가 뚫린 듯한 이마가와의 막사로 돌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 막사의 입구 역할을 하던 천을 걷어낸 그 순간, 일영의 눈앞에 보인 것은.
“큭, 크크큭.”
이미 한 차례 밀려오는 적들을 모조리 베어넘긴 듯 거대한 오오타치(날이 긴 일본도)의 혈조(血?)조차 담지 못한 핏물을 흘리며 막 술을 잔에 따르고 있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