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오케하자마(4)
* * *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한창 술잔을 기울이며 흥취를 올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각.
“흐응~”
이마가와 군의 잡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숲으로 달려 들어왔고, 곧 주섬주섬 바지춤을 끌어내리고 작디작은 양물을 손으로 잡아 밖으로 드러냈다.
“끄으으……. 이제야 살겠구먼.”
그놈의 윗것들 연회 준비를 하느라 변소에 제때 가지도 못했고, 주변을 경계하라는 명령을 틈타 간신히 일을 본 것이었다.
“에휴. 빌어먹을.”
그렇게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난 잡졸은 다시금 주섬주섬 바지의 끈을 묶으며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게 무슨 개짓거리인가?
“저들은 뭐 권력을 얻고 재물이나 쥐겠지만 결국 우리 같은 놈들은 끌려와서 뒈질 뿐인데. 말이야. 퉤!”
고된 농사일로 백날 그놈의 세금을 내면 뭐라도 달라지는 게 있어야 하는데, 이놈의 사무라이들은 뭐만 터졌다 하면 창칼들고 나가서 싸우라고 하니…….
“이거야 원, 뒈지면 울 엄니는 어쩌라는 건지…….”
그가 투덜거리며 막 바지 끈을 다 묶은 그때.
사박.
“어?”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울린다.
때문에, 혹여 내뱉은 혼잣말이 상급자의 귀에 들어갔을까 사색이 된 그가 뒤를 바라본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푸욱!
섬뜩한 피륙음이 귓가를 스친다.
“아.”
동시에 그는 찰나의 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는 목덜미를 바라보기 위해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으나, 그보다 더 빨리 검게 물드는 시야를 느끼며 깨달았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말이다.
추욱.
쓰러진 잡졸은 당장에라도 풀숲에 처박힐 듯이 기울어졌으나 그를 죽인 이들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숨이 끊어진 그의 시체는 나무에 기대어졌고, 그와 동시에 인근이 완전히 정리되었음을 느낀 타키가와 카즈마스는 닌자들의 수신호로 본대에게 신호를 보냈다.
까닥.
직후, 최대한 걸음 소리를 줄이기 위해 나눠진 본대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이마가와 군의 본진의 앞에서 숨을 죽였다.
“…….”
“…….”
숨을 죽인 모두의 시선이 오다 노부나가에게로 향했다.
이 자리에 있는 가문의 가신이든, 그저 사무라이든, 아니면 아시가루든 이 전투가 앞으로 오와리의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것을 직감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최대한 숨을 죽이며 그녀의 명령만을 기다릴 뿐이다.
스윽.
한편, 노부나가는 일영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 이미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 둘이었다.
이건 도박이다.
성공하면 모든 판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대박이요, 실패하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리라.
그래, 모든 것.
……어쩌면 목숨까지도.
“스읍…….”
긴장감에 마른 입술 사이로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가 내뱉어야 할 말은 대단한 연설도, 사기를 진척시키는 위대한 고사도 아니다.
그저 붉은 입술을 떼었다.
“전군.”
낮게 내뱉어지는 목소리가 울리고.
“반드시.”
머지않아, 터트리듯 내뱉으니.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따버려!!”
“와아아아아아!”
“이마가와의 버러지들을 죽여버리자!”
“모조리 쓸어버려!!”
역사적인 오케하자마 전투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와아아아아!”
“죽여버려어!”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악에 받친 함성 소리가 일영의 심장을 이례적으로 떨리도록 만들었다.
“으아아아아! 빌어머어억으을! 죽으면 저주한다아! 진짜로 저주한다아!”
물론, 바로 뒤에서 이츠키의 이유 모를 괴성이 들리긴 했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앞으로 달렸다.
어느샌가 애병이 되어버린 오니마루 쿠니츠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번뜩였다.
“야, 야습, 기습이다아! 커헉!”
검은 갑주는 당황하며 기습에 대응하려던 이마가와 군의 창칼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저, 저 가면! 야차다! 야차가 왔다고!”
하관을 보호하기 위해 쓴 야차 가면과 큰 체구는 일영이 얻은 악명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이노옴!”
물론 놈들도 무작정 물러설 순 없었기에 일부 사무라이들이 겁도 없이 그를 향해 카타나를 휘둘렀지만, 일영은 별다른 기합도 없이 어깨로 놈들의 검격을 받아내고 단번에 목을 찔렀다.
“끄르륵!”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뱉지 못하고 또 한 명의 생명이 거대한 고깃덩어리고 변모하며 쓰러진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일영은 무아지경으로 달려드는 적들을 베고, 또 베며 생각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찾는 것!’
일본이라는 나라는 뭐랄까, 참으로 기묘하다.
본질적으로 대륙과 차단된 섬나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 핏속에 각인된 특유의 유전자 때문인지, 그마저도 아니면 특이한 형태의 봉건제 때문인지는 모른다.
‘놈들은 보수적이다. 또 지극히 상명하복을 중요하게 여기지.’
현대의 일본조차 정치인 집안에선 정치인을 배출하고, 두붓집에선 효녀를아니, 두부 장인을 배출하곤 한다.
그런 기형적일 정도로 수직적인 구조가 만든 놈들의 특이점은 바로 ‘대가리가 뒈지면 아랫것들은 곧바로 머리를 박는다는 것’ 정도겠지.
오죽하면 후에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했을 때 계획이 ‘최대한 빠르게 조선 왕을 잡으면 조선이 항복하겠지’였을까.
즉, 간단한 목표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찾아라! 놈을 잡아 죽이면 이 짓거리도 끝이다!”
일영은 또 한 사무라이의 목을 베어 사무/라이로 만들어버리곤 외쳤고, 그에 호응하듯 오다 군의 장수들 역시 외쳤다.
“요시모토를 잡아야 한다고!”
“일단 뚫어!”
하지만 아무리 야습이라고 한들, 이대로 있으면 모조리 뒈진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기에 이마가와 측 병력도 점차 당혹감을 수습한 채 그들을 향해 반격하기 시작했다.
“막아! 막으라고!”
“수적으로는 우리가 더 우세하다!”
과연, 전장에서 평생을 구른 감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한창 잔치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다급히 나왔음에도 이마가와 측 가신들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고, 일선 사무라이들이 정신을 차리면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오다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제각기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뒈져! 뒈져어어!”
“으아아악! 미친놈이다!”
강제로 선봉에 서게 된 이츠키는 반쯤 눈이 돌아가서 어디서 주워온 지 모를 도끼로 앞을 가로막는 놈들의 미간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주고 있었고.
“네년의 얼굴과 함께 쪼개주마!”
“……감히.”
일영에게 선물을 받은 가면으로 하관을 가린 채 검을 휘두르던 시바타 가쓰이에는 감히 가면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놈을 보다 잔인하게 찢어발겼다.
“흐읍!”
“하아압!”
마에다 토시이에, 니와 나가히데 역시 서로를 의지하며 미친 듯이 적들을 베어나가고 있었다.
“……후우, 후우.”
한편, 일영은 새로이 앞엔 나타난 이를 바라보며 달려오며 적들을 베어 넘기느라 찬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으로 마찬가지로 전장을 넘어 다가온 아케치 미쓰히데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주군. 아무래도.”
“그래.”
입고 있는 갑주만 보더라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는 걸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일영과 잠시 시선을 맞추던 그녀는 특유의 구릿빛 피부가 드러나는 손으로 얼굴에 쓴 가면을 벗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너구나. 히라테 히카게. 아니, 백일영이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이런, 내 이름까지 알고 있나.”
그렇게 말한 그녀의 얼굴은 꽤나 반반했다.
구태여 말하자면 건강미 넘치는 육상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 이름은 이이 나오모리다. 네놈과 함께 검을.”
그녀는 특유의 건강미 넘치는 몸이 훤히 드러나는 갑주를 철그럭거리며 당장에라도 일영에게 달려들려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때.
파앙!
“어?”
일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뺨을 스친 무언가에 미처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앞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익숙한 창이 이이 나오모리를 노리고 뻗어졌다는 걸 뒤늦게 눈치챌 수 있었다.
푸른 빛을 띄는 창.
그것의 주인을 모를 일영이 아니었고, 그가 무심결 몸을 떤 그 순간.
“큭!”
이이 나오모리는 자신을 노리고 뻗어진 창의 창대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고, 창은 그녀의 검격에 막혀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졌다.
“이런 비겁한!”
오다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명예로운 전투에 대한 감각도 없는 것인가. 그런 분노를 터트리려던 그녀였으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타앙!
“어?”
총성이 울린다.
동시에, 그녀가 멘구를 벗으며 드러난 왼쪽 눈동자가 붉게 물들고, 곧 터진다.
“끄, 끄아아아악!”
총탄이 왼쪽 눈을 터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이 나오모리는 고통을 참지 못한 채 눈을 부여잡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흡!”
어느샌가 일영의 곁을 지나간 모리 요시나리는 바닥에 박힌 창대를 쥐고 단번에 이이 나오모리의 목을 향해 휘둘렀고.
“아, 안돼! 이, 이건 말도 안!”
절규가 뒤섞인 목소리를 내뱉는다고 한들, 이이 나오모리의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서걱, 툭.
왼쪽 눈이 터진 채 일그러진 구릿빛 얼굴이 바닥을 구른다.
동시에, 멍한 눈으로 앞에 창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는 모리 요시나리와 뒤에서 조총을 어깨에 이고 걸어오는 노부나가를 본 일영에게 그녀들은 말하니.
“어디서.”
“천박한 암컷 냄새를. 쯧.”
그건 사뭇 섬뜩한 경고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