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오케하자마(2)
* * *
와시즈와 마루네가 함락이 되었다고 한들 이마가와의 군세는 곧바로 나루미로 진군할 수는 없었다.
일단 강을 넘어야 하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오다 가(家)의 군세 역시 곱게 놈들에게 나루미 성채를 넘겨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인근 평원에서 양측의 군사들이 치열하게 맞붙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이 없었다.
“으아아아악!”
“커헉!”
겹겹이 쌓인 갑주를 펄럭거리며 검을 휘두른다. 천을 묶은 끈과 함께 살갗이 베여나가고 핏물이 허공을 부유해 적의 얼굴에 튄다.
“물러서지 마라!”
“모조리 죽여버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로를 향해 매서운 칼날과 창을 찌른다. 카타나의 검신에 새겨진 혈조를 따라 적의 핏물이 흐르고, 그들은 바로 뒤에 아군이 있는지 적군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눈앞의 생명을 무참히 죽인다.
“크억!”
이 전장에 서 있는 이들 중 사무라이든, 하타모토든, 아시가루든, 그저 그런 잡졸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전장에서 통용되는 것은 단 하나.
적을 죽인다.
그러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때문에,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는 이나 대지를 구르며 살기 위해 핏물과 오물이 뒤섞인 진창에 고개를 처박는 이나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었다.
죽기 싫다!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소망은 어제까지 농기구를 쥔 채 농사를 짓던 순박한 시골의 청년도 피에 굶주린 괴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살고 싶으면 죽이라고!”
“히, 히익!”
해가 막 뜰 때부터 시작된 전투는 어느새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고, 불과 지난 새벽까지만 해도 초목들이 바람에 나부끼던 평원은 사람과 군마의 피로 점철되었다.
히이잉!
또 한 마리의 군마가 고개를 어지럽게 흔들며 추락하고, 그럼에도 각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미친 듯이 적을 죽이며 일갈했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우리가 뚫리면, 나루미 성까지 지척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마가와 측의 장수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이 아닌 막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각 전장에 병력이 증원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와시즈 방면에 대략 1,000명.
마루네 방면에 또 대략 1,000명.
도합 2천의 병력이 합류함으로써 점차 이마가와 측이 승기를 잡고 있던 전장은 다시금 백중세로 돌변했고, 결국 해가 지자 각 군세의 장수들은 혀를 차며 일갈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물러선다!”
“병력을 뒤로 물린다!”
서로 얽히고설키던 때와 다른 빠른 후퇴다.
마침내 밤이 되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병력을 뒤로 뺄 수 있게 되었고, 지친 정신과 상처 입은 육신을 이끌고 막 막사로 돌아온 사쿠마 노부모리는 소식을 전한 전령의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당주님이 어디로 가셨다고?”
“그것이…….”
전령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흘렸다.
평소와 같았다면 전령이 소식을 전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한다며 욕을 먹을 짓이었지만, 지금 그가 내뱉은 말의 충격으로 사쿠마 노부모리는 물론 그와 함께 전장에 서 있던 사무라이들조차도 귀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 오케하자마로 가셨습니다.”
“어딜 갔다고?”
*
현대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야밤의 산행을 얕본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에게 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LED가……. 아니, 인류의 문명이 자연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을 때부터 야밤의 산행은 금기가 아닌 주의할 행동 정도로 취급되고는 했다.
하지만, 일영은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혼자였으면 기절했겠네.”
“응?”
“아닙니다.”
곁에서 되묻는 노부나가의 말에 너털웃음을 흘리곤 다시금 정면을 바라본 일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최소한의, 앞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밝힌 횃불이 길을 밝힌다.
그 외의 것들은 오직 발빛과 야밤에 눈이 밝은 선두의 병사들에 의지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 병사들.’
일영은 아직 얼굴에 쓰지 않은 멘구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속으로 읊조렸다.
저벅.
터벅.
야밤을 틈타 수천에 달하는 군세가 움직인다. 그들은 모두 급히 준비한 천이나 가면 따위로 얼굴을 가린 채 발소리, 숨소리조차 죽이며 묵묵히 행진을 이어나갔다.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후욱.
후.
눈빛은 살아있고,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리는 놈은 있어도 다가올 전투를 두려워하는 놈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이 자리에 모인 하타모토, 사무라이, 아시가루, 하다못해 급히 모은 잡병조차도 지난 내전과 각종 전투에 참여한, 이른바 고르고 고른 정예였으니까 말이다.
이 중에서 적을, 달리 말해서 인간을 베어보지 못한 자는 없었다.
태반이 손에 쥔 창과 칼로 한 인간의 삶을 끝냈고, 그 피 값에 짓눌리지 않고 다시금 전장에 설 수 있을 정도로 단련된 전사들이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병력이 도합 3,000명.’
어차피 모은 병력 전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병력이 너무 많으면 척후에 걸릴 확률도 높을뿐더러, 괜히 얼빵한 놈들을 데려갔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 오와리의 운명은 끝이니까.
“…….”
일영은 좌우를 살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자신과 함께 척후로 세운 병사들을 제외하면 선두에서 군세를 이끄는 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유키.
모리 요시나리.
시바타 가쓰이에.
마에다 토시이에.
니와 나가히데.
아케치 미쓰히데.
그리고, 이츠키까지.
빠지려면 빠질 수 있었던…….
아, 이츠키는 빼고.
여하튼 빠지려면 빠질 수 있었던 그녀들은 도박수나 다름이 없는 그의 제안에 목숨을 걸기로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와 대화를 나눈 직후 불러모아 내뱉은 일영의 전략에 모두가 찬성한 건 아니었다.
이건 도박이에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방심하고 술에 진탕 취한 채 척후까지 게을리 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한 전략이라고요!
오다 노부유키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네요. 차라리 최대한 버틴 후…….
니와 나가히네는 다른 전략을 그에게 제시하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노부유키의 말을 듣고 그래, 그렇게 진행될 거다라고 말하고 싶었지.’
일영은 어둠 속,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을 밝히는 척후병들의 횃불을 따라 걸으며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고?’
원 역사에서도 이건 도박수였다.
혹자, 특히 일본 역사계에선 오다 노부나가가 수많은 척후를 뿌리고 정보를 취합해서 할만하다는 판단 하에 야습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도박, 그것도 미친 도박.’
정보를 취합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연락 수단이라곤 전서구나 전령밖에 없는 이 시대에 그런 결단을 내린 사람이 과연 정상이었을까?
‘그래, 이 방법이라면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판도를 휩쓸 수 있겠구나!’
일영은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고, 그가 내뱉은 전략을 마침내 전해 들은 오다 노부나가는 그가 미처 채워주지 못한 공백란을 스스로 채워가며 긍정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일영은 자신보다 조금 더 앞서 걸어가는 자신의 아내이자, 주군인 노부나가를 불렀다.
“주군.”
“왜 그러느냐. 일, 아니. 히카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동시에, 곁에서 걷는 모두가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음이 느껴졌으나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번 야습, 도박입니다. 손가락 자르는 거로는 해결되지 않고 최소 할복이라고요. 두렵지 않습니까?”
도박판에서 손가락의 개수는 신용도를 나타내는 척도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번 야습은 그야말로 가진바 손가락을 모두 내놓고 실패할 시에는 목숨마저 걸어야 하는 도박이 아닌가.
“허.”
그 순간, 노부나가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멈춰 선 순간 군세는 동시에 걸음을 멈췄고, 곧 노부나가는 일영을 돌아보곤 성큼 걸음을 옮기니.
콱!
“읏?”
그녀의 손이 단번에 일영의 멱살을 움켜쥔다.
갑주 안에 입은 천이 끌어 올려지고, 동시에 그녀는 일영의 갈색 눈동자와 자신의 금색 눈동자를 마주치며 번뜩였다.
“두렵냐고? 그대는 두려운가?”
겉으로 보기엔 분노한 주군이 부하를 추궁하는 듯한 모양새였으나, 일영은 그 찰나의 순간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그녀를 바라보곤 그저 웃었다.
“그럴리가요.”
“허.”
그가 내뱉을 수 있는 답은 단지 그것.
“좋은 대답이구나.”
그런 일영의 답에 노부나가는 이윽고 피식 웃고는, 손에 쥔 멱살을 더욱 끌어당기며 정확히 일영에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직후.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둘의 머리 위로 일련의 그림자가 추락했다.
“큿?”
“무, 무슨!”
동시에 사무라이들이 검을 뽑기도 전에 한쪽 무릎을 꿇은 여닌자타키가와 카즈마스가 말하니.
“찾았습니다. 오케하자마에 있습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일영에게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