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오케하자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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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시즈, 마루네, 나카지마 성채는 기본적으로 거주용도라기보단 유사시에 적들을 막기 위한 요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요새들이 막고자 하는 것은 크게는 적들의 오와리 진출이지만, 작게는 나루미 성을 지키기 위한 길목인 것이다.
때문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진군 중이던 본대를 멈추고 지도를 펼친 채 전황을 들었다.
“현재 와시즈와 마루네는 점령했으나 군사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오타카 성에 입성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공(?)역시 피해가 크다며 잠시 군을 멈췄다고 합니다.”
“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말로는 아쉽다고 했으나 허옇게 분칠을 한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렀다.
당연한 일이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호조와 다케다의 건방진 계집들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만든 기회다. 물론, 놈들도 제각기 집안을 정리해야 했기에 받아들여야 했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얻을 것이 가장 많지.’
그는 간략한 회의를 마치고, 특유의 허영심이 가득 담긴 꽃가마에 오르며 생각했다.
끙차 따위의 소리와 함께 가마꾼들이 그의 몸을 공중으로 띄웠고, 이전에 진지를 펼친 곳보다 더 전황을 파악하기 쉬운 곳으로 본대를 움직인다.
“흐음.”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말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평온한 가마 위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비록 교토의 귀족 흉내를 내며 괴팍한 성격을 지녔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그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다.
“나는 요시모토. 도카이 제일의 무사다.”
나지막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혹자는 오글거린다고, 또는 오만하고 허영심에 가득 찼다고 욕할지도 모르나 그는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당당했다.
가문 내 5남으로 태어났다.
계승권 따위와는 연이 없어 승려가 된 스승 타이겐 셋사이에게 맡겨져 교토를 오가며 가문을 위해 웃음을 팔고 고개를 조아리는 신세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그럴 수야 없지.’
그는 무력하게 포기하며 세상 탓이나 하는 버러지도 아니었고,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는 천황이나 하늘의 계시나 기다리는 머저리도 아니었다.
자고로 기회란 스스로 만드는 것.
난세에 태어나 부질없이 사그라드는 삶을 살 바엔 죽는 게 나았다.
스승이자 충신이었던 다이겐 셋사이는 그와 뜻을 함께했고, 그 결과 가문 계승권 말석의 아해는 마침내 당주에 올라 도토미, 스루가, 미카와 삼국을 손에 쥔 대영주가 되었다.
‘안주한다면, 단지 부귀영화만을 바란 돼지로 태어났다면 그저 그것에 만족하며 여색과 재물을 탐하며 살아갔겠지.’
작금의 요시모토는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정녕 그것으로 되는가?
나는, 나 요시모토는 그것을 바라는가?
“그럴 리가!”
씨익 올린 입꼬리 사이로 검게 칠한 이빨이 도드라졌고, 갑작스럽게 내뱉은 일갈에 가마를 지고 산을 오르던 가마꾼들이 순간 멈칫했으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그는 생각한다.
언젠가.
아니, 젖먹이에서 벗어나 가진바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자각했을 때부터 그는 쉼 없이 갈증을 느꼈다.
처음으로 여자의 육체를 탐했을 때, 쾌락을 느꼈다 한들 당주에 오른 쾌락과 향락에 비할 바가 되지 않았다.
권력을 탐하고, 명예를 갈구한다.
그러기 위해 살아왔고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오와리의 혼란이 시작되며 꿈꾸던 교토가 눈앞에 보이고 있다.
‘나루미는 쉽다. 진짜 문제는 그 이후.’
어차피 이번 침공만으로 오와리의 오다 가문을 합병할 수 있으리란 망상은 하지도 않았다.
가신들도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미래엔 몰라도 이번 전투로 상락을 꿈꾼다면 그 자체로 허황된 망상이라는 걸 말이다.
당연한 일이다.
오와리는 기본적으로 항구와 더불어 소출이 좋아 풍족한 땅이다. 괜히 전대 오다 가문의 당주인 오다 노부히데가 이마가와 가문을 몇 번이나 패퇴시킨 것도 모자라 마츠다이라 가문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게 아니란 말이다.
‘일단 이번에는 목줄을 채워놓는 정도로 끝을 내고, 필요하다면 당주를 바꿔야겠지.’
오다 노부나가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듣기론 다루기 힘든 년이라는 말이 많았다.
단순히 무능하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듣기론 어느 정도의 군재가 있다고 하니 필요하다면 끌어 내려야 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렇게 시간을 번다.
그렇다면, 그 벌어둔 시간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마츠다이라를 길들인다.’
그의 시야 너머로 지금도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 너구리 같은 꼬마는 지금도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쉼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겠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그 아이에게 처신이란 곧 생존이라는 걸 누구보다 그 자신이 강요했으니까.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웃었다.
‘오다 가문의 힘을 꺾는다. 그 사이에 미카와를 완전히 소화하고 얻어낸 기반으로 오와리를 삼키면 된다.’
그의 머리엔 이미 난세를 평정한 거대한 그림이 제각기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듯이 빠르게 그려졌으니까 말이다.
끙차.
그리고 그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조심스럽게 가마를 지고 오던 가마꾼들이 작은 신음과 함께 가마를 땅에 내려놓았고, 때마침 미리 도착해 진지를 펼치던 하타모토 직에 있는 여 사무라이가 그에게 성큼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당주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가마를 타고 온 그가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한들, 함께 움직이는 말들과 발을 맞출 수는 없기에 미리 와서 진지를 펼친 것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며 꽃가마에서 내려 대지를 디딘다. 동시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가문의 중신들이 그를 반기니.
“좋구나. 좋아.”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언덕으로 성큼 걸어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째서 그가 본대를 옮겼는가?
그건 간결한 이유였다.
바로, 진군하는 전황이 한눈에 담기는 지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리 지형을 탐색한 이마가와 가의 닌자들은 그에게 가장 걸맞은 지형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오케하자마. 썩 좋은 이름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입안에서 그 이름을 굴린다. 어딘가 운명적인 이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에 달라붙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때, 무심결 하늘을 응시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보았으니.
“쯧, 비가 내리는가.”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마츠다이라 가(家)의 가몬을 단 군세는 이미가와 측의 뜨뜻미지근한 눈초리에도 꽤나 준수한 전과를 올리며 빠르게 진군하고 있었다.
“준수한 전과라…….”
“허, 웃기지도 않은 소리입니다.”
이마가와 측에 전해진 서신을 엿본 첩자가 전한 평판을 들은 모토야스는 무심결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고, 마찬가지로 그녀의 곁에 선 도리이 다다요시는 아예 대놓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준수한 전과?
“우리는 데라베 성은 물론 히로세, 고로모, 이호 성을 뚫고 오다카에 입성했거늘! 이걸 준수한 전과라고 한다면 어디 교토까지 들어가야 인정을 해주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가신들의 불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이마가와 측에서 붙여주었든 아니면 도리이 다다요시의 설득에 의해 그녀를 지지하기로 했든 마츠다이라 가의 가몬 아래에 선 그들은 싸웠다.
피같은 군사를 흘렸고, 봉토로 돌아가면 노동력이 될 아시가루는 물론 사무라이들도 꽤나 많이 잃어가며 분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공로를 알리는 이마가와 측의 가신들은 끝도 없이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정당하게 세운 전과까지 축소하니 그들로선 불만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들 진정하세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신들은 여태까지 침묵을 지키던 소녀, 그리고 자신들의 당주가 입을 열자 모두들 그녀를 응시했다.
살짝 처진 눈.
묘한 갈색을 띠는 머리와 눈.
그리고, 작은 체구.
말을 타고 창칼을 휘두르는 그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얕보던 그녀가 입을 열자 가신들은 침묵한 채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도리이 다다요시는 물론 핫토리 한조 역시 새삼스러운 감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둘은 알았다.
그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
과거의 주군의 혈육이라고 한들, 이마가와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줄 버러지들 역시 많았다.
그녀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모토야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도리이 다다요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막 입을 열려는 그녀를 응시했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것을 하면 됩니다. 전과야 후에 챙기면 될 일이겠지요. 하핫.”
이윽고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내뱉어지는 그녀의 한 마디에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었다.
과연, 이 도박수가 맞는 것인가.
그녀에게 재물을 쥐여주고 지지하는 것이 옳은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함께 비상하거나, 함께 추락하거나.’
이미 호랑이의 등에 탄 이상, 퇴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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