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27화 (127/171)

〈 127화 〉 인간 세상 오십 년(3)

* * *

“…인간 세상 오십 년.”

그건 언젠가, 들었던 시구와 같은 것이었다라는 생각을 하던 일영은 곧 그것이 원 역사의 오다 노부나가와 이곳의 오다 노부나가 역시 즐겨 추었다는 아츠모리(??)임을 떠올렸다.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종종 저것을 추었고, 그것은 그가 처음 이 세상에 떨어진 오다 노부히데의 장례식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뭐랄까.

‘느낌이 달라.’

이번에 추는 아츠모리는 그 느낌부터가 평시와 달랐다.

……달라진 분위기 때문일까?

이젠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그녀 특유의 옷차림이 낯설게 느껴짐과 동시에 한없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봉긋한 흰색 가슴을 붕대로 묶는다.

압박된 붕대는 겨드랑이 쪽의 부유방과 함께 살짝 살 안쪽으로 파고들어 묘한 자국을 만들었고, 어깨 아래로 스치듯 내려가 팔꿈치에 간신이 버티고 있는 거대한 도포는 그녀의 얇은 선을 풍성하게 가리며 나아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등 뒤에 벚꽃이 그려진 병풍과 더불어 천천히정해진 걸음을 거닐며 부채를 다시금 소리 없이 접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선녀의 그것과 닮아있었으니까 말이다.

“훗.”

그녀는 일영이 들어와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옅게 웃음을 흘렸다.

사뭇 오만하다.

또한, 사뭇 매혹적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바닥에 끌어지고 있던 옷자락을 가볍게 손끝으로 잡아 위로 올렸고, 동시에 발을 앞으로 디뎠다.

저벅.

발을 디딘다.

때로는 가벼운 걸음으로 다다미 위에 안착했고, 때로는 진중하게 움직임을 통제한다.

촤악!

그리고 그녀는 부채를 펼친다.

어느샌가 닫혀있던 부채는 그녀의 손의 움직임에 맞춰 깔끔한 소리를 내며 펼쳐지고, 곧 그녀는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그것을 움직였다.

그 안에 많은 감정이 담긴다.

그것은 온전히 일영에게 향해 닿았고, 그는 묵묵히 그녀를 응시하며 이어질 시구를 기다렸다.

“하천의 덧없는.”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붉은 입술을 달싹이이며 노부나가는 잡티 하나 없는 맨발을 가볍게 움직여 일영에게로 부채를 펼쳤다.

촤악!

부채의 선을 따라 일렁이는 바람이 일영의 뺨을 부드럽게 스친다. 동시에 그녀는 입꼬리를 가볍게 끌어 올리며 다시금 속삭이듯 말했다.

“……꿈과도 같도다.”

“하.”

동시에 이제까지 무표정을 견지하던 일영 역시 마주 웃었다.

그것은 묘한 감흥이었다.

뭐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일영은 뇌리에서 떠오르는 무수한 단어 속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어줄 것을 본능적으로 더듬으며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욱.

오다 노부나가는 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떨궜다. 추락한 부채는 다다미에 부딪혀 바닥을 몇 번 구르다가 멈춰섰고, 그녀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사근한 발걸음으로 그에게 향하며 입을 열었다.

“한번 삶을 얻었으니.”

그녀는 일영의 앞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천천히 양팔을 뻗어 일영의 목에 팔을 휘감고는 달콤하게, 혹은 야릇하게, 때로는 매혹적이게 속닥거리니.

“진멸치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나의 부군이자, 나의 가신이자, 나의 일영이여.”

진멸(??)치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그녀의 말대로다.

삶을 살다보면 망하지 않을 자가, 실패하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두려워 말거라. 너는 최선을 다했으니.”

오다 노부나가의 숨결 사이로 미온한 술내임이 흘러 일영의 코끝을 스쳤다. 동시에 일영은 눈치채고야 말았다.

‘티가 그렇게 났나. 거참.’

어색하게 웃는다.

그것은 부끄러움.

혹은, 안도감.

그녀의 얇디얇은 팔이 목을 끌어안는 감촉을 느끼며, 얇은 옷을 넘어 그녀의 가슴이 자신의 명치에 닿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혼탁했던 금색 안광이 총기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끼며 확신한다.

그녀는 지금 그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패배한다고 한들,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

“그래. 이 죄많은 남자여.”

일영과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는다.

갈색의 눈동자와 금색의 눈동자가 어지럽게도 뒤엉키고, 일영은 단지 눈앞의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모든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렵지 않다.’

오케하자마자에서 패하는 것은 두렵다.

아니, 앞으로 모든 길이 가시밭길과도 같으리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라고?

오다 노부나가가 있다.

모리 요시나리가 있고, 히라테 마사히데가 있으며, 이츠키와 오다 노부유키, 시바타 가쓰이에가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무수한 이들이 있다.

자신을 울타리 안에 넣은, 그리고 그 자신이 울타리 안에 담은 무수한 이들이 그의 곁에 서 있는 것이다.

“착각한 모양이야.”

“너는 언제나 그렇지. 꼭 네가 아니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못하는 듯이 굴지 않더냐.”

일영의 한 마디에 노부나가는 피식 웃으며 부드럽게 그의 뒤통수를 살포시 어루만졌다.

동시에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대비되게 고개를 움직였다.

일영은 비스듬하게 아래로 뻗었다.

노부나가는 비스듬하게 위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입이 가볍게 맞닿고, 일영과 노부나가는 서로의 온기를 확인한 채 짧다면 짧은 입맞춤을 끝냈다.

“나머지는…….”

“다녀와서 하자꾸나.”

일영은 어느샌가 능글맞은 웃음을 되찾았고, 노부나가는 오직 그에게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그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고 말하니.

“갑옷을 입는 걸 도와주겠느냐.”

그녀의 말에 일영은 손을 들었다.

그러곤, 꽤 다정한 손으로 그녀의 하얗디 하얀 뺨을 가볍게 스치며 화답했으니.

“기꺼이.”

둘은 웃었다.

*

철그럭.

“음?”

천수각 바로 아래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사무라이는 갑작스럽게 위에서 들려오는 갑주의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뜬금없지 않은가?

갑작스럽게 갑주의 소리라니라는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시선을 돌리곤 다급히 고개를 숙였으니.

“다, 당주님!”

그건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나가의 갑주가 걷는 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갑옷의 덜그럭 거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주님?”

“이 무슨…….”

그녀가 어떤 전조도 없이 갑주를 입은 채 일영과 천수각에서 내려오자 경비를 서던 이들은 물론 천수각 아래에서 근무하던 이들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물론,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불과 채 몇 시간 전에 전령이 미친 듯이 내달려서 말하지 않았던가.

마루네 성과 와시즈 성이 위험합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신들은 오다 노부나가가 애용하는 칼들, 그러니까 히라테 히카게(일영)이나 모리 요시나리, 그조차 아니면 사쿠마 등을 보내리라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가문의 내전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대 영주와의 싸움이 아닌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투를 넘어선 그 무언가에 그녀가 술에 취해 백기를 드리라는 예측을 하는 가신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오다 노부나가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찢어발기며 부군으로 받아들인 히라테 히카게와 천수각에서 내려온 것이다.

“도련님, 이게 무슨…….”

“말을 가져와.”

당연히 이츠키를 비롯한 아케치 미쓰히데 등의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 역시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숱한 일영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히이잉!

푸르르!

일영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사무라이들은 이유를 듣기도 전 마굿간으로 달려가 둘이 탈 군마를 데려왔고, 그 둘은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말 위로 올라타 고삐를 쥐었다.

일영과 노부나가의 시선이 말 위에서 맞닿는다. 동시에, 그는 곁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그의 물음에 생각 정리를 끝마친 것인지 그녀는 한 방향을 바라보았고, 곧 말의 고삐를 쥔 채로 일갈하니.

“아츠타 신궁으로 간다아!!”

히이잉!

“다, 당주님!”

“이게 무슨!”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앞으로 내달렸고, 그 과정에서 가신들은 벙찐 채로 그녀가 기요스 밖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핫.”

그때였다.

벙 찐 이들만 가득한 공터에 아직 출발하지 않고 서 있던 일영은 그저 피식 웃었고, 이내 마찬가지로 자신을 올려보고 있던 이츠키를 향해 말했다.

“갑옷 챙겨서 아츠타 신궁으로 와. 가문의 군사들도 데리고.”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먼저 간다. 이츠키.”

히이잉!

일영은 이츠키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고삐를 당겼고, 곧 그가 박차를 가하자 말은 정확히 오다 노부나가가 내달린 방향을 뒤따라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이 망할 도련님아아아!”

내달리는 과정 속 모래 먼지가 일렁거리고, 실로 무도하고 건방진 이츠키의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으나 일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번 전쟁에서 기강 좀 잡아야겠네.”

이츠키는 알까?

조금 전 발언으로 이번 오케하자마 기습의 선봉에 서게 된 것을 말이다.

아마 모를 거다.

그래, 모르고 말고.

일영은 이츠키의 불쌍한 미래에 짧게 묵념하곤 앞서 달려나가는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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