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26화 (126/171)

〈 126화 〉 인간 세상 오십 년(2)

* * *

히이잉!

일영이 미카와에서 돌아오고, 첫 비보인 데라베 성의 함락 소식이 울린 지도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전황은 더욱 급박해졌고,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마츠다이라 군을 앞세워 완전히 오와리의 국경을 넘어 여러 성들을 목표로 빠르게 진군하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히랴!”

내달리는 말발굽의 소리로 미루어 속도는 절대 느리지 않았으나 전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혀를 내민 말이 허공에 침을 흩뿌렸고, 내달리는 궤적을 뒤따라 흙먼지가 일렁거린다.

“전령이다! 문을 열어!”

“비켜! 비키라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작금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전령의 깃발을 막을 간 큰 병사는 없었기에 빠르게 문이 열렸고, 곧 전령은 기요스 내성으로 향해 내달렸다.

“당주님!”

때마침 간략한 회의를 끝내고 걸어나온 노부나가를 발견하자마자 말에서 내릴 새도 없이 외쳤으니.

“와시즈, 마루네 두 성이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당장 원군을!”

그리고 그 순간, 노부나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

전령이 들고온 급박한 전장의 상황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히라테 가(家)의 가신인 일영에게도 닿았기에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내성으로 향했다.

“도련, 아니 부군님을 뵙습니다.”

“아이고, 부군.”

그를 발견한 민초들이 속속들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으나 정작 일영은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무표정,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인상을 쓴 것에 가까운 얼굴로 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속으로 이제까지 함락된 성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데라베, 히로세, 고로모, 이호…….’

전투가 원 역사보다 이르게 시작했고, 또 성의 함락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한 가지.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어느새 기요스 내성 앞까지 다다랐음을 깨닫고 경계를 서던 사무라이에게 다가섰고, 곧 그를 발견한 사무라이는 황급히 자세를 고치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앗……!”

하지만 지금 일영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 배려해 줄 시간이 없었기에 묻는다.

“지나가지. 당주님은?”

“천, 천수각에 계십니다!”

“그래.”

이미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히라테 마사히데의 양자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부군이며, 모리 요시나리의 실질적인 애인인 그를 막을 이가 오와리에 있을 수가 있겠는가.

때문에,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내성 안으로 들어선 일영은 뒤따른는 아케치 미쓰히데와 이츠키와 함께 천수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

‘피바람이 불겠어.’

물론, 둘을 비롯한 호위무사들로선 죽을 맛이었으니.

‘전쟁? 당연히 무섭지. 하지만 제일 무서운 건…….’

이츠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몇 번이나 보았던 표정을 지은 채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일영의 뒷모습을 묵묵히 좇았다.

그들 호위무사, 특히 이츠키로선 일영을 하루 이틀 보는 것이 아니다 보니 대강 눈치를 챌 수 있는 것이다.

일영이 무표정을 하면 무언가 큰일이 머지않으리라는 걸 말이다.

‘비약이 아니야.’

어찌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말을 가능이라도 한 것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전부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츠키를 비롯한 나머지 호위무사들은 비가 오던 날 보았지 않은가.

……조선인 백일영도.

히라테 가(家)의 양자 히라테 히카게도.

그렇다고 평소 보여주던 능글맞은 여우의 모습도 아닌.

피에 굶주린 야차의 모습을 말이다.

*

한편, 그 시각.

앞서 걷고 있던 일영은 그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몇몇 가신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헌데, 그런……. 크흠.

자리를 옮깁시다.

좋은 생각이구려.

일부 사무라이나 젊은 문관들은 그에게 짧게 묵례를 하거나 군례를 올렸지만, 늙은특히 가문 내에서 영향력을 꽤 많이 잃은 노신들은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그를 발견하면 곧바로 시선을 피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비록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듣지는 못했으나 뻔할 뻔자가 아닌가.

‘노부나가를 폄하하고 있겠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지난 며칠 간의 회의가 계속 진행되긴 했으나 당연하게도 또렷한 수 따위 나올 리가 없었고, 그렇게 조금씩 지지부진해지며 벌써 전황은 불리해진 지 오래다.

그 때문에 첫날 회의가 벌어진 당일 납작 엎드렸던 놈들일지라도 슬슬 고개를 치켜세우며 저들끼리 개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아마 생각하고 있을 거다.

혹은 비웃거나 말이다.

‘이제라도 노부유키 아가씨를 옹립하는 것이 작금의 오와리를 살리는 길’이라거나.

‘운이 좋게 오와리를 삼켰어도 결국 운이 다 한 무능한 계집은 어쩔 도리가 없다’거나.

혹은.

‘오다 노부히데님께서 오와리에 큰 짐을 남기고 가셨구려’라며 혀를 차거나 말이다.

입밖으로 내뱉지 않는다고 어찌 그 추악하고도 옹졸한 속내를 가늠하지 못할까.

그러나 일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과 패배주의에 찌들어 항복이나 외치는 노신들의 뒷담화 따위가 아니었으니.

‘어쩌면.’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주 작은 마음의 소리였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사람이니까.’

미래를 안다.

아니, 앞으로의 역사를 알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가 오케하자마를 이기고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이마가와 가문을 추락하며, 이후 마츠다이라 가문은 오다 가문과 동맹을 맺어…….’

한국사, 세계사와 더불어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꽤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리로는 대강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 누구를 제거하고 누구를 포섭해야 할지 가늠이 왔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정말로 그게 다 맞을까?’

때때로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두려울 때도 있는 법이라는 걸 일영은 알았다.

아니, 알게 되었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

처음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조선 출신 낭인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설정은 그렇다고 쳐도 하필 눈을 뜨고 처음 본 광경이 노부나가가 아버지의 장례식에 향을 던지는 모습이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가.

마치, 이 세계가 그녀의 가신으로 들어가라고 떠미는 것만 같았다.

「오다 노부나가」

원 역사에서의 그녀가 일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일영은 홀린 듯이 그녀의 가신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고, 많은 것을 바꿨다.

본디 그녀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충언을 내뱉고 할복함으로써 충성을 다한 히라테 마사히데를 살렸다.

그뿐인가?

그의 양자가 되었고, 훗날 그녀가 혼노지에서 죽은 후 열도를 삼킬 히데요시를 직접 벰으로써 야차가 되었다.

노부유키의 세력을 꺾었다.

미노의 혼란을 틈타 일부 세력권을 탐했고, 미카와로 넘어가 다가올 전투에 약간의 보험을 더했다.

‘내가 한 건 모두 미래, 쓰여진 역사에 기반한 것들.’

미래를 알기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식의 출처가 쓰여진 역사의 기반이자 그 자신이 기억하는 ‘원래 세계’의 그것이기에 그는 날이 가면 갈수록 차오르는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했다.

미래가 변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변했을지도 모른다.

「오케하자마 전투」

「??のい」

후대의 역사가들조차도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또는 ‘진짜 운이 존나 좋았다’라는 소리를 듣는 전투다.

그렇기에 그조차 이번 전투는 아무리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안들어가십니까?”

“응?”

그때였다.

일영은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이츠키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앞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그는 한참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옮겼던 탓에 진즉 천수각 앞에 다다라 있었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라.”

……생각이 너무 깊었나.

빌어먹을.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일그러진 채 굳은 미간을 살짝 어루만졌고, 곧 문을 열어 천수각의 계단을 올랐다.

“상층에 계십니다.”

“기다리고 계시겠다고.”

중간중간 그를 발견한 시종들이 일영에게 말했고, 그는 마침내 계단의 끝인 제일 상층에 다다랐다.

“열어.”

“예. 부군.”

상층은 언제나 비워져 있기에 사무라이들은 단지 첫 번째 문을 열어줄 뿐이었기에 일영은 그들을 지나 복도를 걸었고, 곧 노부나가가 주로 머무르는 방의 앞에 다다른 그는 큼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당주님.”

“들어 오너라.”

거부하리란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일영은 문고리를 잡아 옆으로 밀었다.

그러곤, 숙였던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촤락!

노부나가의 흰 손에 쥐어진 부채가 바람소리와 함께 펼쳐지고, 곧 그녀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영을 힐끔 흘기곤 이내 붉은 입술을 달싹거렸으니.

“…인간 세상 오십 년.”

그건 언젠가, 일영이 들었던 시구와 같은 것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