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전란의 서막(3)
* * *
반문하는 그녀에게 말한다.
살짝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이다.
“누가 오와리를 치지 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요?”
일영이 태연스럽게 던진 그 말에 모토야스는 물론, 핫토리 한조를 비롯한 아케치 미쓰히데와 다른 사무라이들 역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가 너무도 태연하게 던진 그 말을 속뜻을 해석하자면……. 그래, 쉽게 말해서 오와리를 침략하는 데에 힘을 보태라는 말이지 않은가.
‘설마, 말실수겠지.’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조금 전 내뱉은 말이 진심일 리가 없지 않은가.
……실수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적진에 와서 적의 부하에게 우리 진영을 열심히 공격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겠는가?
이건 상식의 문제였다.
상식의 문제란 말이다.
“아, 혹시 제 말이 어려웠습니까? 그럼 다시 말씀드리죠. 이왕이면 열심히 공격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눈에 들면 더욱 좋고요.”
그래, 일영이 다시금 내뱉은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토야스도 바보가 아니다.
같은 소리를 듣고 또 오해일 가능성을 점치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게 대체 무슨.”
때문에, 그녀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그녀뿐이 아니다.
구태여 입으로 내뱉지만 않았을 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입니까.’
하지만 정작 일영은 여전히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내부에서 반역하는 걸 부탁드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초반의 승기는 무조건 이마가와 측이 잡아야 하니까요.”
“뭐라고요?”
모토야스는 눈살을 찡그렸다.
‘이 전쟁에서 초반의 승기는 무조건 이마가와 가문이 잡아야 한다……?’
다만, 그건 불쾌함이나 짜증과 같은 감정과는 달리 의문과 함께 이어진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뿐이었다.
‘무슨 의미지?’
머리를 굴리며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저의를 깨닫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마가와가 오다 가문을 친다.’
그것만 두고 본다면 오다 가문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는 단 두 가지.
맞서 싸우거나.
혹은, 항복하거나.
‘오다 노부나가. 언니라면 전자를 택하겠지.’
본질적으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오히려 이건 너무 당연한 결과다.
즉, 일영의 저의를 알아내는 것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도무지 일영이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배신?’
그렇기에 찰나지만 고민했다.
그토록 소문이 자자한 오다 가문의 실력자가 혹 가문을 배신하고 이마가와 측에 붙으려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말이다.
‘그럴 리가.’
하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오다 노부나가와 혼인을 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와 배신한다면 사무라이로서의 명예는 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난세라고 한들, 명예는 중요하다.
‘조선 출신이라고 한들, 모를 리가 없지.’
심지어 조선이라고 한들 무사에게 어찌 명예가 중요하지 않을까.
때문에 모토야스는 그 선택지 자체를 지워버리곤 결론을 내렸다.
아니, 차라리 인정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구태여 그 정도 되는 거물이 직접, 그것도 소수의 호위만 대동한 채 미카와의 국경을 넘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말이 되었던 것이다.
아니, 이쪽이 진실이라 확신한다.
그때였다.
솨아아.
때마침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폐 사찰을 감싸듯이 서 있는 나무들의 나뭇잎들을 흔들고, 바람에 흩어진 구름 너머로 잔잔한 빛을 내리비추는 달빛이 일영의 얼굴에 닿는다.
모토야스는 일영을 묵묵히 응시했다.
열도에선 흔히 보기 힘든 거구였으나 무식하게 보이지 않았고, 낭인의 허름한 옷을 입었음에도 묘한 귀티가 풍긴다.
침묵하는 그녀의 갈색과 금색이 뒤섞인 눈동자에 그의 신영이 맺힌다.
“…….”
그리고 동시에 일영 역시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
키는 160cm 정도 될까.
얼굴은 예쁜 쪽보단 귀여운 쪽에 속했고, 갈색과 금색이 묘하게 뒤섞인 듯한 머리와 눈의 색깔은 꽤 익숙함과 동시에 묘하게도 낯선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언뜻 보기엔 남녀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시선의 교환이라거나, 정분이 난다며 놀릴 만한 광경이었지만 정작 둘은 서로의 계산과 생각을 끝없이 곱씹고 재검토하며 각기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핫토리 한조와 아케치 미쓰히데가 거의 동시에 지쳐 무심결 검에서 손을 내려놓은 그때.
“들어보겠어요. 괜찮나요?”
“기꺼이.”
마츠다이라 가(家)의 어린 당주는 그렇게 말하며 핫토리 한조가 뭐라 말하기도 전, 앞으로 걸어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직후, 일영 역시 몸을 돌려 폐 사찰로 향하며 미소를 띤 채로 말하니.
“잘 선택하셨습니다. 모토야스.”
그는 사찰 안쪽으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당연히 핫토리 한조와 아케치 미쓰히데가 뒤따르려 했으나, 일영은 둘을 뒤로 물린 채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자 제안했다.
“그러죠.”
모토야스는 그것을 수락했고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그럼.”
안에서 나온 그들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간략한 인사만을 나누고 제각기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일영은 어떤 꼬리도 밟히지 않은 채, 상인들과 합류하여 성공적으로 국경을 다시 넘어 오와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아케치 미쓰히데와 사무라이들은 일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많은 의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케치 미쓰히데는 물었다.
“어, 음. 사찰 안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신 겁니까?”
그들도 일영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또 어떤 계책을 가지고 모토야스에게 접근했는지 알지 못한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그 너구리 같은 아가씨가 아무런 말 없이 돌아간 거지?’
한편, 그녀의 물음에 일영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답하니.
“음, 글쎄.”
그건 아직은 알려줄 수 없다라는 간결한 의사표현일 따름이었다.
*
히이이잉!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바뀌었다.
오다 가문의 내전은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또 적은 피해로 끝이 났고, 그 과정에서 원 역사대로 간다면 흘러서는 안 되는 핏물이 오와리의 땅을 적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일영은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히이잉!
달리는 군마 위에 올라 기요스로 복귀하던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논밭 사이를 빠르게 내달렸다.
“사무라이님들이다!”
“와아아아!”
때때로 어미나 아비를 따라 나온 철부지들이 복귀하는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등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으나, 아이들에겐 미안하게도 그들은 현재 시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도착하기 위해 내달리는 이 시간에도 오와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에 내몰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
일영은 박차를 가했고, 말은 히잉! 따위의 투레질을 하며 가뜩이나 빠르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렇게 얼마나 내달렸을까?
“보입니다!”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의 뒤를 쫓아 달려오던 사무라이 중 한 명이 저 멀리 보이는 기요스 성의 성곽을 바라보며 외쳤다.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과연 그의 말대로 이젠 낯이 익어버린 기요스 성의 전경이 한눈에 담기는 것이었다.
“이랴!”
그 순간 서로를 응시한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의 시선이 맞닿았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말은 순식간에 기요스 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사무라이들이 놀라 제지하려 했으나, 이내 일영의 얼굴을 알아본 상급자들이 시의적절하게 문을 열라 명령했기에 일영은 히라테 가의 가옥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다다를 수 있었다.
“소가주를 뵙습니다!”
“소가주님!”
히이잉!
한참을 내달린 탓인지 지친 말이 내뱉는 투레질을 들으며 일영은 곧바로 말에서 뛰듯이 내렸고, 그는 말의 고삐를 히라테 가 앞까지 뛰어나온 시종에게 넘기고는 머리에 쓴 진가사를 벗으며 말했다.
“의복을 준비해라. 당주님을 뵈어야겠다.”
허름한 낭인의 차림을 하고 있음에도, 단순히 검은 죽립인 진가사를 벗었을 뿐이거늘 그의 외양은 잘 꾸민 귀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연히 히라테 가 옆을 지나던 이들은 그 유명한 히라테 히카게의 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그의 뒷모습을 보며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