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전란의 서막(2)
* * *
“당연히 거짓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순간, 아케치 미쓰히데는 물론 폐 사찰의 곳곳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 있던 사무라이들은 무심결 멍하니 일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저리도 뻔뻔하단 말인가.
‘그, 그런데 저쪽 반응은 또 뭐야?’
하지만 이상한 건 비단 일영 뿐만이 아니라 그 상대인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역시 매한가지였다.
“흥미롭네요. 더 해보세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그 어떤 비꼼이나 분노도 보이지 않았기에, 되려 핫토리 한조와 아케치 미쓰히데만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물론, 정작 그들의 주군들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었으니.
“역시, 너구리답군요.”
“너구리요?”
“아닙니다. 실언을.”
일영은 반문하는 그녀에게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고, 그의 말에 묘한 웃음을 지은 모토야스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여하튼, 슬슬 본론을 꺼내주시겠어요? 피차 시간이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히라테 공(?)정도 되시는 분이 제 조부님까지 꺼내어 부를 정도면 여간 심각한 일은 아닐 텐데요. 설마 이런 농담이나 하자고 부르신 건 아니라고 믿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척 보기에도 낭인의 차림을 한 일영의 모습을 한번 가볍게 훑으며 덧붙였다.
“보아하니, 들키면 꽤 곤란한 차림이신데 말이에요?”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들의 몰골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위험을 지고 나왔기에 알맹이가 없는 일이라면 쉽게 넘어가진 않겠다는 그런 경고 말이다.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물론이고 폐 사찰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사무라이들 역시 조금 전 괴리감에서 깨어나 다시금 긴장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이 미카와로 넘어온 것을 이마가와 측에서 알아챈다면 그것만큼 낭패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일영이라고 어찌 그걸 모를까.
때문에, 그는 여전히 태연한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말에 화답했다.
“그렇긴 합니다. 그러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야겠죠.”
상대가 자신에게 본론을 원한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본론을 꺼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긴장을 놓지 않고 단검을 역수로 쥔 채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핫토리 한조와 어느 정도 앳된티가 살짝 보이는 모토야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이 이마가와 가문을 증오하는 걸 압니다. 아니, 단순히 증오만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표현하기엔 마츠다이라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마츠다이라 가문이 다스리던 미카와 국은 과거 꽤 번창했었으나 그녀의 할아버지인 마츠다이라 기요야스가 모리야마의 변으로 사망한 후 세력이 쇠퇴했다.
때문에, 이후 스루가 국의 이마가와에게 원조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가문을 빼앗긴 것이다.
“허.”
그러나 정작 모토야스는 일영의 말이 꽤나 우습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트리곤 말했다.
“오다 가문도 자유롭진 않을 텐데요.”
그녀의 말은 단순한 트집 잡기나 명분을 쌓기 위한 반석이 아니라 진실이 담긴 질타였다. 그녀의 말대로 한창 가문이 쇠퇴하던 시기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가 미카와를 노린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노리다 뿐인가.
“제가 5살 때 숙부는 오다 가문과 내통하여 아버지를 몰아내려 모반을 일으켰고, 그 이후 오다 노부히데는 미카와를 틈만 나면 침략했죠. 그뿐인가?”
모토야스는 어느새 얼굴에 띠고 있던 웃음기를 지운 채 일영을 노려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오다 노부히데는 절 죽이겠다고 아버지께 항복을 종용했어요. 하지만…….”
“마츠다이라 히로타다, 모토야스님의 아버지는 그것을 거절하고 차라리 죽이라고 말했죠.”
일영은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을 그저 묵묵히 받아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유명한 일화야.’
다른 건 몰라도, 전국 시대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다.
‘히로타다가 모토야스를 이마가와 측에 인질로 보내려고 했으나, 중간에 납치하여 죽이겠다고 협박했던 사건.’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마츠다이라 히로타다는 그것을 단칼에 거절하며 차라리 아들을 죽이라고 했고, 그걸 전해 들은 이마가와 가문은 그에게 더욱 큰 지원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다.
즉, 아들……. 이곳을 기준으로 한다면 딸을 동맹과 신뢰를 굳히기 위해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소리다.
‘그 과정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친해졌지.’
물론 실제 관계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가 알기론 그러했다. 당연히 그때의 친분은 후에 맺게 되는 동맹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말이다.
“여하튼, 이마가와 가문을 증오하리라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오히려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할 뿐인걸요?”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토야스는 미간을 살짝 좁힌 얼굴을 뒤늦게 원래의 평온한 표정으로 되돌리며 덧붙였다.
“이게 그 본론인가요? 그렇다면…….”
그렇게 되묻는 그녀의 목소리엔 묘한 가시가 느껴진다는 걸 그녀는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원래 감정이라는 것은 잘 억눌렀다고 생각해도 남들이 보기엔 미처 감추지 못한 편린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겠지.’
그는 무심결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이슬이 맺힌 듯 축축한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폈고, 곧 자리를 떠나려는 듯이 대화를 끝내려는 그녀에게 말했다.
“조만간 이마가와에서 오다 가문을 칠 겁니다.”
“……전 이만,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말에 모토야스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영이 내뱉은 말은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동요를 감춘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침묵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으니.
“……시기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하네요.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말이죠?”
그녀는 옅게 미소를 띠었다.
그리곤 이내 일영의 저의를 모두 파악했다는 듯한 얼굴로 낮게 읊조리듯 숨을 내쉬었다.
“흐음.”
그녀의 머리에선 이미 계산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하필 이 시기, 오다 가문의 거물인 일영이 직접 낭인으로 변복하고 자신을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
대화를 하며 끊임없이 추측했다.
수많은 이유를 대입했고, 지금에야 그녀는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마, 언니에게 뭔가 말을 들은 거겠지.’
그녀가 언니라고 지칭할 대상은 한 명뿐.
바로 오다 노부나가였다.
‘자세하게 돌아간 상황은 몰라도, 오다 가문에선 이마가와 측의 침공 전조를 눈치챘고 대책을 세웠겠지만…….’
하지만 대책다운 대책이 나올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좀 비옥한 영토인 오와리 하나를 통합하는 데에도 힘든 오다 가문과 달리 이마가와 가문은 스루가, 도토미, 미카와는 물론 오와리의 일부까지 손에 넣은 대가문이니까 말이다.
‘체급에서 상대가 안 돼.’
그때, 히라테 히카게인지 다른 사람인지 모를 어떤 가신의 머리에서 한 가지 비책이 나온다.
그건 바로 미카와 국의 영주이자 아직 나이가 어려 쉽사리 충동질할 수 있는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회유,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히라테 히카게 급 정도 되는 거물이 직접 변복한 채 이곳으로 향한 이유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된다.
‘경험도 없이, 평생을 인질로 살아온 만큼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워주는 동시에 확신을 주려는 거였겠지.’
정말로 그녀가 아니라, 어중이떠중이로 자란 다른 사람이었다면 꽤 해봄직한 수작질이었다.
본디 평생을 인질로 살아왔다면 항상 위축되고 인정에 목마르리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놈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나는 아니야.’
그녀는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작질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숙하지도, 우둔하지도, 그렇다고 멍청하지도 않다는 점이었다.
“내부에서 호응하라는 말이라면 거절할 수밖에 없겠어요. 보시다시피 인질이나 다름이 없는 몸인지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요.”
완곡하지도 않은 거절을 내놓는다.
아마, 이 대답을 들은 일영은 당혹감에 휩싸이며 돌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그때, 그녀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녀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일영의 얼굴이었다.
당혹감, 내지는 무시당했다는 분노에 일그러지리라 생각했던 일영은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뭔가 착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어라 한 마디를 더 얹으려던 그 순간에 일영은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으니.
“누가 오와리를 치지 말라고 했습니까?”
“……뭐라고요?”
그 말을 들은 모토야스는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