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한밤의 꿈(1부 완完/휴재 안내)
* * *
때때로 꿈을 꾼다는 건 많은 의미를 가지곤 한다.
장자의 호접춘몽(???夢)과 같이 깨달음을 줄 수도, 흔하디흔한 예언가들의 말처럼 미래나 과거에 대한 계시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와닿진 않을 터였다.
그건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에게도 마찬가지였으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눈앞의 광경을 제3 자의 시선으로 응시하며 묘한 감흥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니.
“쇼군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낯선,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가진 수많은 이들의 조아림 속에서 한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제일 상석에 자리하여 쇼군(?)이라 불리는 저 남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말이다.
그것이 꿈이란 매개를 통해 그녀에게 닿은 영적인 흐름인지, 아니면 그저 흘러가듯 나뭇잎처럼 덧없는 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남자라니.’
아무리 꿈이라지만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왜인지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것도 같아 실소를 흘리면서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으음.”
쇼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와 달리 남자로 살아온 또 다른 자신의 시선이 드넓은 전각 너머를 향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모토야스가 시선을 돌린 직후.
드르륵!
닫혀있던 수십 개의 문이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차례대로 열린다.
‘저건……!’
그리고 그곳에서 드러난 정경을 응시하며 모토야스는 드물게 동요하며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곳엔 다름이 아닌 그녀의 손아귀에 쥐어질 열도의 전경이 가득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이건……?’
그녀의 육신이 뒤흔들린다.
아니, 세상이 뒤흔들리는 것인가.
어지럽게 뒤바뀐 세상은 그녀를 휘황찬란한 전각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인도했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낯선 평원의 중심이었다.
펄럭.
온갖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휘날린다.
그러나, 그곳엔 그녀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온갖 가몬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어디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찾았다.
그리고 곧, 그녀는 동군(??)이라는 깃발 아래에 태산처럼 당당히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도 그녀는 남자였다.
하지만, 일전에 보았던 때보다 조금은 더 젊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과거로.’
머리가 영특한 그녀였기에 단번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이것이 정말 그녀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지몽인지, 혹은 그저 삿된 망상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전투가 임박했다는 점이었다.
둥, 두둥, 두두둥!
각 세력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북이 평원을 울리고, 곧 휘날린 바람에 온갖 문양이 뒤섞인 깃발들은 하나의 파도가 되어 물결친다.
“가라!”
“와아아아아아아!”
누군가 모를 이의 외침.
그것을 기점으로 전장을 내달린 그들은 이윽고 거칠게 뒤섞인다.
“끄아아악!”
“커헉!”
“죽어어어!”
말을 탄 사무라이의 손에 쥐어진 창대의 끝자락에 복부가 관통된 아시가루의 육신이 대롱대롱 매달린다.
“흐으읍!”
한야를 본딴 멘구를 쓴 사무라이의 일격에 핏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이들의 피 내음이 코를 스치고, 때때로 포물선을 그리며 쏘아진 화살은 단번에 목과 눈을 꿰뚫고 그들의 삶을 취했다.
“커헉!”
한 사람의 삶이 진창으로 내리꽂힌다.
평원은 단 몇 시간 만에 피로 물들었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지옥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모토야스는 그저 멍한 눈으로 전장을 훑었다.
‘……이것이.’
상상 이상의 잔혹함에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전쟁에 담긴 의미를 본능적으로 깨달았기에 전율하는 것뿐인 것이다.
그녀는 남자가 된 자신이 선 동군(??)이라는 깃발과 대비되는, 반대쪽의 깃발인 서군(??)을 응시했다.
“…….”
흔히 기치를 세운다고 표현하는, 세력의 수뇌들이 전장의 모습을 응시하는 그곳의 분위기는 절대 밝지 못했다.
그들 역시 깨달은 것이다.
이 전투는 서군(??)의 패배로 끝나리라는 것을 말이다.
‘진 거구나.’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확인한 순간.
다시금 시간은 뒤로 돌려지니.
쾅!
“애초에 조선을 치는 것은 망상이었단 말이오!”
“감히 관백의 말씀을……!”
“비단 조선뿐이겠소! 루손(스페인령 필리핀)은 물론 태국과 고산국(대만), 류큐(오키나와)에서도……!”
조선을 침공한 것이 잘못이었다느니, 관백이 노망이 든 걸 막지 못했냐 느니 하는 온갖 말들이 뒤섞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깜박인 후.
화르륵!
쿠구구구궁!
찰나의 순간 감았다가 뜬 시야는 검고, 또한 붉게 물든다.
‘여기는…….’
이번에도 역시 낯선 공간이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달마저 자취를 감춘 어두운 하늘 아래에 절이 불타고 있었으니.
적은 혼노지에 있다!
(?は ???に あり!)
영문을 모를 그 외침과 함께 때마침 절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것은 궤적을 남기며 모토야스의 눈에 그대로 박혔다.
「혼노지」
들어본 적이 있는 절이다.
하지만, 어찌하여 그곳이 불타고 있는가.
그녀는 그런 의문을 감추지 못한 채 주변을 살폈고, 곧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간 그녀는 머지않아 한 사내의 앞에 서게 되었다.
“큭, 크크크.”
변변찮은 갑주조차 입지 못한 채, 흔히 잠옷으로 쓰이는 흰색 옷을 걸치고 검을 쥔 사내는 광기가 내비치는 웃음을 흘리며 손에 쥔 검을 그었다.
“커헉!”
그러자 곧 그에게 붙잡혀 벌벌 떨고 있던 사내의 목이 갈라지며 피가 터져 나오고, 검을 쥔 사내는 산발이 된 머리와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옷을 펄럭이며 광소를 터트리니.
“크하하하하하하하!”
그 모습은 가히 마왕(?王)이라 불릴만한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운 광경이었다.
화르르르륵!
절에 붙은 불은 더욱 빠르고 강렬하게 타들어 가니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선 그는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내가 바로 제육천마왕(????王) 오다 노부나가다! 크하하하하하하!”
그리고 그는 손에 쥔 창을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여전한 광소를 터트리며 불로 가득한 절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아, 아아아.”
“크으윽…….”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볼 뿐,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수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두려움을 느낀 피식자가 이러할까.
그리고 모토야스 역시, 스스로 오다 노부나가라고 밝힌 사내의 뒤를 홀린 듯이 뒤좇았다.
뜨거운 불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불에 가득 타 금방이라도 무너지기 직전인 절 내부에서 무표정으로 단도를 쥔 오다 노부나가를 응시했다.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군.”
조금 전까지 광소를 터트리던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를 너무나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저 멍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고, 그는 옅은 미소를 흘린 채 천천히 복부에 검을 밀어 넣었다.
푸욱.
그리고 그 순간.
“허어어억!”
“무슨 일이십니까!”
정갈한 자세로 누워 잠을 청하던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그녀는 식은땀에 절은 앞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당연하게도 경계를 서던 한조는 혹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 걱정하며 다급히 방 내부로 달려 들어왔다.
“…….”
원래였다면 모토야스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한조를 돌려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멍한 눈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뭘까.’
시간이 역순으로 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생생한 꿈은 결국 그녀가 이 열도를 손아귀에 담으리라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이 꿈을 비단 그런 말 하나로 요약할 수 있을까.
……절대로 아니었다.
짧고 강렬한, 그러나 온갖 현실이 뒤섞인 그 꿈 안에 담긴 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열도를 통일하는 그녀.
낯선 평원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갈라져 싸우는, 족히 수십만은 되어 보이는 다이묘들의 격돌.
이름 모를 관백의 조선 침공과 그것으로 인한 분열의 야기.
마지막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까지.
역순으로 보여진 그것들을 되짚자면, 하나의 긴 선이 그어진다. 그녀는 그것들을 묵묵히 복기했고 머지않아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으니.
‘오다 노부나가, 그 여자가 천하인(?下人)에 가까워진 후 배신을 당하여 권좌를 빼앗기고, 그 자리를 이은 이가 관백의 이름으로 조선을 침공한다. 하지만 무리한 망상이란 비판을 들을 정도로 결과는 형편이 없었고, 결국 2개의 세력으로 나눠져 내가 이 열도를 가진다…….’
단순한 망상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세세하고 마치 짜여진 듯한, 혹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도 되는 듯한 구성이 아닌가.
다만 의문인 것은 조선 침공이었다.
‘대체 왜?’
작금의 현실에서 구태여 조선을 침공할 일이 있는가? 라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쉽사리 어떤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그때.
“저는 괜찮으니까 일단 돌아가서…….”
“큿!”
그녀가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한조는 갑작스럽게 품 안에서 단도를 꺼내 뽑아 들었고,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창가로 던지니.
채앵!
단검이 던져진 그 순간 창문을 꿰뚫고 쏘아진 화살의 촉이 칼날과 맞닿아 다다미로 추락한다.
“감히……!”
당연히 한조가 그 뒤를 추적하려고 대지를 박차려던 그때였다.
“잠깐.”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모토야스는 손을 뻗어 화살의 끝자락에 묶인 종이를 손에 쥐었고, 곧 펼치니.
그대의 조부의 말을 전하러 왔다.
히라테 히카게.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그녀는 그런 중얼거림을 끝으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히라테 히카게.
조선에서 온 야차.
그가 자신을 만나려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