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찾아가지 못하면 나오게 해야지
* * *
일영이 도적들을 궤멸시킨 후, 아쉽게도 이후 도적들의 습격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정체를 가늠하진 못해도 그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깨달은 낭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도적들에게 소문이라도 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
어찌되었든 여정은 평화로웠다.
물론,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도적 두목을 데려가 목만 가져온 일영에겐 알게 모르게 두려움이 생긴 상인들과 낭인들이었으나, 그가 전투 중이 아닌 이상에야 평균보다 더 유한 사람이란 걸 깨달은 그들은 머지않아 경계를 풀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을까.
그들은 종종 마주친 미카와 국의 사무라이들에게 상인들이라는 걸 밝혀 무사히 목적지인 오카자키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정지!”
산을 타고 내려와 민가와 논을 지나 성문 앞에 다다른 그들을 발견한 아시가루가 외쳤고, 곧 행인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온 그들은 외지인에 대한 경계가 담긴 눈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뭐지?”
그들의 시선은 일영을 비롯한 낭인들이 허리에 매고 있는 검에 닿았다.
검을 들고 있다는 것.
난세에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농민이나 사람들보단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희는 상인입니다. 이코마 가(家)의 밑에서 일하고 있습죠.”
“아, 이코마라면…….”
그러나 그런 경계는 곧 무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던 노인의 말에 풀어졌다.
“흠.”
선두에 선 아시가루는 그들을 잠시 훑다가, 이윽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아. 들어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만…….”
“크흠.”
상인과 초병 사이에서 뇌물이란 신뢰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은전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거래가 이어지고 그들은 큰 무리 없이 오카자키성 성 내부로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바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상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평시에도 무력을 가깝게 하지 않으면 겁이 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비롯한 그들은 상인들이 좌판을 열 수 있는 구역까지 동행한 직후, 오와리에서 미카와까지 그들을 안내한 상인들과 작별을 고했다.
“3일 후 되돌아갈 예정이니, 그때까지만 오십쇼.”
“노력해보겠습니다.”
노인의 주름진 눈매가 웃음으로 모였다.
“부디 몸조심하시기를.”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이미 일영과 그를 따르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정체도 대충은 눈치를 챈 듯 덧붙였다.
그렇기에 일영 역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진심을 담아 그에게 목례한 후 자리를 떠났다.
물론 다 함께 향한 건 아니었으니.
‘이따가 뵙겠습니다.’
‘부디 무사하시길.’
그들은 미리 약속한 지점을 기억하며 제각기 성 내부로 흩어졌다.
다만, 일영을 홀로 둘 수 없다는 사무라이들의 공통된 의견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여전히 그의 곁에 붙여 있었다.
그렇게 단둘이 남게 되자, 아케치 미쓰히데는 볼을 긁적거리며 일영을 바라보곤 물었다.
“……이제 뭐 어떻게 하실, 아니. 할 거야?”
아무래도 그의 정체와 무력을 알기에 반말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으나, 그래도 이젠 중간에 말을 트는 데에는 익숙해진 그녀였다.
일영은 그런 아케치 미쓰히데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거리곤 화답했다.
“글쎄…….”
시계는 없기에 하늘을 본 일영은 지금 시간이 대략 점심 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때문에,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밥이나 먹을까라고 물으려던 그때였다.
꼬르륵.
낮지만 분명히 귓가를 스치는 소리에 일영은 반쯤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곧 아케치 미쓰히데의 홀쭉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어, 아으.”
당연히 아케치 미쓰히데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시선을 피했고, 그 모습에 일영은 무심결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으니.
“아케……. 아니. 모모마루.”
“……어?”
“밥 먹으러 가자.”
그 말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
식사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도적 두목마나부가 말했던 것처럼 미카와 국 전체가 이마가와 측의 수탈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진실이었는지, 제대로 문을 연 식당은커녕 밥 한 끼 얻어먹을 곳도 뜸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일전에 상인에게 받았던 돈에 추가로 더 얹어서 부실한 나물과 밥공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는 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다.
“으음.”
“허.”
그러나 둘의 기분은 다른 의미로 더러웠다.
밥을 먹고 나온 거리의 뒷골목에는 아사를 한 듯한 시체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근이나 역병이 돌 때는 자주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문제는 지금이 특출난 기근이나 병이 도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즉, 이건 전적으로 이마가와의 수탈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때까지 왜인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이 행동했던 아케치 미쓰히데도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고, 일영은 말할 것도 없이 서늘한 시선으로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해는 빠르게 기운다.
그리고, 전기와 전구가 없는 전국시대의 밤은 달빛이 흐린 날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때문에, 둘은 아직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약속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나무와 돌이 뒤섞인 담을 따라 걷는다.
민가를 지났고, 때때로 수풀을 헤쳐 걸은 그들은 머지않아 성 외곽에 자리한 수로의 근처에서 모일 수 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입니다. 후.”
다행히 낙오자는 없었다.
되려, 그들은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를 걱정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가다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영은 사실상 오와리의 유일한 지도자가 된 오다 노부나가의 부군이 아닌가. 그가 잘못되는 순간 오다 노부나가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끼칠 거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죽는다고 너희들을 건들지는 않을 테니까.”
일영이라고 그들의 걱정을 어찌 모를까.
때문에, 그는 그저 실소를 흘리며 불안해하는 사무라이들을 다독인 후 곧바로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스륵.
그것의 정체는 다름이 아닌, 오카자키성의 대략적인 구조가 그려진 지형도였다.
‘타키가와의 코우카 류 닌자들의 수준이 대단하긴 한가.’
지도를 제공한 주체는 당연히 오다 가문을 그림자 속에서 따르는 타키가와 카즈마스 휘하 코우카 류 닌자들이었다.
물론, 작전을 말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만류로 전달받지 못 할 뻔하긴 했으나 그녀도 일영의 고집은 꺾지 못한 것이다.
‘돌아가면 많이 혼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전형적인 낮이밤져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잡생각도 잠시.
“큼.”
주변을 살펴 쥐새끼가 없는 걸 확인한 일영은 손에 쥔 지도를 바닥에 놓았고, 모두의 집중이 그것에 향하자 입을 열었다.
“일단 먼저, 우리의 목표는 모토야스를 만나는 것.”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면 일영을 제외한 사무라이들과 심지어 아케치 미쓰히데조차 이토록 은밀하게 미카와로 넘어온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로서도 일영이 말하는 이번 침투 목적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일영도 그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말을 이어 나갔다.
“목적은 그녀의 암살이나 납치가 아니고, 그저 대화다. 정확히는 거래를 제안하는 거지.”
진실이 그러했다.
이 시기에서 그녀는 아직 이마가와의 편에 서 있어야 했고, 그가 바라보는 것은 오케하자마라는 분기점 그 너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영의 말을 들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혹여 목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러면 생각하신 방도가 있으십니까?”
“당연히.”
계획 따위 없이 움직인 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보안이 생명인 만큼 그가 모토야스를 만났다는 사실이 남들에게 흘러가면 안 되었다.
때문에, 그가 생각한 방법은 간단했으니.
“우리가 들어가면 흔적이 남을 수 있으니까 그녀가 우리를 찾아오게 만들면 되는 거지.”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일영의 말은 너무나 쉬웠으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선 변수와 방법이 너무 모호했다.
때문에, 사무라이들은 불안감에 그를 바라보면서도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란 생각에 묵묵히 일영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씨익.
일영은 어둠 속에서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설마, 방법도 없이 여기까지 왔을까.”
그는 그렇게 읊조리곤 품에서 작은 붓과 종이를 꺼내 그것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질이 낮은 누런 종이에 검은 먹이 선이 이어진다.
유려한 필체로 쓰여진 그것은 단어에서 문장이 되었고, 곧 그 내용을 확인한 사무라이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이, 이게 진실입니까?”
그대의 조부의 말을 전하러 왔다.
히라테 히카게.
그것은 어찌보면 모토야스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는 한 마디였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이 말이 진실이냐고 묻는 사무라이의 말에 그저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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