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16화 (116/171)

〈 116화 〉 미카와로(5)

* * *

“자, 이제 돌아가시지요.”

“알겠습니다.”

마츠다이라 가신단과의 대화가 끝나고, 특별히 트집을 잡을 것을 발견하지 못한 성주 대리는 순순히 모두를 돌려보냈다.

그렇게 밤이 되자 성주 대리는 최상급은 아니지만 상급에 속하는 방을 모토야스에게 건넴으로써 뒤늦은 예우를 갖췄다.

꽤 많은 이유가 있었을 터지만, 그녀가 이마가와의 총애를 받는 이상 말로는 비꼴 수 있더라도 대놓고 홀대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도 있었다.

“뭐, 내겐 다행인 일이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그렇게 말하며 노곤한 몸을 이끌어 다다미에 앉아 이불을 다리에 덮었다.

그러자, 그녀의 처소에 유일하게 뒤따를 수 있는 한조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명하신다면 당장에라도 그 오만한 놈을.”

“한조는 늘 그게 문제야.”

“예?”

모토야스의 말을 듣는 그녀의 눈에는 의문이 흘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주 대리의 방자함은 충분히 암살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정작 모욕받은 대상인 모토야스는 구태여 그럴 이유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으니.

“당장 죽인다고 뭐가 변할까. 작금의 미카와는 통일된 오다 가문과 이마가와 가문 사이에서 단 한 달도 버틸 수 없어.”

실로 절망적인 예측이었으나 진실은 언제나 잔인한 법이었다.

그런 그녀의 자조적인 읊조림에 한조는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아직 모토야스의 성토는 끝이 나지 않았으니.

“어쩌겠어. 모든 기반은 일전에 이마가와에게 빼앗겼고 남아있는 가신단의 표정을 보아하니 절반 이상은 이마가와에게 종군할 생각은 듯싶은걸.”

물론, 약간의 열망이 보이던 가신도 몇 명은 있었지만 구태여 덧붙이진 않았다.

희망이란 잔인해서 조금이라도 맛을 본다면 그 과육을 통째로 탐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인걸.’

어찌하여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녀의 전반생은 늘 희망을 대가로 달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였거늘.

“이 이야기는 되었으니까,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때문에, 그녀는 화제를 돌려 한조에게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조는 내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결혼 말씀이 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한조는 침음성을 흘렸다.

일전에 성주 대리가 방자하게도 읊조렸듯이 그녀는 법요식이 끝난 후 이마가와의 중신 중 한 명인 세키구치 지카나가의 아들과 결혼할 운명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도.

핫토리 한조라 불리는 여닌자도.

둘 모두 그것이 이마가와 가(家)에 모토야스를 묶어두고자 하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수작질임을 알았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겠지.”

누가 뭐라고 하든 마츠다이라 모토야스의 목줄을 쥔 것은 이마가와 요시모토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결혼은 사실상 강제적으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주군.”

그러나 한없이 표정이 어두워지는 핫토리 한조와 달리 모토야스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곤 말할 뿐이다.

“무얼.”

기분이 좋냐고 말하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녀는 침울해질 생각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나를 키우고 싶어해.”

이유는 여러 가지겠으나, 당장 그녀가 추측할 수 있는 주요한 것들을 좁히면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는 그녀가 미카와 국의 적법한 후계자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로는…….

“참모진의 부재.”

그는 지금 도카이도 제일의 무사(??一の??り)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을 떨치지만 전쟁에는 결국 보좌관들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재, 그를 따르던 명보좌관들의 건강이 천천히 나빠지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어렸을 때부터 모토야스의 총명함을 눈여겨 본 그가 그녀를 탐내는 것도 그다지 큰 무리는 아니다.

“오죽하면 다이겐 셋사이라는 명보좌관이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그녀의 읊조림에 한조는 괜스레 제발 죽었으면 좋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조의 모습이 귀여웠기에 그녀는 괜스레 실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곧 덧붙이니.

“그는 나를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뒷말을 삼킨 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단 결혼은 해야겠지.”

몸을 준다고 나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겸사겸사 알려주고 말이다.

난세에서 어차피 허울뿐인 육신 따위 고민 따위는 없이 던져줄 수 있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던 와중이었다.

저벅, 저벅.

그들이 머무는 방과 이어진 복도에 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때문에, 모토야스는 곧바로 문을 응시했고 한조는 본능적으로 문 뒤로 은신하며 품 안에 넣어둔 단도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흔히 카타나로 불리는 검이 단도보다 더욱 살상력이 높다는 점이었다.

전장에서라면 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단도가 훨씬 범용성이 좋았다.

간단한 이치다.

카나타를 비롯한 일본도는 검신이 길고 그만큼 휘두르는 궤적이 넓고 길기 마련인 것이다. 그에 반해 단도는 찌르고 돌리면 어지한해서는 치명상이 아닌가.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촛대의 검은색이 사람을 집어삼켜 문가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곧 목소리가 울렸으니.

“주무시기 전, 좋은 찻물이 들어왔다고 성주 대리께서 보내셨습니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림자의 주인은 엣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한조는 경계를 풀지 않고 언제라도 소녀가 문을 여는 순간 목을 찌를 수 있도록 기척을 숨겼다.

“흐음.”

반면, 모토야스는 잠시 앉아 있던 자리의 다다미의 결을 손으로 쓸며 문을 응시했고, 곧 입을 열어 답했다.

“들어오세요.”

“예.”

그녀의 말에 어린 시녀는 곧바로 문을 열어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안으로 발을 디뎠고, 말한 것과 같이 꽤 구색이 갖춰진 다기들을 그녀의 앞에 놓았다.

물론, 한조의 감시 하에서 말이다.

그렇게 얼추 모든 다기를 놓은 시녀는 찻잎을 넣어 둔 나무 함을 열어 말했다.

“향이 좋아 잠이 잘 오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녀답지 않게 꽤 말을 잘 했다.

때문에, 모토야스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답했다.

“그래. 감사하다고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마시진 않을 거지만 말이다.

그녀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조도 구태여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렇게 두 여인은 시녀가 나가기를 기다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때.

“저.”

시녀는 답지 않게 목소리를 낮췄고, 곧 찻잎이 정갈하게 놓인 목함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침을 삼켰다.

그리곤, 혹여 모를 귀를 의심하듯이 아래를 보라는 듯 손바닥을 뒤집곤 이내 뒷걸음질로 방을 나섰다.

“…….”

“음…….”

당연히 두 여인의 시선은 찻잎이 찬 목함의 바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모토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조금 전까지 단도의 손잡이를 쥐었던 그녀의 손가락 끝이 부슬거리는 찻잎이 가득한 목함 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손 끝에 걸리는 이질적인 느낌에 미간을 좁히며 그것을 꺼내 들었으니.

“……이건?”

그건 다름이 아닌 곱게 접힌 작은 서신이었다. 때문에, 한조는 잠시 모토야스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돌려 혹여 방에 붙은 눈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느껴지는 기척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방 근처를 보위하는 닌자들에게 벽을 두드림으로써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각.

“음.”

모토야스는 쪽지를 펼쳤고, 곧 안에 자리한 유려한 필체를 응시하며 천천히 그 내용을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결했으나, 파격적이었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제게 숨겨둔 재산이 있습니다.

훗날 그것이 있는 곳을 알려드릴 터이니, 닌자를 시켜 몰래 가져가십시오.

도리이 다다요시(?? ??).

도리이 다다요시.

그의 이름과 필체가 맞음을 확인한 그녀는 잠시 그의 쪽지를 손으로 쓸었고, 곧 일전에 만났던 가신단 중 유달리 자신을 응시하던 남자를 떠올리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는가.’

그를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다.

이미 숱한 믿음에 배신을 당한 그녀에게 누군가를 완벽하게 믿는다는 것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굳이 따지자면 한조 정도가 끝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단순히 의심으로 포기할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부복한 충성스러운 닌자에게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아무래도, 마츠다이라의 모든 가신들이 돌아선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

“……과연.”

그녀의 말에 한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녀는 보았으니.

“헤.”

자신의 주군의 입가에 실로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는 걸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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