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미카와로(4)
* * *
“그래서 이름이 뭐죠?”
“예?”
마츠다이라의 당주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그녀의 물음에 성주 대리는 살짝 눈가를 찡그렸으나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엄연히 주군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총애를 받는 그녀니 이 이상으로 모욕을 준다면 괜한 잡음이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제 이름은…….”
때문에, 그가 대답을 하려던 그때였다.
모토야스의 유약해 보이는 눈매가 호선을 그리고,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하니.
“생각해보니까 안 들어도 될 거 같네요.”
“예?”
당연히 성주 대리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절대 비굴하지 않은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오카자키성으로 걸어 들어갔으니.
“……이익!”
뒤늦게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성주 대리의 얼굴은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그녀를 비롯한 그녀의 가신들은 그를 지나치고 있는 중이었다.
즉, 때를 놓치고 기세를 빼앗겼다는 뜻이었으니 그로선 모욕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름 성주 대리까지 맞을 정도의 지위를 가진 그가 다 기울어가는 것도 모자라 영토와 가독을 모조리 빼앗긴 허울뿐인 가문의 당주그것도 소녀에게 무시당한 것이니까 말이다.
“크윽.”
하지만 이미 그를 지나친 시점에서 뭐라고 받아치기에도 늦고 말았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을 부릅뜨고 저 건방진 년을 노려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뒤를 따르던 가신은 물론 그녀를 마주한 이마가와 측에도 속하지 않고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있었으니.
“……어찌 보십니까?”
그건 바로 마츠다이라 가(家)를 섬겼으나, 현재는 반쯤 충성을 철회한 가신들이었다. 그들은 성문 안쪽에서 지켜보다가 다가오는 소녀, 아니 모토야스를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중심점이 되는 한 사내에게 시선을 모았다.
“도리이 공.”
청년에서 갓 중년을 넘어가는 듯한 사내.
그는 주변인들의 물음에도 묘한 흥미가 담긴 눈동자로 천천히 자신을 지나 걸어가는 모토야스를 바라보았다.
‘유약해 보이거늘.’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녀가 여태까지 겪은 일만 해도 어떤가.
고작 15살이 된 그녀의 생을 훑어보아도 그렇다.
전전대 당주이자 그녀의 할아버지인 마츠다이라 기요야스가 모리야마의 변으로 죽고 아버지인 히로타다 역시 그녀가 채 10살이 되기 전에 죽고 말았다.
‘그 당시에 이미 마츠다이라의 미카와 국은 이마가와의 스루가 국의 속국이나 다름이 없었지.’
서쪽에서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계속해서 노리는 와중이라 마츠다이라 가문의 입장에서도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비록 점차 종속되는 느낌으로 흐르긴 했으나, 이마가와 측에 붙는 것 역시 그렇게 나쁜 선택지라고 보기에도 힘들었고 말이다.
……다만 그것이 그녀의 입장에선 지옥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2살 때 어머니와 헤어졌지.’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 때문이었다.
그 후 그녀는 오다 가에게 볼모로 사로잡히기도 했고, 그 이후 다시 이마가와 측의 볼모가 되기도 하는 등의 고난의 유년기를 보낸 것이다.
때문에 도리이는 생각했다.
그녀가 유약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암울하게 자랐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는 순간 망설임 없이 마츠다이라를 버릴 생각이었다.
“헌데…….”
어느새 다가온 모토야스의 시선이 도리이에게 닿았고, 서로를 응시한 소녀와 사내는 이윽고 무언가를 느끼곤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저벅, 저벅.
소녀답게 보폭은 넓지 않았고, 체구 역시 일반적인 발육보단 살짝 뒤쳐졌으나 왜일까. 그 자체로 그녀가 절대 우습게 보이지 않는 것이 말이다.
때문에, 그는 무심결 터져 나올 뒷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으니.
‘의외인데.’
그건 도리이를 비롯한 가신들이 그녀를 일단은 지켜보게 될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뜻했다.
*
마츠다이라 모토야스가 미카와 국으로 돌아온 명분은 법요식(???)이었기에 그녀는 다음날 곧바로 사찰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정을 끝낸 그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주 대리에게 선뜻 다가가 말하니.
“제 가신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지요?”
그녀의 말에 성주 대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음으로서 거절하려 했으나 그의 곁에 선 관리는 작게 조언했다.
“하는 행태가 건방지긴 하나 추후 미카와를 삼키는 데에 주요한 명분이 될 년입니다. 웬만해서는 재가해주시지요.”
달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비록 이미 이마가와의 가신 취급을 받는다고 한들 그녀가 미카와 국을 계승하리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사실이고, 더욱이 성주 대리 역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분노는 두려웠기에 곧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허나 제가 참관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마음껏 활개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통보에 가까운 말을 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그 대상이 된 그녀는 이미 그런 반응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고, 성주 대리는 흩어져 있던 미카와 국의 가신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당연히 상석에는 그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가 자리했고 말이다.
“…….”
묘한 정적이 흐른다.
“……크흠.”
본디 미카와 국의 성인 오카자키성임에도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불편하기 때문임도 있었고, 긴 볼모 생활로 사실상 처음 마주하는 어린 주군을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도리이 다다요시를 비롯한 전대 당주 마츠다이라 히로타다의 가신들은 그녀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분위기가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제 나이가 15살입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자리를 채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가신들을 주욱 훑으며 특유의 나긋나긋한 톤으로 말을 이었으니.
“제가 2살이 되던 해에 외삼촌의 친(?) 오다 정책으로 어머니께서 본가로 강제로 돌아가시고, 저는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아 나고야의 반쇼지(???:사찰 이름)에서 2년간 인질 생활을 해야 했지요.”
그뿐인가.
“아버지께선 가신에게 목숨을 잃으셨고, 마츠다이라의 변심을 우려하신 이마가와 공(?)의 염려로 가문은 사실상 길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순간 마츠다이라의 가신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건 도리이 다다요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찌 잊을 수 있겠나.’
모토야스는 굉장히 점잖은 수식으로 그날을 칭했으나 실상은 마츠다이라의 배신을 우려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본가는 물론 그 가신들의 영토를 모조리 몰수하고 가신들의 처자를 인질로 삼아 모조리 스루가로 데려갔다.
놈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후에 이에야스를 돌려받자, 그녀를 미카와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볼모로 삼아 여태까지 데리고 있던 것이다.
“크흠!”
그런 그녀의 말에 불편함을 느낀 것일까.
곁에 앉은 성주 대리가 옅은 헛기침을 내뱉었으나, 정작 모토야스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껏 이마가와 가문의 배려와 관심 덕에 잘 지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강제로 합병한 이마가와 가(家)를 두둔하는 말이었기에 가신들의 얼굴엔 실망이 흘렀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녀는 여태껏 볼모 생활을 이어나가며 이마가와 측이 보여준 것을 보았을 것이고, 또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라 배웠을 것이다. 그런 소녀가 무엇을 달리 행동하겠는가.
하지만 그때였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분골쇄신을 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이 필요하겠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하고 내뱉는 말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성주 대리나 이마가와 가신들을 제외한 이들은 그녀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저 말이 왜 그렇게도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일까. 도리이 다다요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확정을 짓지 않았다.
말투나 흐름 따위로 그 이면에 담긴 속내를 파악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때였다.
“그러니까…….”
가신들을 훑던 그녀의 시선이 제일 앞쪽에 앉은 도리이 다다요시에게 닿았고, 곧 그녀 특유의 갈색과 금색이 뒤섞인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거렸다.
동시에 그녀는 특유의 유약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배시시 지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그 순간 도리이는 보고야 말았다.
웃는 입가와 달리, 너무도 싸늘하게 가라앉은 두 눈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