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14화 (114/171)

〈 114화 〉 미카와로(3)

* * *

“……작금의 미카와는 지옥입니다.”

그것이 도적 두목의 설명이었다.

그는 턱 끝에 자리한 일영의 서슬 퍼런 칼날에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제, 제가 배움이 미천하고 최근 합류한 놈들보다 조금 더 빨리 노략질을 시작한 터라 모두 보고 들은 사실은 아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는 갑자기 몇 년 전부터 정세가 혼란스럽게 흘러가는 듯하더니 마을의 젊은 남녀가 아시가루로 끌려가는 것은 기본에 어느 날 이마가와 가(家)에서 보내온 관리의 패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합니다.”

다만, 이어진 이야기들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많이 심각했으니.

도적 두목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백하게 읊조리는 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이라도 한 듯이 최대한 아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드, 듣기론 성주 대리의 관병들이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수탈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세금을 올리는 건 기본에 듣기론 크고 작은 분쟁에 미카와 국 출신 장병들을 앞세우고 봉급은 이마가와 측 병력보다 현저히 작게 주는 등…….”

“허.”

들으면 들을수록 도적이 되어버린 농민들의 입장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들이 민심을 박살내는 교과서적인 행보가 아닌가.

묵묵히 도적 두목의 말을 듣고 있던 일영은 기억 한편에 밀어 두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되짚었다.

‘큰 변화는 없어.’

일부 역사가 변했다고 한들 아직 작은 날갯짓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미카와 국에 아직 큰 변화는 없는 것이리라.

‘오히려 다행이야.’

그렇다면 미카와로 향하며 세운 대전략을 수정할 필요는 당장 사라진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수행이 될지는 순전히 그의 역량에 달린 것이었지만 말이다.

“……저.”

그때였다.

목에 겨눈 칼날의 서늘함에 기가 눌려있던 도적 두목은 검게 썩어 문드러진 이빨을 들썩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 아는 건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묻고 있으나 그는 일영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지 눈동자에는 미묘한 희망이 맴돌고 있었다.

일영은 그런 그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보았고, 도적 두목은 곧바로 자신에 대한 변명을 읊기 시작했다.

“저, 저도 원래 농민의 아들이었습죠. 그런데 아비가 병졸로 끌려가 죽으니 남은 어미와 삐약거리는 동생들을 부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징병당할 바에는 도적질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도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으니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은혜를 보은하며 살겠습니다!”

난세인 열도에선 너무나도 흔한 사연이었기에 더더욱 와닿는 말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쯧하고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제 이름은 마, 마나부라고 합니…….”

도적 두목, 아니 마나부의 눈가에 희망이 스쳤다. 이름을 물어본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살려주리라는 뜻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일영은 살짝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맞잡으며 말하니.

“그래. 기억하마.”

“예?”

서걱, 툭.

찰나의 순간 핏물이 진창에 흘렀다.

낙엽 위에 물감처럼 흩뿌려진 붉은 궤적의 끝자락에 일영의 오니마루 쿠니츠사가 가 있었고, 그는 떨리는 손목을 애써 멈추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쓴웃음을 지었다.

“힘들다고 모두가 도적이 되는 건 아니지. 그렇다고 한들 네 목숨으로 나머지는 살려주마.”

물론 그들에게도 가혹한 미래는 있을 것이다. 당장의 고통이 버겁다고 남을 해하는 것이 옳냐 그르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다.

그들은 일영을 비롯한 정규군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을 대적하기에 너무도 약했고, 그로 인해 강자들이 정한 사회적인 처벌을 받을 뿐이다.

철그럭.

그는 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완전히 털리지 않은 핏물이 살짝 밀려 올라와 손가락을 적셨다.

저릿.

떨리는 손목이 저리다.

일영은 살짝 미간을 좁히곤 경기라도 일으키듯이 떨리는 손을 지그시 응시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손이 떨렸던 것은.

처음으로 전장의 공포를 느꼈을 때?

그게 아니면, 사경을 헤맸을 때?

언제라고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21세기를 살다 온 현대인에겐 너무 가혹한 세상이긴 해.’

적응을 잘한 편이라고 해도 그도 어찌 되었든 윤리와 그로 인한 정의가 정착된 현대인이다.

그때였다.

데구르르.

진창을 굴러 잘린 마나부의 머리가 일영의 발치에 닿는다. 그의 얼굴엔 고통이 없었고, 단지 의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일영은 멍하니 그 얼굴을 응시했다.

동시에, 그의 손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담배나 찾아봐야겠어.”

이코마 상단과 연이 닿았으니 충분히 구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 담배가 열도에 있다면 말이다.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더럽게 뒤엉킨 마나부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몸을 돌렸다.

질퍽거리는 바닥은 그의 발치를 잡았고, 그의 등 뒤에서 기울어진 마나부의 육신은 마치 떠나가는 머리를 바라보듯 기이하게 멈췄으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박.

그렇게 그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치고, 이르게 깨어난 풀잎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던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세웠다.

“…….”

낡은 옷은 농민이 입는 듯 추레하기가 그지없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절대 일반적인 농민의 그것이 아니었다.

스윽.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허름하고 품이 넓은 옷에서 웬 종이와 먹과 작은 붓이 담긴 통을 꺼내더니 묵묵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결했다.

입(?).

그는 그것을 적어 손에 쥐었고, 곧 멀지 않은 바위 틈에 숨겨둔 비둘기를 꺼내 발목에 매다니.

“전해라.”

남자는 비둘기의 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곤 양손으로 발을 감싸 이윽고 하늘 위로 부드럽게 밀어 올렸다.

푸드득!

그러자 비둘기는 곧바로 날아올랐고, 머지않아 푸르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훈련받은 방향으로 향하니.

다름이 아닌, 이마가와 가의 본성 쪽이었다.

*

“어서 오십시오. 허허.”

말을 탄 이마가와 측의 가신 중 이른바 ‘성주 대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보는 미카와 국의 가신들의 표정은 절대 곱지 않았으니.

“……허.”

“……쯧.”

엄연히 성주 대리로서 근무 중인 그가 감히 마츠다이라 가(家)의 당주나 다름이 없는 소녀를 맞이하면서도 말에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기껏 한다는 말이 ‘어서 오십시오’가 전부라니.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성주 대리’라는 말은 무엇인가.

그는 현재 이마가와 측의 명령으로 후계 교육을 받는 소녀를 대신하여 정세를 돌보는 것에 불과하다. 헌데도 저리 방만한 태도를 보이니 당연히 그녀를 곁에서 보좌하는 미카와 국 가신들의 입장에선 절대 말이 곱게 나올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보았기 때문일까.

“흐음.”

성주 대리인 중년의 사내는 턱 가에 자리한 수염을 가볍게 쓸며 소녀는 물론 주변에 자리한 가신들을 훑으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너무나 가볍게 던진 물음.

그러나 소녀를 둘러 싼 미카와 국의 가신들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금의 미카와가 어떠한가.

본디 과거에는 미카와의 적법한 지배자였을지 몰라도, 전전대 당주인 마츠다이라 기요야스가 살해당한 모리야마의 변 이후 세력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1535년에 일어난,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이었긴 하지만 그로 인해 미카와는 반쯤 이마가와 가(家)에게 종속당하게 되고 만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성주 대리인 관리라고 어찌 그것을 모를까.

아니,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중년의 놈은 소녀를 다소 음흉한 눈으로 훑으며 입을 열었으니.

“법요식이 끝난 후 세키구치 공의 아들과의 혼약이 잡혔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경사가 아닙니까.”

세키구치 지카나가(? ?氷).

이마가와 씨를 섬기는 가신으로 당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매부 관계까지 맺은 중신이었다.

성주 대리는 그것이 새삼 불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로선 이해할 수가 없는 대우였기 때문이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그녀에게 병법과 학문을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혜택과 편의를 보아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입에서 내뱉은 말이 고울 리가 없었다.

“주군께서 마츠다이라의 히메(ひめ)를 아끼신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끌끌.”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가신들은 물론 소녀의 뒤에 선 한조마저 무심결 품속에서 암기를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현재 마츠다이라의 적법한 후계는 그녀 뿐이다. 헌데도 그녀를 일개 아가씨(히메:ひめ)로 표현한다는 건 그녀를 얼마나 낮잡아 보는지를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때문에, 더 이상의 모욕을 참지 못한 한 사무라이가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성주 대리.”

여태까지 묵묵히 모욕을 듣고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고, 특유의 색을 가진 머리가 찰랑거렸다.

갈색에 살짝 금색이 뒤섞인 머리카락과 같은 눈동자에 성주 대리의 얼굴이 맺히고,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보듯 자신을 내려보는 그를 향해 옅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으니.

“그래서 이름이 뭐죠?”

그건 꽤나 당돌한 한 마디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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