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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12화 (112/171)

〈 112화 〉 미카와로(1)

* * *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가 호위하고 있던 상인들은 머지않아 다른 상인들과 합류하여 미카와로 향했다.

물론,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이미 사전에 얘기가 모두 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사전에 얘기가 된 것이 끝이 아니라 합류한 상인들의 호위 중 절반은 일영의 호위무사들이었다.

“어이고. 오랜만이구먼.”

“그러게 말이야.”

그런 사실을 상인들이 알 리가 없었기에, 상인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짐들을 살폈다.

그 사이, 일영과 아케치 미쓰히데와 마찬가지로 꽤 허름한 옷과 진가사를 눌러 써 낭인과 같은 모습을 한 5명의 사무라이가 말없이 허리에 맨 검의 손잡이를 쓸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의가 아닌, 이렇게 적은 수로 일영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일 뿐이었다.

한편, 호위무사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알긴 하는 건지 일영은 그저 가볍게 일행들의 구성을 훑을 따름이었다.

‘상인 8명에 호위가 도합 12명.’

총원은 20명. 그중 5명은 정말로 상인들의 호위를 위해 계약한 낭인들이었다.

그렇게 일영이 일행들을 파악한 그때, 상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이 일영을 비롯한 호위무사들에게 외쳤다.

“자, 다들 출발할 준비하시게!”

그 외침에 상인들은 제각기 상품들을 다시 어깨에 이었고, 호위무사들 역시 허리에 맨 검과 어깨에 인 봇짐을 여미며 걸음을 옮겼다.

이미 미카와 국으로 향하는 국경 근처에서 합류한 것이기에,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국경을 넘는 것을 목적이라 말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터벅, 터벅.

묵묵히 산을 타는 일영의 곁으로 슬그머니 한 상인이 다가왔다. 당연히 아케치 미쓰히데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그쪽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일영은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다가온 상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뭡니까?”

“어이쿠. 경계심이 없으시군.”

일영이 검은 진가사로 코 위를 가려 하관밖에 보이지 않는 데에 반해, 그에게 다가온 상인은 얇은 천으로 입가를 가린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직설적으로 접근한 이유를 묻는 일영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부탁할 게 조금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

“부탁할 거라면?”

“일단…….”

부탁할 것이라는 말에 일영이 되묻자, 남자는 잠시 기다려보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는 소매 안으로 반대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꽈악.

일영의 곁에서 묵묵히 그와 보폭을 맞추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검을 꽉 쥔 채로 남자의 거동을 유심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소매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비단 아케치 미쓰히데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호위무사들 역시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아, 여기있었네.”

하지만 그런 긴장이 무색하게도.

스윽.

남자가 꺼낸 건, 일본 동부 쪽에서 화폐로 유통되던 은전이었다. 그는 그것을 다른 상인들이 보지 못하도록 슬며시 일영에게 찔러주면서 웃었다.

때문에, 일영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들고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게 뭡니까?”

“별건 아니고, 일종의 부수입이죠.”

“부수입이라면…….”

일영의 되물음에 남자는 알만한 사람이 왜 그러냐는 듯이 은근한 시선을 보냈고, 이내 그에게 말했다.

“아시잖습니까. 척 보기에도 그쪽이 실력이 제일 좋아 보이는데, 요즘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데 만약 모종의 일이 생기면 겸사겸사 저도 챙겨달라는 의미지요. 하핫.”

“아.”

그러니까 남자의 말을 해석하자면, 기존에 계약한 상인들과 더불어 자기도 챙겨달라는 말인 것이다.

“헤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상인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일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품 안에 은전을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걸 구경할 생각은 없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겸사겸사 부수입도 얻으면 좋고 말이다.

다만, 그의 말에서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말은 뭡니까?”

그런 일영의 물음에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답했다.

“이런, 소식이 늦으시군요.”

어딘가 살짝 건방을 떠는 듯한 모습인지라 순간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이 게슴츠레 변했지만, 일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인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으니.

“요즘 미카와 국 상태가 좋지가 않답니다. 이마가와 가(家)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수탈을 이어나가는 것도 모자라 미카와의 차기 당주가 이제 갓 15살이 된 소녀니까 말입니다.”

“소녀라.”

“예, 소녀 말입니다. 아무리 걸출한 히메 다이묘들이 많다고 한들 어린 나이에 기반도 없는 그분을 누가 따르겠습니까? 덕분에 희망을 잃은 백성들이 도적으로 변하거나 다른 영토로 도망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상인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시기쯤이면 미카와 국의 민심이 한창 바닥을 찍을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상행도 이렇게 소규모로 조용히 다녀오는 거 아닙니까. 여차하다가 털리면 답도 없으니까 말이에요.”

상인은 말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참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와리는 그럭저럭 야차라는 양반 덕분에 정리가 되었다고 하던데, 하필 그 양반이 아프다고 하지 뭡니까. 다들 그 양반이 죽으면 다시 개판이 될 거라고 그렇게…….”

그는 일영이 만족스럽게 반응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이야기를 들어주자 입이 풀렸는지, 계속해서 이것저것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들어주기에 나쁜 입담은 아니었다.

특히, 일반적인 민초들의 시점에서 오와리 내부 항쟁을 듣는 기분은 꽤 묘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이 미카와의 국경 부근에 거의 다다른 때였다. 갑자기 앞서 걸으며 길잡이 역할을 하던 노인이 걸음을 멈췄고, 이윽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봇짐에서 손도끼를 꺼내며 외쳤다.

“도적이다!”

스릉!

채애앵!

노인의 외침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우렁찬 목소리에 호위를 위해 고용된 낭인들은 일제히 검을 뽑았고, 그건 아케치 미쓰히데를 비롯한 사무라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피슝!

선두에 선 노인을 비롯해 일행을 노리고 일련의 화살이 쏟아졌고, 동시에 나무와 수풀 따위에 은신해 있던 도적들이 조악한 검과 도끼, 낫 등을 들고 시끄럽게 외쳐댔다.

“와아아아아아아!”

“죽여라!”

다행히 화살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정확도 역시 안 쏘느니만 못할 정도로 극악이었기에 몇몇 상인들이 스친 정도로 끝이 났다.

다만, 진짜 문제는 무기를 들고 거친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는 도적들이었다.

“너, 너무 많은데?”

일영의 곁에서 입담을 뽐내던 상인 역시 호신을 위해 작은 단도 크기의 검을 뽑았지만, 곧 수를 보고 목소리를 떨었다.

언뜻 보기에는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영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얼추 살펴도 30명 이상이다.’

도적단 치고는 규모가 꽤 상당하다.

그렇기에 전공도 좋았던 편인지, 꼴에 낭인들이 입는 견갑을 입고 일본도를 들고 있는 놈들도 몇몇 눈에 들어왔다.

30명, 어쩌면 40명인 도적단.

그리고 20명이지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12명이 전부인 상인들.

누가 보더라도 답은 정해진 싸움같았기에, 일영의 곁에 서 있던 사내는 다급히 소매를 뒤져 가지고 있는 은전을 모두 꺼내며 일영에게 외쳤다.

“이, 일단 도망칩시다! 이 정도 규모면 인근 마을에 알려서 토벌부터 해야한다고요!”

겁에 질린 채로 내뱉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도 딱히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모모마루.”

“……그래. 시로이.”

모모마루(??).

시로이(しろい).

서로를 원래 이름대로 부를 순 없었기에 정한 가명이었다. 모모마루란 본디 아케치 미쓰히데의 아명이었기에 그렇다고 쳐도, 일영의 가명은 성씨인 백(白)을 일본어로 부른 것에 불과했다.

어찌되었든 둘은 서로를 불렀고, 곧 일영은 검은 천으로 붉은 검집을 가린 오니마루 쿠니츠나를 뽑았다.

스릉.

수많은 피를 머금은, 그러나 여전히 푸른 빛을 띠는 검이 쳥아한 검명을 울리며 뽑혔다. 동시에 이미 검을 뽑은 나머지 사무라이들은 마치 그의 명령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묵묵히 숨을 골랐고.

“대충 계산을 때려보면 인당 3명인가?”

일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때마침 달려오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를 응시했다.

“죽어라아!”

놈들은 애초에 모두 죽이는 걸 목적으로 삼았는지, 투항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조차 입에 담지 않고 그저 손에 들린 무기를 휘두를 따름이었다.

부우우웅!

거구의 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가 단번에 일영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듯이 내리 찍어진다. 때문에,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상인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히익!”

그러나 그때.

“이것 참.”

일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뺨에 튄 뜨거운 액체를 닦아냈고.

“커, 커헉!”

그 직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흔들리는 거구와 눈을 맞춘 일영은 천천히 놈의 목에 정확히 꽂힌 검을 뽑으며 말했으니.

“생각보다 더 수준 이하인데.”

그것이 두 자릿수가 넘은 사무라이를 벤, 이름 모를 도적이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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