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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111화 (111/171)

〈 111화 〉 뒤바뀐 역사의 소용돌이

* * *

1556년(코오지 2년).

역사가 바뀌었다.

아니, 단순히 그런 말로 작금의 정세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시바 히데요시. 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훗날 역사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동아시아의 미래를 뒤흔들었을 사내는 미노와 오와리의 접경, 이름 모를 폐 신사를 무덤 삼아 쓰러졌다.

사이토 도산의 목숨을 거둔 사이토 요시타쓰는 긴 시간 동안 혼란스러웠던 영지의 내실을 살피는 동시에, 교토의 쇼군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연락하는 등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1554년, 한창 오와리의 혼란이 지속되던 해 적자인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호조 우지야스의 딸과 결혼시키는 한편, 다케다 가문과 호조 가문을 중매하여 사돈 관계를 맺게함으로서 호조, 다케다, 이마가와 3국 동맹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1555년 다이겐 셋사이라는 유능한 보좌관이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는 등의 불길한 기류는 천천히 그를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격동의 현장에서, 오와리는 불안정하게나마 내분을 잠재우는 것에 성공했고, 미노 측에서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고자 산발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추운 겨울은 지나갔다.

얼었던 땅은 녹아 다시금 새싹을 틔울 준비를 끝마쳤고, 그것은 오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로 물들었던 시기는 지났다.

오다 노부유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굴복을 약속했으며, 스에모리 성에 칩거한 도타 고젠은 명목상으로나마 그것을 지지하며 내분은 오다 노부나가의 승리로 끝이 났다.

물론, 얼음이 녹으면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노부유키이이!

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노부유키 측에 선 것을 넘어서, 그녀의 핵심 가신들은 모조리 처형당하거나 할복을 택했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한 숙청까지 끝나자 노부나가는 이윽고 모든 가신들을 모아 놓은 채 선언했다.

“오직 내가, 오다 가문의 적법한 후계이니라.”

그녀의 선언에 노신들은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노부히데를 따랐던 과거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새로운 당주 아래에서 또 다른 역사가 쓰여질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주역은 단연코.

‘히라테 히카게.’

비단 노신뿐만이 아니라,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큰 키와 수려한 얼굴을 가진, 그러나 그 내면에 여우와 야차가 공존하는 두려운 사내.

‘백일영.’

그가 될 테니까 말이다.

어찌 일영이라고 그것을 모를까.

때문에, 그는 자신에 몰리는 시선에 옅은 미소를 띤 채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되겠다고 말이다.

*

「오와리의 계승이 끝났다.」

그 사실은 그리 오래지 않아 근처의 모든 국으로 퍼질 이야기였다.

기본적으로 주변국에 오다 노부나가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포고장을 보낼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오와리에 숨어든 첩자들이 미친 듯이 소식을 전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계승이 끝이 났다고 한들 혼란이 완전히 잠재워진 것은 아니었다.

짧지만 그만큼 격렬했던 내전이었기에 오와리는 그것을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만큼 가신들의 분위기도 뒤숭숭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지금 이 시기에 일영이 자리를 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누구인가. 그는 이제 일개 조선 출신 낭인이 아니었다.

히라테 가(家)의 양자이자 장남이며.

야차(??)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실력이 있는 사무라이이자 전쟁 영웅이었고.

오다 노부나가의 부군이자, 모리 요시나리의 애인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즉, 현재의 시점에서 오와리 내 그의 입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대단했다.

당연히 일영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기엔 모든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가 택한 방법은 실로 간단하면서도 과감한, 그리고 꽤 역시가 깊은 방법이었으니.

‘카케무샤라.’

카케무샤(かげむしゃ).

흔히 그림자 무사라고 불리는 존재.

‘역사가 깊은 방법이지.’

대충 생각하면 왕자와 거지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 경우에는 왕자가 호구인 이야기였기에 조금 궤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간단하다.

전란의 시대인만큼, 보통 부하에게 자신과 동일한 무장을 입혀 적을 기만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대타로 세우는 방법이었다.

물론, 일영의 경우는 단순 부재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있다.

본디 카케무샤그림자 무사란 최소한의 호위와 일부 고위층을 제외하면 웬만한 이들 전부를 속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 그를 잘 알고 있는 이가 있어야 함과 동시에 또한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적합할까?

당연히 한 명뿐이지 않은가.

“이츠키가 잘 해줄까요?”

스윽.

검은 진가사를 눌러 쓰고, 평소 입고 있던 고급진 호위무사 복이 아닌 허름한 낭인과 같은 모습을 한 아케치 미쓰히데가 앞서 걷고 있는 일영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일영은 구태여 말해 뭐하냐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위에선 거창하게 말했지만, 어차피 평소 그를 따르던 호위무사들과 오다 노부나가, 히라테 마사히데 등에겐 이미 알린 사실이었다.

거기에 일영은 전장에서 입은 상처가 도졌다는 명분으로 칩거를 하다가 야밤을 틈타 바꿔치기한 것이니, 오와리 내에 숨어있는 첩자들이 알아챌 일은 없을 것이다.

‘야습이라도 당하지 않는다면야.’

그 경우를 아예 상정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에, 대비책을 세우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솔직히 매우 낮았다.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일영을 지키는 경계가 얼마나 삼엄할지 바보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존대는 하지 말아야지?”

“아, 알겠습……. 어. 음.”

일영의 말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반쯤 본능적으로 존대를 입에 담으려다가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이어진 일영의 유하지만 단호한 시선에 그녀는 진가사를 더욱 깊게 눌러쓰며 뺨을 붉혔다.

“그, 어.”

아케치 미쓰히데는 괜스레 그와의 첫 만남, 이유모를 적의에 떨었던 때를 기억하며 쉽사리 반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러나 일영은 어깨에 인 봇짐을 한번 여미며 근처의 상인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낮게 속삭였으니.

“지금에야 괜찮을지 몰라도, 미카와 인근으로 들어서면 의심을 받을 텐데?”

“그, 그건.”

그제야 그녀 역시 함께 거니는 상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은 각각 히라테 가의 양자이자 야차 ‘히라테 히카게’와 아케치 가문의 후계이자 히라테 히카게의 호위무사인 ‘아케치 미쓰히데’가 아니었다.

그저, 이코마 상단의 상행을 호위하는 대가로 보통보다 싼 품삯을 받고 검을 써주는 하급 낭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위해 일부러 이코마 키츠노의 도움을 받아, 물건의 품질도 그다지 좋지 않고 규모도 적은 상단을 알선 받은 것이었다.

“아무리 허름하게 입었다고 한들, 귀하게 자란 이들과 억척스럽게 자란 이들은 자연스럽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놓고 존대까지 입에 담고 있으면 퍽이나 의심을 피할 거야. 그렇지?”

“아, 어으…….”

반박을 하고 싶어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알겠어.”

은색과 분홍빛이 섞인 눈이 흔들린다.

동시에, 그녀는 혹여 일영이 화가 났을까 눈치를 살피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스윽.

그녀는 일영의 손이 들리는 걸 보며 눈을 감았다. 역시, 이건 함정이었다.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한 덫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속다니.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가올 일영의 폭력에 몸을 떨었다.

아직도 그 폭력적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때리겠지. 어쩌면 이 상인들 앞에서 수치를 줄지도 몰라……!’

그녀가 평소 보았던 일영은 절대 그럴 남자가 아니었지만, 이미 망상을 시작한 그녀의 뇌리에선 일영은 귀축과 쓰레기 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턱.

일영이 가볍게 들어올린 손은 그녀의 등에 닿았고, 그 감촉은 허름한 옷을 지나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자극했다.

“흣?”

본능에 가깝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으며 그녀는 시선을 돌렸고, 그런 그녀의 시선에 닿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잘했어.”

때리거나 강압적으로 몰아가기는커녕, 그저 정말로 잘했다는 듯 웃어주는 일영의 모습일 뿐이었다.

“아…….”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찰나의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자신이 어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는지를 깨닫고 시선을 돌렸으니.

‘미쳤나 봐!’

동시에, 이유 모를 아쉬움에 혀를 훑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한 그녀였다.

그러나 둘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거, 혈기왕성해서 그런가 남녀가 참 보기 좋구먼.”

“그러게 말여.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을 자 주자고.”

“허허. 좋은 생각이구먼.”

앞서 걷고 있던 상인들이 둘의 관계를 추측하며 아주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상인들은 정말로 둘에게 불침번을 맡긴다는 이유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을 청했다.

“…….”

“왜 그래?”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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