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그럼에도 오와리를 택해야 할 이유
* * *
“아니에요.”
일영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묻자, 이코마 키츠노는 됐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그가 재차 되묻지 않게 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당돌하시네요. 이렇게 대놓고 던지면 저도 말을 돌리기가 힘든데.”
방 안에 흐르던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니, 단순히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노히메와 함께 있을 때의 유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일영의 눈앞에 앉아 있는 건 한 상단을 이끄는 노련한 상단주일 뿐이었다.
툭, 투둑.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반상을 두드렸다. 그 모습이 흡사 상인이 주판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흐음.”
이윽고 침묵을 깨고 작은 탄식이 흘렀다.
동시에, 그녀는 일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노부나가. 그 아이가 혼인을 청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러는 건가요? 누가 보더라도 열세인 오와리를 이 난세에서 살리기 위해? 그렇다면 꽤 다정하네요.”
말은 하지 않았어도 노히메키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 자체로 뭇 호사가들이 환장할 만한 소재가 아닌가.
조선에서 모종의 과거를 뒤로하고 넘어온 무사.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안정시킨 패도를 걷는 히메 다이묘.
“팔리는 소재죠. 여러모로.”
실제로 오와리 인근 지역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푸는 이야기꾼들이 종종 등장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말에 일영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현대의 기준에서 봐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니지만, 먼저 정정해야겠군요.”
일영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말을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에게 답했다.
“오와리는 이코마 상단의 도움이 없다고 해도 충분히 살아남을 겁니다. 아니, 단순히 살아남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원 역사가 그렇다.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거닐 발자취에서 작금의 현실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일영도 알았다.
“포부는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상인이랍니다? 가능성을 사긴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근거가 필요하단 뜻이에요.”
그가 내뱉는 말이 여기에서 끝난다면, 단순히 포부를 밝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말이다.
이코마 키츠노는 웃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는 일영도 웃었다.
“오와리는 뒤쳐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예.”
그의 물음에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오다 노부나가를 제외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일영과 자신의 사이에 턱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것을 펼치니.
“이건…….”
“지도에요.”
그것은 전체적인 열도를 그려놓은 지도였다. 그가 아는 현대의 지도와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략적인 모습 자체는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스윽.
그녀의 손가락이 한 곳에 닿는다.
손가락이 닿은 건 다름이 아닌 오와리 국(おわりのくに)이라고 적힌 곳이었으니.
“오와리는 참 묘해요.”
그녀는 그곳을 가볍게 손톱으로 긁고는 일영과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지형부터가 3개의 하천 하류에 자리한 비옥한 평야가 있어 자급자족이 수월하고, 본토의 동부에서 수도인 교토로 향하는 길목이라 상업이 발달하고 돈이 돌아요. 덕분인지…….”
그녀의 손가락은 천천히 오와리 근처를 천천히 훑었다.
사실상 이마가와의 영토인 토토우미, 스루가, 미카와까지.
사이토 요시타쓰가 자리잡은 미노.
호조 우지야스가 자리잡은 사가미.
우에스기 겐신의 에치고.
다케다 신겐의 가이.
그녀는 오와리를 둘러싼 모든 지형을 한 바퀴 돌고는 말을 이었다.
“오다 가(家)의 병사는 약해요. 정확히 말하면 상대적으로지만요. 아무리 집안 다툼을 했다고 한들 그것으로 약병이 강병이 될 수는 없죠.”
그녀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오와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살만하니까 병사가 약하다라는 건 아예 낭설도 아니니까 말이다.
“더욱이 주변에 강한 영주가 이렇게 많죠.”
당장 나열한 것만 해도 어떤가.
도카이 제일의 무사(??一の??り)라 불리는 이마가와 요시모토.
미노의 살무사(美?の?), 하극상의 효웅이라 불리는 사이토 도산을 죽인 패륜아 사이토 요시타쓰.
사가미의 사자(??の?)라 불리는 호조 우지야스.
에치고의 용(??の), 군신으로 불리는 우에스기 겐신.
가이의 호랑이(??の虎)라고 불리는 다케다 신겐.
이코마 키츠노는 살짝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일영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곤 많은 이들이 천천히 잊어가는, 그러나 아직 완전히 잊히진 못한 한 가지 호칭을 입에 담았다.
“그에 반해, 오와리는…….”
“오와리의 멍청이(??の大うつけ).”
그녀가 흐린 말에 답한 건 일영이었다.
그런 그의 답에 이코마 키츠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와리에도 호랑이가 있었죠. 이제는 죽었지만 말이에요.”
이코마 키츠노가 말하고자 한 호랑이는 전대 당주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였다. 그녀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눈가를 어색하게 찡그렸다.
“이런데도 오와리라는 물품을 제가 선뜻 고를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솔직히, 일영조차 확신에 차 있음에도 내심 마음이 동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차오르는 건,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이런 라인업인데…….’
괜히 현대의 일본에서도 오다 노부나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탄도 잠시.
일영은 대화가 끝이 났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코마 키츠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가오는 4~5월 즈음, 이마가와 측에서 진군해올 겁니다.”
“예?”
갑작스러운 일영의 말에 이코마 키츠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으나, 일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의 갈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미카와의 변고를 틈타 지배권을 확보했고, 다케다 신겐의 제안으로 호조, 다케다, 이마가와의 3국 동맹을 성사해 후방의 불안을 잠재웠습니다.”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신다.
미적지근해진 찻물이 식도를 따라 흐르고, 그는 점점 동그랗게 변하는 이코마 키츠노의 얼굴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다케다 신겐이 우에스기 겐신을 견제할 겁니다. 아마 카와나카지마일 가능성이 높겠군요. 덕분에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기용 가능한 최대한을 오와리로 파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러면 스루가가 비게 될 텐데요.”
마치 외워두기라도 한 듯이 내뱉어지는 일영의 말에 이코마 키츠노는 살짝 목소리를 떨며 조심스럽게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일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말했다.
“아들이 있으니까요.”
“아…….”
“그렇게 되면 최소 2만 5천에서 4만을 넘는 병력을 데리고 침공을 시작할 겁니다.”
원 역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기용한 군이 2만 5천이라고 하니, 그보다 넘을 가능성 역시 생각을 해야 한다.
“소출량과 최소한의 병력을 계산하면…….”
이코마 키츠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고, 곧 일영의 추측이 꽤 신빙성이 있다는 것에 얼굴을 굳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비단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노부히데와도 대립했던 전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일영은 어느새 다 비운 찻잔을 한번 크게 꺾어 남은 물기를 혀로 훑었고, 곧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이코마 키츠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마 구원병이 오기 힘든 시기를 노려 차례대로 함락을 시키겠죠. 개인적으로 와시즈와 마루네로 추측합니다.”
“……그러면 그걸 막기 위해 제게 손을 건넨 건가요?”
일영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오와리는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이 2월을 조금 넘었으니 남은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3개월. 아직 노부유키가 일으킨 반역에 대한 처리도 끝이 나지 않았는데 다가올 전쟁은 오와리의 파멸을 가리키는 듯했다.
이코마 키츠노는 머리를 굴렸다.
비록 상인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기에.
‘어떻게든 그 아이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데…….’
하지만 곧바로 해답이 떠오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비워진 찻잔에 새 찻물을 따르는 일영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투둑.
기울어진 찻잔에 찻물이 차고, 다기의 끝자락에 맺힌 물방울 몇 개가 추락해 작은 원을 그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일영은 꽤 덤덤하게 말했다.
“전쟁은 이깁니다.”
“예?”
그건 단순히 희망에 찬 말이라거나,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읊조림이 아니었다.
마치 그게 정해진 일이라는 듯한 덤덤한 전달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죠.”
일영의 시선이 오케하자마를 지나, 그 너머에 닿는다. 지금쯤 15살, 아니 16살이 되었을 한 소녀를 응시한다.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는 자.”
그는 그 소녀를 만나야 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어딘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코마 키츠노와 시선을 맞추며 진짜 본론을 꺼내들었다.
“미카와로 가야겠습니다. 도와주시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