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잠깐의 휴식(15)
* * *
일영이 나간 직후.
노부나가와 노부유키는 한동안 말하지 않고 묵묵히 서로를 응시했다.
어깨까지 닿는 검은 단발.
어두운 황금색 눈동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장발.
밝은 황금색 눈동자.
너무나도 닮았지만, 그렇기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자매는 한참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노부유키.”
“언니.”
그리고 동시에 입을 닫았다.
그렇게 다시 불편한 침묵이 스쳐 지나가고, 이내 입을 연 것은 노부유키였다.
“……인정할게. 나는 졌어.”
그것은 변명도, 원망도 아닌 그저 담담한 고백이었다. 그리고 진실이 그러하지 않은가.
노부유키는 오다 가문 항쟁에서 패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승리했다.
다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었으니.
“그러나 언니도 알 거야. 이건 언니의 승리가 아니라는 걸.”
“그래.”
그건 언뜻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말이었으나, 동생의 당돌한 읊조림을 들은 노부나가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부분을 그에게 빚졌지.”
오다 노부나가와 오다 노부유키.
두 자매는 자신들도 모르게 여느 날 바람처럼 오와리에 등장한 남자를 떠올렸다.
백일영.
이제는 히라테 히카게.
그 남자가 지나온 길을 천천히 복기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요스 성을 밀어버리지 않나.
히라테 가(家)의 양자가 되었고.
무라키토리데부터 시작해 미노, 나아가 노부유키를 굴복시킨 일까지.
근 1년이 넘도록 벌어진 격동의 현장에서 그의 발자취가 남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언제나 승리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허.”
거기까지 생각한 노부나가는 무심결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라도 알았던 것인지.”
그런 생각마저 무심결 할 정도로 일영의 행보는 일관적으로 저돌적이었고, 동시에 파격적이었다.
“……여자관계도 그렇다는 점이 흠이긴 하다만.”
비록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여자는 모리 요시나리와 오다 노부나가가 전부라고는 하지만, 그녀들은 알았다. 그가 조심한다고 안 흘려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긴 하지.”
그 부분은 노부유키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 인정에 양심이 찔리는 것은 왜일까.
“어쨌든, 오늘 내가 찾아온 이유는…….”
때문에, 노부유키는 곧바로 말을 돌리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다행히 노부나가는 그런 동생의 태도에도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덕분에 내심 안도한 노부유키는 성공적으로 하고자 했던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언니에게 협조할게. 다만, 조금이라도 언니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나는 언제든 다시 그 자리를 노릴 거야.”
꽤 당돌한…….
아니, 군주의 자리에 앉은 이라면 경기를 일으킬 말이었다.
노부유키라고 어찌 그걸 모를까.
오히려 그렇기에 노부유키는 덧붙였다.
“그러니 죽일 거면, 차라리 지금 죽여.”
나를 인정하게 만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권좌를 노리겠다는 혈육의 경고다. 노부나가는 좌식으로 앉은 상석에서 묵묵히 노부유키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죽고 싶은 거냐. 노부유키.”
그녀의 말이 단순한 경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눈앞에 들이닥치는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당연히 긴장이 흘렀다.
“…….”
자리에 앉아 묵묵히 자신의 여동생을 응시하는 노부나가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었고.
“…….”
단순한 명령 한 번에 자신은 물론, 자신을 따르던 이들까지 모조리 죽일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굽히지 않은 노부유키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
스릉.
천장과 옆방에서 대기 중이던 닌자와 사무라이들 역시, 언제든지 그녀의 명령에 맞춰 노부유키를 제압할 수 있도록 모든 감각을 집중한 상황이었다.
얼마나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을까.
“하.”
탄식하듯 내뱉은 숨결과 함께 닫혀있던 노부나가의 입술이 열렸고, 그녀는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리는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음지었다.
“하, 하하하핫!”
“……?”
되려 그러자 놀란 것은 노부유키였다.
그녀는 설마 노부나가가 저리도 호탕하게 웃음을 지을 줄은 몰랐는지, 어색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물론, 긴장은 여전히 풀지 않았다.
저 웃음이 어이가 없고, 분노해서 나온 헛웃음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과 두려움이 무색하게도 노부나가는 눈물까지 맺힐 정도로 웃음을 지은 후 숨을 골랐다.
“하아, 후.”
그리곤,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노부유키를 향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래. 기대하마.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끌어내려 봐.”
“……농담이.”
“그런데 그러려면.”
언뜻 장난스럽게 답하는 노부나가의 답에 발끈한 노부유키가 진심임을 강조하려던 찰나였다. 노부나가는 은연중 어울리지도 않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그부터 쓰러트려야 할 거다. 노부유키. 나의 동생아.”
“……아.”
그제야, 노부유키는 노부나가가 가진 자신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노부나가는 믿고 있다.
다른 이는 몰라도, 히라테 히카게아니, 백일영을 먼저 지나야 할 거라고. 그리고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말이다.
콰악.
노부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
부러웠다.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에게 닿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았지만, 그중 가장 태산과도 같은 건 다름이 아닌 백일영 그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다 노부나가는 무심결 입술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네게 형부라고 불리겠구나. 나의 부군이 되었으니.”
노부유키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저 노부유키가 생각에 잠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그때.
“……그래. 언니의 말대로 할게.”
“응?”
“아니야.”
노부유키는 되묻는 노부나가의 말에 화답하며 기품이 넘치는 웃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
이후, 그녀들은 간단히 가신들의 처우를 결정하고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그럼, 가볼게.”
모두의 예상보다 자매의 만남은 꽤 잡음 없이, 나름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서로의 속내를 완전히 털어놓진 않았지만, 아직 이 정도 거리감이 둘에겐 옳았다.
더 깊이 들어가기엔 서로가 너무나도 멀었으니까 말이다.
턱.
그렇게 막 나가기 위해 문을 잡은 노부유키는 이내 살짝 고개를 돌려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괜찮은 거지?”
“응?”
노부나가는 살짝 어깨를 으쓱하며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고, 노부유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언니의 말대로 해도 되는 거냐고.”
“아, 그래. 그러려무나.”
굳이 확인을 받는 노부유키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날과 아침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탓이었다.
“그래. 그럼 언니도 동의한 거야.”
노부유키는 그렇게 말하며 묵묵히 방을 나섰다. 당연하게도 그녀를 바라보는 호위 사무라이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으나 정작 그들을 지나치는 노부유키는 그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언니는 내게 반란을 허락했어.’
물론, 그것이 눈 뜨고 당해주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덤벼도 언제든지 분쇄할 수 있다는 말이리라.
현실적으로도 군세를 다시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현시점, 오와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확실한 권력을 쥐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노부유키. 그녀가 당주에 다다르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중신들의 지지를 받고, 알음알음 가문을 집어삼키는 것.’
오다 가문에서 중신 가(家)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정점은 단연코 히라테 가(家)라고 할 수 있겠지.
‘명분도 있어.’
자신의 언니이자, 당주인 오다 노부나가도 허락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형부이자 히라테 가의 차기 당주인 히라테 히카게를 쓰러트려 보라고 말이다.
“쓰러트리겠어.”
노부유키는 계단을 내려가며 다짐했다.
반드시 그를 이불 위에서 쓰러트리겠다고 말이다.
‘어떻게든 요바이(??い)를.’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며 묵묵히 천수각을 나섰고, 그 시각.
“어?”
무언가 한기를 느낀 일영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를 호위하고 있던 이츠키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순간적으로 한기가 몰아쳤기에 몸을 떨었는데, 주변은 꽤나 훈훈해지고 있었다. 때문에 일영은 이내 신경을 끄고 내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때.
“백 고……. 아니, 히라테 공!”
걸음을 옮기고 있던 일영의 뒤에서 울린 귀에 익은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그는, 이윽고 환하게 웃으며 화답할 수밖에 없었으니.
“아, 시바타 공!”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일영이 선물한 가면을 쓴 채, 다소 밝아진 얼굴로 달려오는 시바타 가쓰이에였으니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