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잠깐의 휴식(14)
* * *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일영과 노부나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이란 인간에게 꼭 필요한 필수요소다. 즉, 밤새 서로를 물고 빠느라 잠을 자지 못한 둘은 곧바로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끄으응…….”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끌어안아 온기를 나눈 채 잠에 취했을까. 둘 중 먼저 눈을 뜬 것은 다름이 아닌 일영이었다.
“……아?”
다만,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이젠 애검이 된 오니마루를 찾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건 다름이 아닌, 눈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닌자 때문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히라테 공.”
“아…….”
하지만 놀람도 잠시, 그는 곧 눈앞에 있는 닌자의 정체가 다름이 아닌 타키가와 카즈마스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누구인가.
혼란스럽던 오와리를 평정한 그녀의 거처는 더는 일개 개인의 인생만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사적인 일에도 사무라이들은 물릴지언정 닌자들까지 물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일영은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노부유키가 사무라이들의 제지를 뚫고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같았다.
사무라이들과 시종들도, 내심 닌자들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럼, 다 보셨다는.”
다만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물음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대놓고 관계를 보고 있었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일영의 물음에 타키가와 카즈마스는 눈을 잠시 깜빡거렸다.
검은 장발과 마찬가지로 검은 눈동자가 유달리 깊다. 비록 하관을 가리고 있었으나 드러난 눈만 보더라도 충분히 그녀의 인상이 날카롭다는 것을 짐작케 만들었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큼.”
그런 그녀가 무심결 일영의 시선을 피하며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일영도 바보가 아니기에 ‘보지는 못했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았고, 때문에 그는 괜스레 어색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소리는 들었다는 거네.’
솔직히 달갑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입장에서도 즐겼을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때문에,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볼을 긁적거리곤 말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무릎을 꿇고 계신지.”
“아, 그것은…….”
일영의 물음에 타키가와 카즈마스는 곧바로 답했다. 다만, 그건 일영의 입장에서도 꽤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노부유키 아가씨께서 당주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반사적으로 대답한 그는 무심결 시선을 내려 곤히 잠들어 있는 노부나가를 응시했다. 새삼 느끼는 건데 예쁘다.
……아, 이게 아니지.
일영은 잠시 그녀를 깨우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이내 멈칫하곤 타키가와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그, 자리를 조금.”
“아.”
그제야 타키가와 카즈마스 역시 둘이 거의 나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시, 실례를.”
그동안 봤던 냉철한 모습과는 조금 다른, 당황한 모습을 본 일영은 무심결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허?”
뒤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한 마디.
그것에 일영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눈을 뜬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나가를 발견한 그는 이윽고 훤히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가슴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때.
턱!
“이젠 하다하다 카즈마스까지 건드리려는 것이냐. 이 짐승 같으니라고.”
그녀는 일영의 가슴팍에 발을 턱 올리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을 따라 가슴과 허벅지가 흔들리며 묘한 색기를 더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까.
때문에, 일영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목을 잡고 그녀의 몸을 끌었다.
“아, 어어?”
당연히 노부나가가 일영을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당겨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품에 끌어 안길 수밖에 없었다.
“질투야?”
서로의 숨결이 맞닿는 거리에서 일영은 그렇게 물었고, 노부나가는 잠시 황금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리곤,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쪽.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겹쳤다.
짧지만 강렬한 스침이 지나고, 노부나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알몸인 일영의 목에 팔을 휘감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제야 네놈을 좀 알겠다. 이 멀대같이 큰 여우 같으니.”
“하핫…….”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달아오른 분위기. 그것을 느끼지 못할 둘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끈적한 시선으로 시선을 맞춘 둘이었으나.
“크흠.”
그 순간, 옆방에서 들려오는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낮은 기침에 거의 근접했던 둘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노부유키님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신들도 당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타키가와 카즈마스의 말에. 일영과 노부나가는 서로 피식 웃고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고 말이다.
*
아무리 급하다고 한들, 관계 후 씻지 않을 수는 없었다. 청결이란 비단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곧바로 욕탕으로 향하기에는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었기에 시종들이 들고 온 물수건과 임시 욕탕으로 둘은 빠르게 몸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을 더 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여하튼 둘이 의복을 갖춰 입기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흘렀고, 왜인지 피부가 좋아진 노부나가는 환기까지 끝낸 방의 상석에 앉아 자리로 돌아온 사무라이에게 명령했다.
“들어오라 해.”
“예. 당주님.”
사무라이는 문밖에서 그렇게 답하곤 근처 방에서 대기하던 노부유키를 데려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사이, 노부나가의 곁에 앉아 있던 일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긴장되십니까.”
“……으음.”
다시금 존대로 바뀐 일영의 말에 노부나가는 하얀 턱을 손으로 쓸고는 침을 삼켰다. 내심 내뱉진 않았으나 긴장이 안 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일영이 어찌 모를까.
때문에,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리를 비켜드리는 것이 낫겠지요.”
“그렇겠지.”
두 자매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하는 대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자리에 그가 동석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뭐, 호위는 타키가와 카즈마스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만약 노부유키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걱정은 없다. 조금 전 일영의 생각처럼 타키가와를 위시한 코우카 류(?)의 닌자들도 있었고, 당장 노부나가만 해도 노부유키에게 질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때마침.
저벅. 저벅.
복도의 끝에서부터 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일영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잘 하시길.”
“……노력은 해보겠다.”
사랑하는 이의 응원만큼 힘이 되는 것이 있을까. 노부나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당주님.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
“예.”
사무라이는 그녀의 말에 화답하며 문을 열었고, 곧 일영과 노부나가의 시야에 정갈한 의복을 갖춰입고 서 있는 노부유키가 들어왔다.
허나, 그녀를 본 일영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으니.
‘잠을 못 잔 건가?’
노부유키의 얼굴은 꽤나 수척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잠을 자지 못한 듯이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왔고 열도 있는 건지 양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이 좋지 않으냐. 노부유키.”
노부나가라고 달리 생각하진 않았는지, 그녀는 은연 중 걱정을 담아 물었다. 그러나 노부유키는 대답하기는커녕, 그저 일영과 노부나가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묘하다.
때문에, 일영은 곧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으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긴. 자기를 몰락시킨 주범들인데.’
원래의 역사에서도 오다 노부유키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패배하지만, 이 세계에 사는 그녀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
거기에 순간 일영과 눈이 마주친 노부유키가 시선을 내리깔며 입술을 잘근 깨물자, 그의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화가 나겠지.’
노부유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치욕스럽고 화가 나겠는가. 그녀는 일영을 몇 번이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자신보다 자질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언니에게 빼앗긴 격이니 말이다.
거기에 이렇게 패배까지 하고 알현을 하려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치솟는 화를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럼.”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노부유키에게 묵례하곤 그녀를 지나쳐 방을 나섰다.
“……읏.”
다만, 조금의 상처가 된 부분이 있다면 그가 노부유키의 곁을 지나갔을 때 무심결 어깨를 좁히며 몸을 움츠렸다는 부분일까.
끼이익, 탁.
일영은 닫히는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복도를 향해 걸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싫으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