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잠깐의 휴식(8)
* * *
천수각(???).
오다 노부나가와 같은 다이묘, 혹은 중신들이 거처하는 곳을 일컬어 말하는 곳으로 그녀의 거처는 그곳에서도 제일 상층이었다. 당연히 당주의 거처에 부군이라 하나 아직 일개 가신인 일영의 호위무사들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아케치 미쓰히데를 비롯한 사무라이들은 밖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혼자 계단을 올랐다.
꾸벅.
때때로 그를 마주한 시녀들과 사무라이들이 고개를 숙임으로써 예의를 갖췄고, 일영은 그들의 인사를 가볍고 익숙하게 넘기곤 제일 상층에 다다랐다. 그렇게 도착한 상층에서 주변을 살핀 그는 이내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 오다 노부나가가 일영을 기다리고 있을 상층은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하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그가 아니었기에, 웃으면서도 생각했다. ……조만간 장어라도 잡아서 먹어야겠다고 말이다. 이러다간 복상사다.
스윽.
그는 마지막으로 옷차림을 정비하고 오다 노부나가가 기다리고 있을 제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아니나 다를까.
“왔구나.”
옅은 술 내음이 코를 스치고, 유달리 벌개진 얼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벅.
그는 앞으로 성큼 걸어가 그녀가 앉아 있는 방의 다다미를 밟았다. 그러곤 입을 열어 그녀의 독백과도 같은 말에 답하니.
“예.”
그는 품이 넓은 옷을 기품있게 겹치곤 그녀에게 살짝 허리를 숙여 말했다.
“당신의 부군이 왔습니다. 노부나가.”
당연하게도.
그의 말을 들은 오다 노부나가는 술잔에 기울이던 손을 멈추곤 자신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나의 부군. 일영.”
*
둘은 익숙하게 다다미 위에 앉아 작은 상 위에 놓인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묵묵히 술잔이 오가고, 점점 취기가 돌기 시작하던 그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미안하다.”
그녀의 담백한 사과에 술을 따르던 일영의 손이 일순간 멈칫거렸다.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본 그때는 이미 오다 노부나가가 그것을 단번에 삼키고 있는 후였다. 일영은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그런 일영의 물음에 대한 답은 간결했다.
“혼인 말이다.”
“아.”
그제야 일영은 어떤 부분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건지를 깨닫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과를 받을 만한 부분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는 계속 말을 해보라는 듯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부나가는 그런 일영의 반응에 묵묵히 다시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작금의 오와리는 혼란스럽기가 그지 없지.”
하아.
그녀의 작은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흘렀다.
옅은 술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일영은 슬슬 그만 먹여야하나를 고민하며 그녀의 얘기를 경청했다.
“오와리는 작은 땅이다. 그러나 입지는 결코 그렇지 않지.”
미노에게 오와리는 뒤의 불안요소고, 이마가와에게 오와리는 교로 향하는 핵심 거점이다. 그렇기에 오와리는 대대로 많은 전투를 겪어야 했다.
어쩌면 오다 노부히데가 노부나가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문관의 통치가 필요할지 모르나 난세에는 패도를 걷는 군주가 더욱 유리할 테니까.
‘실제로 역사에서도 오와리는 많은 피를 흘렸지.’
일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일영이 알지 못한 혼인의 내막을 꺼내 들었다.
“가신들이.”
그녀의 하얀 목덜미가 붉게 물든다.
동시에 한없이 포악한 고양이같은 눈매가 살짝 내려가고, 도드라진 송곳니가 드러나며 그녀는 말했다.
“내게 혼인을 하라고 하더구나. 그것도 정략혼으로.”
“예?”
그녀의 말에 당황한 것은 일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아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런 일영의 반응에 노부나가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별난 것이지.”
그녀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가진바 없는 농민들도 땅이나 패물을 미끼로 정략혼을 하는데, 하물며 하나의 국(國)이라 불리는 영토를 가지고 있는 다이묘는 어떻겠는가. 그들에게 혼인이란 가문의 결속력과 권력을 강화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금은 난세.
많은 다이묘들이 죽고 여성 무장들이 후계를 잇는 현재에 결혼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칫하면 가문이 넘어갈 수도 있었으니까.
일부 가신들이 그런 얘기를 꺼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로서도 오와리가 안정되기를 바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들이 가문 대 가문을 생각할 뿐.
오다 노부나가의 의사는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망에 든 가문은 많겠지.”
그녀 정도면 비싸게 팔리는 패였다.
당연한 일이다.
오와리의 지리적 이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오다 노부나가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여인이다. 더욱이 그녀를 가진다는 건 휘하의 영토까지 종속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말이다. 스스로도 그것을 알았고, 어쩌면 정말로 가문을 위해 그래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오다 노부유키의 세력이 더욱 강세를 이뤘다면 말이다. 완전한 세력으로 주변의 강국들에게 맞서기도 모자라, 분열된 상태에서의 전쟁은 필패(必?)일 테니까.
“그런데.”
거기까지 설명한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눈앞에 앉아 멀뚱히 눈동자를 끔뻑거리는 일영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말했다. 그런 그녀의 황금색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담겼다.
“덕분에 살았다.”
그런 의견이 나온 것은 오와리가 2개로 양분되고나서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일영이 오다 노부유키 파와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항복까지 받아내자 여론이 완전 뒤집힌 것이다. 불리하면 모를까. 해볼만할 때에 권력자들은 절대 가진바 패를 팔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명분의 봉쇄랄까.
하지만 한번 그 의견이 대두된 이상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었기에, 오다 노부나가는 일단 질러버린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모리가 이해를 해줘서…….”
그녀의 말을 곱씹는다.
그리고 곧, 일영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솔직하지 못한데.’
저 말을 잔잔히 곱씹으면 마치 정치적인 이유로 차악을 골랐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때문에, 일영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정말로 그뿐입니까?”
“……어?”
순간, 그녀의 시선과 일영의 시선이 맞닿는다. 그러나 일영은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에게 말했다.
“어, 그게…….”
노부나가의 얼굴이 뒤엉킨다.
눈을 동그랗게 떠지고, 왜인지 입술을 짓씹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 물론 일영도 아닌 건 알지만 결혼을 ‘당해버린’ 입장에서 그냥 넘어가기에도 뭐하단 말이지.
때문에, 그는 특유의 능글맞으면서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심술을 좀 부려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
“정말로 그뿐이냐는 말입니다.”
“그, 그건……. 크흠.”
일영의 느긋한, 그러나 은근한 목소리에 오다 노부나가는 볼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인지 쉽사리 답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때였다.
스윽.
일영은 상을 살짝 치우고, 술기운과 부끄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군의 어깨를 부드럽게 말았다. 그리고 확연한 신체 차이 때문에 어긋난 눈높이를 다시금 맞추곤 나지막이 속삭였다.
“서운한데. 그뿐이면.”
일영의 검은, 그러나 살짝 갈색이 섞인 눈동자에 노부나가의 예쁜 얼굴이 비춘다. 동시에 무언의 압박이 느껴진다. 장난기가 뒤섞인 그런 압박 말이다.
달싹.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가 닫힌다.
몇 번이나 그렇게 꿈틀거린 그녀는 이윽고 침을 삼켰고, 곧 깨달았다. 일영은 지금 대답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놀릴 거라고. 때문에, 그녀는 손에 쥔 술잔이 부서지라 꽉 쥔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건 아니다만…….”
“그럼요?”
찌릿.
거기까지 얘기하자 그 이상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노부나가의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일영은 그저 웃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잘못한 쪽이 불리했기에 노부나가는 결국 완전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술기운에 붉어진 뺨과 목이 완전히 붉게 물들고, 이젠 단발보다 조금 더 길어진 그녀의 비단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당연히.”
이윽고 결심을 내린 그녀의 황금 눈동자에 일영이 담기니.
“널, 너를. 히라테 히카게를……. 아니. 백일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냐!”
결국, 그녀는 스스로 말을 했다고 믿기지 않는 부끄러운 고백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음.”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일영.
그는 생각했다.
“장어랑 인삼. 또 뭐가 있더라?”
이대로면 복상사라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