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잠깐의 휴식(7)
* * *
모리 요시나리는 한층 밝아진. ……아니,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환한 얼굴로 히라테 가(家)의 저택을 나섰다.
걸어가는 와중에 무언가 중얼거리며 배를 쓰다듬긴 했지만 그저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조금은 무섭긴 하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되어 봤어야 알지.’
확실한 건, 적어도 어떻게든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과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묘한 기분을 느끼며 밖으로 걸어 나온 일영은 입을 벌리고 크게 하품을 했다.
“하암.”
그새 길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긁으며 마루를 디디자, 경계를 서고 있던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어젯밤과 사뭇 달랐으니.
“…….”
“……크흠.”
히라테 마사히데가 아닌, 히라테 히카게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무라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묘한 섭섭함이나 부러움에 가깝다고 할까?
“어. 으음.”
일영의 눈치는 없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나름 괜찮은 편이라고 자신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어. 심하긴 했지?’
현대의 모텔방도 대놓고 소리를 지르면 방음이 뚫린다. 그런데 과거의 목조 기술로 지어진, 그것도 얇은 한지로 막힌 방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신음을 흘렸으니 그들이 못 들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만약 자신이 저들이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뭘 어떤 기분이야.
당연히 좆같겠지.
누구는 밤새 열심히 호위를 서고 있는데 누구는 밤새 열심히 떡을 치고 있으니. 만약 그가 그들을 막대했다면 진즉 암살당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한창 섹스 중에 말이다.
꿀꺽.
일영은 마른 입가를 혀로 훑으며 침을 삼키곤 생각했다. 그럴 일이 없게 잘해야겠다고 말이다. 차라리 전장에서 칼에 찔려 죽는 게 낫지 밤새 미친 듯이 섹스하다가 부하들에게 뒤통수 맞는 건 사양이니까 말이다.
‘보너스 좀 챙겨주면 되겠지.’
미노의 혼란을 틈타 알음알음 먹은 농토 덕에 올해 오와리의 소출은 꽤 나아질 테니, 그들에게 특별한 보상을 내린다고 해서 책을 잡힐 일은 없을 거다. 더욱이 그를 믿고 적지로 들어갔다가 죽을 뻔했던 이들이 아닌가. 받을 자격도 충분했다.
그렇게 일영이 자아 성찰 아닌 자아 성찰을 하고 있던 사이, 끼이익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남자와 여자가 그를 향해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우웁. 주군을 뵙습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
둘은 일영을 향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각각의 표정은 상이했다.
이츠키는 전날의 숙취로 죽어가는 중이었고, 아케치 미쓰히데는 살짝 볼을 붉히면서 일영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유추할 필요도 없다.
‘……하긴, 경비를 섰을 테니까.’
아케치 미쓰히데의 은색과 핑크빛이 섞인 눈동자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건 흡사 짐승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기에 일영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이츠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쯧. 괜찮냐?”
“……스읍. 예. 머리가 좀 띵하고 숨만 쉬어도 술 내음이 올라오긴 하는데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걸 숙취에 찌들었다고 표현한단다.
그게 사회적인 약속이라서.
일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닥치고 쉬어. 다음부턴 술도 못 먹으면서 그렇게 먹지 말고.”
“……제가 누구 때문에. 아음. 넵.”
잠깐 건방지게 말때꾸를 하려 했던 이츠키는 곧 일영이 한번 스윽 지그시 바라보자 깨갱하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둘 다 진심은 아니었기에 이윽고 너털웃음을 흘렸지만 말이다.
“아예 쉬지는 말고, 안에서 대충 경비서는 척이라도 하고 있어. 내성은 아케치랑 다녀올 테니까.”
“죄송합니다. 주군.”
그렇게 말하는 이츠키의 얼굴은 전혀 죄송한 빛이 없었지만, 일영은 그저 피식 웃고는 아케치와 일부 사무라이를 대동하고 문밖을 나섰다. 그리곤 뒤에 선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말했다.
“날 따라 스에모리로 향했던 사무라이에게 특별히 좀 챙겨줘. 목숨을 건 게 아깝지는 않게.”
“……그, 예. 주군.”
아케치 미쓰히데는 여전히 어젯밤의 여파가 남았는지, 화장이라도 한 듯이 얼굴에 옅은 홍조끼가 돌았다. 그때, 갑자기 멈춰선 일영이 스윽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근.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일영의 살짝 길어진 머리카락을 스쳤고,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동자에는 일영의 수려한 얼굴이 모두 담겼다.
밤새 힘을 쓴 탓일까.
조금은 수척해진 뺨이 오히려 가뜩이나 작았던 얼굴을 갸름하게 만들고, 전장을 나도는 장수라고 생각할 수 없이 하얀 얼굴은 혹시 분칠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이목구비는 뭐…….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윽고, 일영의 붉디붉은 입술을 살짝 열리며 그녀는 내심 가슴을 졸였다. 무슨 말을 할까.
혹, 수고했다는 말을?
어쩌면 이유 모를 경계가 조금 풀리고 내게 마음을 연 것은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는 노히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키쵸를 도와야 하겠지.
……그런데 왜일까.
‘심장이…….’
이유를 모르게 심장이 고동쳤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때마침 귓가로 들어온 일영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일영이 자리에 서서 그녀에게 특별히 지시한 사항은 다름이 아니라.
“이츠키 건 빼고.”
“네?”
“응?”
이츠키 건 빼고.
그 단어가 그녀의 머리에 입력되었다가 삭제되기를 반복하고, 곧 그녀는 일영의 말이 ‘사무라이들에게 수고비를 지급하되 이츠키 거는 빼라’라는 말임을 깨닫고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뜻이었구나.
“아케치?”
그러자, 일영은 갑자기 고장난 아케치 미쓰히데의 앞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무슨 문제 있나?”
“아, 아닙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레고 그제야 정신이 되돌아온 아케치 미쓰히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일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왜 저래?”
*
히라테 가(家)의 저택은 기요스 내성과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지척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걸어야 했다. 때문에 거리로 나선 일영은 머잖아 한층 달라진 공기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거리로 나서자 숨을 죽이고 눈치를 보는 백성들을 응시했다.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부군으로 일영을 택한 게 바로 어제니까,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선 일영을 어려워하는 게 당연하겠지. 때문에, 일영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사무라이들을 통솔하는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말했다.
“걸음을 좀 빨리 옮겨야겠다.”
“예. 주군.”
아케치 미쓰히데도 주변의 분위기를 읽은 지 오래였기에, 그녀는 뒤에 선 사무라이들에게 호위를 엄중히 할 것을 눈짓한 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흐음.”
당연히 사무라이들 역시 눈을 번뜩이며 호위에 만전을 기했고 말이다.
잠시 후.
민가를 지나 기요스 내성까지 다다르자, 곧 그를 발견한 기요스 성의 경비병들이 손에 쥔 창을 바닥에 일자로 세우곤 외쳤다.
“부군을 뵙습니다!”
이미 호칭도 부군으로 정해진 건가.
일영은 작게 웃고는 그들을 지나쳐 내성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를 막을 수 있는 경비병들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게 안으로 향한 일영에게 경비를 서던 이들은 모두 기립하며 군례를 올렸다. 그 안에는 충성심은 없을지언정 적의 역시 없었다. 모두 노부나가의 아시가루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막상 내성으로 오기는 했는데, 문제는 노부나가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마침 지나가는 관리를 향해 걸었다.
“이봐.”
“응? 어, 어헉!?”
다소 지친 얼굴로 내성 밖을 향하던 관리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을 담아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대상을 확인하자 곧 숨을 집어먹는 소리를 내뱉고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눈이 옹이구멍이 아닌 이상에야 현재 오와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히라테 히카게일영을 모를 리가 없다. 특히 전장에 서지 않은 문관들은 풍문과 아시가루, 사무라이들이들고온 야차에 대한 소문 때문에 한층 더 두려움이 강해진 상태였다. 때문에, 그는 혹여 자신이 그에게 무슨 책이라도 잡힌 것인가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할복하는 상상을 하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일영은 은연중 나긋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당주님은 어디에 계시지?”
“예?”
당주님.
그 말에 잠시 고장이 났던 문관은 자신도 모르게 그 ‘야차’에게 반문했다는 걸 깨닫고 사색이 되어 다급히 답했다.
“처, 천수각에 계십니다!”
“그런가. 고마워.”
그럼 거처에 있다는 말이다.
일영은 척 보기에도 괜히 겁을 집어먹은 문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곤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철그럭.
그의 뒤를 따르는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그를 힐끔 바라보며 걸어갔고, 문관은 키가 180cm가 넘는 일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윽고 중얼거렸다.
“……저게, 야차.”
생각보다 더.
아니, 존나 무섭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