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잠깐의 휴식(6)
* * *
짹짹.
서로의 온기를 더욱 갈구하듯이 끌어안는 남녀의 귓가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음…….”
귀를 어지럽히는 그 지저귐에 일영은 미간을 좁히며 잠시 뒤척거리다가 천천히 눈을 떴고, 그와 동시에 물컹거리는 무언가가 차게 식은 가슴팍을 스쳤다.
“음?”
비몽사몽 한 정신을 일깨우며 살짝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곧 시야를 가득 메우는 크고 아름다운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후으…….”
쇄골을 간지럽게 만드는 모리 요시나리의 부드러운 숨결이 스친다. 그제야 일영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너무 흥에 취했나.’
정확히 말하면 섹스에 취한 거려나.
그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가 깨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격하게도 했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그들이 주로 정사……를 나눴던 곳의 다다미는 아예 얼룩들이 점점이 남아 있었고, 중정이 보이는 개방된 곳임에도 아주 옅은 정사의 잔향도 느껴졌다.
덕분에 일영은 뒤늦게 밖의 사무라이들이 들었으리란 생각을 하며 웃었다.
‘뭐, 괜찮으려나.’
어차피 모리 요시나리와의 관계는 알 사람들은 다 알고, 더욱이 완전히 믿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오와리에 살려면 입을 다물테니까 말이다.
이럴 땐 권력이 참 좋다.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탄탄한 품 안으로 더욱 머리를 밀어 넣는 모리 요시나리를 살짝 내려봤다.
“후으으.”
“하.”
좋은 꿈을 꾸고 있는지, 옅은 미소를 띤 채로 뒤척거리는 모습이 썩 귀엽다.
‘가슴도 그렇고 전장에서 창을 들고 있으면 그렇게 무서우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
일영은 남들이 들으면 팔불출이라고 생각할 법한 생각을 하면서 슬며시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맨살을 그나마 보온해주던 얇은 옷가지들을 그녀의 몸 위로 덮어주고는 묵묵히 그녀가 자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으. 으음.”
지난밤의 격렬한 입맞춤으로 입가가 말랐는지, 몇 번 입술을 쩝쩝거리던 모리 요시나리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 눈이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깜빡거리더니 머리 바로 위에서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일영에게 닿았다.
“……일영?”
갑작스럽게 눈앞에 보인 그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잘 잤어?”
하지만 곧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눈치챈 그녀는 일영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그제야 그녀는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린 듯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때.
일영은 장난기가 돌은 듯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을 살짝 아래로 넣어 그녀의 매끈한 배를 쓰다듬었다. 지난밤 그녀의 배를 핥은 적이 있었기에 다소 반들반들했다.
“이, 일영.”
갑작스러운 그의 스킨쉽에 모리 요시나리는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설마 아침에도?’나 ‘나 힘들어…….’ 따위의 본심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배를 만진 건 그런 의도가 아니라…….
“그냥, 우리 아기가 잘 있나 궁금해서.”
“아, 아기……!”
아기.
그 단어에 모리 요시나리는 눈동자가 찢어질 듯이 커졌다가 이내 시선을 자신의 아랫배로 향했다. 그리고 곧, 조금 전 잠에서 깨어나 잊고 있던 어젯밤 광란의 섹스를 떠올리고 조금 떨리는 손으로 아랫배를 쓸었다.
“살짝 부풀어 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그녀를 향해 일영이 짓궂게 속삭이자 모리 요시나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붉혔다. 좋기는 한데,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걸리는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아, 아기 생기면 못 싸우잖아아…….”
그치만 가장 걸리는 문제는 역시 그거였다.
아기가 생기면, 그러니까 임신을 하게 된다면 전투는 할 수가 없다. 말을 타는 것부터 난항일테고 자칫 잘못하면 일영과 소중한 결실인 아이에게 무리가 갈 수도 있으니까.
만약 정말 최악까지 가정한다면…….
순간, 그녀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나 그때.
“걱정하지마.”
일영은 다소 암울한 생각을 하는 모리 요시나리의 회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고는 잔잔히 웃었다.
“임신이 쉽게 되면 좋은 거고, 만약 임신이 된다면 너와 아이는 모든 걸 걸더라도 지켜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실 확신하고 있었다.
질 안에, 그것도 자궁에 거의 근접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이 박고 쌌으니까.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거진 10번을.
이런데도 임신을 하지 않으면 둘 중 한 명이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다.
“그, 그래도.”
그런 일영의 부드러운 속삭임에도 모리 요시나리는 완전히 불안이 풀리지 않았는지 입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와락.
일영은 그녀가 더 말을 하지 못하게 자신의 품 안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다시 화악 달아오른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니.
“일단, 밥부터 먹을까?”
아니나 다를까.
꼬르륵.
살짝 볼록하게 도드라진 요시나리의 탄탄한 배에서 공복의 알림이 울렸다. 그러자 잠시 침묵한 요시나리는.
“……으, 으응.”
아주 작게 화답하며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라도 시선이 마주치지 않게 더욱 얼굴을 파묻으며 말이다.
*
그들이 정사를 나눈 방은 시종들에 의해 빠르게 치워졌다. 아예 못쓰게 된 다다미 몇 개를 드러내고 냄새를 없애줄 탈취 역할의 식물즙을 몇 번 뿌려야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모든 일은 조용히, 믿을만한 시종들에 의해 처리되었다.
다다미는 일영의 거처 뒷마당에서 태웠고 말이다.
그렇게 얼추 상황이 정리가 되자 일영은 알게 모르게 볼을 붉힌 여시종들에게 밥을 내오게 시키곤 곁에 앉은 모리 요시나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리곤 조금은 멍한 눈으로 옷 아래에 있는 배를 쓰다듬는 그녀에게 살짝 웃음기를 띠고 물었다.
“왜 그래?”
“아니. 어.”
그의 물음에 모리 요시나리는 고개를 돌려 일영을 바라보곤, 이내 옅게 홍조를 띤 채로 시선을 내린 채 나지막이 화답했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생각해보면 그러네.”
그녀의 고민에 일영도 내심 동감했다.
부모가 된다라.
생각해보면, 그로서도 딱히 고민해본적은 없는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게, 나에겐 먼 얘기였으니까.’
고백이나 연애는 몇 번 해봤어도 진지한 관계라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조금은 소모적인……. 그러니까 단지 동질감과 성욕, 나아가 외로움으로 했던 연애라고 해야 할까.
‘물론, 요시나리는 아니지만.’
일영은 고마운 고민을 해주는 요시나리의 어깨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때.
끼이익.
“도련님. 시,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문을 열고 꽤 정갈하고 푸짐한 식사를 가져온 시종들은 너무나 단란하고 애틋한 둘의 모습에 볼을 붉히며 빠르게 상을 차렸다.
“고마워.”
그런 그들에게 일영은 간단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말이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곁에서 느껴지는 묘한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모리 요시나리가 살짝 토라진 얼굴을 하며 그를 흘겨보고 있었다. 아마도 이유를 모르면 바보가 아닐까.
일영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토라진 것도 예쁘네.”
“이럴 때만.”
하지만 너무 판에 박힌 칭찬이었을까.
모리 요시나리가 턱도 없다는 듯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그녀가 놓친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일영이 어중간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럴 때만이라니. 섭섭하게.”
그는 능글맞게 웃고는 슬며시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귓가로 숙였다. 그리곤 새하얀 이빨로 살며시 귓불을 깨물곤 속삭였다.
“……어제 그렇게 말해줬는데.”
“……으!”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모리 요시나리는 이보다 더 붉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볼을 붉히며 눈동자를 굴렸고, 곧 일영이 무언가 더 말하려 입을 열자 다급히 상에 올려진 젓가락을 쥐며 말했다.
“머, 먹자!”
그리곤 혹여라도 그가 더 놀리지 못하게 손수 밥을 퍼서 그의 입 앞으로 밀어 넣었다. 어째 섹스를 할수록 더욱 귀여워지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일영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곧 입을 벌려 밥을 받아 먹었다.
우물.
쩝.
둘은 식사를 시작했다.
어젯밤 너무 힘을 써서 그런지, 둘 다 빠르게 밥그릇을 비워나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둘의 배가 불러갈 무렵.
일영은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곤 아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있잖아.”
“응?”
“아기 이름. 뭘로 짓지?”
“어, 그야 당연히.”
모리 요시나리는 입 안에 밥을 넣고 씹던 도중 그대로 멈췄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해보니 꽤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단 일영은 성이 2개다.
히라테 가(家).
그리고 백 가(家).
그러면 히라테 가(家)의 성씨를 따르면 되지 않는가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일이 복잡해진다.
먼저 과거와 달리, 전국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여성 무장이 당주가 될 수 있게 되자 당연히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오와리의 당주가 누군가.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나가다.
그리고 일영은 그녀의 부군.
즉, 일영이 오다 가문으로 들어가는 형태를 띤다는 말이다.
때문에 모리 요시나리와 낳은 자식이 일영의 성을 따르면 자칫 엄청난 개족보가 만들어질수도 있었다.
‘어떡하지?’
모리 요시나리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러나 그때.
일영은 뭐가 큰 문제냐는 듯이 말했다.
“그럼 모리 가(家)로 입적하면 되지 뭐.”
“어?”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모리 가문에는 그녀 말고 후계도 없다. 그러니 오히려 그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모리 요시나리는 어딘가 조금은 서운한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 선을 긋는다고 느낀 건 아닐까.
때문에, 일영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배시시 웃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조선 이름에는 내 성을 붙이는 거야.”
“어?”
“왜국 성은 모리. 조선 성은 백. 어때? 공평하지?”
“아…….”
그제야 모리 요시나리는 깨달았다.
적어도 일영의 방식이 최선이고, 설마 최선은 아니더라도 그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지 말이다.
물론 일영은 그저 그러면 좋지 않을까정도의 생각으로 말한 거였지만, 그녀가 그것을 알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곧 그녀는.
“응!”
어젯밤보다 더욱 밝게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