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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94화 (94/171)

〈 94화 〉 잠깐의 휴식(2)

* * *

히라테 마사히데가 준비한 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일본 역시 가부장적인 문화는 남아있었기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일영이 편히 식사할 수 있게 먼저 젓가락을 쥐었고, 넓은 방 안에서 두 사내는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달그락하며 밥을 먹는 소리만 울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반쯤 밥을 비운 일영에게 히라테 마사히데가 말했다.

“그래서, 당주님의 마음은 언제 얻은 것이냐.”

“예? 아.”

생각해보면 히라테 마사히데에게 직접적으로 노부나가와의 관계를 밝힌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내심 당황스러울 수도 있음에도 그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넘긴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평소에도 종종 소문이 돌긴 했다. 다만 모리 공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안다만…….”

“예, 뭐…….”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주군을 위해 할복까지 할 정도인 히라테 마사히데가 어떻게 생각할 줄 몰라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혹시라도 나쁘게 보면 어쩐다.

일영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나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은 없는데.

……없나?

일영은 자아성찰과 내로남불의 사이를 헤메고 있었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히라테 마사히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되었다. 본디 잘난 이에게 사람이 붙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니 말이다.”

당대의 이름난 이에게는 언제나 이성이 뒤따랐고, 명예와 재물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일 뿐이다.

탁.

“다만 그것에 빠져선 안 된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히라테 마사히데는 먹던 밥그릇을 가볍게 내려놓고는 그 점을 강조했다. 왜인지 진짜 아버지같은 조언에 일영은 가볍게 웃으며 화답했다.

“예. 의부.”

“그래.”

둘 사이에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고, 이후에는 간단한 정치 이야기였다. 작금의 미노와 이마가와 측의 정세를 전해받은 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히라테 마사히데는 굳이 대화를 길게 끌지 않았다. 그 나름대로의 배려였던 것이다.

“아, 도련님.”

“수고가 많아.”

일영은 마주치는 히라테 가의 시비들에게 웃어주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꽤 오랜만에 온 그곳에는 이미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를 필두로 한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이 서 있었다.

“도련님.”

그가 오자 사무라이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를 반기려 했으나, 일영은 가볍게 손을 젓고는 말했다.

“다들 쉬어.”

“예?”

일영의 명령은 분명 반가웠으나 조금은 갑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있는 사무라이들이 일영을 따르는 이들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터인데, 이들이 쉬면 그는 누가 보필한단 말인가.

“이츠키만 남고, 전부 가족이라도 보고 와. 저녁이 되기 전에만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일영도 나름 진지했다.

솔직히, 최근 나다닌 전장이 몇 개인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태반은 일영을 뒤따라 그곳 전부를 함께 돌아다닌 이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찌 보면 제일 안전할 때니까.’

미노는 여전히 내부를 수습하느라 바빴고, 이마가와 측은 한창 호조­다케다­이마가와 3국 동맹을 다듬는 데에 시간을 쓰고 있다.

즉, 2곳은 오와리에 큰 신경을 쏟기엔 시기적으로 너무 바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오와리 내부는?

말할 것도 없이 오다 노부유키 측은 며칠 내로 정리가 될 것이고, 오다 노부나가 쪽의 중신들 역시 지금은 몸을 사릴 게 확실하다.

일전의 경고도 있었고, 지금 암습을 한다는 건 가문은 물론 관련된 모든 이들까지 함께 담보로 잡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도박을 하는 건데……. 과연, 그 정도 깡이 있는 중신이 남아 있을까?

‘차라리 있으면 좋겠네.’

일영은 얼떨결에 휴가를 받아서 자리를 떠나는 사무라이들을 웃으며 배웅하며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직접 다 죽여버리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일영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일영의 그런 표정을 본 이츠키가 조금 두렵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또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 아냐. 그냥.”

잠시 이츠키에게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말해줄까도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일영은 어느새 텅 비어버린 전각의 앞마당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다들 좋아했지?”

“그럴 수밖에 없죠.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이번 휴식 이후엔 더욱 고된 일들이 벌어지라는 것을.”

이츠키의 푸념 섞인 말에 일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작금의 오와리는 절대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장 미노와 이마가와 뿐만이 아니라, 저 멀리 쿄(교토)까지 다다르려는 열도의 수많은 다이묘들이 지금도 열심히 힘을 키우고 또 서로를 향해 칼날을 갈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뭐……. 나중의 일이고.’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영은 불만 없이 곁에 남은 이츠키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곤, 그에게 말했다.

“이츠키.”

“예. 주군.”

“술이나 한잔할까?”

싫다고 하면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영의 말에 이츠키는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좋죠. 차려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휘이잉.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일영의 뺨을 스쳤다.

슬슬 완전히 풀리기 시작한 날씨는 다가올 전투를 알리는 것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것 생각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곧, 두 사내는 술잔을 기울였다.

*

“……으어.”

환하게 대지를 비추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은빛의 달이 하늘에 우뚝 선 시간. 이츠키는 거의 죽어가는 표정으로 마루에 누워서 몸을 떨었다.

주군의 앞에선 실로 불경한 자태였으나, 정작 앞에 선 일영은 머리를 긁적거릴 뿐이었다. 그때, 노히메키쵸를 만나고 돌아온 아케치 미쓰히데가 조심스럽게 일영에게 말했다.

“얼마나 드신 겁니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취해서 구를 정도로 마시진 않았는데. 일영은 대충 널브러진 병 개수를 바라보다가 살짝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츠키가 술이 약한가 봐.”

그의 말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질린다는 듯 널브러진 술병을 세었다. 족히 20병은 넘는다. 그렇다고 일영 역시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아.”

그는 스스로 눈치를 채지 못했을지 몰라도, 일영 역시 얼굴이 달아오르고 조금은 무방비함을 풍기고 있었다.

“아, 더워.”

일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목덜미를 긁었고, 아케치 미쓰히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츠키 님은 제가 데려가지요.”

“어? 아……. 그래.”

그녀의 말에 일영은 아쉽다는 듯 혀로 입술을 훑었으나, 내심 자기도 조금 취했음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곧바로 쓰러진 이츠키를 가리키며 뒤에 선 사무라이들에게 명령했다.

“모셔라.”

“예!”

그러자 히라테 가의 사무라이들이 이츠키를 업듯이 챙겼고,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온 이츠키는 외쳤다.

“히끅! 도, 도련님. 주무……. 으에에.”

“그래. 그래.”

일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기에.

“그럼.”

아케치 미쓰히데는 일영에게 목례를 하고 이츠키를 처소로 데려갔고, 곧 시녀들이 다가와 그의 마루에 놓인 상들을 빠르게 치웠다. 그들 중 일부는 술에 취해 한창 무방비해진 일영을 상대로 묘한 시선을 보냈으나, 정작 일영은 반쯤 한량과 같은 모습으로 벽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하아.”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자 술 내음이 스친다.

생각보단 많이 마셨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할 수많은 일들이 그의 휴식을 방해했다.

당장 직면한 것은 오케하자마.

그러나, 오케하자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찌보면 마츠다이라(??) 가문이었다.

그곳에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훗날 열도를 삼키고 에도 막부를 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다.

‘지금은 여자랬지.’

과거 노부나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한때의 소꿉동생이었다며 말하곤 했다. 과거 미카와 국(마츠다이라 가문의 영토)에서 포로로 보냈을 때겠지.

“일단, 만나봐야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도쿠가와는 놓치기 싫은 인재다. 그녀 역시 야망이 있을 테지만, 노부나가가 죽기 전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제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닐까.

일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굴 만나?”

바로 귀 옆에서 들려오는 나긋한 목소리.

그것에 반응한 일영은 반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두 눈을 가득 채우는 회색 빛의 머리카락을 본 순간 입을 열었다.

“모리…….”

그러나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으니.

으읍.

곧바로 포개진 붉은 입술이 그를 덥쳐왔기 때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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