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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93화 (93/171)

〈 93화 〉 잠깐의 휴식(1)

* * *

“나만의 남자다.”

기요스 성 바로 앞에 모인 이들은 순간적으로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노부나가의 선언……. 아니, 고백은 갑작스러웠고 또한 놀랍기가 그지없었으니까. 오죽하면 긴 세월 동안 정치를 했었던 이들조차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히라테 마사히데만큼은 달랐다.

“부군을 뵙습니다.”

태산과도 같은 풍채를 가진, 그러나 무인보단 냉철한 문신의 자태를 뽐내는 그가 먼저 입을 열자 뒤늦게 근처에 있는 이들도 반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히라테 마사히데.

전대(??)의 중신임과 동시에, 작금의 오다 노부나가 체제하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가신이 아닌가. 그리고 눈앞에서 다이묘의 부군으로 간택된 백일영히라테 히카게는 바로 그의 양자였다.

즉, 지금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다이묘는 물론 전무후무하게 권력을 잡을 외척 가문과도 척을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부군을 뵙습니다!”

물론, 모두가 축복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부군을 뵙습니다.”

일부는 올 게 왔다는 듯이 웃었으나, 일부는 시기와 질투, 혹은 모멸감 따위를 담아 마지못해 외쳤다.

“……에?”

그러나 이츠키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아마, 제일 충격을 받은 것은 일영에게 홀린 수많은 여자들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

모리 요시나리는 차라리 괜찮다.

그녀는 이미 노부나가와 이야기를 나눴는지, 조금은 당황하긴 했어도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다 노부유키나 시바타 가쓰이에는 그 자체로 굳었으며, 심지어 아케치 미쓰히데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츠키는 지난 1년간 늘어난 눈치로 주변을 살피며 생각했다.

‘어쩌면…….’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했던, 2자리 수의 부인이 실현되는 건 아닐까. 왜인지, 진심으로 두려워지는 그였다.

그러나 그때.

“와아아아아아아아!”

갑작스럽게 군중들 사이에서 울려 퍼진 환호성에 이츠키를 비롯한 이들은 고개를 돌렸다.

“화끈하십니다! 다이묘님!”

“오다 가문 만세!”

민초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에게 눈앞의 광경은 그저 귀한 족속들의 연애사를 직관하는 그야말로 진귀한 모습일 뿐이었고, 한 짓궂은 외침으로 시작된 환호는 곧 분위기를 걷잡을 수 없이 끌고 가기 시작했다.

“뭐여, 무슨 일인데?”

“아니 글쎄…….”

웅성거림은 금방 전파가 되었고, 환대식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딴짓을 하던 이들까지 그런 그들의 모습에 궁금함을 가지고 비척비척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더 이목이 쏠리자 일영은 다급히 앞에 서 있는 노부나가에게 눈짓과 함께 거의 복화술에 가까운 읍소를 해야 했다.

“……뭐가 되었든, 수습 좀 해보세요. 주군.”

“흐응. 나쁘지 않은 환호거늘.”

그러나 1분 1초마다 늙어가는 일영과 달리 노부나가는 볼에 옅은 홍조마저 띄운 채 작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한 것인지, 그녀는 크흠소리와 함께 붉디 붉은 입술을 열었다.

“그럼, 이만 들어가지.”

적어도 이제 오와리에서 그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전무(?無)하기에, 그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때문에 그녀는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자 실로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기요스 성 안으로 향했다.

물론, 그들이 사라진다고 눈앞에서 보았던 파급력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야, 그럼 곧 후계가 생기시는 건가?”

“하긴……. 저만한 사내가 어디에 있나. 누구라도 탐낼 만도 하지.”

“무슨 소리! 우리 아가씨, 아니 당주님이 더 아깝지!”

그들은 한참이나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렇게 대화를 나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작금의 오와리에서 한동안 가장 뜨거운 가십거리는 이번 일이 되리라.

“…….”

그리고 그 시각.

민초들 사이에서 태연한 얼굴로 풀을 씹던 한 남자는 배를 긁으며 조금 전의 일을 복기하곤, 곧바로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민가와 민가가 뒤엉킨 굽이진 골목 사이에는 너무 낡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담장이 서 있었다. 그는 그 담장 아래 틈새로 손을 집어넣기 전 주변을 살폈다.

인기척은 없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곤 틈 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고, 곧 작은 새장에 갇혀 있는 전서구를 꺼내 품 안에 넣어두는 작은 쪽지에 무언가를 적어 놈의 다리에 묶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그는 언제 한량과 같은 얼굴을 했냐는 듯 전서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말했다.

“자, 어서 날거라.”

구루룩.

그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알아들었는지, 전서구는 찌뿌등한 몸을 한번 가볍게 털고는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어? 아저씨 뭐해요?”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

남자는 그리 빠르지 않게 고개를 돌렸고, 곧 작은 손에 무 하나를 쥐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

남자는 주변을 살폈다.

분명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보니 소년은 골목 어귀의 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얘야.”

남자는 선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었다.

살짝 갈라진 틈 사이로 보자, 안에 있는 것은 노환으로 쓰러졌는지 누워있는 할멈뿐.

“배 안 고프니?”

남자, 아니. 닌자는 멀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보는 작은 소년에게 선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어, 저 배고…….”

그리고 소년이 답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스릉.

품에서 뽑힌 단검이 빠르게 소년의 목덜미에 꽂히고, 그와 동시에 닌자는 집 안으로 소년을 끌어안고 들어갔다.

푸슉, 푸욱!

짧고 간결한 피륙음이 울린다.

그리고 이내 끼이익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남자는 핏물이 묻은 옷가지를 대충 집 안으로 던진 후에 저 멀리 비둘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응시했다.

“잘 가네.”

소년과 할머니를 살해했으나, 그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곤 품 안에서 부싯돌을 꺼내며 생각했다.

은근히 피 냄새는 걸리기 쉽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농민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사무라이들은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아쉽긴 하지만, 기요스에 더 머물기엔 위험이 있으니 당분간 숲속 은신처에 숨어야 하리라.

타악, 타악.

화르르륵!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불을 붙였고, 곧 비둘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나 있는 담벼락을 넘었으니.

그가 향한 방향은 다름이 아닌 이마가와의 영토 쪽이었다.

*

짧게 노부나가를 독대한 직후.

그녀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하자며 일영에게 본가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 당연히 일영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논공행상이야 차후에 하면 되는 일이고, 노부유키 측 가신들이 노부나가를 마주하려면 어차피 며칠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길들이기지.’

지금이야 저들이 노부나가에게 굴복했다고 한들, 다시금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 짓밟아 둘 때 확실히 각인을 시키는 게 낫지 않겠는가.

……다시금 반역을 일으키면, 그때 돌아오는 건 오직 핏물뿐이라는 걸 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히라테 가문의 문턱을 넘은 그때였다.

“왔구나.”

여전히 낮고 중후한 목소리.

그러나, 처음과 달리 어딘가 묘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곧 히라테 마사히데를 필두로 한 이들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일영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그의 뒤를 따르는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 역시 마사히데를 향해 무릎과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당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그 자체로 믿음직스러웠기에, 히라테 마사히데는 실로 드물게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때.

총총.

한쪽 무릎을 굽힌 일영의 앞으로 작은 체구의 누군가가 빠르지만 묘하게 기품을 갖춘 걸음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세요.”

“우에몬?”

그리고 곧 내뱉어진 목소리를 듣자, 일영은 그게 누군지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정갈한 검은 똑단발.

기모노와 무표정.

모든 것이 의동생인 히라테 우에몬을 가리키는 것이었기에. 다만 1년이란 시간이 지난 탓인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성숙해진 얼굴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일영은 기특하게도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불러주는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말했다.

“고맙다.”

“허허.”

두 의남매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든 것일까.

히라테 마사히데는 너털웃음을 지은 후, 말을 이었다.

“할 말은 많지만, 다만 이 말을 하고 싶구나.”

그는 성큼 그에게 걸어와 말했다.

“고생했다.”

고생했다언뜻 무미건조하고 간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일영은 둔하지 않았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큼.”

그런 일영의 답이 조금은 낯간지러웠던 걸까.

히라테 마사히데는 가볍게 마른 기침을 내뱉고는 무심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식사를 차려놓았다.”

노부나가를 짧게 독대했다고 한들,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상태였다. 마침 배가 고팠기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오라버니.”

그러나 그때. 히라테 마사히데가 조금 멀어지고 일영이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들여오는 나지막한 우에몬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곧 자신의 허리 위를 간신이 넘을 듯한 우에몬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왜 그러니?”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조금 무뚝뚝하다고 해서, 이 어린아이가 귀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무슨 말을 하려나.

옛날부터 똑똑했던 아이니, 전황이나 양부인 마사히데에 대해 조언을 건넬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비단 일영의 것이 아니었기에, 사무라이들 역시 이 작지만 똑똑한 아가씨가 무슨 말을 할지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않으셔서.”

그러나 곧 그녀의 입술이 달싹거리고.

일영이 다시 말해주겠니라고 하려던 그 순간.

“다치지 않으셔서……. 다, 다행입니다. 오, 오라버니.”

우에몬은 그렇게 말한 후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곤, 일영이 답을 하기도 전에 걸음을 옮겨 자리를 피했다. 그런 우에몬의 모습에 일영은 물론 자리에 있는 모두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전의 그 모습은 평소 늘 냉철했던 우에몬이 아주 드물게 보인 ‘나이에 맞는 귀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츠키.”

“예.”

잠시 우에몬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일영은 곁에 선 충신의 이름을 불렀고, 이츠키 역시 마찬가지로 그쪽을 응시하며 답했다. 그러자 일영은 진심으로 말했다.

“나중에 우에몬이 사윗감 데려왔을 때, 변변찮으면 딱 목숨만 살려서 보내는 게 옳겠지?”

“그럼요. 아가씨만 아니면 삼족을 멸하는 게 옳은 데 말입니다.”

암, 그래야지.

일영은 생각했다.

……이게 여동생 키우는 맛이지.

라고 말이다.

동시에 느꼈다.

잠깐이지만, 쉴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음을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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