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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86화 (86/171)

〈 86화 〉 야차와 오니

* * *

시바타 가쓰이에는 가면을 쓰고 일영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곧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당황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끄아아악!

비명과 함께, 히라테 가문의 사무라이들이 상처를 끌어안고 쓰러진다. 스무 명 남짓한 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얼핏 봐도 백 명은 거뜬히 넘을 듯한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일영은 입술을 짓씹은 채 곁에 선 이츠키를 불렀다.

“이츠키.”

“예.”

그래도 일영을 데려왔다는 점에서 조금은 안정이 되었는지, 그는 거칠게 내쉬던 숨을 고른 채 화답했다. 그리고 때마침 아케치 미쓰히데 역시 그들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며 일영은 물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

스에모리 성을 모조리 불태우고 도타 고젠과 노부유키의 목숨만 붙여서 데려가는 방식도 있었다. 이 성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죽여서 강물을 피로 물들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하지 않았다.

그 자신의 상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와리가, 그리고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알고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노부유키와 도타 고젠과 대화를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끔찍하게도 멍청한 저놈들을 염두에 두지 못한 생각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일영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타 고젠,

노부유키.

너희가 보낸 답이 결국 이것이라면, 그도 더 봐줄 이유가 없었다.

“주군……!”

때마침, 달려온 아케치 미쓰히데가 다급한 얼굴로 도망을 입에 담으려 했다. 백이 넘는 숫자와 무장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스물. 이미 승패는 나 있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그러나 그 순간.

“아케치 미쓰히데. 이츠키.”

일영은 자신의 수족이 된 둘의 이름을 읊조렸고, 곧 스릉소리와 함께 검을 뽑고 말했다.

“시바타 공을 지켜라.”

“예?”

“그, 그럼…….”

도주가 아닌 호위를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시바타 가쓰이에조차 일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일영은 어느새 달려오는 사무라이를 향해 걸으며 덧붙였다.

“금방 돌아오마.”

그리고 그때.

“죽어어어!”

긴 창을 찌르는 사무라이의 모습에 일영은 가볍게 놈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창대를 잡아 묶고는 검을 그었다.

서걱,

“끄르륵…….”

단 한 번의 횡베기.

그것에 이름 모를 사무라이의 목숨이 끊어졌다. 일영은 추락하는 시체를 거들떠보지 조자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사무라이가 외쳤다.

“히라테 히카게를 사로잡아라!”

“수적으로 우리가 훨씬 우세해! 걱정하지 말고 밀어붙여라!”

그들의 말대로, 백 명이 넘는 병력과 고작 스물 남짓한 병력과 싸우면 스물 남짓한 병력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밀려오는 놈들을 베는 사무라이들 중 부상이 없는 이가 없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헉!”

또 한 명의 사무라이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히라테 가문에 종사하는 사무라이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름이 아닌 일영의 명령으로 인해 스에모리 성으로 들어오게 된 것일 터.

“끄르륵…….”

그러니, 지금 자신의 발치에서 갈라진 복부의 출혈을 끌어안고 죽어가는 것 역시 온전히 일영의 책임이었다.

너무 안일했던 것일까.

이미 판도가 정해진 일이었고, 그것을 똑똑한 노부유키와 도타 고젠이 모르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모녀는 일영의 호의를 배신했다.

그것이 너무나 화가 나, 일영은 달려드는 사무라이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림으로서 그것을 표출했다.

서걱, 툭!

단 일검(一?).

추락한 목덜미가 바닥을 구르고, 동시에 핏물을 흩뿌린 듯한 궤적이 흙바닥에 점점이 늘어진다.

스윽.

그는 얼굴에 튄 핏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을 포위하기 시작한 사무라이들에게 살기가 어린 표정으로 읊조리니.

“백기를 들고 대화를 하러 온 이를 공격하고, 그 부하들을 죽였다.”

아무리 난세라고는 하나, 최소한의 규칙은 있는 법이다. 하다못해 이보다 더한 과거에도 대화하러 온 사신을 베는 일은 적어도 지탄받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젠 나를 베기 위해서 이리들 몰려오니…….”

스릉.

오다 노부나가에게 선물 받은 오니마루 쿠니츠사의 검신이 은빛으로 번뜩이고, 그는 서늘한 안광을 터트리며 덧붙였다.

“너희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선, 그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그렇기에 일영은 놈들에게 어떠한 자비도 베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성인군자도 아닐뿐더러.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파앗!

일영은 오니마루 쿠니츠사에 맺힌 핏물을 가볍게 털어버린 채 놈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팔다리 쯤은 베도 괜찮다!”

“살려만 두면 돼!”

머지않아, 사무라이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

아케치 미쓰히데는 멍하니 일영의 뒷모습을 좇았다. 아니,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적, 아군 가릴 것 없이 그의 무위를 지켜보기 바빴다.

앞에서 검을 찌르는 공격을 흘리고, 어깨로 얼굴에 낀 가면을 찍은 후 발을 걸어 넘어트린다. 뒤이어 상단세를 취하며 검을 내리치려는 공격을 막아내고 상대의 허리춤에 있는 단도를 꺼내 폐를 찔렀다.

그 모든 일이 단 1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야말로 물 흐르듯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받아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어째서 그가 야차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단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그도 무적은 아니었다.

“큭!”

때때로 미처 다 피하지 못한 검격이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때때로 허벅지를 베였고, 그리고 종종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승기를 잡고 있는 것은 백명이나 끌고온 놈들이 아니라 스무명 남짓한 병력을 이끌고 있는 일영이었다.

벌써 그의 손에 목숨을 잃고 쓰러진 사무라이가 열명은 넘는다. 그리고 여전히 포위당하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물러서지 않고 놈들을 베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순간 사무라이들이 수적으로 열세인 그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때.

“아케치!”

“예!”

이츠키의 외침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달려드는 아시가루를 베었다. 사무라이들은 일영에게 집중적으로 투입되었기에, 시바타 가쓰이에를 호위하는 그들로선 아시가루를 상대하면 되었다.

물론, 일영과 맞먹는 무용을 가진 시바타 가쓰이에가 합류한다면 모두 베는 것도 꿈은 아니겠으나, 상황이 너무 복잡했다.

“…….”

시바타 가쓰이에.

비록 항장이고, 일영과 함께 머무르고는 있다 하나 그녀는 엄연히 노부유키의 사람이다. 전장에서 진 것은 용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일영과 함께 싸우게 된다면 아마 그녀는 그 순간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너무 잘 알았기에, 그녀는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시바타 가쓰이에의 눈이 미친 듯이 적들을 베어나가는 일영의 뒷모습에 닿았고, 곧 그의 목소리가 스치듯 귓가를 지났다.

결국, 감내하는 것은 자신이니까요.

“시바타!”

그녀는 이츠키에게 미친 듯이 검을 찌르고 있는 아시가루를 보았다. 얼마 전까지 그녀를 오니 시바타라며 옹호하던 스에모리 성의 아시가루. 그는 이제 그녀를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그녀를 죽이고자 달려오고 있었다.

고작 아시가루 따위가 저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검을 들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 자리에서 그녀가 검을 뽑아 상대를 벤다면, 그것은 곧 전향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으니까.

설혹 일이 아주 잘 풀린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녀의 신의를 의심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녀의 충성심을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시바타 가쓰이에는 생각했다.

어차피 어떻게 되어도 받는 비난이라면…….

‘히라테 히카게. 아니. 백일영.’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거짓말이라도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해준 저 남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라.

때문에, 그녀는 아주 자연스러운 손길로 검을 쥐고 앞으로 걸었다.

그녀를 호위하고 있던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의 사이를 스치듯 지나갔고, 곧 그녀를 발견한 둘이 뭐라고 외치려했던 그때.

푹.

“……어?”

조금 전까지 시바타 가쓰이에를 죽이겠다며 달려들던 아시가루의 심장에 정확히 그녀의 검이 꽂혔다. 그리고, 아시가루는 설마 그녀가 나설 줄은 몰랐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그녀와 심장에 꽂힌 검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놈을 찌른 시바타 가쓰이에는 생각했다.

이리도 쉬운 것을.

굳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금 검을 뽑아, 검의 혈조에 분홍빛의 심장 조각이 딸려나와 바닥에 추락한 그 순간.

“시, 시바타 가쓰이에가 배신했다아!”

전작 가득 당황한듯한 외침이 울렸고, 그제야 놈들은 자신들이 어떤 곳에 쳐들어 왔는지를 자각하며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시바타 공.”

“……이젠 다 망했습니다.”

그런 시바타를 보며, 조금의 여유가 생긴 일영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허탈함과 후련함이 담긴 목소리로 화답하며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섰다.

어느새 야차와 오니의 어깨가 마주하고, 일영의 곁에 선 그녀는 아주 작게 속삭이니.

“이것이 다 백 공 탓이니. 책임지십시오.”

백 공(?).

그 말에, 분노하던 일영도 일순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무라이들은 전율함과 동시에 철저하게 깨달았다.

아무래도, 좆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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