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두서없는 위로
* * *
시바타 가쓰이에와 일영의 대련이 뜻하지 않게 끝이 난 후, 그들은 조금 전까지 대련을 했었던 마당을 응시하며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르륵소리가 찻잔을 따라 흐른다.
곧 일영은 찻물이 찰랑거리는 찻잔을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건넸다. 물론, 가면을 쓴 상태로 차를 마시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주변의 사무라이들은 일정 거리 이상 물린 상태였다.
그들은 혹여 모를 암습을 걱정했으나, 곧 걱정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순순히 물러났다.
“…….”
정적이 흐른다.
그러나, 일영은 이 침묵이 오래가게 놔둘 생각이 없었기에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애초에 없었다면, 구태여 자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으리라. 그런 일영의 예상대로 시바타 가쓰이에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꽈악.
그녀는 찻잔을 가볍게 쥐었다. 동그란 잔을 쥔 그녀의 손은 여자의 손이라기엔 다소 투박하다.
여태까지 그것이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왜인지 밀려오는 회의감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감추는 그녀였다.
이 말을 그에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으나, 곧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배려를 해주셨다고는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여태까지 제가 이룬 모든 것을 다시 증명해야 하겠지요. 또한,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오다 노부나가님을 주군으로 모시는 데에 적잖은 각오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그녀는 스에모리 성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럴만도 하다.
일영이 보기에도 그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못했으니까.
‘후대 사람들이 알았다면, 어떤 말을 하려나.’
일영이야 그녀가 후대에 이름을 알리는 맹장임을 알고 있다. 오다 사천왕이라 불리는 4명의 맹장 중 제일 선두에 언급이 되리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녀는 단지 두각을 보이다가 고꾸라진 한 명의 장수일 뿐임 역시 알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무심결 실소했다.
아니, 조소라고 해야할까.
그녀의 고민은 결국, 일영이 개입하며 생긴 일이다. 물론, 원래의 역사에서도 노부유키는 노부나가에게 패하긴 하지만…….
‘세력 자체가 패배한 거였으니까.’
노부유키의 진영 자체가 패배했기에 역설적으로 어느 개인이 지탄받을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일영이 이노에서 그녀를 일기토로 무너트림으로써 스에모리 성에 있는 이들에게 시바타 가쓰이에는 일종의 책임 회피용 욕받이가 되고 말았다.
네가 없었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따위의 웃기지도 않은 면피책 말이다.
그리고 그녀라고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새삼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적이었던 일영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일영은 무심결 묻고 말았다.
“회의감이 드시진 않습니까.”
굳이 말하진 않았으나, 저들의 뻔뻔한 태도에 일영 역시 화가 날 정도였다. 그렇기에 굳이 벨 필요가 없는 무명의 사무라이까지 벤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지껄이는 대로 이노에서 대 회전(會戰)을 벌여 그녀가 패배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시바타 가쓰이에는 전사하고 그들은 그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곧바로 노부나가에게 달려가 개처럼 바닥을 기며 목숨을 구걸했을 것이다.
반면, 그녀가 승리했다면 아마 놈들은 기름기가 낀 배때기를 주무르며 유곽에 가서 유녀들이나 따먹고 말했겠지. 우리가 잘해서 이겼네어쩌고를 중얼거리며 말이다.
“어찌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일영의 생각을 읽었는지, 시바타 가쓰이에는 무심결 손을 들어 올려 광대와 코까지 이어진 긴 흉터를 가볍게 쓸었다. 여자의 얼굴에 나 있기엔 너무나 투박하고 흉한 상처다.
차라리 문관이라면 모르겠지만, 검을 쥔 이상 전장에서의 명성은 그녀에게 언제나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로 그녀는 평생을 따라다닐 항장이라는 꼬리표를 얻고 말았다.
평소에 오니라며 추앙하던 이들 역시, 지금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 점을 너무 잘 알기에 그녀의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검을 쥔 그때부터 그녀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조금은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손에 쥔 찻물이 서서히 식어감을 묵묵히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일영은 시선을 내려 묵묵히 바라보았다.
금발의 머리카락과 눈,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흉터에 시선이 닿자 내심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자각하고 있을까.
어느새, 자신의 앞에서 가면을 벗고 있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는 걸 말이다.
일영은 복잡한 얼굴로 서서히 식어가는 찻잔을 부여잡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덤덤히 읊조렸다.
“지친 이에게 가장 달콤한 위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언젠가 동기부여 강의를 보았다.
아마, 친구가 추천을 해줬던가.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남들과 조금 다르면 어때? 넌 너 자신만 챙기면 행복할 수 있어…….”
타악.
그는 마룻바닥에 찻잔을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한없이 무책임하고, 멍청하며, 우둔한 생각들이죠.”
네가 뭔데 그 생각을 재단하느냐라고 비난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일영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녀에게 전달할 뿐이니까.
“그대로 있어서 괜찮은 건 없습니다. 모든 인과에 제 탓은 조금쯤은 있기 마련이죠. 남들과 다른 게 잘못은 아니지만, 그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화되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개인만 챙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그의 말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일영은 여전히 말을 이어나간다.
“삶은 투쟁의 연속입니다. 날마다 치열한 필요는 없되, 날마다 무의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입니다.”
어느새 자신을 올려보는 그녀를 향해 일영은 나지막이 웃었다.
“결국, 감내하는 것은 자신이니까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그로 인해, 뒤따르는 무수한 후폭풍이 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상대로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지금 그녀가 받는 대우가 그 자신에게 쏟아졌을 것이다.
‘아니, 더 심했겠지.’
가뜩이나 적이 많은 그다. 적어도 시바타 가쓰이에는 앞에서 대놓고 비방하는 이는 없었으나 일영이 패했다면 이때다 싶어 평소 그에게 불만을 가졌던 이들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가정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그는 완전히 식어버린 찻물을 쥐고 마당에 흩뿌렸다. 그리곤, 아직 식지 않은 찻물을 다시 붓고는 말했다.
“그들을 용서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도 마시란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저들에게 분노한다고 한들, 혹은 스스로를 탓한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기껏해야 몇 명이 죽고 사는 문제일 뿐이다.
어차피 시바타 가쓰이에는 일영의 울타리 안에 들어올 사람이다. 그녀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그녀가 무너져선 곤란하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영은 그 점에 대해 반박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스스로에겐 조금쯤 관대한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까.
그런 말을 해야하는데, 어째서인지 시바타 가쓰이에는 입술이 떼어지지 않음을 깨닫고 그저 일영이 새로 따라준 찻물을 쥐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다.
일영도, 그녀도 스스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이고 또한 막무가내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고맙습니다.”
왜인지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걸 느끼며, 그녀는 드물게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영은 생각했다.
그녀가 그토록 가리고 싶어하는 흉터였지만, 오히려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무슨 생각을.’
일영은 이윽고 피식 웃었다.
위로를 해주는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쨌든 그렇게 분위기는 한결 풀려가고 있었다.
타다닥!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와.
“주, 주군!”
들려오는 이츠키의 당황한 목소리.
채앵!
끄아아악!
그리고, 곧 이어지는 전투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순간, 일영과 시바타 가쓰이에의 시선이 맞닿는다. 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검이 아닌 진검을 쥔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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