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84화 (84/171)

〈 84화 〉 대화 대신 대련

* * *

“그렇습니까.”

잠이 오지 않아 잠시 바람을 쐬려 뒤쪽 마당으로 왔다는 그녀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들이 거처하는 전각의 정면은 스에모리 내성과 연결되어 있어 그녀로선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말을 가져다 붙여도 결국 항장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자칫 시비라도 걸렸다간…….’

뜻하지 않게 스에모리 성 대탈출을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비교적 한적하다고 한들 일영이 검을 휘두르던 뒤쪽 마당 역시 사무라이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 산책을 하기엔 마땅찮긴 했지만.

‘그래도 막혀있으니까.’

시바타 가쓰이에로서도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친 심신을 달래려 할 뿐이리라.

스릉.

일영은 손에 쥐고 있던 오니마루 쿠니츠사를 한 바퀴 가볍게 돌리곤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대화 상대를 앞에 두고 검을 쥐고 있는 모양새도 그리 보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휘이이잉.

새벽에 가까운 밤의 한기가 두 남녀의 뺨을 스쳤다. 비록 겨울은 끝이 났다고 한들 아직은 서늘한 기운이 미약하게 남아있었다.

달빛은 잔잔하게 지상을 밝히고.

사무라이들은 일영과 시바타 가쓰이에를 등진 채 멀리에 서서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녀는 짧은 침묵을 머금은 채 서로를 마주 볼 따름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일영이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의 물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다고는 하나, 시바타 가쓰이에의 시선은 변함없이 일영을 향해 있었으니까.

그런 일영의 물음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윽고 말했다.

“대련이나 한번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고민 끝에 내뱉어진 말은 일영으로선 꽤나 뜻밖의 것이었다.

……대련이라.

갑작스럽게 내뱉어진 말치고는 꽤나 뜬금이 없긴 했으나,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마, 대련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저 대화를 이어나갈 수단으로서의 선택이겠지. 그럼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공부가 되겠지.’

이미 어느 정도는 검술에 재미를 붙인 그다.

그런 그가 훗날 맹장이라 평가받는 시바타 가쓰이에와의 대련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이미 몇 번이나 해보지 않았던가.

“좋습니다. 그럼 목검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일영은 시원하게 웃으며 근처에 서 있던 사무라이에게 목검을 주문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두 자루의 목검이 도착하자 둘은 곧바로 서로를 마주 보며 목검을 쥐었다.

꽈악.

목검을 쥔 손의 감각은 진검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애초에 나무 안에 철심을 박아 넣은 것이었기에 무게조차 진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우.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도약했다.

이미 수차례나 대련을 했었던 둘이었기에 구태여 시작하자는 말은 필요가 없었다. 내달리는 걸음에 화답하듯 거친 바람이 뺨을 스치고, 먼저 검을 뻗은 것은 일영이었다.

비스듬하게 검을 사선으로 밀어 베었다.

정확히 그녀의 복부를 노리고 뻗어진 검의 궤적은 비록 목검이었으나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다만, 일영은 이 공격이 그녀에게 닿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시바타 가쓰이에는 그의 검격을 단순하게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피해버리곤 곧바로 뻗어지는 일영의 손목을 노리며 그대로 찍어 눌렀다.

‘베었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무사라고 하더라도, 손목이 베이면 검을 쥐지 못한다. 물론 목검이기에 벤다기보다는 타격한다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말이다.

내리치는 일격에 혼신을 힘을 다했다.

그것이 비록 목검이라고 하더라도.

무사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공격은 일영에게 닿지 못했다.

파박!

공격이 뻗어지자 곧바로 뒤로 물러선 시바타 가쓰이에와 달리, 일영은 오히려 앞으로 돌진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손목을 노렸던 검은 그의 어깨가 받아 흘렸고, 곧 그는 단번에 시바타 가쓰이에의 앞까지 다다랐다.

본질적인 체구의 차이가 있기에 일반적인 사무라이의 그것보다 훨씬 위협적인 돌진이다.

때문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이번에 뒤가 아니라 옆으로 몸을 틀었다.

파박!

동시에, 곧 그녀와 일영은 서로의 목검을 맞붙이며 얼굴을 마주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역시, 만만치 않으십니다.”

“……과찬입니다.”

비록 시바타 가쓰이에의 얼굴에는 가면이 씌워져 있긴 했으나, 눈까지 가리지 않았기에 둘의 시선은 정확히 마주한 상태였다. 가면으로 막혀있지만 않았다면 서로의 숨결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일영과 그녀는 야릇한 기뿐 따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호승심을 불태울 따름이다.

단지 몇 합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둘은 아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조금 전의 공격 중 하나라도 제대로 들어갔다면……. 그리고, 손에 쥔 것이 목검이 아니라 진검이라면 벌써 상대는 목숨을 잃고도 남았으리라고.

당연하게도 목검으로 사람을 죽일 순 없다.

그렇다고 한들, 둘의 마음가짐은 생사결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가 이어졌을까.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나뭇가지가 흔들린 그 순간, 파박소리와 함께 둘은 마주하던 검을 밀며 빠르게 뒤로 멀어졌다.

동시에, 대지에 먼저 발을 디딘 시바타 가쓰이에는 다시금 앞으로 쇄도하듯 뻗어졌다.

검을 쥐어보지 않은 이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다. 아니, 무술을 해보지 않은 이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일영은 눈을 번뜩이며 생각했다.

대중매체 속에서 무술은 화려하다.

때때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정도의 궤적으로 움직이고, 그 자체로 멋짐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전쟁을 겪고 검을 쥔 그는 이제 알았다.

실전에서 중시할 것은 화려함이나 멋 따위가 아니다. 그저, 상대의 공격을 읽고 내 공격을 감추는 철저한 수싸움이었다.

공세를 하면서 수세를 준비한다.

어깨와 손목을 훑으며 다음 공격이 뻗어진 궤적을 예측하고,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방어를 해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삶과 죽음이 갈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번 수싸움에서 이긴 것은 다름이 아니라…….

파악!

시바타 가쓰이에였다.

“크읏!”

일영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에 살짝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섰다. 그럼에도 시바타 가쓰이에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놓지 않았어.’

비록 목검이라고는 하나, 안에 철심이 박혀있어 손목에 가해진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영은 그저 자그마한 신음을 터트릴 뿐 다시금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 모습을 본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손에 쥔 검을 들어 비스듬하게 겨눴다.

대련이란 본디, 상대가 패배를 시인하거나 시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매섭습니다.”

그때, 일영은 입가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문득 너무 세게 때린 건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윽.

일영이 다시금 자세를 잡자, 잠시 고민하던 그녀 역시 자세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이 곧바로 다시 맞붙으려던 그때.

부스럭.

갑작스럽게 귓가에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스쳤고, 거의 동시에 그 소리를 들은 둘은 곧바로 몸을 돌려 담벼락을 겨눴다. 언제든지 적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둘 중 누군지 모를 한 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일영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설마……. 암살자는 아니겠지?’

만약 보댔다면 도타 고젠이나 노부유키가 차라리 납득이라도 가지만, 제일 가능성이 큰 것은 둘에게 붙은 중신 중 한 명이었다.

늙은 배때기에 그득거리는 권력을 잃지 않기에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파박!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하얀 담벼락 위에서 검은 무언가가 솟구쳤다. 그러자 곧바로 둘은 날아올 암기를 막기 위해 몸을 피하려 했으나 그 순간.

야옹?

갑작스럽게 귀를 스치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에 그들은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잖아 둘은 거의 동시에 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래도, 닌자가 아니라 고양이 소리였던 듯 싶었기에.

“허.”

잠시 황망한 시선으로 담벼락 위에서 서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던 일영은 곧 어이가 없다는 듯 시바타 가쓰이에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핫…….”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시바타 가쓰이에도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동시에 둘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대련은 물 건너간 거 같다고.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