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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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으로 생긴 미부인.
노부나가와 노부유키의 생모인 도타 고젠을 표현하기에 썩 알맞은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일영은 두 자매와 달리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를 바라보곤 생각했다.
‘금색 눈동자는 아버지 쪽을 닮았던 건가.’
하긴, 별명이 오와리의 호랑이가 아닌가. 원래 일본 역사에선 있을 수가 없는 유전적 특징이겠지만, 당장 주변의 머리와 눈 색이 휘황찬란한 파스텔톤인 걸 생각하면 오히려 납득이 가는 수준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현재 자신이 앉아 있는 방을 가볍게 훑었다. 결과적으로, 도타 고젠과 일영의 대화는 성립되었다. 물론 노부유키도 함께였지만 말이다.
‘뭐, 여기에 노부나가까지 있으면 가족 모임이네.’
오이치도 데려와야 하려나.
참고로, 시바타 가쓰이에는 함께하지 못하고 인근 숙소에 머무르기로 결정되었다. 일영이 제안했고, 도타 고젠과 노부유키가 동의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아마 지금껏 보아온 시바타 가쓰이에의 성격상 대놓고 ‘노부나가에게 항복하십쇼!’ 따위의 직선적인 조언을 내뱉곤 거절당하면 충심으로 증명하겠다며 배부터 깔 거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등 뒤에서 목을 쳐줘야겠지.
둘째, 그게 아니라도 시바타 가쓰이에는 일단 패장이다. 아무리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그녀를 함께 한다는 것부터 소위 말해서 급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
일영은 손에 쥔, 찻물이 담긴 찻잔을 가볍게 쓸어내리고는 생각했다.
‘아마,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말을 들으면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까 싶은데.’
좋든 싫든, 도타 고젠과 노부유키를 설득해야 하는 일영으로썬 이제부터 브레이크 없이 밟을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애초에 그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전황은 진즉에 기울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혹자는 지휘관인 일영을 억류하고 치면 그만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럴 줄 알고 니와 나가히데를 남겨두고 온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불경한 움직임이 포착된다면, 곧바로 스에모리 성은 불탈 거다. 그 과정에서 일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제일 멍청한 선택지라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일영은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댔다. 적당히 식은 찻물이 식도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 내려가고, 곧 상석에 앉아 있던 도타 고젠이 입을 열었다.
“야차라 불린다고요.”
“부끄러운 별명입니다.”
“무장으로선 영광이겠지요.”
처음은 간단한 칭찬으로 시작하는가. 정치인으로서의 특징인지, 아니면 그저 일본인 특유의 겸손에서 기반한 어휘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시바타 공을 제압할 줄은 몰랐습니다.”
조심스럽지만 곧바로 꺼내진 본론에 일영은 생각했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은 개뿔.
“운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일영이 겸손함을 보였다. 그러자 도타 고젠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찻물을 한 모금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글쎄요. 맹장이라 불리는 장수를 단순히 운으로 제압할 수는 없겠지요.”
대충 해석하면, 너 쎈 거 아니까 겸손 작작 쳐 부려라정도인가.
‘놓고 오길 잘했어.’
덧붙이자면, 시바타 가쓰이에는 이츠키를 비롯한 그의 호위들의 경호를 받고 있었다. 설마 그럴까싶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그녀에게 명예 어쩌고를 지껄이며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미친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어디 세상일이 상식적으로 움직이던가. 더욱이 그 상식이라는 것 자체도 현대인의 기준이지. 이 시대 일본이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서울 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도타 고젠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탁소리와 함께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는다. 동시에, 미부인은 자신의 앞에 선 오와리의 떠오르는 권력자이자, 포기한 장녀의 가장 날카로운 검에게 물었다.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까 했던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이 미부인은 꽤나 많이 직설적이다. 때문에, 일영 역시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은 채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이미 예상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도타 고젠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러 왔을지는 뻔히 알겠지. 그럼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노부나가를 적법한 당주로 인정하고, 노부유키 아가씨의 세력을 모두 흡수시키는 데 도움을 주시길 바랍니다.”
쳐내야 할 적폐는 쳐내야겠지만, 그럼에도 노부유키의 병력은 온전히 흡수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쳐낼 사람이라 해 봐야 무능한 것들이겠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불가합니다.”
“그러시겠지요.”
일영은 살짝 마른 입술에 찻물을 먹였다. 그리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작금의 열도가 난세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애초에 사별한 남편이 노부나가를 지지한 것도, 그대의 양부인 히라테 마사히데가 노부가를 지지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지요.”
난세는 인류 역사에 함께했다.
하다 못 해, SNS가 발달하고 보편적인 윤리와 그를 강제할 사회규범이 자리 잡은 21세기 현대조차 수많은 혼란이 오가고, 권력은 힘에서 온다는 말이 유의미하게 남아있다.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도타 고젠의 말을 경청했다.
“노부히데. 그는 지방의 작은 관리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난세를 이용하여 고작 방계에 불과했던 가문을 ‘오다’라는 이름의 대명사로 만들었지요. 그런 그가 노부나가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어요.”
그는 진정으로 노부나가를 적당한 후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마가와 측에 받은 굴욕을 타계할 대안으로 그녀를 택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도타 고젠의 검은 눈에는 확신이 담긴다.
“그렇다고 한들, 선은 존재하는 법이지요. 우리 오다 가문은 난세를 이용하여 단지 다이묘가 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마가와를 막고 미노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서 존속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요.”
그녀가 평하는 오와리의 수준이었다.
오와리의 영토는 주변에 비해 절대 넓지 않고, 군사력도 압도하지 못한다. 이마가와와 미노가 눈을 부릅뜨고 있고,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라도 수많은 유력 다이묘들이 넘쳐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어떤 가문이 쇼군이 될지 모르고, 어떤 가문이 패망할지 가늠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지향하는 패도는….”
말을 아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했다. 그녀는 노부나가의 성정이 오와리를 무너트리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거기서, 일영은 도타 고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지독하게도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
쇼군은 바라보는 지향점에 없다.
단지, 그저 이대로 오와리를 지키면 그뿐인 것이다.
물론, 상대가 자신인 만큼 구태여 내뱉지 않은 속마음도 많을 것이다. 가령 딸이 두렵다거나, 노부나가보다 노부유키가 말을 잘 듣는다거나 하는 그런 말.
그러나 그때.
일영의 생각을 단편적으로나마 읽은 것인지, 도타 고젠은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저는 그 아이가 죽기를 바라지 않아요.”
죽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어렸을 때 독살했을 것이다. 그조차 여의치 않았다면 소수이지만 자신을 따르는 닌자를 동원하여 암살했겠지.
다만, 그럼에도 그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는 그녀가 노부나가를 자식으로, 딸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해서, 모순적이며 때때로 오류를 일으키는 법이니까.
일영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도타 고젠 역시 조금은 더 일영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대로면 자멸하겠지요.”
걱정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도드라졌고, 얼마 전 일어난 숙청으로 확실해졌다. 권력이란 달콤함과 동시에 파괴적이기에.
일영의 시선은 노부유키에게 닿았다.
그녀는 굳이 입을 열진 않았으나, 그리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이리라.
“먼저.”
때문에, 일영은 입을 열었다.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일영은 탁하고 손에 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두 여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방을 살폈다. 밀실이다. 천장에 느껴지는 기척도 없고,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 도청기를 걱정하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다.
더욱이 저쪽도 생각이 있다면, 가문 내의 닌자들이 들을 지언정 이 말이 외부로 퍼져나가게 두지는 않으리라. 그렇기에 일영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노부나가를. 제 주군을 고작 다이묘 따위로 머물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순간 도타 고젠과 노부유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일영은 구태여 말을 멈출 생각 따위는 없었다.
“제 목표는….”
언젠가부터, 그의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던 생각이었다. 동시에 히데요시를 죽임으로써 확신을 가졌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열도를 안겨준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일본을 선물하고, 나아가 이 열도를 나의 울타리로 만들겠다.
이미 손안에 쥔 것이 많은,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쇼군 노부나가의 치세 아래의 관백이 되는 것입니다.”
군부의 쇼군.
정계의 관백.
꽤나 궁합이 맞지 않은가.
일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고, 당연히 밀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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