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1)
* * *
쿠구구궁!
그리 작지는 않은 소음과 함께 스에모리 성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일련의 사무라이들이 조금은 더딘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감히 적의를 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조금 전 베었던 낭인처럼 사무/라이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뽑았던 검조차 검집 안으로 밀어넣으며 뒤에 서 있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말했다.
“시바타 공을 내려드려라.”
“예.”
구태여 이츠키가 아니라 아케치 미쓰히데. 그녀에게 명령한 것은 시바타 가쓰이에를 위한 배려였다. 그도 그럴 게 포박되어 있는 여자를 말에서 내려주는 작업을 남자가 하게 되면 부득이한 스킨쉽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끄응.
…무겁습니까?
아, 아니요!
두 여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살짝 들리긴 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이윽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자신의 두 발로 대지를 디뎠고, 곧 포박된 상태로 일영의 뒤로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일영과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쏠렸다.
만약 두 장수가 한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다면 오니와 야차가 함께 있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갈린 상황이다.
그리고 곧, 스에모리 성에서 나온 사무라이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렇게 오니, 오니 거리더니.
듣기론 일기토로 패했다는 말이 있던데….
이미 이노에서 도망친 병사와 사무라이들이 스에모리 성에 정황을 알리기엔 충분한 상황이다. 때문에, 그들 중 시바타 가쓰이에를 곱게 보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일기토에서 패할 수 있다.
그녀도 사람인데, 어찌 승리만 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항복을 했다는 건 모두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상황 자체가 그렇게 간단명료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노부유키 측에서 느끼는 시바타 가쓰이에의 이미지는 명장에서 한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한 배신자 정도로 추락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시바타 가쓰이에가 바뀐 분위기를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되었든, 패한 건 사실이니까.’
그토록 감추고자 했던 얼굴을 보였고, 기절한 사이에 병력 흡수가 끝이 났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게 더 어이가 없는 말이 아닌가.
더욱이 그녀가 느끼기에 그들의 말은 하등 틀린 것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저 새로이 얻게 된 가면 안에서 입술을 질끈깨물 뿐이었다. 동시에 명예를 위한 마지막 결심을 더욱 굳혔다.
‘어차피 버려야 할 목숨이라면.’
후대에 어떻게 적히든 상관없다. 이미 일영과 대화를 나눈 그녀는, 비 온 날 강가에 낀 안개처럼 흐릿하던 방향을 잡은 후였다.
‘노부나가 아가씨가 좋은 당주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녀가 본 히카게, 아니 일영이라면 너무 엇나가지 않게 조율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노부유키 아가씨가 합류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할복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그런 결심마저 한 상황에 무슨 비난인들 듣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그때였다.
“이츠키. 잠시.”
“예? 아, 넵.”
가뜩이나 가면을 쓰고 고개를 숙인 탓에 좁아진 시야다. 덕분에 바닥을 보며 생각 중이던 그녀의 귓가로 일영이 이츠키에게 무언가를 받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때문에, 자신도 모를 의문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무엇인지 확인하려던 그때.
서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동시에, 그녀의 몸을 압박 중이던 밧줄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곧 해방감이 찾아왔다. 시선을 내리자, 분명히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잠시 멍한 눈으로 일영을 바라보았다.
“일단, 확실히 할 게 있습니다.”
일영은 손에 쥐고 있던 사스가??(허리에 매는 단도)를 주인인 이츠키에게 돌려주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팡팡 따위의 소리가 울리고, 일영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벙 찐 스에모리 성의 사무라이들을 가볍게 훑으며 웃었다.
“저는 시바타 가쓰이에 공을 할복시킬 생각도, 그렇다고 저놈들이 공을 깔보게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그녀를 구태여 묶고 데려온 것은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임과 동시에 문을 열게 할 목적이었다. 만약 그녀를 진정으로 모욕스럽게 할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밧줄과 손을 매달아 말에 묶어 끌고오는 것이 나았으리라. 당연히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는 흉터를 훤히 드러내게 한 채로 말이다.
물론, 일영은 맹장 중 한 명인 시바타 가쓰이에를 그따위 머저리같은 방법으로 죽이거나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구태여 자신의 앞에 앉히고 최선의 예우를 다했던 것 아니겠는가.
“이미 목적은 모두 달성했습니다.”
스에모리 성의 문을 열게 했고, 뜻하진 않았으나 그녀의 패배에 대한 의문을 일부 덜어줄 희생양도 제 발로 걸어 나와 죽어주었다. 그러니 이 이상 그녀를 포박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고개를 드시지요. 시바타 공.”
일영은 지극히 고의적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걸어 나온 사무라이들과 성내의 가신들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설마,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한 공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지도 못할망정 패했다는 이유로 질타하는 이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그의 시선은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닿을 때와 달리 서늘하게 변모한다. 그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스에모리 성문 앞에 서 있는 사무라이들을 훑었다.
“눈깔아. 닌자들 풀어서 너희들 9촌까지 잡아 죽여버리기 전에.”
실로 섬뜩한 동시에 허무맹랑한 경고다. 9촌까지 잡아 죽인다는 말은 거의 영지 하나를 끝내버리겠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꿀꺽.
그러나 이미 불어날 대로 불어난 소문은 일영이 미노의 사무라이들 수백을 베어버리고, 배신한 이들의 구족을 멸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때때로 허황된 말이라고 해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무게가 달라지곤 한다. 때문에, 그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눈을 깔았다.
그런 일영을 바라보던 이츠키는 괜스레 착잡해져 입술을 훑었다. 분명 자신이 알던 일영은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이 아무리 살아가며 변한다지만.’
변하는 범위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이윽고 곁에 서 있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치를 살폈다.
꿀꺽.
아니나 다를까. 아케치 미쓰히데 특유의 은색과 분홍빛이 섞인 눈동자가 떨린다. 조금만 엇나갔어도 일영이 말한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착각이라도 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자, 그럼 가시지요.”
일영은 곁에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하던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그렇게 말하곤, 마치 시범이라도 보이듯 먼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곧 시바타 가쓰이에가 뒤따르고, 이츠키를 필두로 한 소수의 호위들이 따라붙으니.
“…담이 센 건지, 아니면 오만한건지 모르겠다니까요.”
그 모습을 말 위에서 지켜보던 니와 나가히데는 어딘가 즐거운 듯한 웃음을 흘리며,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미처 닫히지 않은 스에모리 성에서 일련의 아시가루들이 나와, 여태 바닥을 구르고 있던 이름모를 낭인의 수급을 치웠다.
*
스에모리 성은 애초에 침략받으리라는 것을 전제로 한 성이기에 그리 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일본의 성 자체가 농성을 전제로 하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민가는 빠르게 끝이 났고, 일영은 곧 나무가 아닌 석벽으로 지어진 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검고 긴 생머리.
금색 눈동자와 현대로 따지면 극 슬렌더에 가까운 외양.
오다 노부유키.
일영은 그녀의 얼굴을 며칠 전에 보았음에도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가씨.”
“…예. 그러네요.”
스에모리 성의 가신조차 얼마 전 닌자가 침투했다는 것만 전해 들었지, 그 정체가 일영인 것은 알지 못했다.
“도타 고젠님을 뵙고 싶습니다.”
애초에 번목하는 사이이기에 긴 대화는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가신과 그녀 또한 직감하고 있던 본론을 꺼내 들었고, 노부유키는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불가해요.”
일영이 어째서 백기까지 들고, 20명이란 호위로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왔는지 모를 그녀가 아니다. 하지만 일영은 실로 무모한 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알면, 차라리 당신을 구속할 텐데.’
시바타 가쓰이에를 두고 왔다면 모를까. 그녀까지 데려온 시점에서 일영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실제로 가신들은 지금이라도 일영을 베고, 시바타 가쓰이에게 병력을 맡겨 기요스를 치자고 말하고 있었다.
…일영이 낭인을 베었을 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자들이 말이다.
때문에, 노부유키는 입을 열었다.
일단 안으로 들인 후, 입을 맞춰 돌려보내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
“히라테 히카게.”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귓가에 실로 낯이 익은 귀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노부유키는 귀를 의심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일부러 전하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그러나 그런 그녀의 당황과 별개로, 귀부인의 목소리는 이어졌으니.
“히라테 마사히데의 양자라고 들었습니다.”
곧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주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름다움이 식지 않은 한 여인이 실로 정갈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절 보고 싶으시다고요.”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히데의 아내이자.
오다 노부나가와 노부유키의 어머니인.
도타 고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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