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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77화 (77/171)

〈 77화 〉 저랑도, 할래요?

* * *

“언니가 처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니랍니다.”

노부유키는 꽤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일영은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다 노부나가.

장녀로 태어난 그녀를 품에 안은 도타 고젠은 진심으로 그녀를 아꼈다. 어릴 때만 해도, 오다 가문 내에서 후계 경쟁 따위가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그녀가 15살이 되던 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꺄아아악!

불이야! 불이야아!

기요스 본성의 전각 일대에 불이 붙었다. 당연히 민가까지 옮겨갈 경우 태반이 목조 건물이기에 엄청난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의 기요스의 주인이었던 오다 가문의 본가, 「야마토노카미」 가문의 시종들은 미친 듯이 물을 길러 불을 껐다.

다행히 열심히 물을 나르고, 때마침 내린 빗물 덕분에 불은 빠르게 진압이 되었다. 그리고 머잖아 본가의 사무라이들이 불이 붙은 원인을 찾던 도중, 오다 노부나가가 외쳤다.

내가 불을 질렀다!

당시의 그녀는 현재와 같이 대놓고 노출이 있는 옷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절대 정갈한 예복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실로 오와리에 파문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시의 오다 본가는 오와리의 호랑이라 불린 오다 노부히데의 기에 눌려 바짝 엎드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본가는 본가.

오다 노부히데의 장녀가 대놓고 불을 지른 것에 대하여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항의를 할 수밖에 없었고, 곧 오다 노부나가는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의 호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소리와 함께 회의장의 문이 열린다.

수많은 중신이 나란히 앉아 있고, 제일 상석에는 오다 노부히데와 함께 도타 고젠, 히라테 마사히데가 그녀를 응시한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당당하게 회의장 안으로 들어오자 도타 고젠은 걱정과 화가 담긴 얼굴로 그녀에게 외쳤다.

노부나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런 짓을…!

말로는 이유를 물었으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점점 엇나가는 그녀의 비행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여 이 자리에서 확실히 꾸짖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오다 노부히데는 물었다.

어째서 그랬느냐.

잘못했다고 먼저 꾸짖지 않았다.

단지 평온한 어투로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오다 노부히데의 목소리에는 딸에 대한 애정보단 흥미가 강했다.

…저는.

도타 고젠과 마주했을 땐 아무렇지 않던 오다 노부나가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러나, 이내 당당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한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확신을 담아 말한다. 그러자, 인상을 일그러트린 도타 고젠과 달리 노부히데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오다 본가의 서고에 있던 그녀가 책을 뒤적거리던 그때, 지나가던 본가의 사무라이들이 내뱉은 잡담을 들었다는 것이다.

저희 가문은 결국, 아버지가 죽으면 본가에 다시 흡수될 거라며. 그땐 일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말은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저 말이 진실이라면 본가의 사무라이들이 먼저 할복할 짓을 한 것이 맞으니까. 때문에, 도타 고젠도 조금은 진정한 얼굴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말했다.

그럼 불을 지른 것도 겁을 주려고 했던 거니?

어린 나이의 치기로 보기에도 다소 과격하긴 했으나, 그래도 이해가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노부나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머니.

그리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와 시선을 맞추고 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답했다.

모조리 죽여버릴 생각으로 그랬어요. 기요스란 성 자체를 모조리 불태울 생각으로.

정적이 흘렀다.

15살의 소녀의 입에서 내뱉은 말이라는 걸 제외하더라도 섬뜩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적을 깬 것은.

하하하하하하하!

다름이 아닌 오다 노부히데의 시원한 웃음이었다. 그는 실로 물건을 보았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곁에 앉아 있떤 히라테 마사히데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물건이 아니오. 마사히데.

그러합니다.

히라테 마사히데는 노부히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의 생각은 같았다. 난세라면 그만한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더욱이, 당시 그들은 본가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들보다 자신들의 가문이 위에 있다는 걸 벌써 자각한 딸이 미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노부유키는 보고 말았다.

아.

묘한 두려움과 괴리감을 느끼며,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을 말이다.

노부유키는 손에 쥔 술잔을 살짝 들었다.

그리곤,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영에게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난세는 이래서 힘들어요. 보편적인 윤리와 상식이 때때로 나약한 것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날 이후 도타 고젠은 점점 노부나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히 노부나가 역시 더욱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 아니셨어요. 가문을 일으켰으나 그것이 가정에 충실했다는 얘기는 되지 않으니까요.”

오다 노부히데는 좋게 말하면 가문을 일으킨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권력과 가문의 부흥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가문을 맡길 생각으로 그녀를 혹독하게 교육했고, 그 과정에서 노부나가의 성격은 더욱 잔혹하고 독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없었다.

다만 당주가 있을 뿐이다.

탁.

노부유키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씁쓸한 얼굴로 중정에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물론, 히라테 공은 그런 언니를 대부로서 챙겨주었으나 그게 아버지를 대신하지 못했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제게 이상적인 당주와 딸을 투영하기 시작했어요.”

그녀도 한때 장난을 치고 다니고, 불편한 기모노보다 가벼운 옷들이 좋았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타 고젠의 기대를 부응해야 할 의무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씁쓸한, 그리고 실로 공허한 미소가 맴돈다.

“후아. 자매가 쌍으로 기구한 인생 아닌가요.”

장녀는 아버지의 야망을.

차녀는 어머니의 소망을.

어느 순간부터 둘의 인생에 각자의 부모가 뒤집어 써졌다. 그리고, 자연히 둘의 사이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부유키의 볼이 붉다.

일영은 그녀의 손에 쥔 술잔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취하셨습니다.”

“…그런가요?”

그의 말에 살짝 손을 들어 뺨에 대보니, 확실히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그녀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술잔을 치운 일영은 무심결 웃으며 말했다.

“제가 해하면 어쩌려고 이리 마시셨습니까.”

그럴 생각은 없었으나, 노부유키의 행동도 정상은 아니다. 그런 일영의 말에 노부유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리곤, 의도적으로 말을 돌린다.

“그래서 불가능해요. 제가 투항하는 순간, 어머니의 소망은 어그러지고 저도 길을 잃을 테니까요.”

지속된 교육으로 이미 앞으로 갈 수밖에 없어진 경주마나 다름이 없다. 둘은 결국, 서로의 핏물을 보아야 할 운명인 것이다.

노부유키의 시선이 살짝 올라간다.

그리곤,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보는 일영의 얼굴은 눈에 담는다.

‘잘생겼네. 훗.’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일영에게 한 짓이 있는데도 이리 항쟁을 말리겠다고 적진까지 올 정도로 말이다.

때문에, 묘한 호기심이 돌았다.

그것이 술김인지, 아니면 그저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히카게.”

그녀의 붉은 입술에 달빛이 스치듯 반짝인다. 그리고, 그녀는 입가에 묻은 술을 가볍게 한번 훑고는 말했다.

“언니랑 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

금빛 눈이 악동처럼 반짝였으니.

“쿨럭!”

막 술병을 쥐고 한 모금 머금으려던 일영이 사래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일영은 턱에 술이 흐르는 것도 채 닦지 못하고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답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눈빛이 떨린다. 그리고,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로 시선을 피하는 그의 모습에 노부유키는 왜인지 확신하고 마는 것이다.

‘했구나.’

이미 모리 요시나리와 전장에서 밤새 섹스를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언니까지 품었다니. 이 얼마나 나쁜 남자인가.

스윽.

일영과 자신 사이의 술상을 살짝 밀어 옆으로 치운다. 그리곤,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일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마지막일수도 있으니.’

그동안 숨기고 구겼던 장난기가 무심결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이번 항쟁에서 패한 사람은 반박의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그건 시바타 가쓰이에가 패한 순간 그녀의 몫이 되는 게 당연했다.

“언니한테 지기 싫은데….”

때문에, 그녀는 일영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쥐곤 말했다.

“저랑도, 할래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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