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스에모리 성(1)
* * *
스에모리 성.
민가를 지나 성주가 기거하는 본성의 외곽 담 아래 2명의 사내가 품이 넓은 옷에 시린 손을 녹이며 서 있었다.
“하아.”
“왜 갑자기 한숨이야?”
그때, 검은 진가사를 눌러쓴 아시가루의 한숨에 곁에 선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나 한숨을 쉰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되려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뭐가?”
“이번 항쟁에서 지면 모조리 뒤질게 확실한데, 넌 걱정도 안 되냐?”
가문 간의 항쟁은 특히 잔인한 경우가 많았다. 보통 정통성이나 후계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많았기에, 진 쪽에 선 이들은 태반이 죽는다고 봐도 좋았다.
그들로선 억울한결과다.
당장 그도 농사나 짓다가 갑자기 징병 되지 않았던가. 그는 퉤하고 침을 바닥에 뱉고는 중얼거렸다.
“시바타 가쓰이에라는 장수도 그래. 별명이 오니라고 해도 야차를 이길 수 있겠냐고….”
「야차 히카게 やしゃ ひかげ」
비 내리는 밤 숲속에서 단신으로 미노 사무라이 수백을 베어 넘겼다는 풍문이 자자하다. 물론 말과 말이 오가며 엄청나게 과장된 이야기였으나, 어느 정도는 맞다는 점이 우스울 뿐이다.
그러나 둘은 그 진실을 몰랐기에 그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시바타님은 달라 임마. 네가 못 봐서 그래.”
“뭐?”
핀잔을 준 아시가루가 씨익 웃었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그는 말했다.
“시바타 가쓰이에님은 무적이라고. 그분과 함께 전장을 선 내가 보증하지. 야차 히카게? 그 병신은 여기 오기 전에 이노에서 뒈질 거야.”
내뱉는 말에 확신이 담긴다.
동시에, 그는 함께 낄낄거리는 동료에게 이런저런 말을 내뱉었다. 분명 그 가면 아래엔 엄청난 미녀가 있을 거라는 둥, 나중에 꼭 한번 따먹고 싶다는 둥….
“그러니까, 그 단단한 허벅지에 내 자지를….”
어느새 말을 내뱉다 보니 신이 난 걸까. 그는 허리를 잡는 시늉까지 하며 열심히 낄낄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크하핫…. 어?”
그와 함께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한창 깔깔거리던 아시가루가 무심결 뒤를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때.
“역겨워서 못 들어 주겠군.”
짜증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동시에, 스윽그어진 검의 궤적을 따라 아시가루의 목이 바닥으로 추락하니.
“야, 야스읍!”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다급히 피리를 찾는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숙인 찰나의 순간에 이미 암행복을 입은 남자는 그의 가슴에 검을 꽂고 있었다.
푸슉!
핏물이 가슴을 적신다. 그리고 곧 남자, 아니 일영은 끄윽 따위의 신음을 흘리며 죽어 가는 아시가루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니.
“너희는 입으로 똥을 쌌어. 왜냐고? 다 틀렸거든.”
가슴에 꽂힌 검을 더욱 깊숙하게 누른다. 마지막 발악인지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검신을 따라 일영의 팔을 스친다.
“사, 살려….”
이미 심장이 꿰뚫린 순간 죽음이 다가온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일영의 등을 손톱으로 파고들며 삶을 갈구한다. 그러나 일영은 여전히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나는 이노에서 뒈지지 않았고.”
그 말을 들은 아시가루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진다.
“둘째. 시바타 가쓰이에는 너희 같은 버러지에게 따먹힐 일 따위 없을 거다.”
이윽고 일영은 힘을 주어 검을 한번 비틀고 뽑았다.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터져 나오고, 곧 일영은 쓰러지는 남자를 향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이니.
“하나 맞춘건 있다.”
서서히 아시가루의 눈이 감긴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일영은 말했다.
“미녀다. 너희들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은 일영은 죽어 버린 그들을 뒤로한 채로 스에모리 성 후방의 담을 넘었다.
담을 넘자, 다행히 눈에 들어오는 경비는 없었다. 그렇게 한숨을 놓게 되자 아케치 미쓰히데는 앞서 걸어가는 일영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그 순간 일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동시에, 그는 시선을 돌려 아케치 미쓰히데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아케치 미쓰히데.”
“…예.”
성큼.
일영의 발걸음이 그녀의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드러난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었다. 그러자 불안한 시선으로 일영의 눈치를 살피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여자가.’
훗날, 오다 노부나가를 혼노지에서 불태워 죽인단 말인가.
아무리 사람의 속을 모른다지만 일영은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사람은 결국 변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이렇게 변했듯 말이다.
때문에, 일영은 말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따위를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필요했기에 죽일 뿐이야.”
주먹을 쥐어 떨리는 손을 참는다. 그러곤, 침묵하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등지며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이츠키는 그런 아케치 미쓰히데를 살짝 바라보다가 이내 일영의 뒤를 따랐다.
달리 해 줄말이 없었기에.
‘…필요하므로.’
아케치 미쓰히데는 일영의 뒤를 바라보았다. 검은 암행복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넓은 등이 유달리 눈에 밟힌다.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다만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저벅.
일영과 이츠키의 뒤를 쫓는다. 입가를 가린 복면을 살짝 끌어 올리곤 복잡한 눈으로 일영의 말을 곱씹는다.
‘언젠가 나도.’
필요하단 이유로 저리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늘도 일영에 대해 곱씹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궁금해졌다.
저 남자가 어째서 저렇게 변했는지, 왜인지 사이토 도산의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았기에.
은색과 핑크색이 묘하게 섞인 두 눈에 일영의 뒷모습이 담긴다. 동시에, 그녀의 뇌리에 일영이라는 사람이 더욱 짙게 새겨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
“멈춰.”
일영의 작은 목소리에 뒤를 따르던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의 걸음이 멈췄다. 동시에 일영은 전각과 담 사이의 틈에 숨어 잡담을 나누는 사무라이 2명을 눈에 담았다.
‘외곽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인가.’
밤을 밝히는 화로에 의지하여 잡담을 나눈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지나고 싶었으나 놈들이 일영이 가려는 길을 정면으로 막고 있었기에 지나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 듯했다.
‘다행히,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그림자와 인기척.
경비의 유무를 파악할 수 있는 2개 모두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일영은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제압할 것을 명령했다.
손가락 3개를 펼친다.
하나씩 접고, 마침내 손가락이 완전히 접어졌을 때.
파박!
셋은 동시에 틈 사이에서 내달렸고, 놈들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릴 때는 이미 그들이 코앞에서 검을 뽑고 목에 가져댄 후였다.
“아.”
입을 달싹거린다.
동시에, 일영은 선두에 서 있는 사무라이의 목덜미를 살짝 그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입가에 세우듯 가져댔다.
말하면, 죽인다는 뜻이다.
그러자 사무라이도 일영의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일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들의 검을 빼앗으라 아케치 미쓰히데게 눈짓했고, 그들은 목에 검이 겨눠진 상태로 하릴없이 검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이뤄진 무장 해제다.
검을 빼앗긴 채, 안쪽에 보이지 않게 벽에 붙어진 그들에게 일영은 아주 작게 속삭였다.
“물을 게 있다. 대답을 제대로 하면 살 것이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
살짝 검에 힘을 주어 핏물을 더욱 흐르게 만든다. 일영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놈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노부유키 아가씨는 어디에 계시지?”
동시에, 두 사무라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한 사무라이는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벌렸고.
끄덕.
일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츠키는 자신이 제압하고 있던 사무라이의 목젖을 단번에 베어 버렸다.
끄르륽.
핏물에 익사라도 하는 소리를 내며 놈의 육신이 허물어진다. 동시에, 일영은 자신에게 제압당해 있는 사무라이에게 결정하는 듯 눈짓 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살짝 굴곡을 일으킨 목젖이 일영의 칼날에 닿아 핏물이 흘렀다.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깨달은 그는 이내 체념한 듯 말했다.
“…외, 외곽에 있는 중정에서 홀로 술을.”
“홀로?”
일영에게 실토한 사무라이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영은 그의 말에 화답했다.
“방향.”
천천히 손을 들어, 왼쪽을 가리킨다. 그러자 일영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사무라이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숨을 내쉰 그때.
“입이 싼 놈을 놔둘 순 없지.”
“…뭐?”
서걱.
일영이 부드럽게 밀어 넣고 그은 검로를 따라 긴 붉은 선이 주르륵 흐른다. 사무라이는 자기 목이 베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눈을 크게 뜨며 뭐라고 입을 뻐끔거렸으나, 성대가 베인 그가 내뱉을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문득, 뜨거운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스윽.
일영은 곧 그것이놈의 핏물임을 깨닫고 검은 소매에 닦았다. 그러곤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케치 미쓰히데를 스치듯 바라보곤 이츠키에게 명했다.
“시체를 치우고 곧바로 아가씨에게 향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