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항쟁을 끝내고 싶은 장수들
* * *
시바타 가쓰이에가 히라테 히카게에게 패했다.
실로 믿기 힘든 말이었으나 곧 일영이 그녀의 갈라진 가면을 들고 군세를 이끌자 시바타 가쓰이에가 데려온 군대는 오합지졸로 변모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나 우두머리의 부재는 조직의 균열을 초래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가 노부유키의 가장 강했던 맹장임과 동시에 믿었던 패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퇴각한다!
움직여…. 이, 이런 배신자들이!
일부는 포위가 되기 전 빠르게 후퇴하여 스에모리로 향했으나, 이미 전세가 노부나가 측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한 이들은 모조리 일영에게 투항했다.
저희는 징병된 농부들입니다!
특히, 인근 번에서 강제로 징병된 농부 출신 아시가루들의 이탈율이 제일 높았다. 그들은 노부유키를 욕하며 노부나가에게 자진해서 충성을 바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렇게 흡수된 군세를 포함하자, 대략 2,500에 달하는 대군이 조직되었다. 때문에 그들은 시바타 군의 군영을 그대로 재활용하여 그 자리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했다.
화르륵.
강을 곁에 낀 얼어붙은 땅 위로 불빛이 번뜩인다. 막사가 때때로 불어오는 밤바람에 흔들려 아시가루들은 늦은 밥을 얼른 먹어 치우는 것에 급급했다.
반면, 일영은 거대한 막사 안에 포박조차 되어있지 않은 시바타 가쓰이에와 독대하며 여유롭게 밥을 젓가락으로 쥐었다. 그러나 정작 시바타 가쓰이에는 불편함과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불편하지 않으려야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패장’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목검에게 지고 말았다. 물론 죽이지 않으려 했기에 그랬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결국, 베지 않으려 했던 것조차 무사로서는 실패한 것이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오니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무참히 많은 사람을 벤 손이건만 어째서 망설였단 말인가.
“안 드십니까.”
귓가에 스치는 일영의 말에도 시바타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지금 밥이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그녀는 일영의 가면을 쓰고 있다. 하관이 막혔다는 뜻이다.
“흐음.”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일영은 어떡한담 따위의 시선을 굴리며 젓가락으로 밥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밀어 넣었다. 그리곤 다시금 무어라 말하려던 그때.
꼬르륵.
실로 경쾌한 소리가 막사 안에 울렸다. 동시에 둘의 시선이 맞닿고, 정적이 흘렀다.
씨익일영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야말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말았다. 어쩌면 저러다가 익지는 않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그저 웃으며 바라보고 있던 일영은 말했다.
“어차피 전 봤으니, 편히 드시죠.”
“…어, 으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을 목 뒤로 뻗었다. 갑옷은 진즉에 벗어둔 지 오래였기에 소매가 들리며 보드라운 살결을 드러낸다.
이윽고 가면을 지탱하던 실이 풀렸다. 그리고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다시 눈에 담은 일영은 가볍게 웃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굳이 얼굴이 콤플렉스인 사람을 뚫어지라 보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반찬이 썩 나쁘지 않으니, 든든히 먹으시지요. 불편하시면 얼른 먹고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일영은 그렇게만 말하고,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일영의 눈치를 보던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혹여 막사를 열고 누가 들어올까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우물, 우물.
쩝. 꿀꺽.
꽤나 넓은 막사에 오직 두 남녀의 식사 소리만이 울린다. 그리고 이내 식사를 마친 일영은 어느새 고개를 들어 열심히 밥을 먹는 시바타 가쓰이에를 지그시 응시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배가 고팠나.’
그럴 만도 하다. 애초에 얼굴에 작은 흠결이 있어도 신경쓰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런데 한창때의 나이에 생긴 긴 흉터라면 충분히 스스로 숨길만 하지 않은가. …더욱이 시대가 시대니까.
하지만, 일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그가 지금 신경 쓰는 것은 거의 고봉밥에 가까웠던 밥그릇을 열심히 비워가며 입을 오물거리는 시바타 가쓰이에뿐이었다.
일영이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전혀 모르는지, 그녀는 열심히 입에 밥을 욱여넣고 있었다. 그러나 일영의 앞에 놓인 반찬을 집기 위해 젓가락을 뻗은 그 순간.
“…아.”
금색 눈동자와 일영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치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지금까지 일영이 자신의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풋.”
그러나 그 순간.
일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탁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가면을 쓰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곤 일영이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가면을 쓰고 말했다.
“…다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아쉬운 눈으로 밥공기를 보고 있는데요라고 말하기엔 분위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렇기에 일영 역시 뒷말을 삼키곤 탁자에 놓인 차를 쥐었다.
스읍, 후.
따라 놓은 지도 꽤 되었는데 여전히 온기가 느껴지는 게 퍽 마음에 든다. 헌데 어째 전국 시대로 떨어지고 나선 매일 차를 마시는 느낌인데.
그때, 어느새 이성을 조금 회복한 시바타 가쓰이에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패장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고는 하나, 만약 최악으로 상황이 흘러갈 경우 그녀도 선택을 해야하니 말이다.
주군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주군을 바꿀 것인지.
물론 그녀의 마음은 아직 지극히 후자를 겨누고 있었다. 그렇기에 묻는 것이다. 당신이 향하려는 방향은 어디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바타 가쓰이에의 물음에 일영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스에모리까지 닿아야겠지요.”
굳이 긴 말이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바타 가쓰이에가 묻는 것이 그 이후를 뜻하는 걸 알기에 그는 말했다.
“먼저, 전 노부유키 님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지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다.
그 반증으로, 지금도 허벅지에 올린 그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으니까.
그런 일영의 말에 시바타 가쓰이에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죄가 아니게 되는 세상에 살기에,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직접 베어봤기에 일영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만.”
그때, 일영의 목소리가 조금은 서늘해졌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바타 가쓰이에와 눈을 마주치고 이전과 달리 싸늘하고 무감각한 눈으로 말했다.
“필요하다면, 그 밑의 사무라이들과 아시가루들은 모조리 죽일 생각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병력의 약화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게 이득이었다. 때문에, 일영은 이번에도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시바타 가쓰이에 역시 일영의 말이 온전한 진심을 담았다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이츠키가 들어와 상을 가지고 나갔고, 어느새 아시가루들 역시 보초를 제외하곤 잠이 들었다.
손에 쥔 찻물이 식었다.
천장이 없는 막사가 아직 쌀쌀한 밤 추위를 막아주기엔 역부족이기에 일영은 슬슬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 했다.
적어도 일영이 아는 시바타 가쓰이에는 한번 패한 것에 대해 불복하진 않으리란 생각이었기에, 따로 그녀에게 막사를 지어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
마침내, 정적을 깨고 시바타 가쓰이에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하관을 가린 오니 가면을 들썩거리며 말했다.
“제가 아가씨를 설득해보겠습니다.”
일영의 뜻은 이미 알아들었다. 그도 불필요한 사망자를 내고싶어하지 않으니, 자신이 설득만 한다면 충분히 이 항쟁을 적은 피해로 끝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일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아니요. 싫습니다.”
“…에?”
당연히 시바타 가쓰이에는 벙쪘고, 일영은 그녀를 내보낸 후 뒤이어 들어오는 이츠키와 아케치에게 말했다.
“암행복을 준비해.”
그의 말에, 아케치가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암행복이라 말씀하시면 설마.”
“그래. 스에모리 성으로 침투할 생각이다.”
“저, 주군. 그건 아무래도 좀….”
이번에는 이츠키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말리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의 본진에 우두머리 되는 장수가 직접 암행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일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까라면 까. 이츠키.”
“옙.”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 답이었다. 때문에, 이츠키는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에 대해 한탄하면서 묵묵히 암행복을 챙겨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쯤 흘렀을까.
히라테 군영에서 3필의 말이 몰래 빠져나와 이윽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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