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이노 전투(2)
* * *
“예. 장군.”
일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니와 나가히데의 묘한 웃음과 함께 빠르게 목책으로 이루어진 성이 구축되었다.
당연히 졸속으로 빠르게 설치하는 성이었고, 성이라기보단 목책에 가깝긴 했으나 일단 요새로서의 느낌만 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졸속에 목책이라도 일단 본진으로서의 역할은 해야 했기에, 며칠이 소요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오다이 강 너머에서도 일련의 병력이 자리를 잡은 채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완성된 막사 안에서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장수들의 앞에 정찰병이 달려와 고개를 조아린다.
“말씀하신 대로, 두 마리 기러기가 그려진 가몬입니다!”
정찰병의 말에 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두 마리 기러기가 그려진 가몬.
시바타 가쓰이에의 가몬이었다. 그렇기에 일영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배를 띄우고, 대화를 하자고 전해라.”
그는 투구도 쓰지 않고, 단순히 검은 갑주를 입은 채 허리춤에는 오니마루 쿠니츠사를 차고 앞으로 걸었다.
어찌보면 확신이 담긴 걸음이었다.
자신이 아닌 시바타 가쓰이에라면, 반드시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근처 마을에서 배를 가져와 준비를 마치고 강가로 향해 준비를 마친 직후, 시바타 가쓰이에는 답장을 보내왔으니.
“강가의 중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실로 그녀다운 화답이었다.
끄응차!
오다이 강의 중심부에 배가 떴다. 아직 날이 차갑기 때문인지,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인근 마을에서 가져온 배에 오른 일영의 앞에는 막 끓인 찻잔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 니와 나가히데가 서 있었다. 그때, 묵묵히 차를 기울이는 일영의 뒤에 서 있던 아케치 미쓰히데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저.”
그녀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미노에 있어 오다 가문 내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녀였으나, 그래도 시바타 가쓰이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에도 여유롭게 찻물을 머금는 일영의 뒤에서 덧붙였다.
“오니 시바타라 불리는 여자 아닙니까. 그런 여자라면….”
…배 위에 있는 적장 정도는, 단번에 베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물론 일영의 실력을 얼마 전 보긴 했으나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탄 배가 아닌, 반대쪽에서 딱딱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만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닌 단지 굳어있는 목소리일 따름이었다.
“그리 비겁하진 않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시선을 든 순간.
일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실로 익숙한 오니 가면을 쓴 금발의 여장수를 바라보며 화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시바타 공.”
“…히라테 공.”
순간, 가면 안 여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누구도 보지 못했기에, 시바타는 그저 묵묵히 다가가는 배를 힐끔 내려보며 생각할 뿐이었다.
이 배가, 빨리 저 장수에게 닫길 바란다고 말이다.
*
끼이익.
노잡이 역을 맡은 시바타의 사무라이가 이윽고 일영의 배에 붙여 정착하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기다렸다는 듯 그쪽으로 넘어갔다. 순간 기우뚱하며 흔들리긴 했으나 그 누구도 휘청이지 않았다.
시바타는 일영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검은 갑주와 허리춤에 맨, 이젠 야차라 불리는 사내에 걸맞는 전설을 가진 검이 흔들린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한층 더 날카로워진 얼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최근 많은 풍파를 겪으셨더군요.”
가진바 명성과 함께, 독자적인 닌자도 운용하는 그녀였기에 일영에 대한 정보는 이미 꿰고 있었다. 그가 최근에 암살 시도를 겪었다는 것조차도 말이다.
“주군께서도 얘기를 듣고 격분하셨습니다. 나아가 저희측은 절대로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군요.”
일전에 아가씨라 불렀으나, 완전히 후계 경쟁이 굳어진 상황에서 그런 호칭은 모시는 이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행위다. 때문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아가씨 대신 주군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며 일영에게 심심한 유감을 던졌다.
아니, 애초에 말을 아낀 것이다.
그 얘기를 들었던 노부유키는 길길이 날뛰며 납치라도 해서 데려왔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확실한 것은, 노부유키 측에선 일영을 암살보단 회유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일영에게 말했다.
“주군께서 물으라 하셨습니다. 아직도 같은 생각이시냐고 말입니다.”
일전에 식당에서 대화했던 때를 묻는 것이다. 때문에, 일영은 답했다.
“예. 같은 생각입니다.”
“…역시나 그렇군요.”
내심 실망이 스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일영이기에 같은 주군을 섬긴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기에.
그리고 또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런 그녀의 의문을 눈치라도 챈 걸까. 일영은 일어서 있던 몸을 다시금 앉고, 곁에 서 있던 이츠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이츠키는 기다렸다는 듯 배 구석에 놓여있던 의자 하나를 끌어 그녀의 뒤에 내려놓는다.
“앉으시지요.”
“예.”
일영의 제안에 그녀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리곤, 일영은 품에 넣어두었던 입이 뚫린 가면을 선뜻 건네어 그녀의 앞에 놓았다.
그러자 시바타 가쓰이에는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았으나, 일영은 피식 웃으며 그녀가 얼굴에 쓴 가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차를 놓았는데, 맛이라도 보시는 게 어떤가해서.”
“…아.”
그제야, 시바타 가쓰이에는 자신이 지금 가면을 쓰고 있고 이 상태로는 차를 마시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곤 잠시 일영이 준 가면을 손가락으로 쓸다가 자신의 가신에게 말했다.
“…뒤를 돌아라.”
“예. 주군.”
그녀가 데려온 가신 역시 여자였기에,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강 너머 자신들의 진영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고개를 돌리고 숙인 채 가면을 바꿔끼었다.
이윽고 그녀의 흰 살결과 함께 하관이 드러났고, 시바타 가쓰이에는 갑자기 스치는 찬 바람이 어색한지 고운 손가락으로 턱을 한번 쓸었다. 허나, 그 모습을 본 일영은 무심결 웃으며 말했다.
“하관이 예쁘면 미녀라던데. 미녀이십니다.”
“…쿨럭!”
“이런, 괜찮으십니까?”
일영의 말에 막 찻잔을 입에 가져대던 시바타 가쓰이에는 사레라도 걸렸는지 쿨럭하고 찻물을 흘렸다. 그러자 고운 턱선을 따라 길게 선이 그어지고 일영은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그녀의 턱을 닦아주었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바타 가쓰이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손수건을 잡아 닦았고, 자신의 침과 찻물로 더러워진 손수건을 난처하게 바라보았다. 차라리 물만 닦았으면 그냥 돌려줬을 텐데 침까지 묻어 애매해진 것이다.
그때, 일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가지셔도 좋습니다.”
“…다음에 돌려드리겠습니다.”
가지는 건 경우에 맞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손수건을 품에 넣었고, 일영은 어느정도 분위기가 풀렸다는 생각에 본론을 꺼냈다.
“저는 이번 전투에서 시바타 공과 중요한 장수들을 제외한 모두를 죽여버릴 생각입니다.”
“…예?”
순간, 배 위에 정적이 흘렀다. 고개를 다시 돌린 시바타의 사무라이는 물론, 이츠키조차 일영이 이런 직설적인 말을 내뱉을 줄은 몰랐는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허나 니와 나가히데는 달랐다.
그녀는 일영이 이런 말을 내뱉을 줄 알기라도 했다는 듯, 그저 평소와 같이 눈웃음을 흘린 채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반면 시바타 가쓰이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눈을 굴릴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일영은 여유롭게 찻물을 머금고 덧붙였다.
“읍참마속의 심정이지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정도로 묻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와리를 수습하고 제 주군이신 ‘오다 노부나가의 오와리’로서 교에 다다를 생각입니다.”
교?에 다다른다.
즉, 이 난세를 끝내고 쇼군에 오르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계속되는 충격적인 말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어떻게 답할지 모른 채 입술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실로 묘하게도, 일영이 건넨 하관이 뚫린 오니 가면 때문에 흰 피부와 붉은 입술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그 순간.
일영은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지금 별동대를 굴려 본진을 타격하는 것이 옳겠죠. 물론 사무라이들도 꽤 죽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두 세력의 명장이 한 자리에 있다. 그렇다면, 시바타를 대체할 장수가 없는 지금을 노려 모리 요시나리 등을 시켜 타격하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설마하는 시선으로 뒤를 보는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일영은 말했다.
“하지만, 그러진 않을 생각입니다.”
그가 본 시바타 가쓰이에는 조금은 전략적으로 우둔할지 몰라도 꽤 명예를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진짜 역사의 시바타 가쓰이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그녀는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일영은 긴장감에 입술을 짓씹는 시바타에게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준 후 말했다.
“그러니, 내일 동이 트면 저와 일기토를 하시지요. 시바타 가쓰이에.”
“그러니까.”
이건 협박이었다.
즉, 지금 당장 데려온 군세를 싹 죽이고 싶지 않으면 일기토로 끝내자라는 협박인 것이다.
일영이 생각한,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임과 동시에 자신과 그녀의 목숨을 담보로 건 도박이었다. 동시에 양측의 병력 소진을 최소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동시에, 그에게 장수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조금이나마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시바타 가쓰이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일영의 진의를 가늠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으니.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조금은 실망할 수밖에 없는, 정답이 존재하는 선택지였음에도 일정 부분 이상 실망할 수는 없었다.
서로 다른 깃발 아래에 섰기에, 자신들의 결정 하나가 휘하의 수많은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녀는 그 말을 남긴 채 묵묵히 자신이 탔던 배를 타고 그대로 돌아갔다.
동시에 홀로 남은 일영은 탁자 위에 놓인, 시바타 가쓰이에가 반쯤 마시고 놓아둔 찻잔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으니.
“…기분이 좆같은 건 어쩔 수 없나.”
지독한 조소가 담긴, 조선 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