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다가오는 전운과 암살 시도
* * *
아케치 미쓰히데는 예상외로 빠르게 오다 가문 내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속사정이 어떻든지 간에 대외적으로 그녀는 히라테 가문의 후계자나 다름이 없는 일영의 가신이 되었고, 훗날 미노에 입성할 때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해줄 키쵸가 의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일영의 가신이 되는 것을 반대한 가신들도 몇 있었다. 그녀가 비록 망명했다고 하나 아케치 가문의 격이 낮지 않다는 말을 했으나, 실상은 점점 커져가는 일영의 권력을 겨냥한 말임을 모를 이는 없었다.
허한다.
그러나 그들의 첨언은 오다 노부나가의 단 한마디에 모조리 묵살 되었다. 거기에 히라테 마사히데를 비롯한 주요 가신들 역시 모두 일영과 인연을 맺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누구의 가신이 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오와리의 패권이지 않은가.
일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걸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아케치 미쓰히데와 이츠키를 위시한 호위무사들이 뒤따랐고, 이윽고 회의장 앞에 다다른 그에게 오다 가문 직속 사무라이가 고개를 조아렸다.
“히라테 히카게님.”
“조금 늦었다. 문을 열어라.”
“예.”
끼이익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 열린 길로 일영은 성큼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정원을 지나, 돌바닥을 디디고, 이내 다다미에 오른다.
시종들과 사무라이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이윽고 회의장의 앞에 다다른 일영은 저 멀리 상석에 앉아 있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말했다.
“신 히라테 히카게가 조금 늦었습니다.”
그의 말에 오다 노부나가는 무심결 피식 웃었다. 늦은 놈치고는 실로 당당하지 않은가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그래. 늦었다.”
다만, 이 정도 타박은 괜찮으리라.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고, 일영 역시 특유의 능글맞고 선한 웃음을 지으며 화답했다.
“송구합니다. 당주.”
“되었다. 앉아라.”
남은 자리는 히라테 마사히데와 마주보는 상석 뿐이다. 동시에 오다 노부나가의 곁이기도 했다. 일영의 상승한 직위를 단번에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영이 가신들 사이를 지나 자리에 앉자, 크흠하는 기침이 울림과 동시에 오다 노부나가는 회의를 시작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노부유키 아가씨의 세력권은 다음과 같아요.”
참모 역할을 맡은 니와 나가히데는 가신들 모두가 볼 수 있게 오와리의 지도를 펼치고 말했다.
탁.
그녀의 손길이 ‘스에모리’라고 적힌 성에 닿는다. 니와 나가히데 특유의 미소가 흐르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스에모리 일대와 시노키, 미사토 일대에까지 영향력을 뻗어오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충돌은 시간 문제고요.”
정통성으로 따지자면 오다 노부나가가 훨씬 우세했기에, 세력권 자체로 따지자면 오다 노부나가의 그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쉬운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때.
모두가 니와 나가히데의 말을 경청 중이던 그 순간 일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절 이노?로 보내주십시오. 당주님.”
이노.
일영의 말에 순간 노부나가는 미간을 좁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노라면….
“기요스 남동쪽에 있는 오다이 강 건너편 말이냐.”
“예.”
잠시 지도를 본 노부나가는 이내 어째서 일영이 저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저곳이라면 시노키 일대의 군세와 곧바로 맞붙는 곳이다. 그러니 일영은 결심한 것이다.
순간이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걱정이 맴돌았다.
“회전을 결심한 것이냐.”
“예. 당주.”
일영은 굳이 발뺌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가신들이 뭐라 첨언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5백의 사무라이, 8백의 아시가루, 2백의 조총수만 주신다면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확신에 찬 말이다.
때문에, 이번에도 큰 반발 없이 통과하려던 그 순간.
‘…허.’
일영은 자신에게 쏠리는 노골적인 시선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회의장 중앙즈음 자리로 밀려난 일부 노신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권력을 잃고, 남은 것은 질투 뿐인가.’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굳이 생각할 가치가 없기에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를 견제하고자 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뿐.
일영은 눈동자로 오다 노부나가에 허락을 종용했고, 이내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거라.”
“예, 그럼 다음은….”
니와 나가히데는 이미 일영의 무력을 보았기에, 의심이나 걱정보단 그저 옅게 웃으며 회의를 주도해나갔다.
그렇게, 저녁 즈음 시작된 회의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고 말이다.
*
회의가 끝나고, 일영은 곧바로 히라테 가로 돌아갔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와 모리 요시나리의 진한 시선이 있긴 했으나 시기가 시기이니 피차 할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하아.”
겨울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밤공기는 꽤나 차갑다. 그런 일영의 뒤로는 이츠키와 아케치 미쓰히데만이 뒤따른다.
회의가 늦어지니, 중요한 둘을 제외하곤 먼저 보낸 탓이었다. 애초에 호위가 필요가 있을까. 다름이 아닌 기요스거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히라테 가로 향하는 길목 중, 잠시 길이 좁아지고 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에 다다르자 곧 일련의 사내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주군.”
이츠키가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검을 쥐었고, 아케치 미쓰히데 역시 예쁜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며 검을 쥐었다.
다만 일영은 주변을 살폈다.
품이 넓어 소매를 삼키는 옷자락의 끝을 쥔다. 그리고, 대충 수를 살피고 생각한다.
‘10명. 어디지?’
미노인가.
노부유키인가.
그마저 아니라면, 다른 가신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암살자가 어디서 왔는지 선택지가 3개나 생기다니.
그러나 그뿐.
스릉.
일영은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오니마루를 가볍게 뽑았고, 그것을 신호로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흐읍!
복면을 쓴 놈이 일영을 향해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동시에 일영은 살짝 비스듬이 놈을 피했고, 검을 뽑아 그대로 손가락 위를 훑었다.
“끄어어억!”
검이 지나고 1초 뒤, 잘린 단면에 살짝 말리며 뼈가 드러난다. 척 보기에도 적잖이 깊은 상처를 본 일영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검을 들어 놈의 목을 베었다.
자비따위 베풀어 줄 수적 열세가 아니다.
때문에, 그는 빠르게 몸을 돌려 달려드는 암살자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갔다.
허리를 베어 할복을 도와주었다.
때때로 목젖을 베었고, 바닥에 쓰러진 놈의 가슴에 검을 수납했다.
그렇게 채 5분이 지나기 전.
촤르륵!
일영은 검신을 털었다. 그러자, 혈조를 따라 흐르던 핏물이 바닥에 반원을 그리며 길게 흩어졌다. 일영은 잠시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때.
“…후아. 괜찮으십니까?”
지친 듯, 아케치 미쓰히데가 조심스럽게 일영에게 다가와 물었다. 족히 4명은 베었기에 이미 핏물이 몸 곳곳에 낭자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녀와 함께 다가온 이츠키는 눈으로 일영의 상처를 훑었다.
“나는 괜찮다. 그런데 아케치. 팔을 베였는데.”
때문에, 일영은 가볍게 몸을 털며 답했다. 그러다가 무심결 붉게 물든 그녀의 팔을 본 일영은 그렇게 말하고 찢어진 옷자락에 손을 집어넣어 단번에 옷을 찢었다.
부우욱소리와 함께, 새하얀 팔뚝이 드러난다.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가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던 그때.
일영은 손에 들려있는 옷자락의 상태를 살피다가, 이내 쯧하고 혀를 차곤 겉에 입어 핏물이 묻은 자신의 겉옷을 벗었다. 그러자 날씨에는 맞지 않는 다소 얇은 옷이 드러났고, 일영은 곧바로 소맷단을 길게 튿었다.
“…아읏!”
그리곤, 그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조금 길게 그어진 그녀의 상처를 꽉 묶어주곤 무심히 등을 돌렸다.
이츠키는 그 모습에 어딘가 감명받았다는 시선으로 일영을 바라보았으나, 정작 일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핏물로 점철된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말했다.
“돌아가자. 시체는 가면서 보이는 아시가루에게 말해 치우면 그만이니.”
“…예. 주군.”
배후를 캘 생존자가 남아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모조리 죽이고 말았다. 일영은 다음을 기약하며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일영의 뒤를 쫓는 아케치 미쓰히데는 힐끔 시선을 내려 일영이 묶은 자신의 팔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꽉 맸어.’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다. 넘어지다 찢어진 것보다 조금 과한 정도? 근육도 상하지 않았으니 다만 출혈과 감염만 조심하면 되리라.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한 아케치는 무심히 자신의 팔을 묶어주던 일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살짝 손을 들어 재질을 만져본다.
그리고, 이내 놀랐다.
‘…비단인가?’
비단이면 귀한 옷감이다. 때문에, 그녀의 혼란은 더해졌다.
‘대체….’
저 남자의 본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본성과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득 피가 멎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천을 풀지 않고 무심결 천을 쓸며 일영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다 가문은 때아닌 히라테 히카게 암살 미수로 또 한번의 풍파를 겪어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