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배신자라 불릴 여자(2)
* * *
일영의 시선이 놀람과 당혹감에 가득 찬 아케치 미쓰히데의 얼굴에 닿았다. 동시에 그는 곁에 비스듬히 내려놓은 오니마루의 검신을 쓸며 말을 이었다.
“아케치 미쓰히데.”
“…예.”
“나를 알고 있나.”
일영의 물음에 그녀는 분홍과 은색이 섞인 눈동자를 살짝 흔들며 고민하다가, 이내 일영이 쓸고 있는 검신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고 있습니다.”
히라테 히카게.
오와리의 대부인 히라테 마사히데의 양자이자 조선 출신. 출중한 무력과 지력, 외모로 단번에 오다 가문의 중신으로 떠오른 사내.
아케치 미쓰히데는 영문도 모른 채,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가 어찌 히라테 님을 몰라보겠습니까.”
굴욕적이다. 그녀는 숙인 고개 아래로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녀를 전혀 동정의 눈으로 보지 않고 있던 일영은 무심하게 말했다.
“일족은 모두 죽었겠군. 도산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말이야.”
“…소식이 빠르십니다.”
불쾌하다. 남의 일족이 멸족한 것을 두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저 태도가. …동시에 두렵다. 그녀의 예쁜 미간이 좁혀지고, 입술이 살짝 떨렸다.
일족이 멸족한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그것을 오와리에 있던 일영이 바로 알았다는 건, 어쩌면 미노에 엄청난 정보망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에 일영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슬슬 엎드려 있는 무릎이 아리고, 발가락에 감각이 없질 무렵.
“아케치.”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라도 한 듯, 일영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성큼 걸어왔다.
쉬이 볼 수 없는 장정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동시에, 일 전에 일영이 보냈던 시선을 떠올린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히 외쳤다.
“제, 제 조카 사마노는 아케치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죄가 있다면 제가 무슨 짓이라도 해서 갚겠으니 부, 부디 너그러이 생각해서 그 아이의 목숨만이라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아니, 지었을 수가 없다. 그녀는 일영을 처음 보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난세니까.’
모든 불합리함을 단번에 설명하는 말이다.
아비를 찌른 자식도.
자식을 버린 아비도.
내키는 대로 휘두르는 검도.
심기를 거슬러 죽어 가는 가신도.
모든 것이 난세이기에 가능하고, 난세이기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문득 그녀의 뇌리에 사이토 도산의 말이 스쳤다.
상황이 위태롭다면 목숨을 아껴 후일을 도모하거라. 아사쿠라에게 몸을 의탁하거라.
일영의 물음이 겹친다.
왜 아사쿠라로 가지 않았지?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일영은 시선을 내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해. 어째서 아사쿠라로 가지 않았는지.”
“…그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아사쿠라 가문은 명문 가문이자, 척을 져서는 안 되는 가문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아사쿠라가 아닌 오와리를 택한 이유는….
이내 결심을 한다.
어차피, 답하지 못하면 죽을 목숨이기에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화답했다.
“키쵸 아가씨를 홀로 둘 수 없기에 왔습니다.”
덤덤히 말을 한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분명히 영향을 준 것은 맞으니까. 때문에, 그녀의 말을 곱씹던 일영은 번뇌한다.
‘어떻게 하지.’
다이묘들이 여자가 되고, 그 자신이 센고쿠 시대에 개입하며 이미 수많은 역사의 변곡점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그는 고뇌한다.
‘아케치 미쓰히데.’
먼 훗날 오다 노부나가를 죽이게 되는 인물이지만, 그만큼 능력이 출중한 장수다. 미래에 오다 5대장이라 불리며 중신이 되는 여자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만 확신이 없었다.
‘내가, 이 여자를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중간에 이간질했다고 일컬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었고, 그 자리에 일영이 올랐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흉폭함은 그가 어떻게든 막을 자신이 있었다.
난세다.
그도 아케치 미쓰히데와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동시에,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전투를 떠올리며 이내 결심한다.
“아케치 미쓰히데.”
이미 일영의 권력은 부친인 히라테 마사히데보다 조금 못한 정도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오다 가문에서 그를 거스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예.”
때문에, 이 정도 결정은 스스로 내릴 권한이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너는 내 직속 호위무사다. 키쵸를 곁에서 보필하는 역할은 조카인 사마노에게 맡기지. 이미 미노에서 도산의 편지를 가져온 닌자도 그녀를 호위 중이니 네가 늘 곁에 있을 필요는 없을 터.”
일영의 말에 아케치 미쓰히데의 표정이 묘한 의문을 품었다.
“…닌자라면?”
“얼마 전이었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도산의 필체로 적힌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그는 실로 덤덤하게 읊조렸다.
「美?を?せる.」
“미노를 맡긴다고.”
“…결국, 그런 결정을 내리셨군요.”
충격적일 법도 한 말이었으나, 아케치 미쓰히데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찌 보면 반쯤은 예상한 일이었다.
사이토 도산이 오다 노부나가를 그리 나쁘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이미 진즉에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조금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헌데, 이방인인 제게 호위를 맡기신다는 것은….”
비록 미노에서 망명한 그녀라고 하나, 호위를 맡기엔 아직 확실한 충성을 증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런 그녀의 물음에 일영은 답했다.
“너는 내 시야 안에 있어야 한다.”
어째서인지,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야, 내가 안심할 수 있으니까.”
고개를 들었기에 일영의 얼굴이 한눈에 담긴다. 두려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지만, 왜인지 말의 뜻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케치 미쓰히데는 미친년이 아니었기에, 설렘이나 두근거림 따위 느끼지 않았다. 그저 껄끄러움을 입안에 감춘 채 고개를 조아릴 뿐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임을 알기에.
“그래.”
일영은 펄럭이는 장포를 여미며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밖에 서 있는 이츠키에게 명했다.
“오늘부터 함께 호위를 서게 될 여자다. 인사를 나누도록.”
그렇게,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영의 호위 무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
아케치 미쓰히데는 며칠간의 심문과 검증을 거쳐 일영의 말 대로 그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때문에, 그녀는 내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 상냥하다는 말을 듣고, 몇 번은 실제로 보기도 했으나 첫인상부터 틀어진 후였다.
때문에, 그녀는 생각했다.
겉으로 보이는 인자한 웃음은 가면이며, 속은 그 누구보다 두려운 사내라고.
실제로 일영과 같이 사는 사내를 직접 본 것이 그녀다. 바로 사이토 도산이 일영과 같았다.
그렇기에 최대한 무표정을 가진 채,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들에게 거리를 두며 일영의 뒤를 따랐다.
“아, 히라케 님!”
“수고하십니다.”
때때로 지나가는 여 사무라이들이 홍조까지 띠며 고개를 조아리고, 그것에 일영이 웃음을 지으며 화답해주는 모습에도 그녀는 속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대신 고개를 숙여 그의 발뒤꿈치를 바라본다. 그가 내딛는 걸음의 뒤를 쫓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 언니?”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린다.
설마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 넓은 일영의 어깨 너머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여자가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성큼 앞으로 향했고,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키쵸…!”
“어, 언니!”
키쵸의 작은 몸이 넘어질세라 달려온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론, 놀란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가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가씨…!”
“당신은….”
달려와 품에 고개를 파묻은 키쵸를 끌어안고, 중년인의 정체를 가늠한다. 그러나 닌자가 답하기도 그들과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던 일영이 답했다.
“일 전에 말했던 편지를 가져 왔던 닌자다. 키쵸의 호위무사로 배정했지.”
일영이 낸 의견이었다. 그것을 닌자도 알기에 고개를 숙이며 일영의 말에 화답했다.
“…흐흑. 어, 언니이….”
아케치 미쓰히데는 자기 품 안에서 고개를 파묻고 벌벌 떠는 키쵸의 등을 끌어안으며, 무심결 탄식했다.
“…설마.”
키쵸와 일영의 약속이 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키쵸는 멍한 눈으로 중정을 바라볼 뿐이었으니까.
결국, 일영은 굳이 만날 필요가 없는 키쵸를 찾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등을 돌린 채 밖으로 향하는 일영의 뒷모습이 보인다.
“…일부러?”
확신이 아니다. 이쯤 되면 사실이다.
일영은 일부러 그녀에게 만날 시간을 주었다.
그러곤 저 자신은 발길을 돌린다. 뿐인가. 이츠키에게 말해 일대의 사람도 비켜 주었다.
‘뭐지.’
아케치 미쓰히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비록 마주한 것은 며칠 되지 않았으나, 도저히 저 남자의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겉으론 지극히 순하고 친절하다.
때때로 상냥하며, 자기 사람을 아끼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준다.
그러나 무언가 바뀔 땐 한없이 뒤틀린다.
그녀가 오와리에 몸을 담은 동안 들은 것은 ‘비 내리던 산의 야차’에 대한 소문이었다.
소수의 무사들을 이끌고, 요시타쓰가 보낸 추적대를 궤멸시킨 남자. 그 모습이 가히 야차에 가까웠다 했다.
때문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고민했다.
허나 그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으니.
“으어허엉…. 언니이….”
눈물 섞인 키쵸의 울음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왔습니다. 사마노도….”
그렇기에 이츠키는 생각을 멈추고 키쵸를 보듬었다. 해가 저물고,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는 중정의 안에서 그렇게 두 여자는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 한참을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각.
일영은 그 모습을 이츠키와 단둘이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곁에 서 있는 이츠키에게 명했다.
“아케치 미쓰히데를 잘 지켜봐.”
“예. 당주.”
경계는 풀지 않았다.
다만, 품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한편, 고개를 숙인 채 일영의 명령받은 이츠키는 생각했다.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일영의 싸늘한 무표정이 유달리 서늘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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